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날 어떻게 알아
경복궁.
조선 시대에 지어진 궁궐로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사이먼은 서훈과 실비아의 행적을 경복궁에서 발견했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도 예상치 못했지만, 모습을 숨기지 않고 도리어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놈이 서훈이었나보군.”
제이크가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또 다른 네오휴먼이 아니라 서훈이었다는 것은 그의 능력이 무엇인지 더 명확히 보여주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다, 다른 능력자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92%입니다.”
“그럼 놈의 능력은 사이코키네시스겠군.”
“그, 그렇습니다. 미, 믿기 힘들지만 실비아 크리스탈을 빼돌린 상황을 대입하면 99.9%입니다.”
“이 정도면 100%지 무슨 99.9%야? 너한텐 100%라는 수치가 없는 거야?”
“세, 세상에 100%는 없습니다. 사, 사이코키네시스 상위의 능력도 있잖습니까.”
“상위? 매터 매니퓰레이션(Matter Manipulation : 물질조작)을 얘기하는 거야? 그건 신이나 마찬가지잖아.”
“혀, 현재까지 파악된 서훈의 능력은 역대 어떤 네오휴먼보다 강력합니다. 그, 그러니 매터 매니퓰레이션이라도 이상할 게 없을 겁니다.”
사이먼은 ‘현재까지’라는 말에 강조했다.
아직 그가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서훈은 그렇다 치고 저 여자는 왜 겁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거지? 당연히 꼭꼭 숨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과, 관리소 CCTV를 해킹해보니 서훈과 실비아는 경복궁 내에서 이곳으로 갔습니다.”
화면에는 경복궁 내에 위치한 향원정의 구조가 띄워졌다.
인공연못 가운데 위치한 인공섬과 그곳과 이어진 유일한 다리 하나.
지형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함정이었다.
“설마 날 여기로 유인하는 건가?”
“그,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하, 재밌네. 함정이라니 말이야.”
“가, 가지 마십시오. 구, 굳이 갈 이유가 없습니다. 아, 암습이라면 더 높은 확률로 놈을 죽일 수 있습니다.”
사이코키네시스 자체로 위험한 능력인데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진 상대였다.
그런 상대가 함정까지 준비했다면 아무리 사자의 반지가 있더라도 방심할 순 없었다.
“사이먼.”
“네, 네.”
“저놈, 어제까지만 해도 카메라에 한 번도 잡히지 않았지?”
“그, 그렇습니다. 저, 저에 대한 얘기를 퀸시에게서 듣고 의도적으로 그랬던 거 같습니다.”
“들었다고 해도 한 번도 잡히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철저한 놈이라는 거야. 거기에 암습에 최적화된 킬러였던 리우를 죽이기까지 했다. 정면대결이라면 모를까 암습에 있어서는 나나 리우나 별 차이가 없어.”
“……”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걱정스런 마음에 사이먼은 그런 조언을 한 것이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확률을 떠나 놈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거다.”
“……”
“예상되는 능력치가 엄청난데 자료가 없다니. 이 간극이 얘기해주는 게 뭐겠어?”
“가,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능력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 능력도 능력이지만 저놈은 보통의 네오휴먼과는 뭔가 달라. 그러니 내가 확인해보마.”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이먼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죽음이 멀지 않았으니 자신이 맡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분석해. 만약 내가 사자의 반지 덕분에 놈을 죽이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다음을 기약해야 하니까. 그리고 너라면 알고 있을 것 아니냐, 난 죽지 않는다는 걸.”
“주, 죽습니다. 저, 저한테 제이크는 당신 한 명입니다.”
“녀석.”
제이크는 사이먼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알지? 저게 함정이면 나만 노리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어쩌면 너도 노리고 있을지도 몰라.”
“아, 알고 있습니다.”
“괜찮겠어?”
“뭐, 뭐가 말입니까? 저, 저는 천재입니다. 아, 안 잡힐 자신 있습니다.”
“하하, 믿음직하네.”
그때 향원정에 설치된 CCTV 화면에서 서훈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검지를 까딱거리며 도발하고 있었다.
“저거 봐, 와서 죽여달라잖아.”
그 순간 CCTV 화면이 지지직거렸다.
