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날 위해 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다음 날,
일행이 떠난 집에서 내 짐을 챙겨 나섰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만 잠시 떠나있을 참이었다.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후 오후가 되어서야 실비아와 다시 만남을 가졌다.
“퀸시라고 했지, 너희들 조직이?”
한국어로 말했지만 그녀의 귀에서는 영어로 들리고 있다.
고가의 동시통역기를 준비한 덕분이다.
국제회담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니만큼 성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네.”
“친목도모나 하려고 모인 건 아닐 거고 왜 능력자들을 모으는 거지?”
그때였다.
-실비아, 우리와 함께 하기 전까진 조직의 목적을 말해주면 안 돼.
-나도 알아. 적당히 둘러댈게.
지난번에 케이시라는 여자의 텔레파시에 접촉한 덕분일까.
도청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이런 것도 가능할 줄이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예요.”
“……뭐?”
짐짓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
그녀는 눈치 채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스컬의 헌터들은 끊임없이 우릴 사냥해왔어요. 철저한 살인기계로 길러진 그들은 아무리 네오휴먼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당해내지 못했고요.”
대단한 놈들이긴 했다.
그놈들도 초능력자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혹시 그놈들 중에도 네오휴먼이 있는 건가?”
실비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들은 설사 자식이라도 네오휴먼이면 무조건 죽여요. 우리가 그들을 당해내지 못하는 건 그들이 인간의 한계까지 잠재력을 개발했기 때문이에요.”
“잠재력?”
“네오휴먼의 능력이 초자연적인 힘이라면 스컬의 킬러들은 사람 본연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요. 극한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발휘되는 신체능력, 초일류 운동선수들의 육감, 서번트 증후군 등 인간이 가진 잠재력도 초능력이라 불러도 될 정도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강했던 거구나.
킴의 스피드는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고, 리우의 감각은 공중에 띄워놓은 몰카까지 알아챘었다.
훈련받은 살인기술에 그런 능력까지 있으니 버거운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놈들은 왜 네오휴먼이면 무조건 죽이는 거지?”
“네오휴먼의 존재가 인간을 위협한다고 느끼는 거예요.”
“……?”
“기본적으로 그들은 네오휴먼이 인간에서 갈라져 나온 다른 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것처럼 네오휴먼이 인간을 멸종시킬 것이라 여기는 거예요. 그리고 또 다른 관점으로는 초능력을 개인의 전유물로 내버려둔다면 문명이란 시스템이 망가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어요. 폭력은 개인이 아닌 집단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거죠.”
나름의 명분이 있다는 거구나.
그런데 저들은 어떻게 그런 걸 자세히 아는 걸까?
수백 년을 대립해오며 알게 된 건가?
“아무리 적대세력이라도 너무 자세히 아는 거 같은데?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처음 퀸시를 조직한 사람이 스컬과 연관이 깊었거든요.”
“……?”
“아까 스컬은 자식이라도 네오휴먼이면 죽인다고 했죠?”
“설마······”
“네. 지금으로부터 사백 년 전, 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한 딸이 살아남아 만든 조직이 퀸시에요.”
퀸시(Quinchy).
라틴어로 다섯 번째를 뜻하는 퀸투스(Quintus)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다섯 번째 자식이 만든 조직이라는 뜻이다.
“당신들 조직이 사백 년이나 됐다고?”
“스컬은 더 오래 되었어요. 정확히 그 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조직명이 그렇게 고리타분했던 건가?
스컬, 고전적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만한 역사가 있었던 것이었다.
“근데 말이야.”
“……?”
“아무리 스컬놈들이 후천적으로 잠재능력을 개발한다고 해도 그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아. 반면에 네오휴먼은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나니까 전투훈련을 받으면 당신들이 더 유리한 거 아냐? 왜 듣기로는 당신들이 스컬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지?”
“그건 개개인의 기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 또 다시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실비아, 너 설마 그걸 얘기하려는 거야?
-얘기 안 해. 알아서 잘 설명할게.
그거라니, 뭘 말하는 걸까.
궁금하긴 한데 몰래 엿듣고 있는 터라 물어볼 수가 없다.
