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일단 만나보자,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수정)
깨어나면 바로 찾을 것이라 예상했다.
우리나라에 의지할 곳이 달리 있겠나.
나는 그녀를 내 오피스텔로 데리고 갔다.
“괜찮아?”
실비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따뜻한 캔커피를 손에 쥐어주고, 그녀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 알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다시 한 번 그때 일을 떠올려야 더욱 나에게 의지할 테니까.
“스컬의 헌터가 습격했었어요.”
그녀는 레지던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놈이 퀸시의 핵심인물이었던 아이작을 죽인 당사자라는 것도.
나는 차분하게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근데 기절했다면서 어떻게 거기 있었던 거야?”
“저도 그걸 모르겠어요. 눈을 떠보니 그곳이었으니까요.”
“혹시 그 해골가면이 당신을 거기 놔둔 게 아닐까?”
“네? 도대체 왜······”
“나야 모르지. 근데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되잖아.”
멘탈이 나가긴 한 모양이다.
해골가면이라는 말과 그 이유를 연상시키지 못하는 걸 보니.
결국 내가 힌트를 던져주었다.
“보통은 이런 걸 미끼라고 하는데……”
그때 실비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며 벌떡 일어섰다.
생각이 난 모양이다.
그래, 내 정보를 가지고 있는 그놈들이 날 유인하기 위해 널 미끼로 썼다고 여겨야지.
“어,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해요.”
“왜 그래?”
“그놈이 여기로 올 거란 말이에요.”
“여길 어떻게 알고 온다는 거야?”
“사, 사이먼이요. 그놈이 추적하고 있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외곽이라서 CCTV가 거의 없어. 그리고 당신에게 사이먼에 대해 들은 이후로는 나도 조심하고 있고.”
“그, 그래도 올 거예요. 그러니까······”
“진정해.”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걱정마. 그놈이 와도 내가 지켜줄 테니까.”
죽을 것 같다.
구역질이 나고 닭살이 두드러기처럼 온몸을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도저히 두 번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힘들게 말을 꺼낸 덕분인지 실비아는 다소 안심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좀 말해주겠어?”
“자세히라니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알아야 나도 대비를 하지.”
말해라, 거기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너의 현장감 있는 설명은 분명 놈을 상대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놈이 나타나자마자 저와 그레이는 두통이 느껴졌고, 전신에서 힘이 쭉 빠졌어요.”
두통 때문에 머리를 부여잡은 것이고, 힘이 빠졌기에 비틀거린 거구나.
아마 능력뿐만이 아니라 네오휴먼 자체를 약화시키는 기술인 모양이다.
“독이었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때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독이 아닌 건 분명하다.
대신 그곳에 분명 초능력에 간섭하는 뭔가가 있었는데.
실비아는 경황이 없어서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해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그레이를 언급하며 그는 어땠는지 물어보기도 애매했다.
그랬다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도 있으니까.
“저기……”
그때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왜? 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뭔데? 말해봐. 그래야 당신을 지킬 거 아니야.”
그녀는 당시 배신자의 존재가 있음을 의심했고 그걸 알리기 위해 케이시와 연락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텔레파시로 응답하지 않았고,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확실히 능력에 간섭하는 뭔가가 있구나.’
분명 배신이 아니다.
그 뭔가가 텔레파시를 차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레이의 싸움을 되새겨 봐도 그는 배리어를 쓰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 영향 탓에 사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하고는 다르네.’
나는 그들과 달리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게 아니라 컨트롤이 저하되고 힘이 약해졌을 뿐 사용은 가능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또 있었다.
퀸시는 그게 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
배신자를 먼저 떠올릴 정도면 내 예상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 물음에 실비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일본으로 갈 생각이에요.”
“일본?”
“네, 그곳에 전투원인 동료가 있거든요. 일단 안전부터 확보하고 케이시에 대해 논의해보려고요.”
이거 어쩌나.
당신은 일본에 가지 못할 텐데.
‘네 역할은 해골가면의 머릿속에 든 게 뭔지 알아내는 것까지야.’
하지만 그런 속내를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래도 바로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당분간은 여기서 몸을 추스르는 게 좋을 것 같아.”
“고마워요······”
감동 어린 표정이 저런 거구나.
나는 영혼까지 끌어 모은 친절함을 얼굴에 두르고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어.”
하나밖에 없는 미끼는 소중한 법이니까.
그렇게 실비아를 안정시킨 후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우우.”
자동으로 해골가면이 떠오른다.
생각할수록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능력을 저하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그놈의 신체능력도 초인적이니까.
“그리고 그 가면과 수트도 그래······”
실비아는 말해주었다.
스컬의 헌터라 불리는 그놈들의 장비에 대해서.
한 마디로 멋으로 그런 가면을 쓰고 전투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골치 아프네······”
가면에 대해 듣기 전에는 수면가스를 능력으로 통제해 뿌릴 생각이었다.
컨트롤을 세밀하게 할 필요도 없고 힘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놈의 가면엔 방독면 기능이 있기에 소용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겨울이라 벌도 없고······”
있다 해도 수트를 뚫진 못할 것이다.
그 수트는 어지간한 방검복 역할까지 한다고 하니까.
“본신의 능력에, 장비에, 알 수 없는 기술까지. 퀸시가 왜 스컬을 두려워하는지 알겠네.”
나는 놈을 죽일 방안을 구상하며 줄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제한이 걸려있었다.
‘누구지?’
이 시간에 누굴까.
게다가 이 대포폰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몇 없는데.
“여보세요?”
-석훈 군, 오랜만입니다.
