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꼬리를 자른 걸까……
종로서 앞은 기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연쇄살인마 이한성이 구치소로 이동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놈은 종로서 앞에서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푹 숙인 모습.
범죄자 신변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신상공개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찰칵, 찰칵.
“이한성 씨 한 마디 해주시죠. 눈깔을 동경해서 조명호 사장을 노린 겁니까?”
-찰칵, 찰칵.
“저택에 상주중이던 경호원들은 혼자서 살해했나요?”
-찰칵, 찰칵.
“피해자 유족들에게 할 말 없으십니까?”
기자들의 쇄도가 거세지자 형사들이 좌우에서 이한성을 감싸며 호송차로 향했다.
“질문은 여기까지 받겠습니다.”
“아니, 아무 대답도 안 했잖습니까?! 경찰이 범죄자를 옹호하는 겁니까?”
“무죄추정의 원칙 모르세요? 아직까지 용의자니까 거기까지만 하세요.”
“현장에서 잡힌 범인에게 무슨 무죄추정입니까?! 이보세요, 형사님!”
그는 기자들을 무시하고 이한성을 호송차에 태웠다.
앞뒤엔 경찰차가 경호를 위해 배치되었고, 세 대의 차량은 종로서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출발해.”
내 지시에 공돌이가 차를 몰아 호송차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거리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진 상태였다.
어설픈 미행으로는 경찰의 눈과 CCTV를 속일 순 없으니.
-해달아, 신호등 준비됐어?
-네.
-신호하면 정지등만 유지되도록 제어해.
공돌이는 미리 계획된 대로 도시외곽도로를 달렸다.
그렇게 호송차와 일정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도로를 달리며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이잉.
나는 창문을 열고 염력으로 수면가스가 든 가스캔을 날려보냈다.
전부 세 개로 호송차와 경호를 맡은 경찰차 두 대를 노린 것이었다.
그렇게 차 지붕위에 가스캔을 붙여놓고 해달에게 신호를 보냈다.
-준비됐어. 시작해.
-띵동, 빨간불입니다.
신호등이 바뀌자 세 대의 차는 줄줄이 정지선 앞에 멈춰 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퍼엉! 퍼엉! 퍼엉!
가스캔을 미처 터트리기도 전에 세 대의 차량이 폭발하더니 불길에 휩싸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는 건 분명 차량화재가 아닌 폭탄이 터졌다는 것이었다.
-콰앙, 쾅, 쾅!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구는 차량을 보며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이한성을 코앞에 두고 새치기를 당하다니.
“형님······”
공돌이가 나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내 표정을 보고 말을 잇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돌아가자.”
분명 AFK의 남은 세 놈 중 한 명일 터.
이렇게 빨리, 그것도 폭탄을 이용한 대범한 방법을 이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꼬리를 자른 걸까……’
***
그 시각 종로서 후문.
후드를 눌러 쓴 이한성은 좌우를 경계하며 나오더니 그 앞에 있던 검은색 세단의 뒷좌석에 탔다.
“어르신께서 보냈나?”
“네.”
“장비는?”
운전석의 남자는 말없이 종이봉투를 건넸다.
속에는 소음기가 달린 총과 탄창, 그리고 대포폰이 들어있었다.
-띠리리리.
통화음이 울리자 이한성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어르신.”
-엘, 몸은 어떤가?
“나쁘지 않습니다.”
-허면 바로 움직이는데 무리가 없겠군.
“네, 대역이 들통 나기 전에 작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고병진이 선거캠프로 데려다 줄 걸세.
“알겠습니다. 근데······”
-할 말이라도 있는가?
“저 대신 죽은 그 친구는 어떻게 그렇게 순순히 지시를 따른 겁니까? 충성심은 아닌 것 같던데……”
-별 거 아닐세. 약물을 투여하고 세뇌 시켰네.”
당사자의 목숨을 끊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세뇌라니.
이한성은 그런 수준의 세뇌라면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 판단하고 의견을 말했다.
“그럼 고병진은 어떻습니까? AFK를 배신했다는 게 확인되면 죽이는 것보다 세뇌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요?”
-호호, 세뇌가 만능이었으면 AFK를 만들 필요 없이 내가 대한민국을 지배했을 거네. 단순한 지시 정도만 가능하니 염두에 두지 말게.
“그렇습니까……”
-고병진이를 대체할 놈은 많으니 아까워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놈은 배신의 여부와 상관없이 처리하도록 하게.
“네? 그냥 죽이란 말씀이십니까?”
-광화문 지하연구실이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하는데 보고만 있지 않은가. 다른 이들이 그렇게 되었으니 응당 그 친구가 챙겨야 할 일인데도 말이야.
“…….”
-자네가 현장실무 세팅하고 나는 실권자들 모으고 다시 시작하세.
“네, 어르신.”
이한성은 통화를 끊고 등을 기대며 생각했다.
‘역시 블랙뱅크를 만든 거물답군. 결단력이 대단해.’
차기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인물을 단칼에 쳐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조차 세뇌를 해서 이용할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박춘금은 장기말 중 졸(卒) 하나를 버리듯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뒤에서 이도환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말도 뜬소문이 아닌 모양이네.’
이한성은 이도환이나 조차신보다 그녀가 중심에 서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식으로 2인자가 될 줄이야. 전화위복이 이런 건가, 후후.’
***
이혜선이 입원한 VIP병실.
TV에서는 광화문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어제 오후 3시경, 광화문에서 지진을 느꼈다는 시민들의 제보가 줄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인을 파악해보니 지진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최지연 리포터.
