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거기 가만히 있어, 금방 갈 테니까
이상했다.
두 사람의 싸움.
해골가면은 분명 강했지만 너무 일방적이라고 할까.
그레이라는 놈은 경호를 위해 퀸시에서 보낸 놈이다.
그런데 덩치값도 못할 뿐더러 배리어라는 초능력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초능력이 보이지 않으니 활용을 못하는 건지 사용을 못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배리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안 보이는 건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배리어라는 능력 역시 같은 계열이고 지금까지 경험한 사이킥 능력들은 전부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이상한 건 또 있단 말이지······’
실비아는 왜 저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일까.
그레이 역시 싸우기 전에 비슷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 뇌리를 스치듯 지나가는 게 있었다.
“설마 독?”
놈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독을 썼다면 저 모습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초능력이란 기본적으로 집중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즉, 중독당한 상태에서는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 독이라면 저 상황이 말이 되지.”
아무래도 이번 해골바가지는 독까지 쓰는 놈인 모양이다.
이이제이의 전략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나라도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독을 당하면 상대하기 까다로울 테니.
“그건 그렇고 저 곰 같은 놈, 금방 쓰러질 줄 알았는데 꽤 잘 버티네.”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실비아의 앞을 단단히 막아서고 있다.
그리고 그가 버텨주는 덕분에 알 수 있는 게 또 있었다.
바로 해골가면의 실력.
이렇게 멀리서 보는데도 놈의 공격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내가 상대한 놈들 중 가장 빨랐던 킴(케이)과 비교가 되었고, 훨씬 월등한 스피드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위험한 놈이야.’
기회가 있을 때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하면 사이먼이라는 놈의 위치까지 파악한 후 일망타진하고 싶지만 그놈은 직접적인 위협이 아닌 만큼 저놈을 죽이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게다가 상황도 좋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있으니 그 결과가 양패구상이면 아주 자연스러울 것이다.
‘슬슬 결착을 지을 때네.’
드디어 기회가 왔다.
해골가면의 오른손이 그레이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한 놈이 죽었으니 내가 해골가면의 목숨을 거두면 상황은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것이었다.
‘지금!’
지체하지 않고 염력을 사용했다.
목표는 해골가면의 머리.
바로 머리를 비틀고 모가지를 꺾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야······ 왜 이래······”
염력이 가해지지 않았다.
마치 와이파이의 연결이 끊어지듯 툭툭 해제되어버리는 것이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왜지?”
혹시나 싶어 그레이의 몸에 연결을 해보았다.
그런데 또 그는 가능했다.
이어서 옆에서 비틀거리는 실비아에게도 걸어보니 마찬가지로 연결되었고.
문제는 해골가면.
녀석에게만 염력이 사용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저놈만 안 되는 거지?”
능력이 강해진 상태였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액체같이 형태가 없거나, 기체처럼 만질 수 없는 것도 뜻대로 다룰 수 있는데 말이다.
이건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나 달에 염력을 사용하려는 것과는 달랐다.
능력을 공으로 예를 들자면 태양이나 달은 아무리 세게 던져도 닿지 않지만, 저놈의 경우는 벽에 맞고 튕겨 나오는 느낌이었다.
‘원인이 뭔지 확인해야 해······’
가능성은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에 따라 내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경우.
둘째, 실비아의 말과 달리 스컬인 저놈이 네오휴먼이고 초능력을 무시하는 ‘이그노어(Ignore)’ 같은 능력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셋째, 퀸시와의 오랜 분쟁 속에서 놈들이 초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수트 같은 기술을 발명했다는 가설.
당장 확인할 순 없지만 알아낼 방법은 있었다.
실비아.
그녀의 사이코메트리로 해골가면의 기억을 뒤져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효과는 이미 이한성을 통해 검증했으니까.
어찌 되었든 명줄이 긴 여자였다.
‘그러려면 일단 해골가면을 사로잡아야겠지.’
도구는 놈의 코앞에 마련되어 있었다.
바로 그레이.
그와의 연결은 문제가 없기에 시체를 움직여 한 판 붙어볼 생각이었다.
‘이건 또 왜 이래?’
전신을 장악하고 움직이려는데 전체적으로 삐걱대는 것이 제대로 다룰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레이의 시체에 가해지는 힘도 현저하게 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면 대리전은커녕 걷는 것도 못해.’
뭔지는 모르지만 저 장소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들고 있는 망원경에 능력을 시험해보고는 그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네오휴먼의 능력을 간섭하는 뭔가가 저곳에 있다는 걸.
‘그래도 아주 사용을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단순한 컨트롤, 그리고 약하지만 어느 정도의 힘은 발휘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레이의 손을 조종해 해골가면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팔을 부러뜨린 후 제압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피드만이 아니라 힘도 엄청나게 세잖아?’
각성제를 먹었던 놈들, 그 중에서 가장 근력이 강했던 게 약을 중복으로 복용했던 칼리완이었다.
그런데 그놈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완력이었다.
지금의 힘으로는 붙잡고 있는 게 한계.
그레이를 조종해 놈을 제압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놈의 왼손이 떨쳐지고 나이프가 실비아에게 향하는 게 보였다.
나는 그녀의 고개를 틀어 피하게 만들고는 몸을 뒤로 잡아당겼다.
해골가면을 제압하는 게 어렵다는 판단에 실비아라도 확보해놓기 위해서였다.
‘저기만 벗어나면 실비아를 빼낼 수 있어.’
안 되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일단 그녀를 건물 아래로 추락시켰다.
-콰직, 콰장창!
