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에라이, X노무 새끼
일본은 참 재밌는 나라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떻게든 원인을 밝히려고 애를 쓰고 과학적인 잣대를 대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곳은 공영방송뉴스에 무녀의 인터뷰를 내보내며 마치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애니미즘의 영향이 큰 탓이겠지.’
자연물에 대한 숭배.
일본은 특히 이러한 사상이 발달해 있고, 그렇기에 수많은 신을 모시는 신사가 존재한다.
그 야스쿠니 신사 역시 전쟁에서 죽인 사람들을 신격화해놓지 않았던가.
그러니 신이나 요괴 같은 영적존재에 대한 믿음이 유독 강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은데요.”
일부러 물과 관련된 죽음을 조장하긴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다.
애초에는 원전처리수 문제와 관련해 X소리를 하면 죽는다는 괴담 정도만 생각했는데 수신(水神)의 분노까지 나올 줄이야.
이렇게 판을 깔아주면 또 응해줘야지.
“타츠오 씨.”
함께 뉴스를 보고 있던 타츠오가 고개를 돌렸다.
“네.”
“뭐 좀 괜찮은 거 없을까요?”
“괜찮은 거라니요?”
“수신의 분노를 보여줄 만한 거요.”
“그런 거면 홍수나 해일이 좋겠죠.”
아니, 그런 현실적인 거 말고.
미신을 연관시켜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답답하게 또 이런다.
“상상력 좀 발휘해봐요.”
“……?”
“예를 들면…… 상상 속 동물? 요괴? 악신? 뭐 그런 거 있잖습니까.”
뭐든 좋으니까 신벌을 연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식겁을 할 테니까.
“흠……”
타츠오는 수신의 신벌과 관련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릎을 탁 치고 스마트폰으로 이미지 하나를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녹색피부에 거북이 등껍질을 맨 대머리 괴물은 마치 서유기의 사오정을 연상케 했다.
“갓파라는 요굅니다. 물의 요괴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죠.”
“……”
“마음에 안 드십니까?”
내가 외모지상주의는 아니지만 생긴 게 너무 분위기가 없다.
신벌의 대행자라면 뭔가 무게도 있고, 하다못해 무서워보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럼 이건요?”
메기가 여기서 왜 나와.
신벌이 메기면 퍽이나 두려워하겠다.
“타츠오 씨, 좀 근엄하고 진지한 거 없습니까?”
“예를 좀 들어주세요.”
“포세이돈이나 용 같이 좀 신적인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아, 그런 거라면 있습니다!”
이번엔 좀 있어보여야 할 텐데.
“여기 좀 보십시오. 야마타노오로치라고 하는 뱀 요굅니다.”
“야마타노오로치……”
“일본 요괴 중에선 가장 유명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됩니다.”
이미지를 보니 이무기 같다.
그것도 머리가 여덟 개나 달린.
“생긴 건 괜찮네요. 물과의 연관성은요?”
“원래 머리가 여러 개인 뱀 신화는 고래로 치수(治水)와 관련이 깊습니다. 야마타노오로치의 경우도 관서지방에 있는 여덟 개의 큰 강을 상징한다는 말도 있고 말입니다.”
여러 모로 이놈이 제격이다.
더군다나 이무기는 재앙을 상징하기도 하고 말이다.
“갑시다.”
“어딜요?”
“야마타노오로치 보러요.”
“……?”
“어디 실물크기 모형 같은 거 없습니까?”
“없는······데요.”
유명하다며? 건담은 있으면서 그건 왜 없어.
“그럼 후쿠시마로 가죠.”
“네? 갑자기 후쿠시마는 왜요?”
왜긴. 거기 있는 재료로 그 뱀 요괴 만들려고 그러는 거지.
“수신의 분노가 거기서부터 시작돼야 사람들이 더 많이 떠들 거 아닙니까.”
***
도쿄전력 상황실.
그곳은 원전처리수의 정화와 보관 등 모든 관련 작업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소였다.
