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약간의 위험은 감수하더라도
김재오는 양 무릎에 총을 맞고 깨자마자 정신을 다잡았다.
속은 침착하되 겉으로는 혼이 나간 것처럼 도망치는 행위를 연기했다.
상대를 방심시키기 위해.
괴이한 힘을 쓰는 놈은 정면으로 어찌할 존재가 아니었다.
‘치밀한 새끼······’
하지만 상대는 믿지 않고 불속에 집어넣겠다 위협했다.
이무성이 비교대상이라 하니 지금 자신이 보이는 모습이 이질적이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연기를 했으니 이제 와서 돌이킬 순 없었다.
태도를 바꾸면 그 즉시 죽일지도 모르니.
그런데 그때 살 길이 생겼다.
놈이 브로커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이었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시간을 끌기 위해 알고 있는 정보를 오픈할 수밖에 없었다.
기밀정보유출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지만 말하지 않는다면 당장 죽을 판이었다.
‘어차피 저놈을 죽이면 유출될 것도 아니니까.’
한 번의 방심.
그 한 번만 만들어낸다면 죽일 수 있었다.
일단 필요한 건 무기.
일격에 상대의 숨통을 끊을 무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운이 따랐을까.
놈이 깬 항아리 파편이 오른손 근처에 떨어졌다.
살며시 손안에 넣어보니 날카롭고 거친 면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충분해.’
노리는 건 목의 경동맥.
연약한 목덜미라면 항아리 파편이라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면서 비교적 상세하게 브로커와 청부업자에 대해 말해주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경계심이 옅어질 터. 그때가 기회다.’
하지만 상대는 좀처럼 방심하지 않았다.
놈이 사용하는 이상한 초능력 때문인지 멀찍이 거리를 두기까지 했다.
‘가까이 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어떻게 하면 의심을 사지 않고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자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놈, 능력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구나!’
놈은 능력을 사용할 때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가령 손바닥을 내밀며 인상을 쓰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저 가만히 서서 아무렇지 않게 능력을 쓸 뿐이었다.
어쩌면 행동을 취하면 더 강한 힘을 쓸 수 있는데도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숨기는 것인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상황이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삽자루를 휘두르던 자신이 미끄러지듯 발라당 넘어졌고, 발을 이러저리 휘젓다가 삽을 공중에 던지고,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그러다 바닥에 엎어졌고, 개머리판에 맞아 정신을 잃은 것이 전부였다.
멀리서 볼 땐 슬랩스틱 코미디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깨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였어.’
총을 써서 양 무릎을 박살내고 뒷덜미를 들어 이리저리 움직였다.
제삼자가 보았다면 총을 맞고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가 혼자서 이상한 짓을 하는 걸로 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습관적으로 경계하고 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그런 식으로 자기방어를 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능력을 쓰는 것일까.
떠오르는 것이 있긴 했다.
시선.
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김없이 보이지 않은 힘이 가해졌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시선만 돌리면 능력을 피할 수 있을 테니.
다른 결과를 도출하기엔 정보가 적으니 지금까지 유추한 것에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다리다. 저놈은 절대 가까이 오지 않을 테니까.’
철두철미한 놈이었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 자신의 다리가 박살났더라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만으로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었다.
‘결국 이걸 써야 하는 건가······’
혓바닥으로 오른쪽 어금니를 훑었다.
이물감이 느껴졌다.
청부업자가 되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약을 준비한다.
하나는 독약.
의뢰가 실패하고 사로잡힐 경우 사용하는 것으로 보통 왼쪽 어금니에 심어놓는다.
고통 없이 죽을 수 있기에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 항상 착용하는 약이었다.
지금은 은퇴를 했기에 폐기한 상태였다.
나머지 하나는 각성제.
몰핀, 스테로이드보다 수십 배는 강한 특제품으로 통각을 없애주고, 평소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주는 약이었다.