이 목소리는······
“윤실장님? 윤종호 실장님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혜선의 경호실장 윤종호.
미국으로 돌아갔을 텐데 왜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일까.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이들과는 썩 좋은 기억이 없다.
그러니 나오는 말도 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석훈 군에게 할 말이 있어서 연락했습니다.”
“말씀하세요.”
-전화로 얘기할 부분은 아닌 것 같고 만나서 얘기를 나눴으면 하니 시간 좀 내주십시오.”
“미국으로 돌아가신 거 아니었나요?”
-그랬는데 방금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바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슨 용건이기에 만나서 얘기 하자는 겁니까?”
스컬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는데.
-도청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네? 도청? 무슨 일 있는 겁니까?”
도청을 걱정할 정도면 뭔가 심각한 일인 듯 하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상황에 얽혀야 하는 거지?
-그때 처음 만났던 그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어머니이신 심은희 박사님에 대한 얘기니 꼭 오십시오.
“……!”
어머니?
갑자기 윤종호의 입에서 어머니가 왜 거론되는 걸까.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잠시 머뭇거리는 그때였다.
-이만 끊어야겠습니다.
“잠깐만요, 윤실장님. 윤실장님!”
-뚜. 뚜. 뚜. 뚜.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대체 뭘까.
심상치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일단 만나보자,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나는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을 몸에 둘렀다.
그와 처음 만났던 장소라면 전민성의 집이었다.
***
와인의 나라, 프랑스.
그곳에는 그 명성과 역사에 걸맞게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들이 즐비해 있다.
보르도의 텔로스 와이너리 역시 4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곳으로 유명 와이너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고즈넉한 풍경의 포도밭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다.
와이너리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는 오래된 성처럼 생긴 양조장이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산이 자리해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었다.
400년 전,
퀸시를 조직한 다섯 번째 아이는 이곳에 몸을 숨겼고, 일꾼으로 시작해 와이너리의 후계자와 결혼한 후 텔로스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텔로스(Telos).
그리스어로 끝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녀는 스컬을 끝내겠다는 의미로 지었고, 텔로스 와이너리는 퀸시의 근거지이자 자금줄이 되어 지금까지 그 기능을 하고 있었다.
“메리엄, 케이시예요.”
그녀가 노크를 하며 말했다.
“들어와.”
집무실로 들어가니 한쪽에는 불이 지펴진 벽난로가 있었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가 만연필로 결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텔로스 와이너리의 소유주이자 퀸시의 수장, 메리엄이었다.
“바쁘신 거 아니죠?”
“바빠도 퀸시의 일이면 먼저 챙겨야지. 그래 무슨 일이니?”
케이시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국에 파견된 그레이와 실비아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한국이면 스컬 쪽에서는 아이작을 죽인 자와 사이먼이 갔다고 했었지?”
“네.”
“미리 전하지 않았니?”
“전했어요. 근데 그게······”
“말해보렴.”
그녀는 먼저 첩보팀의 긴급전언을 전하고 그들에게 거처를 이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달상황을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실비아가 텔레파시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건 한국에서 나온 뉴스인데…… 그레이가 그곳에서 살해되었어요.”
한때 러시아 국가대표였던 그레이였다.
그런 사람이 살해당했으니 한국에서는 그 일이 대서특필되었고, 케이시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참고로 사망추정시각과 제가 긴급전언을 전달한 시점이 거의 일치해요.”
“흐음, 그렇다면 실비아가 텔레파시를 거부하고 있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놈들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으니 당분간 행적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겠니?”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배신자가 누군지 색출하고 있어요.”
메리엄에게만 처음 보고하는 것이었다.
배신자.
그 단어를 지니고 동료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
더군다나 현재 퀸시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진행해. 너무 오래 쫓기다보니 다들 신경이 예민하니까.”
스컬에 대항해 네오휴먼을 모으는 건 좋았지만 대부분 비전투원인 게 문제였다.
때문에 그들은 오랜 세월 스컬을 피해 다녔고, 지금까지 점조직 형태를 유지하고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어떻게 할까요?”
“핸드폰으로 연락은 해봤니?”
“네, 배신자에 대한 얘기도 문자를 남겼는데 답을 하지 않아요.”
“가엾은 것. 그레이가 죽었으니 불안에 떨고 있을 게다. 아마 스스로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연락하지 않겠지.”
그녀의 말에 케이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통신으로 하는 연락까지 거부한다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사이먼을 의식해서 그러는 거겠죠.”
“실비아가 어떻게 움직일 거 같니?”
케이시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본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본에 누가 있지?”
“스미스요.”
“흐음…… 그의 임무는 끝났니?”
“아니요, 아직 진행 중이에요. 스미스에게 임무를 취소하고 한국으로 가라고 전할까요?”
새로운 네오휴먼의 영입은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무방했다.
지금은 신입보다는 핵심인물인 실비아의 신변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었다.
“그냥 놔두렴.”
예상치 못한 대답에 케이시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놔두라고요? 왜죠?”
메리엄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놈은 아이작과 그의 경호를 맡았던 전투원 셋을 단신으로 죽였잖니. 스미스 혼자서는 가봐야 크게 도움이 안 될게다.”
“그렇다고 실비아를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실비아는 똑똑한 아이잖니. 그걸 아니까 연락을 받지도, 하지도 않고 혼자서 한국을 탈출하려는 게 분명해.”
“메리엄, 혹시 전력을 소모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케이시는 그녀가 퀸시의 전투원들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이러는 것이라 여겼다.
그 정도로 전투원들은 수가 적었으니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렴, 케이시. 늘 말했잖니, 이곳에 있는 우리는 전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