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뭐 결론은 정해진 거 아니겠나
후쿠시마 원전이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
타츠오 마사시는 저장탱크 위에 나타난 여덟 마리 물뱀의 형상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건담을 움직인 걸 들었다지만 이런 것도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한 모양이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그쪽 차례잖아요.”
거대 물뱀을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실감나는 연출은 디테일에서 오는 거 아니겠나.
저걸 진짜 재앙으로 여기게 만들려면 주변 상황이 받쳐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나기 전엔 동물들이 먼저 그걸 알아차리고 이상행동을 보인다.
이른바 집단 대이동.
타츠오는 그 집단 대이동처럼 보이도록 동물들에게 무조건 남쪽으로 달리라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라고 말한 것이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은 잘만 쓰면 상당히 유용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구구구구. 퍼드드드득.
곧이어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는 새떼가 날아오르고, 땅 위에는 쥐나 토끼, 개, 멧돼지 등 온갖 종류의 짐승들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고, 도망치라는 의지까지 전달받다보니 생존본능이 폭발한 것이었다.
“이제 좀 느낌이 나네요. 갑시다.”
동물들의 집단이동 뒤로 거대 물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물들은 더 미친 듯이 달렸고, 그 수는 도쿄에 가까워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서훈 씨, 이것 좀 봐요.”
도쿄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실비아가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정부의 상황을 뉴스로 모니터링 하던 중이었다.
-긴급속보입니다. 타츠야마 총리께서 지병인 대장염의 재발로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원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원인이라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당분간 사이토 나카다 부총리께서 임시대행체제로 국정을 이끌어갈 것이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임시국회를 열어 총리대신 지명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습니다.
어이가 없다.
대장염? 이런 상황에 배가 아프다고?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이다.
왜 학교에서도 그런 핑계를 많이 대지 않은가.
조퇴나 양호실에 가려고 말이다.
-부총리께선 이번 사건과 관련해 원전처리수 해양방류를 전면 재검토 할 것이며, 각계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모든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초빙할 것도 없이 의견은 한 가지로 모일 것이다.
왜? 해양방류 지지하는 놈들 몇몇을 본보기로 조져놓았으니까.
게다가 시간도 많지 않다.
후쿠시마에서 도쿄까지는 약 300km.
지금 속도로 보아 적어도 대여섯 시간 안에 도착할 테니 그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돈이냐 목숨이냐.’
뭐 결론은 정해진 거 아니겠나.
***
사이토 나카다 부총리, 대국민사과발표.
해양방류 철회 결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당장 시간도 부족한 데다 모든 전문가들이 철회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를 전면철회 할 것입니다.
처음으로 처리수가 아닌 오염수로 명명된 단어가 일본정부의 입장에서 나왔다.
그 동안 그 단어 하나로도 주변국들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에 현 상황에 대처하는 그들의 태도가 어떠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다만 이 결정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 때문이 아님을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비현실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국정방향이 결정된다면, 이는 곧 정부의 정책기준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라는 시스템은 충분한 근거와 확고한 기준, 그리고 민주적 합의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해양방류 철회를 결정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준비된 연설문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조사결과, 그 동안 도쿄전력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사능 물질 측정결과를 조작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 다수의 방사능 물질이 기존에 보고된 자료와 판이하게 다른 수치임을 확인했으며, 다핵종제거설비 APLS의 배기필터 파손과 고장에 의한 가동중단 등 그간 도쿄전력이 정부를 속이고 자행해온 수많은 부정과 부실관리가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잘못은 도쿄전력에 있고, 정부는 이제 그 사실을 알았다는 말이었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였으나 시민들도 그것이 최선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당장 총리가 배 아프다고 도망간 마당에 임시대행을 맡은 부총리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정부의 감사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도쿄전력의 만행을 제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향후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고, 국민여러분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이토 나카다는 연설문에서 시선을 떼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방류는 전면 철회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뉴스를 바라보던 도쿄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정부에서 해양방류를 철회했으니 이제 신벌이 멈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는 관련 댓글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살았다! 살았어!! ㅠㅠ
-사이토가 도쿄를 살렸다, 진짜!
-타츠야마 총리가 배가 아픈 게 신의 한 수였네.
-그게 신이 그런 거겠냐. 지가 감당하기 싫으니까 배 아프다고 구라치고 토낀 거지.
-어쨌든 그 고집불통 총리가 물러났으니까 우리가 살아남은 거잖아.
-근데 진짜 이제 끝난 걸까? 나 동물들 집단이동 보고 종말이 온 줄 알았는데.
-끝났겠지. 누가 봐도 오염수 해양방류 때문에 물의 신이 노하신 거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방송국 헬리콥터에서 찍는 영상에는 아직 야마타노오로치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왜 아직 변화가 없는 거지?
-게다가 계속 도쿄 쪽으로 내려오고 있잖아.
-뭔데, 뭐가 또 남은 건데?
-설마 다 죽어야 끝나는 건가······
-뭐?
-그렇잖아. 스사노오가 안 나타나니까.
-맞네, 야마타노오로치를 죽이는 건 스사노오였지······
-도망가. 도쿄에 있으면 안 돼!
-X발 어떻게 도망가! 지금 도로에 피난 가는 사람들로 꽉 찼는데! 꼼짝도 안 해!
사람들이 난리를 치는 그때였다.
거대 물뱀이 방향을 틀었고, 방송국 기자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시청자 여러분, 야마타노오로치의 경로가 바뀌었습니다!