수많은 화면이 전면을 가득 채운 그곳에 갑자기 붉은 등이 점멸되며 삐!삐!삐!삐!라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상황실 책임자가 소리치자 화면을 모니터링 하던 직원이 답했다.
“처리수 저장탱크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뭐? 화면 그쪽으로 돌려봐, 빨리!”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화면은 다각도의 방향에서 원전처리수 저장탱크를 비췄다.
동그란 탱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마치 하얀 버섯군락처럼 보였다.
“어어?”
그때 몇몇 저장탱크의 윗부분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터질 것처럼 바깥쪽을 향해 불룩하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저, 저거 왜 저래? 압력이랑 온도 빨리 체크해봐! 뭐가 문제야?!”
“이상 없습니다. 전부 정상범위 내에 있습니다.”
화면 일부분이 전환되며 저장탱크의 이미지가 나왔다.
오른쪽에는 압력과 온도 게이지 및 방사능 물질의 상세수치, 그리고 탱크 내부 처리수의 높이가 표시되어 있었다.
“근데 왜 저러는 거야. 현장기술자들은?”
책임자의 물음에 수화기를 들고 있던 직원이 답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 다들 무서워 가까이 못 가겠답니다.”
“뭐?! 그걸 말이라고 해! 가서 원인이 뭔지 확인하라 그래, 당장!”
“벌써 대피하고 난리가 났답니다.”
“X발! 거기서 대피하면 어떡해!”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현장관리팀이 무너진 상황.
본사 상황실에서 시스템 제어만으로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었다.
화면에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당장 탱크가 터질 것 같았으니 말이다.
“여, 연락 돌려!”
“어디로 말입니까?”
“전부! 총리관저,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위원회, 경찰, 소방서······ 아무튼 전부 다 돌려! 어서!”
그가 소리친 그때였다.
탱크 윗부분이 뜯겨나가고 분수처럼 뿜어지는 수십 개의 물줄기가 하늘로 향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마치 분수쇼를 보는 듯 했지만 그 물이 어떤 물인지 알고 있기에 다들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맙소사······”
그때 상황실 직원들 중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뻗어 나오는 물줄기들이 뭉치며 희미한 형상이 만들어지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다른 이들도 그게 뭔지 떠올리고 입을 떡 벌렸다.
“헉······”
“저거 설마……”
“……미친.”
“말도 안 돼······”
“종말인가······”
저장탱크를 뚫고 나온 오염수 줄기가 뭉치며 여덟 마리의 거대 뱀으로 덩치를 키워나갔다.
이제는 누가 봐도 뚜렷한 형상이었고 다들 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야마타노오로치······”
신벌이 재앙이 되어 현신한 것이었다.
***
총리관저 비상대책실.
그곳에는 타츠야마 총리를 비롯해 각 기관의 장들이 전부 자리해있었다.
“내가 지금 괴수영화를 보고 있는 거 아니지?”
타츠야마는 전면에 위치한 대화면을 보며 물었다.
그 물음의 상대는 없었다.
워낙 비현실적인 상황에 독백처럼 내뱉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때 한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총리님, 지금 국민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부총리인 사이토 나카다였다.
카가와 시게루 자민당 총재가 총리의 후계자라면 그는 측근이자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많이 안 좋나?”
“처리수 해양방류를 맡은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저런 일까지 생겼으니까요. 해양방류를 당장 철회하라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아······ 왜 내 임기에 이런 일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건 2011년.
지금까지 십 년을 넘게 관련 사안을 질질 끌어왔다.
그 동안 잘 해왔고, 이제 일이 년만 버티면 되는데 이런 일이 생겼으니 기가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거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거야?”
타츠야마의 물음에 방위성의 수장인 방위대신이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사였다.
“경로를 분석해본 결과 도쿄로 오고 있는 걸로 예상됩니다.”
“뭐?! 여기로 오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저, 저게 도심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저 형태를 유지하면 또 모르겠지만 만약 흩어져서 쏟아진다면 도쿄시민 전체가 방사능 피폭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
한 마디로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명피해라는 측면에서는 도쿄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는 말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대책이 뭐야?”
