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민주시민은 그래야 한다
일본 내각총리대신 관저.
일본총리가 국정업무를 보는 장소로 국가정무를 총괄하는 최고기관이다.
총리대신의 집무실은 지상 1층, 지하 5층의 구조에서 최하층인 지하 5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이 원하는 게 뭐라고?”
타츠야마 지로 일본총리가 상석에 앉은 채 물었다.
그의 좌측에는 자민당 총재인 카가와 시게루가, 그리고 우측에는 외무성 국장인 야기 소스케가 자리해 있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두 사람 중 야기 소스케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하나는 보나마나 뻔하고, 나머지 하나는 뭐야?”
“네오 셀과 그에 관련된 자료 전부입니다.”
“네오 셀? 그게 뭔데?”
“그게…… 미국 측 말에 따르면 초능력자의 세포라고 합니다.”
타츠야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애들 장난 같은 소리야? 초능력자라니?”
“저도 농담인 줄 알고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정말이었습니다.”
“야기 국장.”
“네, 총리님.”
“자네 지금 나 놀리는 거 아니지?”
“아, 아닙니다. 정말 미국에서 그렇게 요청했습니다.”
“이것들이! 외교가 장난이야?!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악마의 열매라도 찾아서 준다고 했어?!”
예상했던 대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야기 소스케는 진땀을 흘리며 미국에서 받은 정식 공문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기엔 정말 네오 셀과 관련 자료를 요청한다는 요구사항과 슈퍼솔져에 대한 검토목적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타츠야마는 슈퍼솔져라는 글자를 보고 나서야 화를 누그러뜨렸다.
“슈퍼솔져와 관련된 거라고 진작 얘기를 하지. 뜬금없이 초능력자라고만 언급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사람아!”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 네오 셀이라는 게 정말 있긴 있는 거야?”
“CIA가 확인한 바로는 다이이찌 그룹에서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이이찌? 그런 게 있었는데 왜 정부에 공유하지 않은 거지?”
그 물음에 카가와 시게루 답했다.
“제가 확인해보니 비공식루트로 입수를 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화재로 소실되어 세포의 샘플과 연구자료가 없다고 합니다.”
“하! 불에 탔다고? 어이, 카가와 총재. 나보고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거야? 그리고 미국놈들은 그 말을 믿겠어?”
“크흠, 검찰에서 압수수색 중이니 조만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이이찌 그룹을 해체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확실하게 알아내. 그거 못하면 당신 이 자리 못 앉아, 알겠어?”
타츠야마는 상석의 팔걸이를 탁탁치며 말했다.
차기 총리로 내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카가와 시게루는 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서 장관이 두 명이나 방문하는 게 설마 그 세포 때문인 거야?”
그의 물음에 다시 야기 소스케가 답했다.
“그건 아닌 듯 했습니다. 초능력자의 세포라고 말은 했지만 확신이 아닌 추정이었으니까요.”
“흠…… 그래, 확실하지 않은 일에 장관이 둘이나 움직일 이유가 없지.”
게다가 목적이 슈퍼솔져라고 했다.
미국이 개발 중인 슈퍼솔져는 세포나 유전자 분야와는 관련이 없으니 자국의 연구를 위해 요구하는 것이 아닌 일본의 슈퍼솔져 개발현황을 알아내기 위한 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보니 네오 셀 쪽은 진짜 목적을 가리기 위한 물타기인 것 같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야기 국장도 동의하자 타츠야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카가와 시게루를 바라보았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카가와 총재.”
“네, 총리님.”
“우리 쪽 슈퍼솔져 프로젝트는 어때?”
“4세대의 능력평가 결과, 3세대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자위대 막료장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 단계만 거치면 완성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좋아, 잘하고 있군. 우리 대일본제국이 보통국가로서 재무장을 하게 되면 그들이 중심에 서게 될 거야. 그러니 잘 챙겨. 자네가 이 자리에 앉으려면 그 정도 업적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카가와 시게루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자신에게 말을 할 때면 늘 총리자리를 들먹이는 타츠야마였지만 그에 대한 짜증보다는 비굴하게나마 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당근이 바로 일본총리라는 권력이었다.
“그리고 야기 국장.”
“네.”
“아까 말한 나머지 하나는 방위비 협상이겠지?”
“그렇긴 한데 지금까지와는 반대인 상황입니다. 미국은 주일미군 규모를 축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뭐? 주둔비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주일미군을 줄일 거라고?”
“네, 대략 독일에 주둔 중인 미군수준으로 맞출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일본, 그 다음이 독일이다.
독일에 맞춘다는 건 약 30%를 감축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것도 물타기 아냐?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30%를 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는 게 미국은 그 30%만큼 자위대의 전력을 증강해서 대체하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젠 말로만 재무장을 하라고 독촉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안보의 공백을 만들어줄 테니 능력껏 메우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진짜 뺄까?”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습니까. 여기서 미국이 주일미군까지 감축하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겁니다.”
중국과의 분쟁지역인 센카쿠열도, 러시아와의 마찰이 잦은 쿠릴열도, 그리고 영공을 침범하는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공산국가와의 분쟁은 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전쟁에 온건한 이웃국가인 한국까지 슈퍼솔져 양성을 준비하고 있으니 일본국민들은 전례 없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흐음······”
타츠야마는 팔걸이를 탁탁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인체실험과 관련해서 도쿄대 교수가 재밌는 얘길 했었지?”
