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아무래도 실력이 없어서 은퇴한 것 같은데.
노인은 머리에 물에 젖은 미역 몇 줄기를 올려놓은 것 같은 꼴사나운 모습으로 물었다.
“거슬려? 내가 니놈에게 뭔 짓을 했길래?”
“그럼 저 가마 안에서 불타는 사람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지?”
“……”
“그러니까 당신도 그냥 당해, 주둥이 나불거리지 말고.”
나는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이걸 당기는 순간 눈앞의 노인은 고깃덩이가 될 것이다.
“그래, 그 말이 맞아. 죽이고 싶으면 죽여야지. 그게 우리 같은 놈들의 본질이니까. 흐흐.”
나이가 많아서 죽음에 초연한 걸까, 아니면 직업적 특성일까.
눈빛에서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광기에 지배된 듯 하달까.
“쏴!”
핏발 선 눈으로 쏘아보는 노인.
나는 도리어 총을 거두었다.
“왜 안 쏘지? 흐흐, 설마 못 쏘는 건 아닐 테고······”
그는 알겠다는 듯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이제 보니 그 능력을 쓰지 않고 직접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는 모양이군. 흐흐흐.”
그렇긴 하다.
하지만 방금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건 다른 이유에서다.
“너무 쉽잖아?”
이렇게 죽이는 건 아니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놈의 기를 꺾어 놓고 싶었다.
“……뭐?”
“손가락만 당기면 끝이라니. 너무 쉬운 것 같아서.”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
그러려면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 하니 총은 더 이상 적합한 수단이 아니었다.
‘뭐가 좋을까······’
제압당한 상태에서 죽이라고 발악하는 걸 보면 보통 기가 센 노인네가 아니다.
장권일처럼 숨 좀 못 쉬게 한다고 입을 열 부류가 아닌 것이다.
그런 내 눈에 가마 옆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가 보였다.
물이 가득 담긴 걸로 보아 아마 가마의 온도를 낮추는 용도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래, 그 정도면 입을 열겠지.’
머릿속에 떠올린 걸 실행하기 위해 노인의 신체적 자유를 빼앗았다.
-뿌드득.
팔다리의 관절을 비틀고 꺾으니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부러뜨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흐흐, 온몸의 뼈를 부러뜨려봐라. 내가 눈 하나 깜짝하는지.”
“글쎄 눈 하나 깜짝하는지 안 하는지 두고 보면 알겠지.”
염력으로 그를 끌고 가 항아리 속에 담갔다.
그리고 곧바로 물 밖으로 꺼냈다.
“이게 뭐하자는······!”
그는 내 시선을 보고 입을 꾹 닫았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출렁이는 걸 보니 내 의도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자, 자, 잠깐!”
나는 못 들은 척 염력으로 가마 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끄아아아아악!”
얼마나 온도가 높은지 물에 적셨는데도 치익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나는 낚시를 하듯 염력으로 노인네의 몸뚱이를 다시 당겼다.
-화르륵.
넣자마자 뺐는데도 전신에 불이 붙어 있었다.
그 상태로 다시 항아리에 담궜다.
-첨벙.
빼고,
“으으으.”
넣고,
-끄아아아악!
다시 빼고,
-첨벙.
다시 넣고.
그렇게 세 번을 반복했다.
“으으으······ 죽여어······ 제발.”
성대에 화상을 입었는지 쉰 목소리다.
나는 흉물스럽게 피부가 녹아내린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웃어봐.”
“……”
“아까처럼 또 웃어보라니까.”
그제야 노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내 눈을 피했다.
대쪽 같던 기가 꺾인 것이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
“잘 대답해주면 이걸로 편하게 보내주지.”
나는 장총을 노인의 머리통에 겨누고 말을 이었다.
“이름.”
“이, 이무성.”
“무성도예가 당신 이름을 딴 거로군. 이런 곳이 전국에 얼마나 되지?”
“잘은 모르지만…… 서른 곳은 족히 넘을 게요.”
생각보다 많다.
시체처리소가 서른 곳이 넘는다니.
“여긴 흑룡파 산하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오.”
“그게 무슨 말이지?”
“흑룡파에서 나오는 시체를 주로 처리하지만 운영은 독자적으로 하기 때문이오.”
그는 청부업자들이 죽지 않고 은퇴하면 이런 시체처리소를 차린다고 말해주었다.