부서진 유리조각과 함께 떨어지던 실비아는 염력에 의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던 것이었다.
나는 구름 위까지 그녀를 올려 보낸 후 창가로 다가온 해골가면을 일견했다.
그 순간 서늘한 느낌이 들었고, 서둘러 머리를 숙여 모습을 감췄다.
그런데 느낌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오싹!
전에 리우를 상대할 때 익히 경험해본 감각이었다.
목숨이 위험할 때 느껴지는 경고.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옆으로 굴렀고 투쾅!하는 소리와 함께 나이프가 펜스를 뚫고 내가 있었던 자리를 지나쳐갔다.
이 거리에서 내가 숨어있던 걸 보지도 않고 알아챈 것이었다.
‘역시 감각이 장난이 아닌 놈들이야.’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저놈만큼은 확실한 대비를 한 후에 잡아야 할 것 같았다.
***
-푸쉭.
냉각용 가스가 수트와 스컬마스크에서 새어나왔다.
육체의 리미트를 해제하고 생체기능을 높이면 필연적으로 고열이 발산하고, 이는 자연적인 체온조절기능과 땀의 배출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과거의 헌터들은 한 번의 리미트 해제만으로 목숨을 잃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냉각기술의 발달로 그러한 단점이 해결되었고, 적어도 리미트 해제 시 발생하는 고열로 죽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고 리바운드까지 피할 수는 없지만.
“후우······”
스컬마스크를 벗은 제이크의 머리카락은 절반 정도가 하얗게 새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이먼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제, 제이크. 서, 설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거예요?”
잠깐의 리미트 해제만으로 저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나올 정도면 1년도 채 남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사이먼은 그제야 제이크가 이번 일에 나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헌터로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놈들이나 추적해.”
제이크는 테이핑 테이프를 꺼내 오른팔부터 감기 시작했다.
육체의 한계를 넘은 대가는 영구적으로 줄어든 수명뿐만 아니라 근육의 파열과 뼈의 손상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제, 제가 감아드리겠습니다.”
사이먼은 진심으로 그를 염려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거리를 떠돌던 자신을 거두고 지금껏 키워준 사람이 제이크였으니, 사이먼에게 그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
제이크는 그 마음을 아는지 말없이 테이프를 건넸다.
사이먼은 주먹을 날렸던 오른손부터 꼼꼼하게 테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다, 다른 곳은 괜찮으십니까? 다, 다리는요?”
히스테리칼 스트랭스가 순간적이라면 리미트 해제는 지속적이다.
어느 쪽이 육체의 손상이 심할지는 자명했다.
그럼에도 제이크가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 건 통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발목만 부탁하지.”
사이먼은 뼈와 근육의 위치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틀어진 걸 제자리로 돌리고 움직임을 보조할 수 있게 테이핑을 했다.
“다, 다 됐습니다.”
그는 남은 테이핑 테이프를 탁자에 놓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 때문인지 더욱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제, 제이크.”
“말해, 듣고 있어.”
“지, 지원을 요청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제이크는 피식 웃었다.
사이먼의 속내를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자신이 전투에서 빠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남은 수명이라도 영위하기 위해.
“사이먼.”
“……네, 네.”
“나는 병상에서 죽기를 원치 않는다.”
“아, 알고 있습니다.”
“너와는 많은 일을 해왔지. 특히 리모트 뷰잉 능력자를 처리한 건 죽어서도 잊지 못할 기억이었고.”
“……”
“나는 이번에도 너와 함께 그런 추억을 만들고 싶다.”
그들에게 추억은 그런 것이었다.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그런 행위.
그것만이 그들에게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오래도록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될 수 있었다.
“도와줄 거지?”
사이먼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 이미 돕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
“으음······”
의식을 차린 실비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낯선 천장이었다.
그때 눈을 부릅뜬 그녀가 벌떡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분명 스컬의 헌터가 자신에게 왼손을 뿌리는 걸 마지막으로 기절을 했었다.
“여긴 어디지······”
한 가지 다행인 건 스컬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일단 자리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만약 사이먼이 자신의 행적을 지켜보고 있다면 이곳도 위험할 테니.
‘엄청 오래된 업소구나.’
그곳은 어느 허름한 여인숙이었다.
CCTV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방처럼 생긴 데스크에는 할머니 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걸었지만 할머니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손만 저으며 나가라는 듯이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실비아는 결국 여인숙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빨간후드를 눌러쓴 그녀는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데다 스컬에게 쫓기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케이시가 정말 배신했을까……’
정처 없이 걷다보니 저절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녀는 퀸시 내에서 가장 가까웠던 동료였고, 텔레파시 때문인지 항상 곁에 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친구였다.
그런데 이제는 의심 때문에 쉽사리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외로움은.
실비아는 퀸시에 들어가기 전, 괴물이라 불리고 외톨이로 살아야 했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부르르.
그러한 생각과 더불어 스컬의 추적까지 떠올리자 실비아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그레이가 죽은 이상 한국에는 퀸시의 동료가 더는 없는 상황.
결국 그녀가 택한 건 서훈이었다.
-띠리리리.
벨이 울리고 한참이 흘렀다.
그렇게 세 번을 더 연락한 후에야 서훈은 전화를 받았다.
-아직 결정 못했다니까. 왜 이렇게 재촉하는 거야?
“서, 서훈 씨 그게 아니라······”
-아니면 뭔데?
“나 좀 도와줘요.”
-뭐?
“도와줘요······ 제발.”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지금 어디야?
“흐흐흑······”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어투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렸다.
-거기 가만히 있어, 금방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