“731부대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 말대로 상황이 좋긴 한데 직접적으로 떠드는 것보다는 한국을 물어뜯는 게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겠어?”
안보가 위태롭다, 위기다, 대비해야 한다.
이런 말은 늘 떠들었고, 계속해서 해왔던 말이었다.
때문에 정말 전쟁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국민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개돼지들은 말해도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거야. 그러니 적당한 뼈다귀 하나 던져주고, 좋아서 물고 빨고 정신을 못 차리면 그때 여론몰이를 하는 거지. 어때?”
“역시 총리님의 혜안은 탁월하십니다.”
카가와 시게루가 손바닥을 비비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하지만 야기 소스케의 생각은 달랐다.
“총리님, 이시이 카츠키 교수는 731부대장의 손자로 예전부터 억지 주장을 했던 걸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지금 그가 주장하는 자료도 가짜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타츠야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검지를 두드렸다.
“사람이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어떻게 외무성 국장이 된 거야? 그 자료가 가짜면 어때? 공개만 하지 않으면 그게 진짠지 가짠지 알 수가 없는데. 그러니까 그 친구에게 그거 꼭 쥐고 이빨만 털라고 그래. 우익단체장들에게 말해서 최대한 집회랑 시위 많이 하라고 얘기하고.”
“……”
“거 표정 하고는. 이 사람아, 그냥 있는 불씨에 기름 한 바가지 붓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걱정돼?”
야기 소스케는 그래도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 모습에 카가와 시게루가 입을 열었다.
“야기 국장, 그 건도 내가 직접 챙길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미국 측 대응이나 잘 해요.”
***
수도는 지방과 한 가지 눈에 띄게 다른 점이 있다.
사통팔달의 교통? 하늘까지 닿은 마천루? 소비를 자극하는 각종 인프라?
아니다.
그런 건 그저 물질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지방에선 자주 보기 힘들지만 수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그건 바로 집회(集會)와 시위(示威)다.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위력행위.
사람이 밀집하는 수도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광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도쿄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슨 놈의 집회가 이렇게 많아?”
도심지를 걸으며 마주친 시위대만 벌써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아무리 수도라지만 이건 많아도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 시위대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여서 촛불시위 같은 대규모 집회를 하는 건가?’
하나같이 커다란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들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정당한 주장을 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거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문제는 ‘욱일기(旭日旗)’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욱일기는 구 일본제국의 군기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인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전범국 주제에 그걸 자랑스럽다는 듯이 들고 다니는 건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야, CIA. 저것들 극우단체지? 플래카드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브루스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다.
그 모습에 실비아가 옆에서 거들었다.
“관심 갖지 말고 그냥 가요.”
그녀는 밀항선에서 브루스가 학살을 자행한 이후로 그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데도 말을 보태는 걸 보면 브루스의 생각을 읽었나보다.
뭐길래 이러는 거지?
이러니까 더 궁금하잖아.
“뭔데 그래? 우리나라와 관련된 거야?”
“……”
“혹시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괜찮으니까 말해봐.”
“그게…… 혐한시위 뭐 그런 거예요.”
그녀의 대답에 브루스도 거들었다.
“정말입니다. 한국도 반일감정 그런 거 있잖습니까. 약간 거친 말이 있어서 기분나쁠까봐 말씀 못 드리는 겁니다.”
“그래?”
아닌 거 같은데.
“알아서 좋을 게 없잖습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죠.”
둘이서 이렇게까지 짝짜꿍이 맞으니 모른 척 넘어가줘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일본에 오기 전에 이런 걸 보게 될 거라 예상했기에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외국어로 욕하면 욕 같지 않은 그런 거.
극우단체의 시위대를 보는 내 기분이 딱 그 정도였다.
“어?”
그런데 그때였다.
내 눈에 한 플래카드가 눈에 띄였다.
일본어는 읽을 수 없어도 아라비아 숫자는 만국공통이니 볼 수밖에 없었다.
“칠, 삼, 일······”
나머지 글자는 몰라도 알 수 있다.
731부대에 관한 것이라는 걸.
혐한과 관련해 극우단체가 731부대를 내걸었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저거 혹시 한국의 인체실험이 관련된 집회야?”
브루스는 체념하듯 한숨을 쉬며 답했다.
“……네.”
“이야, 한국에서 볼 땐 기사 한 줄이었는데 현지 반응은 화끈하네.”
“일본의 극우세력 입장에서는 공격하기 좋아서 그런 겁니다. 무시하십시오.”
공격하기 좋다고 공격한다?
그런 사고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는 건가?
마치 말리는 게 아니라 부채질을 하는 느낌이다.
내가 싸늘한 태도로 일관하자 브루스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한국은 그런 치부를 숨기기보다 명명백백히 밝히고 있잖습니까. 그런 용기 있는 선택을 했으니 손가락질 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길 건너를 보며 그 말에 답했다.
“손가락질 하고 있는데, 저기 저것들이.”
“……”
“일반인을 건드리면 저 수습 못 합니다. 제발 그냥 가시면 안 됩니까?”
“누가 사고 친데? 왜 오버하고 그래?”
브루스는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나는 신호등이 바뀌자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좀 들어보자는 거야.”
정말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다.
저들도 각자의 정치성향을 따르는 것일 뿐이지 않은가.
나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죽이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민주시민은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