문제는 효과가 뛰어난 만큼 사용 후 몇 배로 강한 통증이 찾아오는 후유증이 있었다.
어떤 이는 그 후유증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로.
이 약은 아직 오른쪽 어금니 안에 보관 중이었다.
‘질문이 끝나면 분명 날 죽일 거야.’
김재오는 결정을 내렸다.
후유증이든 뭐든 나중 일이고 일단 사는 게 먼저였으니.
들키지 않게 오른쪽 어금니를 깨물었다.
목덜미의 혈관이 꿈틀거리며 즉효성 약효가 순식간에 퍼졌다.
다리에서 느껴지던 격통 역시 신기할 정도로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그 브로커 놈들 조직이름이 뭐지?”
놈의 대답에 김재오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조금만 가까이 와주십시오.”
첫 번째 미끼.
가까이오지 않을 걸 알고도 던졌다.
그래야 진짜 노리는 걸 눈치 채지 못할 테니.
“무슨 수작이지?”
역시나 놈은 끔찍할 정도로 철저하게 거리를 두었다.
“이 다리로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다리를 강조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도 방심이라는 걸 모르는 놈이라니.
김재오는 상대가 업자가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당할 수밖에 없을 거다.’
자기방어를 역이용하는 것이니.
놈도 사람이라면 안 당할 수 없었다.
“저는 다만 공방건물에서 뒷마당 쪽으로 CCTV가 있어서……”
가까이 와달라는 이유와는 하등 상관없는 말이다.
하지만 놈에게는 CCTV라는 말이 똑똑히 들렸을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타앗!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며 놈에게 쇄도했다.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쥔 항아리 파편이 쉬익 소리를 내며 휘둘러졌다.
“……!!”
그런데 30센치.
고작 그 정도 거리를 남겨두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은 것처럼.
‘아직 고개를 돌리지 않았는데……어떻게……’
***
나는 공방으로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은퇴했어도 킬러는 킬러군.”
“이익!”
반항하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 다리로 달려들기까지 했다.
사람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하면 없던 힘이 솟아난다고 듣긴 했지만 너무 극적이다.
마치 노린 것처럼 타이밍도 절묘하고.
놈을 바라보자 금방 원인을 알 수 있었다.
푸른 핏줄이 목덜미에서부터 불거진 상태.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약인가?’
고통을 줄여주는 종류라면 그 다리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고, 저 상태도 설명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약을 취할 틈이 없었지만.
‘응? 힘이 점점 강해지잖아.’
놈의 핏줄이 흉측하게 퍼지며 괴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염력으로 놈의 팔을 비틀고 팔꿈치 안쪽을 눌렀다.
-푸욱.
팔이 접히며 흉기가 도리어 놈을 향했다.
내 목숨을 노리던 것으로 도리어 놈의 왼쪽 목덜미를 찌르게 만든 것이었다.
“커흑.”
-주르르륵.
불거진 핏줄 탓일까.
아무리 경동맥이라도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놈의 괴력도 꺼진 불씨처럼 사그라들었다.
“이 괴물새끼······”
입을 여는 놈을 보자 불현듯 스친 생각이 들었다.
영화였을까,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어금니에 독단을 숨겨두는 암살자들 말이다.
“아, 해봐.”
염력으로 입을 벌리고 안쪽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어금니에 깨진 부분이 보였다.
“요즘은 독이 아니라 각성제 같은 걸 넣고 다니나보군.”
왼쪽 어금니도 살펴보니 별다른 흔적이 없었다.
약은 하나인 모양이다.
“혹시 내가 눈으로 염력을 쓴다는 걸 파악하고 시선을 돌리게 만든 건가?”
나로서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흐흐, 역시 내 짐작이 맞았군. 쿨럭······”
짧은 시간에 그걸 파악할 정도라.
이놈만 이런 센스를 가진 걸까 아니면 킬러라면 다 이 정도는 하는 걸까.
