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빨리 안 일어나?!
“망할! DNA가 다르데. 모자 쓴 그 새끼, 이한성이 아니었어.”
박인섭이 집으로 돌아와 꺼낸 말이었다.
그는 인맥을 총동원해 호송차에서 죽은 사람들의 DNA를 이한성의 DNA와 국과수에서 대조한 후 곧장 온 것이었다.
그 결과는 변장한 대역.
놈들은 이한성이란 꼬리를 자른 것이 아니라 놈을 탈주시킨 것이었다.
부모님의 원수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것이 아닌 살아있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놈은 그렇게 쉽게 죽으면 안 되니까.
“어느 정도 예상하고 갔잖아요. 뭘 그렇게 역정을 내세요?”
육손이가 눈치도 없고, 생각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 새끼가 이한성이 아니었다는 건 종로서 내부에서 바꿔치기 했다는 거잖아. 그게 무슨 말이겠어?”
“형사 중에 이한성을 빼돌린 사람이 있다?”
“그래, 인마! 어이구, 속 터져.”
박인섭은 울화통이 터지는지 육손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니 왜 절 때려요?”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해라.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잖아, 응? 응?”
“아야! 그만 좀 때려요! 경찰이 썩어빠져서 그런 걸 왜 나한테 화풀이를 하고 그래요.”
나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해달과 공돌이에게 말했다.
“장비 챙기고 준비해.”
“오늘 밤에 움직이려고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잖아. 이한성 잡는 걸 허탕 쳤으니 박춘금이라도 조져야지.”
그년을 잡으면 이한성의 소재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박계장님.”
“응?”
“종로서에 숨어있는 곁다리 반드시 잡으세요. 어떻게 이동 중에 탈주시킨 것도 아니고 경찰서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박인섭은 위아래 입술을 말아 넣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저거 봐, 저거. 약자 앞에서만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약하지.”
육손이가 속삭이듯 내뱉는 말에 박인섭이 눈을 치켜떴다.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내가 뭘요?”
“너 잠깐 이리 와봐?”
“아 또 왜요?!”
“야이 새끼야, 어딜 도망가! 이리 안 와? 셋 센다!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 반!”
***
경기도 외곽, 어느 산길.
검은색 중형세단이 한쪽에 정차되어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은 지나가는 차량도 없어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그때 차안에서 팟팟하고 불빛이 반짝이더니 이내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치익.
담배불에 불을 붙이는 사람은 엘, 이한성이었다.
그는 담배 한 모금을 내뱉은 뒤 전화를 걸었다.
“어르신, 접니다.”
-어떻게 됐는가?
“고병진이는 번개탄 자살로 뉴스속보에 나올 겁니다.”
-배신했는지 여부에 대한 건 뭐라던가?
“그게······ 계속 부인을 하는데 거짓말 같지는 않았습니다.”
-흐음, 내부정보를 흘린 게 고병진이가 아니었다?
“네. 아무래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라니?
“블룸이 괴멸된 그 시점부터 되짚어볼 생각입니다.”
블룸의 두 개 팀에서 노렸던 박인섭과 전민성.
엘은 직접 그들을 찾아가 단서를 찾을 것이라 설명했다.
-그 두 사람을 통하면 AFK를 이 꼴로 만든 놈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거군.
“네, 그놈들이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마무리 하는 대로 명동으로 찾아오게.
“네, 어르신.”
이한성은 통화를 끊고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
명동의 최남단은 남산과 맞닿아 있다.
그 경계는 국치(國恥)의 길이라 하여 국권을 상실한 나라의 치욕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친일파의 후손인 박춘금의 저택은 우습게도 그 국치의 길 너머 남산의 산자락에 자리해 있었다.
나무가 무성하게 가려져 있어 탐방로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남산에 개인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니. 이게 말이 돼?”
육손이의 말에 해달이 답했다.
“일제시대 때부터 터를 잡았으니까 그렇겠지. 아니면 공직자들이 막아주고 있거나.”
“와 씨, 돈 있고 빽 있으면 남산에서 살 수 있는 거구나. 혹시 남산이 그 여자 개인재산인 거 아닐까?”
나는 승합차의 문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가자. 해달, 넌 여기 남아서 작업 계속 하고.”
“넵.”
공돌이와 육손이는 나를 따라 내리며 후드가 달린 롱코트를 입었다.
내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너희들, 그거 뭐야?”
“이거요? 형님처럼 얼굴 가리려고요.”
“왜 내 옷이랑 똑같냐고 묻는 거잖아.”
“저희…… 팀이잖아요.”
