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일본에도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네
“이 시간에 왜 이렇게 막혀?”
서울시의 대표적인 상습 교통체증구간.
서부간선도로는 퇴근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차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고 있었다.
브루스 베커는 라디오를 켠 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실시간 도로교통상황을 듣기 위해서였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금방 알 수 있지만 그는 한국어를 일상에서 익히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오늘 서부간선도로 일부구간에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고 있습니다. 가시거리 1미터도 되지 않는 이상현상에 정체가 이어지고 있으니 안전사고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런 기상이변에……
원인을 알게 되자 그는 라디오를 끄고 담뱃불을 붙였다.
가시거리 1미터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는 말이었다.
“휴우, 한두 시간은 꼼짝없이 갇히겠구만.”
그는 운전대에 두 팔을 걸치고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대사관의 공보 사무와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는 스팸메일로 위장된 임무지시서도 있었다.
CIA 한국지부 현장요원.
그가 조국으로부터 받은 진짜 신분이었다.
‘흠, 당분간은 별일 없겠네. 얼마 전에 죽인 한국계 미국인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는데.’
예전엔 타겟이 나라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비교적 자세히 파악했었지만, 이 일을 오래할수록 각자의 위치와 명분에 따라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인지한 후엔 그저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감정을 이입하게 되면 스스로가 힘들어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살인은 사오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정도로 드문 임무.
브루스 베커는 되도록 조용히 한국에서의 임기를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응? 언제 안개가 이렇게 꼈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보는 차창 밖은 온통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바로 앞 차의 후미등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
브루스 베커는 뭔가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달칵.
차문을 연 그는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에서 나오니 마치 구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개가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새벽도 아닌 한밤중에 이토록 짙은 안개라니.
괜스레 안 좋은 느낌이 들어 다시 차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였다.
“어?”
몸이 둥실 뜨더니 하늘로 순간적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으헉!”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 피우지 못한 담배 한 개비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
블룸의 비밀안가.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만한 장소가 없다보니 또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이한성이 앉았던 의자에 브루스 베커를 앉혔다.
“읍읍!”
놈은 두 눈을 굴리며 나와 실비아를 번갈아 보았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
“말은 잘 듣네. 하긴 그래야 사람 목숨도 쉽게 거둘 수 있겠지.”
대사관에서 일을 해서 그런가 외국인임에도 한국말을 알아듣는 듯 했다.
내가 눈짓을 하자 실비아는 뒤로 돌아가 양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었다.
“시작해요.”
나는 놈의 목구멍에 밀어 넣은 혀를 빼내고 질문의 서두를 열었다.
“지금부터 질문 몇 가지를 하겠다.”
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이름.”
“브루스 베커.”
“소속.”
“……”
“소, 속. 한국말 못 알아들어?”
그는 나를 바라보며 목울대를 출렁이더니 침착하게 답했다.
“CIA 한국지부 소속 요원이다.”
이것 봐라?
당연히 대사관이라 말할 줄 알았는데 CIA?
그걸 또 곧이곧대로 말해준다고?
실비아를 바라보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놈의 말이 사실이라는 의미였다.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신사적으로 대해줘야겠지.”
나는 손가락을 딱하고 튕기며 그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힘을 해제해주었다.
“편하지? 일어나지 말고 자세도 그대로 유지해. 아, 혹시 허튼짓 하고 싶으면 해도 돼. 그러라고 풀어준 거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을 얼굴에 드리우고 말했다.
마치 그러길 바란다는 듯이.
“당신 능력을 봤는데 그럴 리가. 질문을 계속하지. 알고 싶은 게 뭔가?”
놈은 오른손 팔목을 매만지며 물었다.
전해지는 감정도 침착한 것이 CIA라 뭔가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더 시간 끌 것 없다고 판단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윤종호를 왜 죽인 거지?”
“윤종호? 아, 그 한국계 미국인의 이름이 윤종호였나보군.”
이름도 모르고 죽인 거냐.
몇 번인가 겪긴 했지만 이런 놈들은 참 신기하다.
사람을 죽이는데 이유 따윈 상관없고 그저 명령이면 수행한다니 말이다.