“네오휴먼은 개인의 기질이 능력의 계열에 따라 구분돼요.”
“무슨 말이지?”
“우리는 크게 피지컬 계열과 사이킥 계열로 구분할 수 있어요. 그리고 호전적인 기질의 사람들은 피지컬 계열의 능력을, 방어적인 기질을 가진 자들은 사이킥 계열의 능력을 갖게 돼요. 꼭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래요.”
실비아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 ‘다 그런 건 아니다’라는 예외에 해당한다고 한다.
사이킥 계열이지만 네크로맨서의 능력 자체가 살상력을 가지고 있는 게 이유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염력 역시 이 예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방어적인 기질의 사람들은 전투훈련을 받아도 막상 실전에서는 실력발휘를 못한다던지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예요.”
그건 그럴 것이다.
훈련을 받는다고 누구나 잘 싸우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 피지컬 계열의 능력자가 전투원 역할을 하면 되겠네.”
“피지컬 계열은 없어요.”
“……뭐?”
“그들에겐 네오 셀이라는 유전적 특징이 있어요. 그리고 능력을 발현할 시 초능력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고요. 그러니 스컬의 주된 사냥감이 된 거예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퀸시가 조직되기 전부터 죽임을 당해왔기에 오래전부터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스컬은 퀸시보다 피지컬 계열의 흔적이 나오면 그걸 최우선으로 제거한다고 하고.
이유는 사이킥 계열과 달리 그들에겐 특정유전정보가 담긴 세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능력이 후대로 유전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피지컬 계열은 유전이 되는 거야?”
“몇 세대에 걸쳐 드물게 발현이 되는 거라서 꼭 유전된다고 할 수도 없어요.”
DNA가 남아는 있다는 거구나.
그럼 사이킥 계열은 어떨까.
“우리 같은 사이킥 계열에겐 네오 셀 같은 특징이나 유전 가능성이 있어?”
“네오 셀 같은 특정 세포가 없기 때문에 유전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정설이에요. 대신 뇌파, 능력을 사용할 때 우리의 뇌는 일반인 수십 배의 특수한 파장을 발산하는 특징이 있어요.”
“그럼 능력을 쓸 때 외에는?”
“일반인과 전혀 구분할 수 없어요. 뇌파를 검사해도 마찬가지고요.”
이상하다.
뇌파에 대한 부분은 이혜선의 말과 동일하지만 한 가지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아버지는 AFK에서 만든 베놈을 내 뇌의 조직세포를 대상으로 실험했다고 했다.
뇌세포의 활동성이 뇌파를 폭증시키는 원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세포의 활동성을 없애고 뇌파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에게 그 베놈을 투여시킨 것이었다.
‘혹시······ 나도 네오 셀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이런 생각이 든다.
베놈이 내 피지컬 계열의 능력을 없애고 사이킥 계열인 염력까지 약화시킨 건 아닐까.
아무리 아버지가 천재 생명공학자라도 그저 나라는 표본 하나만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비밀이 많은 거야.’
염력인 줄 알았는데 정확히 염력도 아니고, 사이킥 계열인 것 같은데 또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지금 퀸시에는 사이킥 계열의 능력자만 있는 거야?”
“네.”
“나 같은 예외는?”
“그건 비밀이에요. 퀸시에 들어온다면 저절로 알게 될 거고요.”
있긴 있구나.
다만 저 태도로 보아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주지 않을 것 같다.
그녀가 지금까지 말한 건 퀸시와 스컬의 관계, 네오휴먼에 대한 정보, 그리고 저들의 거짓된 목적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조직의 목적이 거짓인 이상 이들과 손을 잡을 순 없다.
“근데 퀸시에 들어가면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실비아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는 듯 한쪽 눈썹을 휘며 답했다.
“말했잖아요. 스컬이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
“들었지. 그놈들은 사이킥 계열인 날 찾기 힘들다는 걸.”
“과연 그럴까요?”
“……?”
뭔가 그놈들에게 방법이 있다는 건가?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당신이 저지른 거죠?”
“……”
“그 중에 단 하나라도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고 자부해요?”
