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
달도 뜨지 않은 시커먼 바다 위.
밀항선의 선장은 불빛 하나 켜지 않은 채 배를 몰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마도 인근까지 왔기에 일본해양경찰의 순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통, 통, 통통……
파도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던 엔진음까지 꺼지자 배는 닻을 내려 바다 한가운데에서 정박했다.
브루스는 주변을 돌아본 후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에서 일본 측 배가 올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해류를 타고 조용히 일본어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쪽도 불빛 하나 켜놓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넓은 바다에서 서로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왔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객들은 잠시 기다리슈, 짐부터 옮겨 실어야 하니까.”
선장의 말에 우리는 선실에서 대기했다.
나는 사람들이 옮기는 상자를 보며 물었다.
“저게 다 뭐지?”
“밀수품입니다. 명품짝퉁부터 약까지 다양하죠.”
“……”
밀항만이 아니라 밀거래도 하는구나.
그런데 개인이 저렇게나 많은 양의 밀수품을 다룰 수 있는 걸까?
“저 선장, 어디 조직에 속해 있나?”
“조직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아마 평범한 어부였다가 도박 같은데 손을 대고 이런 일에 발을 담그게 됐겠죠.”
브루스의 말에 따르면 일종의 택배기사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중국 브로커가 연결해준 물건을 대마도까지 배달만 하는 것이었다.
“걸리면 전부 저 선장이 뒤집어쓰고?”
“네, 감방수당까지 수수료에 포함한다고 들었으니까 걸리지만 않으면 꽤 짭짤한 벌이라는 거죠.”
짭짤하다니.
가끔 보면 브루스의 표현은 토종 한국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다.
“제법 자세히 아네?”
“제가 이래봬도 아시아권에서는 베테랑 요원입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제 나와바리나 마찬가지죠.”
“일본어도 좀 하나?”
“한국에 오기 전에 일본에서 근무했습니다.”
잘됐다.
동시통역기만 믿는 것보다 현지어 할 줄 아는 놈이 있으니 말이다.
“혹시 저 밀무역, 한국이랑 일본정부도 알고 있어?”
“알고 있을 겁니다.”
“근데 왜 이런 걸 놔두는 거지?”
“간단합니다. 바퀴벌레는 박멸이 안 되거든요. 죽여도, 죽여도 어디선가 기어 나와서 또 다른 놈이 자리를 차지하니 말이죠.”
“그러니 그 바퀴벌레에게 상납금 받고 눈 감아 주고, 선만 넘지 말라고 적당히 경고하고 말이지.”
브루스는 턱을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행정력이란 게 한계가 있는 거고, 그 선을 지키기만 하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살 수 있으니까요.”
“균형 같은 소리하네.”
“……?”
“그 바퀴벌레랑 뒹굴고 사는 건 서민들이니까 그런 거겠지. 윗대가리들은 깨끗한 로열층에서 호의호식하고, 아니야?”
“……”
“박멸이 안 돼?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계속 죽여도 박멸이 안 될 것 같아?”
그건 그냥 타협한 것이다.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의 타협 말이다.
“안 돼요.”
그때 실비아가 내 팔을 붙잡으며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가?”
“일본에 안 갈 거예요?”
“안 죽여. 길 안내는 받아야지.”
“진짜죠?”
“그래.”
그때 선실 문이 열리며 선장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다 됐으니까, 나오이소.”
그는 문앞을 지키고 손바닥을 내밀었고, 브루스는 품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잔금이었다.
“아, 머고? 바꾸기 귀찮구로 또 달러네······에이, 씨······”
선장은 말과는 달리 입꼬리를 올리며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갑판으로 나가니 한 일본놈이 고갯짓으로 자신들이 타고 온 어선을 가리켰다.
나는 그들의 인도대로 배를 옮겨 타며 한국에서 타고 온 배에 염력을 걸어두었다.
돌아가는 시간을 계산한 후 바다 한가운데서 뒤집어버릴 생각이었다.
선장?
이 겨울에 바다에 빠지면 삼십 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일본배에 오르자 곧바로 선실로 안내를 받았다.