“……”
“대책이 뭐냐고 묻잖아!”
“……”
“지금 벙어리들만 모아 놨어? 당신들, 내각을 구성하는 핵심인사들 아니야?”
“……”
“왜 나만 떠들고 있는 거냐고!”
타츠야마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탕탕 치며 고함을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들 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고, 그걸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총리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이팜탄 같은 걸로 증발시키는 건 어때?”
그의 의견에 방위대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로는 방사능 물질을 태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기체화 될 시 폭발로 인한 후폭풍으로 어디까지 퍼질지 예상이 불가능합니다. 자칫 도쿄가 아니라 관동지방 전체가 피폭될 우려가 있습니다.”
“미치겠구만······”
“신의 분노를 인위적으로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총리님.”
“신의 분노오오? 그게 지금 방위대신이라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이야?! 그러고도 국민들의 재산과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그때 부총리인 사이토 나카다가 끼어들었다.
“총리님, 진정하십시오. 초자연적인 현상이지 않습니까. 방위성의 입장도 당혹스러워 그럴 겁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저걸 못 막으면 다 죽는다잖아!”
“막을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그걸 아니까 다들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고 말입니다.”
“……”
“물론 총리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그 방법.
타츠야마는 해양방류 철회가 가져올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미쳤어? X소리 하지마!”
“모두가 그렇게 원하고 있습니다, 총리님.”
“그거 결정하는 순간 지난 십 년 간 작업했던 게 다 물거품이 되는 거야.”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온갖 로비를 한 것과 미국의 동조를 끌어내기 위해 각종 불합리한 협상을 받아들인 것까지.
일본정부는 막대한 처리비용에서 해방되기 위해 사력을 다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철회한다면 그 비용은 비용대로 물고,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의 엄청난 경제적 손실에 직면해야 할 것이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도쿄시민들을 다 죽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사이토의 말에 다른 부처의 장들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민들에는 자신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간 난 역대 최악의 총리로 역사에 남게 될 거야……’
일본을 족히 100년은 후퇴시킨 총리.
나라를 망친 대역죄인.
미신에 현혹된 무능한 정권.
.
.
타츠야마는 그 수많은 꼬리표를 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있다간 1400만 도쿄시민을 사지에 몰아넣은 희대의 살인마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총리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수뇌부 인사들이 결정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어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식은땀이 흐르고 등이 축축해졌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오명은 피할 수가 없었다.
‘제발 그만해애애!’
타츠야마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자신의 등을 떠미는 듯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뿐이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칼날이 되어 날아드는 듯 했다.
두려웠다.
총리가 된 이후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타츠야마는 일본의 경제와 국민들의 생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워 미칠 것만 같았다.
“이러다간 다 죽습니다.”
그때였다.
죽는다는 그 말을 듣자 번쩍 하고 빠져나갈 방법이 떠올랐다.
죽으면 되는 것이었다.
일본총리, 타츠야마 지로가 말이다.
타츠야마는 자신의 지병인 대장염을 상기시키듯 배를 잡고 바닥을 굴렀다.
“으으으으윽!!”
“초, 총리님!”
“총리님 왜 그러십니까? 헉! 무슨 땀을 이렇게······”
부총리인 사이토가 누구보다 먼저 다가오며 그를 부축했다.
“아윽, 배······ 배가······ 끄으으.”
“배가 아프십니까? 지병은 이제 다 나으셨지 않습니까.”
“재, 재발한 것 같······ 아이고오······ 나 죽네.”
꾀병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리가 아프다고 난리를 치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자, 자네가…… 임시대행으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해······ 시급한 일이니 전권을 맡기겠네······ 으으윽.”
이 상황에 임시대행이라니.
이건 자신을 대신해 똥물을 뒤집어쓰라는 지시나 다름없었다.
사이토 나카다는 입술을 짓씹으며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에라이, X노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