헬기는 주변을 맴돌며 경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향이 더욱 남서쪽으로 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송에서는 그 각도를 분석해 경로 상에 있는 시민들의 대피를 경고했고, 사람들은 예상 목적지를 추리기 시작했다.
-도쿄가······ 아닌 것 같은데?
-저쪽으로 가면 어디지?
-시즈오카? 하마마쓰? 대충 그쯤인데.
-가만! 시즈오카면 후지산 아니야?
-후지산! 맞네! 후지산이네!
-아! 후지산의 신인 코노하나사쿠야히메는 물의 신이잖아.
-꽃의 신 아니었어?
-후지산의 분화를 막기 위해 모셔진 물의 신이라는 설도 있어.
-와! 그럼 물의 신이 불러들여서 저기로 가는 거구나.
-그래, 오염수 해양방류가 철회 됐으니까.
-진짜 신벌이네······ 앞으로 세금 많이 나와도 우는 소리 하면 안 되겠다.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후지산과 관련 짓기 시작했고, 기승전신벌로 결론을 내렸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것처럼.
-쩌저적. 쩌적.
야마타노오로치는 그들의 말대로 후지산을 올랐고, 겨울의 혹한과 산 정상의 냉기가 더해져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얼음조각이 된 여덟 개의 뱀 머리는 마치 세상을 주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가······ 딱 지켜보고 있다, 이런 건가?
어느 누리꾼의 글에는 좋아요가 끊이지 않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
CIA일본지부 비밀안가.
그곳에서 CIA국장 앤드류 터너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뉴스를 보았다.
그의 옆에는 한중일 지부장들도 함께 자리해 있었다.
“저것도 그 블랙이라는 초능력자가 한 거 맞지?”
그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묻자 조지 크리크가 답했다.
“그의 능력, 그리고 붙여놓은 요원들의 보고내용으로 보건데 확실합니다. 일본정치인들의 죽음부터 시작해 모든 현장 근처에 그가 있었으니까요.”
사이커스 주변에 배치한 요원들은 감시이기도 했지만 경호이기도 했다.
자신을 노렸던 스컬의 암살자가 그들도 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저런 짓을 한 이유가 뭐지?”
“혐한집회 때의 건담, 그리고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물뱀. 두 가지로 판단하자면 블랙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한국인이라서 집회 때 사람들을 밟아죽이고, 오염수와 관련한 정치인들을 익사시켰다고?”
“그 외에는 달리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지부장으로 일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인들은 민족적 자부심이 굉장했습니다. 단합도 잘 되고, 나라의 위험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기도 잘 하고요.”
그래도 일반인이라 생각하기엔 너무 과한 처사였다.
앤드류는 초능력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그가 두렵게 느껴졌다.
만약 저 힘이 미국을 향한다면 자신들도 지금의 일본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노리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헌데 초능력자 중에 저 친구만 이레귤러인 건 확실한가?”
저런 능력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라면 제어가 불가능한 걸 넘어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앤드류는 과거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초능력자들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초능력자를 찾았다는 보고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지금 화면에 보이는 능력정도라면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고 여겼다.
“사이커스의 실체는 조사 중에 있기 때문에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과의 대화와 관련 정보로 판단컨대 거의 확실하다고 판단됩니다.”
앤드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지 크리크는 사람의 심리와 협상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전문가였기에 그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저런 힘을 가진 자가 몇 명만 있어도 세상을 뒤집기엔 충분하겠지.”
“제 판단으로 블랙은 비록 정신적인 불안요소가 있긴 하지만 다루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미국으로 데려와야 할 인물입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다같이 합의해서 본 브레이커라는 프로젝트를 기안한 거 아닌가.”
앤드류는 탁자 위에 놓인 프로젝트 보고서를 톡톡 두드렸다.
“국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도 자네들 의견에 동의해. 스컬보다는 사이커스라는 자들이 더 구미가 당긴단 말이지.”
“그럼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일단 1단계만 먼저 착수하는 게 좋겠군.”
1단계는 정보수집.
스컬에 대한 사전조사만을 대상으로 했다.
“국장님, 조사가 시작되면 그놈들이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들더라도 은밀히 하면 되지 않겠나.”
“하지만······”
앤드류는 고갯짓으로 뉴스화면을 가리켰다.
“저거 때문이네.”
“……네?”
“보고서대로라면 블랙 한 사람에 대한 견제를 스컬 전체가 하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한 손이 열 손을 감당 못한다고 하지만 저걸 보니 열 손이 아니라 백, 아니 천 개의 손이라도 감당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가 보기에 스컬이 제거된다면 블랙이라는 초능력자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어 전격적인 프로젝트 진행을 지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브루스를 죽인 스컬의 킬러놈은 어떻게 됐나?”
“수배 중인데 행방이 묘연합니다.”
“아직도?”
“죄송합니다. 행동패턴을 분석해보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긴 암살의 프로들이니까. 하지만 반드시 찾아. 내가 보기에 사이커스가 저런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도 스컬에게 쫓기는 건 그들이 지닌 초능력에 이유가 있는 것 같으니까.”
“상성이나 천적 같은 걸까요?”
“그런 걸지도 모르지.”
앤드류의 눈에 블랙은 생화학무기로 보였다.
해독제가 없다면 피아 구분 없이 학살을 일으키는 끔찍한 무기 말이다.
그러니 그를 제어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것이 피지컬 계열의 초능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일단 자네들은 그 킬러놈을 찾아.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위에서는 일본이 보유한 네오 셀을 받아낼 테니까.”
처음부터 그걸 목적으로 미일회담을 준비하긴 했지만, 꼭 얻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