내부는 열댓 명 정도가 양쪽으로 몸을 뉘울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고, 짐을 옮겼던 다섯 명의 사내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짐을 나를 땐 몰랐는데 불빛 아래에서 보니 옷을 걷어 올린 팔다리에 일본풍 문신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다.
“와, 저 여자 좀 봐. 와꾸 좋은데?”
“캬, 은발의 백마라. 타는 맛이 있겠네.”
“그놈들 놔두고 여기 내 옆에 누워봐. 예뻐해 줄 테니까. 흐흐흐.”
“이야, 이렇게 보니까 와꾸만 좋은 게 아닌데? 가슴이 로켓인데 로켓, 어?”
“와하하하.”
전부 일본어였다.
하지만 동시통역기를 끼고 있었고 일본어 지원도 되는 것이기에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실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한 말 취소할게요. 그냥 다 죽여버려요.”
그녀는 자켓을 앞으로 여미고, 후드를 더 깊게 눌러쓴 채 선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마 말보다 더러운 생각까지 기억으로 읽은 것일 터.
사이코메트리는 능력이 뛰어나도 그리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으니.
“모두 동작 그만.”
선실 가운데 서서 그들을 향해 나직이 말하며 그들의 몸을 장악했다.
“소란 피우면 문제가 될 겁니다.”
브루스가 나를 말리며 제지했다.
“소란은 무슨. 반대로 조용히 시키려는 거야.”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말을 이었다.
“전원 기상.”
-벌떡.
“앉아.”
-척.
“일어서.”
-벌떡.
“앉아.”
-척.
“일어서.”
-벌떡.
그들은 내 말에 따라 자신들의 몸이 움직이자 당황한 듯 어쩔 줄을 몰라했다.
게다가 입까지 닫았기에 ‘으으’ 거리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닥치고 전부 대가리 박아.”
선실이 원산폭격장소로 바뀌어버렸다.
나는 브루스를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소리 내는 새끼는 손모가지 부러뜨릴 거라고 얘기해.”
“네.”
그가 통역을 하자 놈들은 얌전히 있기는커녕 더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했다.
“으으으!”
“으-!”
하여튼 사람이 곱게 얘기하면 듣지를 않는다.
나는 허리 뒤에 올려져있는 손모가지들을 하나하나 분질러주었다.
“끄으-!”
그래도 소리가 나오자 브루스를 시켜 다음엔 발모가지를 부러뜨리겠다고 말하도록 시켰다.
“……!”
역시 매가 약인 건 만국공통이다.
놈들은 끽소리는커녕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않고 정숙한 상태를 유지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능력입니다.”
브루스는 대가리 박은 놈들을 물끄러미 보더니 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슬슬 초능력에 대해 들먹일 거라 생각했지.’
사람이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친밀감이라는 게 생긴다.
그가 서울에서 통영으로, 그리고 통영에서 대마도까지 가는 와중에 묵묵히 있었던 건 오롯이 그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당신이야말로 신기해.”
“뭐가 말입니까?”
“우리가 네 속내를 모를 것 같아?”
“……!”
전략이든 모략이든 계획을 세우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실비아의 능력을 피해갈 수 없다.
브루스의 복심은 비밀안가에서부터 그녀에게 간파당한 상태였다.
“붙잡히면 보통 탈출을 하려고 하거나 억압한 상대를 죽이려고 든단 말이야.”
“……”
“그런데 당신은 아니잖아.”
“설마 저 여성분······ 내 몸에 손을 대지 않고도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겁니까?”
손을 대지 않으면 당장 떠오른 것만 읽을 수 있지.
그리고 네 계획은 여기까지 오며 수십 번은 읽혔고.
“그때 어깨를 짚었던 건 트릭이었군요?”
“그래,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고 생각했으면 넌 이미 죽었을 거다.”
그는 반대로 회유를 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이유는 초능력자.
우리의 능력을 미국을 위해 사용하게 만들려고 그런 것이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미국의 품으로 온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너 같은 말단이 무슨 권한이 있다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국장님을 직접 대면할 생각이고요.”
“그럼 그전에 네 성의를 좀 볼까?”
“성의라니요?”
“회유를 하려면 환심을 사야 할 거 아냐?”
“돈 말입니까?”
“그딴 건 필요 없고, 정보.”