저쪽에서 부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원하는데 죽음을 내려줘야지.”
제이크는 이죽거리며 스컬마스크를 얼굴로 가져갔다.
***
향원정.
경복궁의 후원에 위치한 향원지 내의 전각으로, 취향교라는 다리가 연못을 가로질러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보수공사 때문에 취향교는 분해되어 복원 중이고, 대신 임시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관광객은 없었다.
겨울은 야외관광객이 적은 데다가 공사를 위해 펜스를 치고 출입까지 통제시킨 장소였으니까.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요?”
실비아가 불안한 듯 연신 주변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뭐가?”
“경찰의 도움을 받을 거라더니 막상 여긴 아무도 없잖아요.”
“나 있잖아, 나.”
“내가 한 말 못 들었어요? 그레이를 죽였다니까요, 그놈이!”
들었다 뿐일까.
직접 보기까지 했다.
“잠자코 보기나 해. 당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놈이 될 테니까.”
“그럼 시체라도 몇 구 숨겨두고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참, 이 여잔 아직도 날 네크로맨서라고 착각하고 있었지.
“아니면 혹시 오래 전에 매장된 시신이 있는 거예요? 당신은 그걸 느낄 수 있고?”
매장된 시신? 그런 게 있어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시신 타령 좀 그만해.”
“아니면 그놈을 어떻게 상대하려고요?”
“집중하게 조용히 좀 해줄래?”
“이봐요, 무슨 상의라도 좀······”
“왔다고.”
“네?”
내가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키자 실비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녀는 다리 입구에 서있는 해골가면을 발견하자마자 입을 꾹 닫고 내 뒤에 숨었다.
“어, 어떡해요. 진짜 왔잖아요······”
“뭘 어떡해. 싸워야지.”
올 거라고 생각했다.
네오휴먼의 능력을 막는 방법이 있는데 함정인들 무서울까.
하지만 그 자만이 너희들의 목숨을 거두게 될 거다.
나는 향원정 2층 난간에 걸터앉은 채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쫙 펼쳐 입가를 가렸다.
기념품 가게에서 산 것으로 표면에는 경복궁의 모습이 수묵화로 그려져 있었다.
“역시 왔구나, 해골바가지.”
-죽여 달라는데 죽여줘야지.
한국말로 했는데 알아듣다니.
통역기 같은 기능이 가면에 있는 모양이었다.
“잘못 알아들었네. 죽여줄 테니 자신 있으면 오라고 한 건데 말이야.”
-후후, 킴과 리우도 이런 곳으로 끌어들여서 죽인 거냐?
그놈들을 죽인 걸 알고 있다니.
예상컨대 퀸시가 내 정보를 흘린 것과 별개로 나에 대해 파악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설마 리우가 보고 했던 건가?’
생각해보면 놈을 죽이기 전에 남지웅 앞에서 능력을 드러냈었고, 리우를 죽이기 전에 두 놈이 함께 움직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때 스컬로 정보가 전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잠잠해서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뭐 아는 것 같이 말하더니 자세히는 모르나봐, 그놈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제 알게 되겠지.
놈은 그 말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임시다리 위에 발걸음소리가 울렸고, 다가올수록 기분 나쁜 느낌이 엄습했다.
그리고 실비아는 예의 그 모습을 다시 보였다.
“으윽······”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직접 대면해보니 기분이 더러운 정도일 뿐 몸에 이상반응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능력은 그때처럼 영향이 있었다.
‘연결해놓은 힘이 약해지고 있어.’
나는 부채 아래로 침을 삼키며 긴장을 풀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힘이 약화되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해보자. 제 발로 여기까지 왔는데 못 잡으면 X신이지.’
임시다리에 염력을 가했다.
미리 조치해둔 다리는 약간의 조작만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능력이 약해질 것을 대비한 첫 번째 안배였다.
-쿠르릉.
다리가 아래로 꺼졌지만 해골가면의 반응은 기민했다.
그는 무너지는 다리구조물의 파편을 딛고 점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무협영화에서나 보던 깃털 같은 움직임이랄까.
실제로 보니 신기나 다름없었다.
‘괴물 같은 놈.’
나는 놈을 주시하며 두 번째 안배를 선보였다.
