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너를…… 죽이겠다.
브루스 베커는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실물크기의 건담모형을 움직이다니.
이건 지금까지 겪은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런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사람 하나 가지고 노는 게 일도 아니지.’
몇 톤의 무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힘이다.
만약 저 능력으로 미사일을 움직인다면 어떨까?
아니, 추진체가 필요 없으니 탄두만 있으면 살아있는 전략병기나 다름없었다.
‘반드시 미국이 손에 넣어야 해. 그렇지 않으······아차!’
안 좋은 생각을 떠올리려는 순간 흠칫했다.
빨간후드를 쓴 은발의 여자가 자신을 흘겨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
방금 전 떠올린 걸 읽었다면 일단 설명을 해야 했다.
“저, 저기 레이디······”
“괜찮아요.”
“네?”
“이미 저 사람이 언질을 줬거든요.”
“언질이라니요?”
“그런 안 좋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요.”
“……”
“저런 힘을 보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죠. 나도 이해해요.”
실비아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는 서훈이 있었다.
브루스 역시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초능력이라······”
***
도심의 집회장소.
그곳에 다시 돌아오니 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극우세력만 있었던 때와 달리 반대세력이 나타난 것이었다.
일명 혐한 반대 시민운동.
과거사를 마주하고, 인종차별과 혐한을 그만두자고 주장하는 일본인과 재일교포, 그리고 시민운동가들이 모인 반대집회였다.
문제는 그 수가 너무 적은 나머지 극우세력들이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한국인은 일본을 떠나라! 한국과의 외교는 단절해야한다!
-조센징은 맞아야 말을 듣는 인종이다!
-조센징은 기생충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밀치고, 침을 뱉고, 물병을 집어던지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세력의 사람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헤이트 스피치는 그만! 우리는 혐오 없는 일본에 살고 싶다!
-혐한 감정을 부추기지 마라!
-한국은 우리의 이웃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일본경찰은 중간에 끼인 샌드위치가 되어 떠밀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 중년여성이 앞에서 소리쳤다.
“우리들 재일교포도 여러분처럼 일본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제발 인종차별을 그만둬주세요!”
그 말을 들은 집회참여자들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조센징이다!”
“잡아 죽여!”
“바퀴벌레 같은 조센징놈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경찰이 몸으로 쳐놓은 바리케이트가 무너지고 살기를 뿌리는 아귀들이 손을 휘둘렀다.
더 이상은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광역으로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그만!
상대에게 내 의도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능력.
집회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이해하고 행동을 멈추었다.
마치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쿠구구구.
이어서 타이밍 좋게 건담이 모습을 드러내게 연출했다.
태풍처럼 회전하는 구름의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하강하는 모습은 마치 소환이라도 된 듯 했다.
“뭐지 저게?”
“……건담?”
“도대체 이게 무슨……”
“건담이 왜 여기, 아니 어떻게?”
“저거 오다이바에 있는 건담 아니야? 생긴 게 똑같은데.”
“진짜 똑같이 생겼네. 그거 맞는 거 같은데?”
“그게 여기 어떻게 오냐고.”
“날아서 온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게 왜 움직이냐고!”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광역으로 텔레파시를 전달했다.
-싸움을 멈춰!
텔레파시까지 사용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건담에 누군가가 타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기 위해서.
-너희들은 그렇게 전쟁이 하고 싶은가?
건담의 손가락이 극우세력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재일교포 여성을 향해 달려들던 놈들이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그때 길거리에 있던 어떤 남자가 외쳤다.
“히이로 유이다!”
그는 손에 건담 프라모델 박스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도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고, 마찬가지로 건담 프라모델 박스를 들고 있는 걸 보면 덕후모임인 모양이었다.
“전쟁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진짜 히이로 유이 아냐?”
“히이로 유이 맞다니까!”
“우오오, 히이로 유이!”
히이로 유이?
건담 주인공인가?
건담이 확실히 유명하긴 유명한가보다 이 타이밍에 덕후들이 나오는 걸 보면.