새삼 수상함을 느끼고 염력의 ‘연결’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그럼 방금 그 공격은 어떻게 막은 거지? 쿨럭, 분명 고개를 돌린 상태였는데······”
김재오는 이제야 내 질문에 모순을 깨달았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걸 알려줄 거 같나? 그만 뒈져.”
나는 놈을 끌고 가 불속에 던져버렸다.
그대로 두었다가 또 무슨 짓을 해서 내 목숨을 노릴지 알 수가 없으니.
-끄아아악.
이무성과 마찬가지로 비명은 3초를 넘기지 못했다.
나는 놈을 불태우는 불길을 주시하며 생각했다.
‘쉽다고 생각했는데 방심해선 안 될 놈들이네······’
목덜미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죽는 건 내 쪽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더 철저하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CCTV를 확인해보자.’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체크는 해야 한다.
나는 장총도 마저 불속에 던져 넣고 공방으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보이는 방을 찾아 문을 열어보니 정말 CCTV가 있었다.
하지만 그놈이 말한 것처럼 공방 외부를 찍는 게 아니었다.
“저길 왜 찍는 거지?”
CCTV의 화면에는 목욕탕처럼 생긴 공간이 있었다.
샤워를 하는 공간이라면 CCTV가 있는 게 이상한 것이다.
“멀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곳 공방엔 저만한 방이 있을 공간이 없다.
여기가 아니라면 옆에 있는 창고.
건물의 규모로 판단컨대 그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무실을 나와 창고로 향했다.
그곳은 톱, 낫, 드릴 등 여러 가지 도구들과 콤프레셔, 발전기 등의 장비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오른쪽으로 난 복도를 따라가니 문이 있었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어떤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흙바닥이라 스며들었지만 손으로 만져보니 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끼익.
문을 열고 내부를 보자 천장에 있는 스프링클러가 눈에 띄고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유독 락스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서 죽이고 핏자국을 없애려고 락스를 뿌렸구나.’
더 확인할 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대포폰을 꺼내 문자를 작성했다.
이곳을 수습하는 건 양지에 있는 자들이 할 일이었다.
‘수신자는 민성이 형으로 하고.’
이왕 알릴 거, 지인이 건수를 올리면 좋겠지.
***
삼일 후,
바쁘다던 전민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성도예 뒤처리를 어느 정도 끝낸 모양이었다.
“형, 그 동안 왜 그렇게 바빴어요? 연락도 잘 안 되고.”
-말도 마라. 삼일 동안 거의 밤 샜다니까.
“무슨 일 있었어요?”
-전에 내가 얘기했지? 흑룡파 같이 대형조직들은 살인을 하면 시체를 없앤다고. 이번에 익명의 제보로 시체처리소를 찾았거든.
“시체처리소요? 뉴스에는 안 나오던데.”
-아직 대외비거든.
“대외비면 저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내일이면 알게 될 텐데 뭐. 그리고 너한테 말해주는 건 거기서 흑룡파와 관련된 게 하나라도 나오면 진짜 제대로 그놈들 털 수 있을 거라는 걸 알려주려고.
설아누나의 사건은 검찰에 믿고 맡기라는 거구나.
걱정해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근데 부검은 아직 소식 없어요?”
-좀 걸리네. 얼핏 듣기로는 자상만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는데……
“자상 말고 또 뭐가 있대요?”
-확실히 얘기를 안 해줘서 나도 잘 모르겠네. 결과 나오는 대로 연락주기로 했으니까 좀 더 기다려보자.
설마 자상 말고 다른 사인이라도 있는 걸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당장 답을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넘기고 내 용건을 꺼냈다.
“형, 근데 전에 말한 청부업자 있잖아요.”
-청부업자는 왜?
“알아낼 방법이 있으면 해볼 생각 있어요?”
재소자 정보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도움이 필요했다.
약간의 위험은 감수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