실비아의 능력으로 알 수 있는 건 질문에 따른 기억의 편린뿐이다.
나는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내 놈의 머릿속에 든 진짜 정보를 빼낼 생각이었다.
“당신은 모르고 있지만 그때 죽인 그 남자, 미국의 바이오기업인 이엘바이오에 속한 사람이야. 아시아지부장의 경호실장이었고.”
“네.”
“CIA에서는 왜 그를 죽여야 했을까? 당신 생각을 들어보고 싶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현장요원이라지만, 그는 그래도 CIA요원이다.
그냥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청부업자와는 궤가 다른 엘리트이니 신빙성 있는 추론이 나올지도 모를 것이다.
브루스는 턱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엘바이오의 아시아지부장도 한국계 미국인이었던 걸로 압니다. 한국에서 인공장기 센터 건립 건으로 오래 체류했고요.”
“맞아. 이혜선이라는 여자고, 미국이름은 케이티 리지.”
“당신은 그 두 사람과 무슨 관계입니까? 그걸 알아야 좀 더 정확한 추리가 가능합니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
“얼굴만 아는 사이인데 그 사건을 캔단 말입니까? 심지어 CIA가 얽힌 일인데?”
“갑자기 연락 와서 만나자고 했던 사람이 덜컥 죽어버렸으니 궁금하잖아.”
“고작 그거 때문에 미대사관 공보관이자 CIA요원인 날 납치했다는게 말이 안 되잖습니까.”
“미대사관이고 CIA고 나한테는 그렇게 대단치 않아. 그리고 말이야.”
“……?”
“은근슬쩍 핀트를 나한테 맞추는데 또 그러면 좋은 꼴 못 볼 거야.”
그는 내 경고에 넥타이를 조정하듯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협박성 발언에도 꽤나 침착한 모습이다.
“그럼 딱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 경호실장이 당신을 만나려한 이유가 뭐죠?”
“나도 그게 궁금해.”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전한 거?
그건 그냥 과정일 뿐이다.
윤종호의 목적은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하고, 그 다음 스텝을 끌어내는데 있었을 것이고.
“정말 모르는 겁니까?”
“그걸 알기 전에 니가 죽였잖아. 말하다 보니 또 짜증나네.”
“크흠······. 죄, 죄송합니다.”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야. 그러니까 네가 아는 거나 말해봐.”
브루스는 먼저 이엘바이오가 가지고 있는 미국 내 위치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의 핵심전략산업, 바이오.
그 분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업인만큼 CIA는 그들의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별도의 관리를 한다고 말해주었다.
“가장 유력한 건 아시아지부장이 기업의 핵심기술을 빼돌렸고, 경호실장이 동조했다는 시나리옵니다. 아니면 경호실장 혼자 그랬는지도 모르고요.”
그는 산업스파이를 의심하고 있었다.
“다른 시나리오는?”
문제는 내 눈에 이혜선과 윤종호는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나에겐 믿을 수 없는 자들이긴 하지만, 과거의 대화로 볼 때 그들은 이엘바이오에 대한 애사심이 상당했었다.
“가능성은 낮지만 이엘바이오 회장의 청탁인지도 모릅니다.”
“청탁? 설마 그를 죽이라고 이엘바이오 회장이 CIA에 부탁을 했다는 건가?”
“네, 다만······”
“또 뭔데?”
“국장님이나 지부장님은 그런 청탁을 받을 분들이 아닙니다. 제가 모르는 다른 시나리오가 있는 게 아니라면 산업스파이가 가장 유력하다는 거죠.”
아니다.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어머니와 얽힌 이유가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심은희라는 이름을 말해보고 싶지만 꾹 참았다.
정말 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CIA가 나와의 연관성을 알게 된다면 신변에 위협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는데.”
“말씀하시죠.”
“처음엔 당신이 CIA요원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우리들에 대한 반응. 납치당했을 때, 그리고 초능력자라는 걸 알고 회유를 하려고 한 거. 너무 자연스럽지 않나? 마치 초능력자의 존재를 짐작하고 있었던 것처럼.”
브루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직접 본 건 처음이지만 초능력자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역시.”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
저들은 네오휴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