타이밍을 딱 맞춰서 하늘에서 자갈이 비처럼 내렸다.
부족한 힘을 중력으로 보완한 것이었다.
“맞으면 아픈 걸로 끝나지 않을 거다.”
레지던스 습격 당시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놈은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
그러니 그때 건너편 건물옥상에 있던 나를 쫓아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준비한 방안 중 하나가 이 방법이었다.
허공에선 피할 수 없으니까.
-채채채챙!
하지만 놈은 두 개의 나이프를 발작적으로 휘두르며 자갈을 쳐내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나이프로 쳐낸 자갈은 염력이 끊어져버린다는 것을.
‘몸에 염력을 못 거는 이유가 왜 그런가 했더니 이 현상의 원인이 저 새끼 몸에 있었네.’
분명 몸뚱이에 비밀이 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향원지에 착지하는 놈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안배인 자갈로 죽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연못에 빠트릴 생각이었는데 생각대로 된 것이었다.
“마지막이다.”
시간차로 이어지는 세 번째 안배.
이번엔 자갈과 달리 막을 수 없는 비였다.
물론 보통 비가 아니었지만.
-쏴아아아.
놈을 중심으로 죽음의 비가 내렸다.
뿌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원인은 액체질소.
-196도의 차가운 물질로 마술쇼에서 물이나 장미꽃을 순식간에 얼리는 재료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이 쉽게 구할 수 있고, 생수보다 저렴하기까지 하다.
사람에게 부어도 라이덴프로스트 효과 때문에 얼어버리지는 않지만 지금은 연못에 빠트린 상황.
매개체만 있다면 위험한 물질이 될 수 있는 것이 액체질소였다.
“후우, 생각보다 연기가 꽤 많이 나네.”
나는 이때를 위해 준비한 부채로 연기를 휘저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실비아가 눈을 깜박거리면서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리가 무너지고, 하늘에서 자갈과 이상한 액체가 쏟아졌으니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설마 네크로맨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그녀의 물음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내가 언제 네크로맨서라고 한 적 있어? 내 입으로 그런 말 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
실비아가 입을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나는 그녀를 놔두고 해골가면에게로 다가갔다.
놈은 팔로 머리를 보호하는 자세로 가슴 바로 아래까지 얼음에 갇혀 있었다.
향원지 자체가 인공연못이라 그리 깊지 않은 탓이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소리와 입김이 가면을 통해 새어나왔다.
나는 안전을 위해 들고 있던 부채를 날려 양손목을 때렸다.
아프지도 않을 가벼운 타격이었지만 꽁꽁 얼었기 때문일까.
나이프를 들고 있던 양손이 뚝 떨어지며 멀찌감치 날아갔다.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원인이 그쪽에 있음을.
‘흐음······’
얼음 위를 걸어가 왼손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이프? 아니야.’
얼어붙은 장갑을 바스러트리자 그 속에 끼고 있던 반지가 드러났다.
사자의 얼굴이 조각된 특이한 모양.
그걸 만지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게 원인이라는 것을.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네.’
닿은 것만으로도 그랬다.
이 반지의 정체가 뭔지 모르지만 네오휴먼을 약화시키는 건 확실했다.
마치 슈퍼맨에 나오는 크립토나이트처럼 말이다.
‘나는 왜 이런 거지?’
혹시 아버지가 만든 베놈 덕분일까.
능력을 약화시키는 제약을 십칠 년 동안 받아와서 면역력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새삼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아직 날 보살펴주고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잠시나마 가슴이 따뜻해졌다.
‘원인은 알았고, 이제 해골바가지 얼굴 좀 볼까?’
놈에게 다가가 천천히 가면을 벗겼다.
혹시나 피부가 달라붙어 찢어질까봐 조심스럽게 말이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면상은 봐야하니까.
“응? 노인네잖아?”
하얗게 센 머리와 쭈글쭈글한 피부.
아까까지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였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얼어붙은 입술을 힘겹게 열며 말했다.
가면을 벗겼기 때문인지 영어였지만 통역기 덕분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반지의 영향권 내에서 능력을 사용하다니. 정말 매터 매니퓰레이션이었구나……”
물질조작이라.
과연 그럴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날 어떻게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