공돌이는 뻔뻔하게 대답하며 후드를 썼다.
“벗어.”
“아니, 왜요. 제 돈 주고 산 건데.”
더 들을 필요도 없다.
이제 보니 전에 광화문에서 저걸 준 건 나부터 입히고 단체복을 맞추려고 수작을 부린 것이었다.
-쫙쫙!
“안 돼!”
“닥쳐, 그 입까지 찢어버리기 전에.”
“이거 비싼 건데······”
공돌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가방을 멨다.
육손이는 ‘거봐, 이럴 줄 알았어’라는 표정으로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가자.”
나는 앞장서서 시커먼 산속으로 들어갔다.
염력으로 수풀을 좌우로 벌리며 길을 내었다.
정면으로 쳐들어가지 않는 건 사전작업을 위함이었다.
-형님, 스톱! 앞에 적외선 감지기 있어요.
육손이가 연결된 텔레파시를 통해 말했다.
-어디?
-저기 열시 방향 소나무 위에 보이죠?
-어떻게 알았어?
-전직 도둑으로서의 식스센스? 헤헷.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공돌이에게 손짓했다.
녀석은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물건을 꺼내 건네주었다.
감지기의 적외선 발출부에 붙여 센서를 무력화시키는 장치였다.
-달칵.
염력으로 부착시킨 후 계속해서 저택을 향해 움직였다.
숲 속에는 몇 개의 감지기가 더 있었고, 그럴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철제 울타리가 쳐진 곳에 도착한 후 공돌이는 가방에서 안테나가 달린 기계를 꺼내 내려놓았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저택 주위에 방해전파를 발생시키는 장치라고 했다.
한 마디로 외부와의 무선통신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해달아, 이쪽은 작업 끝났다.
-저도 방금 완료했습니다.
이곳 지하에 매설된 통신 및 전력공급케이블은 바로 인근에 위치한 남산 케이블카에 이어져있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거머리처럼 남산케이블카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고 있던 것이다.
-전기는 놔두고 통신만 차단시켰으니까 거긴 이제 외부와 고립된 상태나 마찬가집니다.
-수고했다. 이상 있으면 알려줘.
-네.
나는 염력으로 눈앞의 철제 울타리를 좌우로 뜯어버렸다.
전류가 흐르고 있었는지 스파크가 튀며 불꽃을 일으켰다.
“가자.”
이제부터는 좀스러운 침입이 아닌 정면돌파다.
내부로 들어가자 일본풍의 근대가옥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택 앞에는 관상어가 헤엄치는 연못도 있었다.
“형님, 여기 꼭 일본집 같지 않아요? 집만 보면 친일파가 아니라 그냥 쪽바리일 것 같은데.”
공돌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때 저택 좌우에서 열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기모노를 입고 옆구리에 일본도를 두 개씩 차고 있었다.
마치 사무라이처럼.
“나니모노다(웬 놈들이냐)?”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앞으로 나오며 일본어로 지껄였다.
건장한 체격에 칼자국이 난 얼굴은 야쿠자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험상궂었다.
“조선말로 해, 이 새끼야.”
“나니(뭐라)?”
“뭐라는 거야? 한국어 할 줄 아는 놈 없어?”
“스베떼 키야치(전부 잡아라)!”
그 순간 놈들이 촹촹하는 소리와 함께 일본도를 빼들었다.
살기등등한 걸 보니 사람 한둘 썰어본 게 아닌 모양이었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정열과 낭만아.”
그때 내 뒤쪽에서 이상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공돌이와 육손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니들 지금 뭐하는 거야?”
“아직도 내겐 거친 꿈이 있쒀, 세상 속에 남았찌.”
“미쳤어? 이 상황에서 무슨 노래야?”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육손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형님, 이 노래 모르세요?”
“뭔데 그게?”
“아, 이건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는데. 안 그래, 구마적?”
구마적은 또 뭐야?
“신마적, 네 말이 맞다. 형님, 야인시대 모르세요? 나는 야인이 될 거야, 어두운 세상 헤쳐 가며. 진짜 몰라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육손이가 신마적이고, 공돌이 네가 구마적이라는 말이네?”
전에 오백 원 가지고 장난친 걸 깜박하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참에 확실하게 교육해야겠다.
“예, 오야붕.”
“응, 그래. 내가 오야붕이구나. 아까 단체복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오늘 한 번 죽어보자.”
일단 염력으로 공돌이와 육손이의 몸을 장악했다.
목숨이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칼 든 놈이 열 명이라지만 내 앞에서는 벌레나 마찬가지니까.