-콰콱, 트드득.
“커컥!”
염력으로 혀를 세게 잡아당겼다.
“혓바닥을 잘 놀리는 게 좋을 거야. 모르면 모른다고 깔끔하게 대답해. 그놈이 그놈이었나보군? 이런 식으로 또 말하면 이 살덩어리 뽑아버릴 거니까.”
실비아가 있으니 말할 필요 없다.
그녀의 능력으로 기억을 읽으면 그만이니.
-끄떡 끄떡.
놈이 눈물을 찔끔 흘리며 고개를 세로로 흔들었다.
나는 혀를 놓아주고 다시 물었다.
“다시 대답해봐. 왜 죽였지?”
“모, 몰라.”
그 대답에 실비아도 고개를 저었다.
죽인 놈이 정말 모른다니.
“그 사람이 죽어야하는 이유도 모르고 죽였단 말이네.”
“……”
“이거 어떡하지? 나도 이유 없이 당신이 죽이고 싶어지네?”
“지, 지부장님은 알고 있을 거다.”
“그래? 그럼 여기서 널 죽이고 지부장을 찾아가면 되겠군.”
“자, 자, 잠깐!”
브루스 베커는 양손바닥을 보이며 다급하게 말했다.
역지사지가 되면 다 똑같다.
모두가 그 말만 염두에 두고 살아가면 아무런 다툼도 없을 텐데 말이다.
-꽈악.
놈의 양손을 움직여 목을 죄게 만들었다.
“꺼억!”
“네 더러운 손으로 네 자신도 죽이게 만들어줄게. 너무 억울해하진 마. 이런 걸 인과응보라고 하거든.”
“끄으…… 나, 나 아니면……커흑!”
“너 아니면 지부장 못 찾는다고?”
“지, 지금…… 한국에……없…… 꺽!”
나는 피식 웃으며 실비아에게 눈짓을 했다.
“사실이에요. 지금 한국에 없어요.”
“한국지부장이 한국에 없다고?”
“일본에 갔네요.”
“일본엔 왜?”
실비아는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CIA국장이 일본에 온다고 해요. 그 자리에 한중일 각 지부장들도 모이고요.”
일본이라니.
귀찮게 됐다.
나는 놈의 손을 풀어주었다.
“콜록, 콜록! 허억, 헉!”
그는 목을 매만지며 숨을 몰아쉬더니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 아무리 당신들 능력이 대단해도 나 아니면 지부장님과 만나지 못할 거야. 콜록. 콜록.”
“계속해봐.”
“만나게 해줄게. 아니, 왜 윤종호라는 사람을 죽여야 했는지 그 이유도 확인해서 알려줄 수 있어.”
거짓말도 아니고 죽을 뻔한 것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나와 실비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호의에 가까운 관심이었다.
실비아를 바라보니 그녀는 놈의 속내가 무엇인지 읽은 모양이었다.
“먼저 말해봐. CIA 수뇌부가 왜 일본에서 모이는 거지?”
“CIA만이 아니다.”
“뭐?”
“곧 미국 국방부 장관님과 국무장관님께서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고, CIA도 함께 움직이는 거다.”
그의 말에 따르면 표면적으로는 미일동맹의 과시, 그리고 미일 군사협정 검토가 그 목적이지만 외교안보와 관련해 그 정도 인사들이 참여했다는 건 다른 의도도 있다고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말단요원인 브루스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어이, CIA.”
“……?”
“그런 거면 너 아니더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거물급 인사들이 움직이면 언론이 자연히 따라붙잖아. 안 그래?”
부담스럽긴 해도 사람하나 납치하는 거?
이젠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오늘만 해도 구름을 끌어내려서 안개처럼 사용했으니까.
쥐새끼처럼 숨는 것만 아니면 설사 미국 대통령도 내 손을 벗어날 순 없을 거다.
“다, 당신이 원하는 건 윤종호에 대한 정보 아닌가? 굳이 납치를 해서 리스크를 질 필요 없잖아.”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때 실비아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저 사람 말대로 해요, 순순히 협조하겠다는데.”
