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지금의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네
이엘바이오.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로 업계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로 규모가 큰 기업이다.
그들은 항생제, 희귀 난치병 치료제 등 신약의 개발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의료기기 및 신체보조기구, 신체대체제 같이 다양한 분야에도 사업을 넓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미래의학이라 불리는 냉동인간기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리노이주 냉동인간 보존탱크 저장고.
그곳에는 수백 개의 원통형 은색탱크가 보관 중이었다.
이엘바이오의 회장, 맥 무어는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나타난 사람은 이혜선이었다.
“오랜만이에요, 미스터 무어.”
맥 무어는 탱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그의 태도는 무척이나 냉담했다.
“실망 시켜드려서 죄송해요.”
“허허, 실망이라······ 그래, 기대가 컸으니 실망도 큰 것이겠지. 칠 년 정도 되었나? 자네가 한국으로 갔던 게.”
“……네.”
“긴 시간이지. 헌데도 내가 왜 그간 아무 말 없이 자네를 믿고 기다렸는지 아는가?”
그가 바라보는 탱크에는 ‘엘리자베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풀 네임은 엘리자베스 무어.
맥 무어의 딸은 냉동인간이 된 상태였다.
“내 딸의 시간은 멈춰 있으니까. 칠 년이든 칠십 년이든 상관없었으니 그런 것이네. 그 세포만 있으면 엘리자베스의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
“처음 자네의 보고서를 봤을 때 나는 죽기 전에 살아있는 내 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질 수 있었네.”
“……죄송해요.”
“허허, 죄송? 내게 희망을 주고, 그걸 다시 앗아갔는데 그 말로 보상이 되겠는가?”
냉동인간 기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해동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데 있었다.
정확하게는 동결 시 손상된 세포.
동결보호제를 사용했다지만 세포 단위의 수분이 얼음화가 되며 조직을 파괴하는 걸 완전히 막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소생을 시키려면 손상된 세포를 회복시킬 방안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바로 이혜선의 보고서에 있었다.
끊임없이 활동하고 자가복원까지 가능한 특수한 세포.
처음엔 터무니없다 여겼지만 그 사례가 실제 연구가 바탕이 된 것이었고, 그녀가 자신의 정체와 함께 가족의 비사를 드러낸 직후에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 남은 평생을 바쳐서라도 엘리자베스를 소생시킬 방안을 찾을게요.”
이혜선은 그걸로 그를 이용한 죗값을 치르려 했다.
하지만 맥 무어의 생각은 달랐다.
“그거 아는가? 얼마 전에 엘리자베스의 병을 치료할 신약에 대한 안전성 검사가 끝났다는 걸.”
“……”
“사십 년, 생각보다 빨리 치료제를 만들었네. 이제 저 아이가 깨어나기만 하면 되는 거지. 허니 난 자네와 기약 없는 약속을 할 생각이 없다네.”
딸이 깨어나 병을 치료하더라도 혼자가 아닐 수 있게 되었다.
맥 무어는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 세포를 구해오라는 건가요?”
“아니, 그건 내가 구할 걸세. 그간 자네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 백방으로 알아봤다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뿌려졌다는 걸 최근에 알 수 있었지.”
“……세계 곳곳에요?”
“어떤 놈들이 언더그라운드 옥션을 통해 흘렸다는 것만 파악했네. 지금부터 제대로 조사해볼 참이고. 참고로 그 세포의 이름은 ‘네오 셀’이라 부르더군.”
“네오 셀······”
“흐음, 모르고 있었는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겐가?”
맥 무어는 입구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다가와 이혜선의 주위를 둘러쌌다.
경호원이라기엔 그들의 분위기는 흉흉했고, 위해를 가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자네의 머릿속에 든 걸 모두 알아낼 생각이네.”
“……미스터 무어.”
“부디 순순히 협조해주게나. 지금의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네.”
맥 무어는 그녀가 아직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
서울호텔 대연회장.
그곳에서 전민성과 박인섭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광화문 지하방공호, 그리고 그곳에서 자행된 인체실험에 대한 내용이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전민성이었다.
그는 AFK라는 조직의 존재를 밝히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전직 대통령 이도환, 신화그룹 회장 조차신, 그리고 일영재단이사장이자 지하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블랙뱅크의 수장 박춘금. 이 세 사람을 필두로 AFK가 인체실험을 주도했습니다. 조직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재계와 국정원, 그리고 군부까지 관련자들의 이름이 전민성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기자들은 쉴 새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그 이름들을 받아 적었다.
그때 한 명의 기자가 손을 들었다.
“JCC 최지연 기자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인원 중 최두관 전 법무부 장관을 제외하면 전원이 대외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알고 계신 부분이 있습니까?”
그들은 지하방공호에 수장되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황.
전민성은 짐짓 모르는 척 답을 했다.
“지하방공호가 드러났기 때문에 두문불출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검찰에서 공개적으로 수사발표를 하지 않고 전민성 검사님께서 개인적으로 기자회견을 하시는 겁니까?”
“검찰 내부에는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착관계가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상부에서 압력이 있었습니까?”
“상부에 알리지 않고 이 자리를 빌어 국민들께 처음 공개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브리핑이 끝나고 받겠습니다.”
그는 이어서 피해자들에 대해 열거했다.