-네, 최지연입니다. 제가 있는 이곳은 광화문역입니다. 제보는 바로 여기, 광화문 지하철역을 이용한 시민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제보자의 인터뷰를 들어보겠습니다.
-시민1 : 처음엔 지하철 때문에 그런가라고 생각했죠. 근데 진동이 점점 심해지는 거예요. 그때 지진이다 싶었어요.
-시민2 : 다들 패닉에 빠지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역 안에 있다가 무너지면 매몰될 수도 있으니까요.
-시민3 : 우리나라도 이제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무서웠어요.
-네, 대부분의 시민들은 지진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니 지진이 아니라 광화문역 지하에서 수맥이 터져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카메라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적힌 철문을 지났다.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가 있었고 사각형의 구멍 아래에서는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확인결과 여기는 조선총독부 지하방공호로 이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수맥이 터지면서 진동이 발생했고, 여기까지 물이 차오른 것입니다.
인터뷰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서울시 토목과 : 그곳과 관련된 자료가 남아있는 게 없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기자 : 자료가 전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서울시 토목과 : 자료보관기간이 넘어서 전부 폐기한 상황입니다.
-기자 : 철거된 청사는 그렇다고 해도 지하방공호는 아직 남아있는데 폐기한 건가요?
-서울시 토목과 : 워낙 오래전 일이고 관련 담당자들이 모두 은퇴하셔서 저희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시 최지연 리포터의 얼굴이 비치며 의혹의 말이 쏟아졌다.
-확인해보니 서울시뿐만 아니라 국토부 등 관련 부처 모두 지하방공호에 대한 자료가 폐기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구폐쇄라기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방공호가 건설된 당시에 없었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가 이곳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최지연이었습니다.
-저희 JCC는 앞으로 관련 사건을 더욱 심층취재하여 시청자분들에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관련 뉴스가 끝나자 이혜선은 곧바로 TV를 껐다.
보도내용만으로도 확신에 가깝게 추정할 수 있었다.
광화문 지하방공호에서 그들이 약의 제조와 그 세포의 연구를 해왔다는 걸.
‘그 아이가 벌써 저곳을 찾아내다니……’
배후를 안다고는 했었지만 은거지까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렇게 간단히 찾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시간이 있을 거라 판단했고, 일단 그들과 엮이게 된 아들의 안전을 위해 능력을 되찾아주기 위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이 전민성을 통해 전달한 어린 시절 영상이었고, 전두엽이 자극받는다면 조금이라도 능력이 강해질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수맥을 어떻게 터트렸을까…… 설마 그 능력으로 그런 건 아니겠지?’
의혹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혜선은 고개를 저었다.
일제 강점기의 지하방공호, 그것도 조선총독부의 실권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 규모가 얼마나 클 것인가.
그곳을 수장시킬 정도라면 한 개체가 가지기엔 너무 과도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닐 거야.’
그만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재해나 다름없다.
아무리 초능력이 그 원리를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라지만 세상엔 기본적인 법칙이라는 게 존재했다.
이혜선은 학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판단하고 더 이상의 의혹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윤실장님, 밖에 계세요?”
그녀의 말에 윤종호가 노크 후 병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퇴원수속 밟으세요.”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미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치료는 거기서 받아도 돼요.”
이혜선은 광화문 뉴스를 설명하며 한국에서 그 세포는 더 이상 구하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그곳만이 아니라 다른 시설이 더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보안 때문에라도 그렇진 않을 거예요.”
윤종호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지난 칠 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께서 지부장님께 전권을 맡긴 건 반드시 구해오라는 뜻이었습니다. 만약 구하지 못했다고 보고를 드리면 그냥 넘어가진 않으실 겁니다.”
상벌이 확실한 사람이 이엘바이오 맥 무어 회장이었다.
그간 이혜선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니 실패에 따른 대가는 상당할 것이 분명했다.
“각오하고 있어요.”
이혜선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외람되지만 한 말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말씀하세요.”
“혹시 지부장님께서는 처음부터 그 세포를 얻을 생각이 없었던 거 아닙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죠?”
당신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으니까.
윤종호는 그 생각을 조리 있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까지 모셔보니 지부장님의 마음속에는 복수만 가득했었습니다. 이엘바이오 아시아지부의 목표, 십칠 년 전에 헤어진 아들에 대한 그리움조차 파고들 틈이 없을 정도로요.”
“……”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석훈 군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고, 지금도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의 말이 맞았다.
미국에서의 십 년, 그리고 한국에서 칠 년.
이혜선은 오로지 남편을 죽인 자들에 대한 복수만 생각했다.
심은희는 죽고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한 이혜선이 되어 살아온 것이었다.
“윤실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게 맞겠죠.”
그녀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아들이 그들에게 복수를 한 이상 삶에 미련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부장님, 복수는 끝났더라도 아직 남은 게 있지 않습니까.”
“……?”
“미국에는 저 혼자 돌아가겠습니다. 프로젝트 실패에 대해서도 잘 무마시킬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윤종호는 측은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신 지부장님도 지부장님 본래의 인생을 사십시오.”
“……”
“더 이상 이혜선이 아닌 심은희로 살아가시란 말입니다. 지난 세월은 잊어버리고.”
이혜선은 이엘바이오를 위해 십 년 동안 헌신했고, 그것만으로도 한국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에 충분했다.
거의 매일을 악몽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 그녀가 이제는 아프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윤실장님 마음은 고맙지만 다시 심은희로 살아갈 순 없어요.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으니까.”
하지만 이혜선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스스로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이유가 뭐든 저는 아들이 아닌 복수를 택했어요. 엄마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더 거론하지 마세요. 우리는 미국으로 함께 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