-누가 장난치는 겁니까? 영화촬영소품 같은데 장난치지 마세요!
집회의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그리고 이시이 카츠키 역시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경찰은 뭐하는 겁니까? 저 안에 타고 있는 사람 끌어내리지 않고.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날 불렀군.
-뭐, 뭐?
-나는 알 수 있다. 나는 너를 처단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그때 혐한 반대세력의 누군가가 말했다.
“맞아! 아까 자기가 한 말이 거짓이면 건담이 와서 밟아 죽여도 억울하지 않겠다고 했었어!”
“그러네. 그 말 때문에 건담이 온 거야!”
이시이 카츠키가 했던 말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길거리에 있던 프라모델 덕후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곳엔 어느새 수십 명의 덕후들이 모여 조립된 건담 프라모델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임무다!”
“임무 확인, 즉시 개시다!”
“히이로 유이, 가라! 섬멸이다!”
“한 마디만 더 해줘! 너를 죽이겠다!”
“제발! 너를 죽이겠다!”
“그 전에 죽이고 싶지 않아가 먼저잖아! 그 말 먼저 말해줘! 제바알!”
“그래, 죽이고 싶지 않다가 먼저야!”
단체로 뭔 X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저 말들이 건담에 나오는 대사라는 것을.
-주, 죽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대충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와아아아아!
수십 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함성이 쏟아졌다.
“너를 죽이겠다!”
“너를 죽이겠다!”
“너를 죽이겠다!”
같은 대사를 같은 톤으로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군대를 방불케 했다.
아니, 군대라도 저렇게 단합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애니와 만화가 일본문화의 한 축이라는 말을 듣긴 했는데 겪어보니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너를······ 죽이겠다.
그 순간 그들은 얼굴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이제 죽어도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웃기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뭔가 비장하다고 해야 할까.
죽일 생각으로 건담을 가져오긴 했지만 저들의 바람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커덕.
염력으로 건담의 발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발그림자가 집회 단상을 시커멓게 드리웠다.
진행자는 마이크를 냅다 던지고 도망을 갔고, 이시이 카츠키는 벌벌 떨며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콰아앙!
그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건담의 발에 짓밟혀 피떡이 되었다.
이어서 연속적인 발구름이 단상 아래의 사람들에게 향했다.
-콰앙! 콰앙!
“으아악! 사람 살려!”
-콰앙! 쾅! 쾅!
“꺄아아악!”
-쾅! 콰앙!
극우세력들은 혼비백산하며 흩어지기 시작했고, 경찰들은 권총을 빼들고 건담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아무 소용없었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수뇌부들은 다 밟아죽였는데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니 고민이 되었다.
쫓아갈지 저대로 놔둘지, 건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을 말이다.
그때 내 고민을 해결해주는 지침이 들렸다.
“자폭!”
“자폭!”
“자폭!”
덕후들이 한 목소리로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아마 건담이 자폭을 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터트리진 못하지만 염력을 일제히 해제해 자폭처럼 보이게 연출해주었다.
-철커덩, 쿵, 쿠웅, 텅, 텅, 텅, 탱그르르르.
쇳덩이들은 산산이 분해되어 바닥에 쏟아졌고, 사람들은 잔해를 피해 이리저리 뛰고 굴렀다.
그 모습을 보던 덕후들은 들고 있던 프라모델을 부수고 환호성과 함께 부품 조각들을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
“나는!”
“우리들은!”
“건담이다!”
왠지 공돌이가 저 모습을 봤어야 할 거 같은데.
***
일본의 인터넷에는 건담이 단연 화제에 올랐다.
사람들은 영상을 퍼다 날랐고, 쉴 새 없이 관련 글을 쏟아내었다.
초반의 화력은 그 자리에 있었던 목격자들, 특히 덕후들이 선봉에서 감동적인 경험담을 양산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늘 히이로 유이를 만났다. 아아, 임무는 OK. 이제 죽어도 좋아······
-님, 안에 아무도 없었다며?
-애송아, 그건 히이로 유이의 영혼이었다. 파일럿의 영혼이 오다이바의 건담에 깃들었던 거다.