부랑자와 노숙자들이 그 대상이었고, 그들을 일선에서 납치한 블룸이라는 살인청부조직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남부교도소의 수감자 김말순, 그리고 김천소년교도소 교도관 강도팔. 그들이 어린 범죄자들을 킬러로 키워낸 사람들이고, 그 행위와 관련해 최두관 전 법무부 장관이 깊게 연루가 되어 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교도소 내에서 청부업자를 양성하고 있었다는 말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그때 기자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블룸이라는 살인청부조직의 이름이 언론에 나온 게 세 달 정도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그런 조직이 그렇게 오랫동안 암약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데 검경에서는 그 동안 그들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까?”
“말씀드렸다시피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조직의 상부에도 블룸과 관련된 AFK 조직원들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저나 여기 계신 박인섭 전 강남서 형사계장님을 비롯해 현장의 몇몇 이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박인섭은 마이크를 들고 전민성의 말을 이어 받았다.
“박인섭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블룸의 뒤를 조사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눈깔이라는 연쇄살인마가 블룸의 킬러인 걸 알고 그를 쫓았고, 상부에 의해 경질 당했습니다.”
약간의 거짓말이 가미된 화술.
박인섭은 이한성이 눈깔 본인이며 리 일가, 카람빗, 유령개라는 청부조직과 블룸의 알력싸움 중에 그들의 실체를 알고 접근했다고 말했다.
“이한성이 모방범이 아니라 눈깔 본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이한성이 눈깔이자 블룸을 만든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안기부 시절 언더커버로 활동하던 요원이기도 했습니다. 기자님께선 얼마 전 이한성이 구치소로 이동 중에 폭탄테러를 당한 걸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국과수에 확인해보니 그 호송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이한성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그들 중에는 당시 종로서에 갔던 기자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종로서 내부에서 이한성으로 변장한 누군가가 대역을 선 것입니다. 그리고 경찰 상부에서는 이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까?”
“가짜였다는 걸 숨기고 진짜 이한성을 잡기 전까지 함구하라는 내용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증명할 수 있으십니까?”
“국과수에 가시면 경찰청으로 관련 자료가 넘어간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이한성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까지 입을 닫고 있다면 압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때 눈치 빠른 기자 몇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과수로 막내기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회견장에 있던 기자 중 한 명이 외쳤다.
“AFK가 인체실험을 한 목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냉전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21세기다.
그들의 머릿속에 인체실험은 영화나 소설에서만 등장하는 소재였기에 그 목적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슈퍼솔져, 강화군인의 개발입니다.”
전민성이 마이크를 들고 답했다.
그는 실험체와 호랑이가 싸우는 장면을 영상으로 틀었다.
그건 임동규 박사가 시연회 전에 리허설을 한 것으로 해달이 연구실 중앙통제실을 장악하고 빼낸 자료였다.
“헉!”
“미X!”
“꺄악!”
전민성은 호랑이가 사람을 죽이기 직전에 영상을 정지시켰다.
“이들은 이런 식의 비인간적인 실험을 해왔습니다.”
기자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했다.
명분이 무엇이든 한국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인체실험을 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이십 년 간 이를 막으려했거나, 알리려한 인물은 없었습니까?”
한 기자가 침통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러한 사람이 있길 바랐다.
그의 영웅적 행위를 부각시켜 어떻게든 사람들의 관심을 다각도로 분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으니까.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모두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들 한 번쯤은 서병국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생명공학의 권위자셨던 서병국 박사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분은 AFK로부터 관련 실험을 제안 받았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척 하며 내부에서 인체실험을 막으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십칠 년 전에 일가족이 실종된 그 사건 말이군요? 그것도 AFK의 짓이었습니까?”
“네, 그리고 아직 언론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때 실종된 서병국 박사님은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
기자들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자 전민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지웅 박사의 저택 지하실에서 발견된 신체조각. 그 시신이 그분의 것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
기자회견 후,
언론사들은 대대적으로 관련 기사를 쏟아내었다.
인체실험과 청부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주제였던 만큼 거의 모든 뉴스에 도배가 되다시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부 그에 대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병국 박사.
AFK를 막으려다 비극적이게 죽은 그를 추모하는 기사와 영웅시하는 내용들도 줄을 이었다.
더군다나 살아생전 세계적인 학자로 명성이 높았기에 인체실험에 못지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서병국 박사 그는 어떤 인물이었나?
-나사에서도 인정한 생명공학자, 서병국.
-악마의 실험을 막으려다 스러져간 비운의 천재.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을 뛰어넘는 IQ 200의 소유자.
그리고 관심은 그 가족에게로 이어졌다.
-서병국의 아내, 심은희 박사 역시 천재로 불린 생명공학자로 알려져.
-미모의 재원, 심은희. 하버드에서 만난 서병국과의 인연.
-속보! 실종되었던 서병국 박사의 아들 서훈, 프로골퍼 염석훈으로 밝혀지다.
-실종자 DNA 검증과정에서 아들로 확인된 염석훈 프로, 현재 신분을 되찾고 서병국 박사의 자택에서 거주 중.
그리고 점차 사람들의 관심이 일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 서훈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키도 크고 생긴 것도 존잘!
-우수에 찬 눈빛 봐. 가족사 때문인지 더 슬퍼 보여.
-외모가 다가 아니야.
-뭐가 또 있어?
-부모님 특허와 재산 전부 합치면 가치가 400억이래.
-헐, 자고 일어나니 유산이 400억!
-이것들아 외모와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서훈은 졸지에 고아가 돼서 힘겹게 자랐는데.
-맞아. 이 정도면 나라에서 배상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 배상해주자. 이도환 은닉자금, 조차신 비자금, 친일파 재산환수해서 말이야.
그렇게 그는 각종 매체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