“……”
“이 나라에 와서 보니까 CCTV, 블랙박스 등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 같던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스컬에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천재 해커가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펜타곤까지 뚫어버리는 괴물이죠. 게다가 엄청나게 방대한 정보도 순식간에 분석하고 필요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사기적인 두뇌의 소유자예요.”
“……”
“단언컨대 그 사건들 주위에서 당신의 모습이 반복해서 찍혔다면 그의 눈을 피할 순 없을 거예요.”
그녀는 그 한 명의 해커가 퀸시의 움직임 대부분을 견제할 정도로 대단한 놈이라 말해주었다.
퀸시가 가장 중요시 여기던 리모트 뷰잉의 능력자가 죽은 것도 그가 위치를 찾아냈기 때문이라는 내용도 덧붙여서.
“신의 눈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아이작도 그의 그물망에 걸린 이후로는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보통은 우리 퀸시의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주력한다고 들었지만, 아이작의 경우처럼 그가 타겟을 특정하고 움직이면 아무도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어요.”
그런 놈이 있었구나.
얼핏 듣기에도 해달 이상의 해커인 것 같다.
“그럼 시골에 내려가서 살지 뭐.”
“……뭐라고요?”
“그런 놈이면 문명을 벗어나서 살면 되는 거 아냐? CCTV? 블랙박스? 도시라서 그렇지 우리나라도 지방에 가면 CCTV 찾아보기 힘든 곳 많아.”
“……”
“게다가 지방에는 아직 공동묘지가 많거든. 네크로맨서가 시체더미 옆에서 살면 누가 건드릴 수 있겠어?”
실비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케이시, 역시 스컬에 대해 말해줘도 소용이 없어.
-처음엔 다들 그렇잖아. 게다가 그는 ‘예외’이기도 하니까 더 그럴 테고.
-다른 놈들처럼 돈으로 유혹해볼까?
-닥터 서의 유산이 3천만 불이 넘는다고 들었어. 소용없을 거야.
-하긴 돈에 혹할 스타일은 아닌 것 같긴 해. 그럼 어떡해?
-스컬에게 쫓겨본 적이 없으니 저렇게 말하는 거잖아. 한 번 당하고 나면 태도가 달라질 거야.
설마 이것들이······
-그건 설득이 도저히 안 될 때 쓰는 방법이잖아.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야 해.
-무슨 일 있는 거야?
-아직 확실하진 않은데 사이먼이 룩셈부르크를 벗어난 정황이 있어.
-뭐?!
-첩보팀에서는 너 때문이라고 보는 중이야. 네오 셀의 연구현장에서 몇 번 노출됐었으니까.
-휴우, 아이작에 이어 날 노린다는 거네.
-서두르고 있으니까 금방 확인 될 거야. 다만 그가 향한 곳이 정말 한국이면 빨리 거길 벗어나야 해.
결국 실비아는 케이시의 의견에 동조했다.
-알았어. 근데 저 사람이 위험에 빠지면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해.
-러시아에 있던 그레이가 한국으로 출발했어.
-그레이가?
-위에 네크로맨서라고 보고하니까 그 사람의 신변보호를 위해 파견한 거야.
-그레이의 배리어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겠네.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그럼 스컬 쪽에 정보 흘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내색은 하지 말고.
나는 그들의 텔레파시를 엿듣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역시 퀸시와 함께 하진 못하겠다고.
문제는 케이시라는 년의 위치를 모르니 당장 눈앞의 실비아를 죽인다고 끝이 아닌 것이었다.
이러면 나도 저들을 최대한 이용해먹고 뒤통수를 때려주는 게 예의일 것이다.
“뭐야? 영입제안은 이걸로 끝이야? 고작 내 목숨을 운운하며 영입하려 하다니 실망인데?”
연기를 하며 아쉽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목숨보다 괜찮은 제안이 뭐가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생각난 건 있나?”
“아직 없네요. 혹시 원하는 게 있으세요?”
“있지.”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답변이라는 듯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죠? 혹시 돈을 원하나요?”
“돈은 나도 많아.”
“그럼 뭘 원하는 거죠?”
“날 위해 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뭐야 이 음란한 감정은?
혹시 내가 자기 몸뚱이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마, 말해요. 뭐든 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