-오다이바? 그 건담은 라이트만 들어오는 모형 아닌가? 어떻게 움직인 거지?
-최고의 파일럿인 히이로 유이니까. 듀오 맥스웰에게 했던 말 몰라?
-넌 할 수 없겠지, 난 할 수 있다?
-그래, 그거다.
-X발, 가슴이 웅장해지려고 해.
그때 일본의 한 커뮤니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올라왔다.
-다들 건담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묻지 말고, 왜 움직였는지 생각해보길 바라.
‘왜’라는 한마디.
그리고 그가 했던 말과 누굴 처단했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쉽게 그 이유가 뭔지 도출되었다.
-제국주의 추종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였네!
-간악한 전쟁광들에게 경고하려고 온 거였구나.
-맞네, 히이로 유이는 비폭력, 반전사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혐한, 인종차별, 헌법개정 관련 시위가 유독 많아지긴 했었어.
-극우새끼들 진짜 꼴 보기 싫던데.
-어? 죽은 사람 중에 이시이 카츠키 교수가 있네? 그 교수, 자기 할아버지가 저지른 731부대 생체실험을 덮으려고 예전부터 이상한 말 많이 하지 않았어?
-히이로 유이가 강림할 만했네. 전 세계가 생체실험 했다는 거 다 아는데 아니라고 발뺌 좀 하지말자. 잘못 했으면 인정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맞아, 그게 진짜 일본을 위한 일이고 제대로 된 시민의식 아니겠어?
-그리고 혐한 집회자들 말이야, 따지고 보면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 어긴 거잖아. 근데 경찰은 가만히 있더라.
-경찰이 그러니까 건담이 나선 거네!
-결심했어, 나 내일부터 혐한 반대운동 시작한다!
-나도 간다!
-나도 동참!
-임무다!
-우리 여기서 그때의 외침을 한 번 더 해볼까?
-선창해.
-나는!
-우리들은!
-건담이다!
-임무개시!
일본 국민들의 성향은 보편적으로 다른 어떤 나라보다 순종적이다.
그렇기에 집단행동에 나서는 경우도 거의 없고, 그저 조용히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젊은 층이 불씨가 되고, 재일교포와 시민운동가, 그리고 사회활동가들을 규합하게 된 것이었다.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걸까.
건담이 움직인 미스테리한 사건은 대다수의 일본국민들까지 움직이게 만들어 화제성을 높였고, 전 세계 언론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건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이, 일본에 있었다니······”
사이먼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행적이 묘연하다 했었다.
수도권만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국내를 벗어나 해외라니.
항상 자신의 분석을 벗어나는 서훈의 행동에 사이먼은 자신이 바보가 된 건지, 서훈이 천재인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 근데 일본엔 왜 간 거지?”
갑자기 왜 일본에 가야 했을까.
과거를 뒤져보니 그는 한 번도 국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제이크를 살해한 후 살펴본 행동반경도 그렇게 넓지가 않았다.
그러니 성향을 분석했을 때 서훈 본인의 일 때문에 일본을 갔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럼 실비아 크리스탈 때문인가······’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건담이라는 모형이 움직이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
거기에 얼굴은 가렸지만 서훈과 실비아가 함께 있는 모습이 찍었으니까.
퀸시에 가입하진 않은 걸로 보이지만 같이 행동하는 걸로 보아 조만간 그들과 손을 잡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퀸시의 조력자들까지 돕는다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능력이 물질조작이란 것도 알았고, 컨트롤과 파워도 엄청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십 톤의 쇳덩이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일 정도였다니!
저건 이전의 기준이었던 자동차 한 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도, 도대체 한계가 어디까지인 거야?”
사이먼은 한숨을 내쉬고는 중대한 결심을 한 듯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호크아이를 써야겠어.’
라이언 가(家)의 대 퀸시 감시망.
전 세계에서 암약하는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준비한 양자컴퓨터와 인공위성이었다.
사이먼은 그걸 서훈 한 사람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