“어? 형님, 이거 설마 형님이……”
“내가 왜 형님이야. 오야붕이지.”
“……어, 어쩌려고 이러세요?”
“어디 낭만적으로 싸워봐. 구마적? 신마적? 이름이 마적인 거 보니까 잘 싸울 거 같은데.”
그 순간 두 마적이 적들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우악! 저 싸움 못해요!”
“형님! 스톱! 잠깐만요!”
***
-사악!
사선으로 내려친 일본도가 고개를 숙인 공돌이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플로우 상태에서 바라보는 타인의 움직임은 슬로우 모션이었다.
나는 공돌이의 주먹을 뻗어 앞에 위치한 일본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뻐억! 우드득!
한 방을 때리고 그 타이밍에 염력으로 상대의 모가지를 비틀었다.
마치 주먹에 맞아서 그렇게 된 것처럼 연출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발을 떼고 공중에서 몸을 회전.
공돌이의 좌우 발차기가 양쪽에서 덤벼들던 놈들의 가슴을 때렸다.
물론 마무리는 염력이었다.
‘바쁘다 바빠……’
역시 멀티태스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플로우로 인지감각이 상승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을 조종하며 상대의 움직임도 계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악! 칙쇼!”
육손이는 공중제비를 돌며 일본놈들의 머리통을 발뒤꿈치로 내려찍었다.
아슬아슬하게 칼을 피하게 하고 식겁하게 만드는 건 덤이었다.
“혀, 형님! 다신 안 그럴게요! 무서워 죽겠어요! 제발 그만 좀…… 히익!”
공돌이는 다가오는 일본놈들의 눈빛을 마주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제가 다시 그런 짓을 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절대 장난 안칠게요. 정말이에요.”
육손이를 돌아보자 녀석은 공중제비를 몇 번 돌았다고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웨엑! 우웁!”
그 틈을 노리고 일본놈 두 명이 좌우에서 육손이를 찔러갔다.
나는 염력으로 육손이를 빼내고 그놈들이 서로를 찌르게 만들었다.
“앞으로 상황파악은 좀 하자.”
“네, 네! 죄송해요. 우엑!”
결국 육손이는 정원 한 쪽에 주저앉아 먹은 걸 전부 게워냈다.
그 사이 공돌이가 나머지 세 명에게 포위된 채로 징징 짜기 시작했다.
“타, 타츠케테 구다사이(사, 살려주세요)!”
“고노야로(이 새끼)!”
“스미마셍(죄송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얼추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느긋하게 지켜보며 공돌이를 그대로 놔두었다.
“형님, 저 녀석은 왜 안 빼주세요?”
“아직 멀었어. 공돌이, 저 새끼는 좀 더 당해봐야 해.”
그래야 다시는 안 까불지.
-쉬익!
세 놈 중 한 놈이 먼저 공돌이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런데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던졌고, 공돌이가 피하자 달려들며 양손으로 몸을 붙잡았다.
“이소이데(서둘러)!”
그 말에 한 놈이 뒤에서 달려들며 공돌이의 양팔을 잡았다.
피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형님, 좀 위험한 상황인 것 같은데요.”
아직은 아니다.
한 놈이 더 남았다.
-쇄액!
얼굴에 칼자국이 난 일본놈 대장이 머리를 쪼갤 듯이 일본도를 세로로 그었다.
기세로는 공돌이와 녀석을 앞에서 붙잡고 있는 부하까지 통째로 베어버릴 것 같았다.
“……!”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본도를 보던 공돌이의 눈이 하얗게 뒤집어졌다.
기절한 것이다.
나는 그걸 보고 나서야 움직였다.
-우뚝.
염력으로 세 놈의 몸을 구속시켰다.
일본도는 공돌이의 정수리 5센치 위에서 멈췄다.
그 틈에 손에서 백 원짜리 동전을 뿌렸다.
-핑, 퍼억! 퍼억! 퍼억!
동전은 은빛 호선을 그리며 세 놈의 심장을 차례로 꿰뚫었다.
순서대로 죽였지만 거의 동시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속도가 빨랐으니까.
“형님, 공돌이 녀석 기절했는데요.”
“음냐, 쩝쩝. 하야시 나오라 그래.”
기절한 공돌이의 목소리였다.
아직 의식을 차린 게 아니라 잠꼬대였다.
“하야시는 또 누군데?”
“야인시대에 나오는 혼마찌의 오야붕요.”
식겁을 하고 기절까지 했으면서 잠꼬대로 저런 말이라니.
정말 못 말리는 놈이다.
나는 발로 공돌이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빨리 안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