“살려뒀다가 우리 정보를 흘리거나 허튼 짓을 할 거 같아서 그렇지.”
“그럴 거예요?”
실비아가 싱긋 웃으며 묻자 그가 답했다.
“절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다.”
“거 봐요, 안 그런다잖아요.”
나는 놈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실비아가 저렇게까지 얘기하니까 특별히 살려는 주지.”
“…….”
“근데 포지션 똑바로 잡아.”
“무슨…….”
“널 살려주는 이유는 네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미국 윗대가리들의 충돌을 막는 거라는 거. 그리고!”
“……?”
“네 포지션은 우리보다 아래야.”
한국어도 수준급이면서 모른 척하긴.
나는 대갈통을 후려치며 말했다.
“존댓말 하라고 새끼야!”
어딜 맞먹으려고 해.
***
통영 다례포구.
그곳은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수틀리면 CIA한국지부장을 납치해야 하기에 미리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을 하는 것이었다.
브루스는 첩보원이라 그런지 이런 음지의 교통편?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아 자칭 밀항의 베테랑이라는 선장을 만날 수 있었다.
“셋이면 큰 거 한 장은 받아야긋네. 에누리는 마 없으니까 그래 아이소.”
그는 뱃삯을 먼저 말하고 밀항루트에 대해 설명했다.
통영에서 쓰시마, 그러니까 대마도까지 가고 그곳 근해에서 다시 일본어선으로 갈아타고 일본 본토를 밟는 방식이었다.
“천만 원이라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브루스의 물음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당신이 알아서 해.”
“……예?”
“네 돈인데 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러니까 더치페이를 하자는 건가요?”
“야, CIA. 너네 활동비 같은 거 없어?”
“그건 있지만……”
“우리가 누구야? 그쪽 윗대가리 만나러 가는 손님 아냐?”
“……”
“뭘 똥 씹은 얼굴을 하고 그래?”
“아, 아닙니다. 협상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손을 저으며 가라고 한 후 핸드폰으로 보고 있던 뉴스기사에 시선을 돌렸다.
미국의 방일일정과 그에 관한 일본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가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아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흠, 일본 다음은 한국을 들르는구나.’
지리적으로 바로 옆이나 마찬가지니 안 들르면 동맹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게다가 거시적인 목적이 대중국 견제다.
그러니 미국입장에서 한국과 일본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동맹국인 것이다.
이런 일정으로 볼 때 굳이 일본을 가지 않고 한국에서 기다려도 되지만 꼭 가야하는 건 실비아 때문이었다.
CIA가 배후라는 걸 안 이상 그녀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니 일본에 있는 퀸시의 동료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그래도 여기까지 도와줬는데 날 함정에 빠트리려 했다고 죽일 순 없지 않나.
게다가 그 일은 케이시가 주도하기도 했으니 실비아에게만 잘못을 물을 순 없었다.
‘응? 이건 또 뭐야?’
그렇게 일본관련 뉴스를 읽던 그때 연관기사들 중 내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도쿄대 이시이 카츠키 교수의 망언, “한국도 731부대의 업적을 인정했다.”
이시이 카츠키.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의 손자이자 박춘금이 네오 셀을 얻은 출처를 731부대로 조작하는데 가담한 놈이다.
그의 이름이 떡하니 뉴스 헤드라인에 있으니 어떻게 안 눌러볼 수 있을까.
‘하······’
내용은 간단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광화문 인체실험 사건은 731부대에서 나온 연구성과를 재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는 그들의 선조가 했던 연구가 인류사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한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그는 명백한 증거가 자신의 손에 있으며 조만간 모든 자료를 공개해 한국이 더 이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했다.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터트렸구나.’
아마 이시이 카츠키는 박춘금을 비롯한 AFK의 행위가 저절로 드러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거의 이십 년 가까이 손에 쥐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일 터.
선조의 만행을 포장하기에 피해자인 한국의 도덕적 우위를 깎아내리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으니, 그에게 있어서 박춘금과 함께 조작한 자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을 것이 분명했다.
“가는 김에 이 새끼 모가지도 비틀까······”
일본에도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