늙어서 현직에 있을 수 없게 된 놈들이 피맛을 잊지 못해 사람백정이 된 것이다.
“청부업자들은 흑룡파 같은 조직이 없나?”
영화에서 보면 청부조직 같은 게 있던데.
“혼자 움직이는 놈들이 대부분이오. 예전에는 조직이 있긴 했지만 조금만 수틀리면 서로 죽여 대는 통에 얼마가지 못했소.”
“조직이 아닌 개인으로 움직이면 의뢰가 많지 않을 텐데?”
“대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브로커 집단이 있소. 의뢰인을 알선해주고 거래대금에서 수수료를 받는 식으로.”
거래가 성사되면 받는 수수료.
브로커는 딱 그 정도만 챙기니 청부업자들과의 마찰이 없는 모양이다.
“그놈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과 거래하는 현직업자들을 만나 소개받는 방법 외에는 없소.”
“아는 놈들이 있나?”
“……”
이무성은 잠시 주저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죽게 될 테니 말해주는 건가?
“얼마 전에 은퇴한 놈이 있소. 아직 그들과 연락이 될 거요.”
“어디 있지?”
“김실장이라고 여기서 일하고 있으니 조금 있으면 올 거요. 지금은 거래 건이 있어서 밖에 나가있소.”
김실장이 여기서 일하는 놈이었구나.
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당신, 그놈이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군. 그치?”
“……”
“좋아, 그놈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어차피 다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브로커와의 연락을 운운한 것은 내가 그놈을 죽이는 게 아닌 제압하길 바라는 의도로 말한 것이다.
죽이는 것보다 제압이 어려우니.
한 마디로 내 능력을 조금이라도 낮춰보려는 수작이었다.
‘얼마 전에 은퇴했다면 현직업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야겠지.’
눈앞의 추레한 노인, 이무성과는 다를 것이다.
내심 긴장이 된다.
그 동안 다양한 인간군상을 상대해봤지만 킬러라 불리는 놈들은 만난 적이 없으니.
“놈이 오기 전에 이러고 있기 어색한데 대화나 더 나눠볼까?”
이무성은 힘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어볼게 있는데 전문가의 의견을 말해주면 좋겠어.”
“마…… 말해보시오.”
“흑룡파에서 사람을 죽인 후, 여기서 처리하지 않고 현장에 시체를 방치하기도 하나?”
“……”
“참고로 CCTV에 찍히고 있는 걸 알고도 아랑곳하지 않더군.”
나는 한설아의 사건현장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설명을 들은 이무성은 천천히 입을 뗐다.
“아마 흑룡파가 아닐 거요. 조직들은 예전과 달리 되도록 시체를 남기지 않으려 하니까.”
전민성의 말과 같다.
그렇다면 정말 흑룡파가 아닌 건가?
“나는 그걸 사주한 놈이 흑룡파 간부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개인적으로 청부업자를 이용했을 수도 있지 않나?”
“청부업자라면 살인 후에 시체처리소를 이용했을 거요. 의뢰인도 그렇지만 특히 업자는 시체를 남길 경우 꼬리를 잡힐 수도 있으니.”
“흠, 전문가로서 할 말은 그게 끝인가?”
나는 물끄러미 이무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 눈길을 피하며 말을 아꼈다.
“그래, 더 해줄 말 없으면 이만 끝내자고. 어색하게 얼굴 마주하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으니까.”
“조, 조금 있으면 그놈이 올 거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보내 줄 거야.”
“초, 총! 총으로 죽여준다고 했잖소!”
“대답이 마음에 안 들어.”
염력으로 천천히 일으켰다.
다시 가마 속에 던져버릴 요량으로.
“자, 자, 잠깐. 하, 하나 더 말해줄 게 있소.”
“…….”
“CCTV에 노출되고도 현장에 시체를 뒀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소.”
“말해봐.”
“전문업자가 아닌 어설픈 살인마거나······”
“어설퍼보이진 않던데. 내가 보기엔 대담해보이더라고.”
이무성은 침을 꼴깍 삼키고 내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죽이고 나서 일부러 시체를 놔둔 거요.”
“일부러? 왜?”
“누군가에게 경고를 하는 게지. 너도 이렇게 죽을 수 있다고.”
“……!”
한설아의 죽음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거구나.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CCTV 속의 세 놈은 보라고, 너도 이렇게 죽을 거라고 경고하는 것이 분명했다.
‘누굴까?’
그녀를 누가 죽인 것이고, 누구에게 그런 메세지를 보내는 것일까.
왜 꼭 죽여야만 했던 걸까.
‘도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 거지?’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당해야 할 정도로 큰일이라면 김천수는 몰랐던 걸까?
골드바에서의 모습으로 판단컨대 철저하게 감시하고 관리하는 듯 했는데.
생각이 이어지는 그때였다.
‘응?’
공방 뒷문을 열고 뒷마당으로 들어오는 중년남자가 보였다.
2미터 정도의 키에 육중한 덩치.
저자가 청부업자일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영화 속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육체미를 뽐내는 보디빌더라면 모를까.
“기, 김실장!”
이무성이 그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성대에 화상을 입어 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이놈, 이상한 초능력을 쓴다! 염력 같은……! ”
나는 그의 입을 닫고 나직이 말했다.
“너무 애쓰지 마. 보기 안쓰럽잖아.”
“으으으······”
나는 피식 웃은 후에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갔다.
상대도 나와 이무성을 발견하고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그는 이무성의 상태를 슬쩍 확인한 후에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그런 거냐?”
“보다시피.”
“누구냐? 누가 보냈지?”
“글쎄? 알아내봐.”
“……”
놈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뚜둑 소리를 내더니 한쪽에 놓여 있던 삽을 집었다.
내 손에 들린 장총을 보고도 여유를 부리다니 무슨 자신감인가 싶다.
“하여튼 요즘 것들은 선배에 대한 예의가 없다니까.”
그는 삽을 가슴께로 들어 올려 심장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사람 죽이는 업계도 그런 걸 따지나?”
“흐흐, 직업에 귀천을 따지면 안 되지.”
“모르나본데 요즘은 귀천이 있더라고.”
“알지. 돈 잘 벌면 귀하고, 돈 못 벌면 천한 거.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일이 참 귀하디 귀한 직업 아닌가?”
“덩치에 안 맞게 말이 많으시네.”
다섯 걸음 앞.
달려들면 순식간에 좁혀질 거리다.
“이 정도로 가까이 왔는데 안 들어와?”
나는 여전히 장총을 어깨에 걸친 상태.
도발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후웅.
갑자기 삽자루가 번개같이 휘둘러졌다.
완전히 휘둘러졌다면 머리가 쪼개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은 그전에 움직였다.
이번에도 두 개의 포인트에 시선을 찍었다.
당겨지는 다리, 밀쳐지는 상체.
신체는 움직일 때 중심을 무너뜨리기 더 쉽고, 더 강하게 반응한다.
-쿠당탕.
그냥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것과 달리 많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덩치는 다른 놈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관절을 꺾을 새도 없이 삽을 하단으로 휘둘렀으니.
‘생각보다 침착하네.’
염력으로 다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것만으로 삽은 허공을 힘없이 휘저을 뿐이었다.
사람은 땅바닥에서 발이 떨어지면 이렇게 무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놈은 포기하지 않고 누워있는 상태로 삽을 던졌다.
-휘잉.
염력으로 궤도를 비틀자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뒤쪽으로 날아가버렸다.
“이 괴물 새끼!”
그 사이 몸을 일으킨 놈이 낮은 자세로 태클을 걸어왔다.
나는 한 발 물러나며 그의 몸을 내 쪽으로 당기는 동시에 바닥으로 내리눌렀다.
-촤아악.
흙바닥에 엎어진 놈의 얼굴과 팔꿈치에서 피가 흘렀다.
우리 둘의 거리는 불과 한 걸음.
그 짧은 거리에서 놈은 나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 상대해야하는 건 그 사이에 존재하는 내 능력이었다.
나는 유도, 관절기 등을 눈으로 배웠고 눈으로 펼치니까.
이 간극은 멀리 떨어지지 않고 일정거리에서 격투를 벌일 때 더 커진다.
-콰직.
나는 장총의 개머리판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놈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그 한 방에 눈알이 뒤집히며 풀썩하고 머리를 뉘였다.
‘청부업자라······’
그다지 감흥이 없다.
은퇴를 했기에 그런 걸까.
아니면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닥뜨려서?
이 정도 실력이면 크게 위협이 되지 못할 듯 했다.
“기, 김실장······김실장! 일어나!”
이무성은 처량하게 그를 불렀다.
나는 덩치의 몸을 툭 차며 물었다.
“이 덩치, 그쪽 업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지?”
아무래도 실력이 없어서 은퇴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