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저 지금 눈에 뵈는 거 없습니다
“정신이 들어요?”
눈을 뜨니 실비아가 보였다.
“언제 왔어?”
“조금 전에요. 갑자기 쓰러졌다고 해서 바로 달려왔어요.”
나는 상체를 일으키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두통이 약간이지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술 먹고 뻗었다가 일어난 것 같이 머리가 무겁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물 한 잔 줄래?”
그때 스미스가 탁자에 있던 물병을 집는 게 보였다.
“그냥 던져.”
“네.”
물병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왔다.
그 순간 찌르는 듯한 두통에 내밀었던 손을 다시 이마로 가져갔다.
“크윽.”
-텁.
텁?
실비아가 나 대신 잡은 건가?
그러기엔 잡기 직전이었는데.
“……?”
눈을 떠보니 바닥에서 여의의 일부분이 솟아 올라 있었다.
손 모양으로 변해 물병을 잡은 것이었다.
“또 나왔네, 저거?”
스미스가 여의를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가 기절한 사이 움직였던 모양이다.
‘어? 근데 지금은 깨어있는데도 제멋대로 움직였다고?’
내 의식이 깨어있는 동안엔 능력은 철저하게 의지 아래 컨트롤 된다.
그런데 방금의 움직임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현된 것이다.
‘무의식이 움직인 거구나.’
내 의식이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을 무의식이 커버하는 것이다.
계기는 아마 두려움.
이혜선이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제는 엄마가 날 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무서웠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죽을 것 같이 무서웠다.
-감정을 풍부하게 가지거나 타인에게 공감하려고 해봐요.
이혜선, 아니 엄마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전두엽에 남은 베놈의 효과를 약화시킬 거라고.
그리고 전민성에게서 받은 USB 영상을 보고 각성 비슷한 것을 했고, 능력의 수준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었다.
그런데 역시나 아직 그 베놈이라는 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예상은 했지.’
처음 실비아에게서 사이킥 계열과 피지컬 계열의 차이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버지가 만든 베놈이 내가 가진 네오 셀을 없애고, 사이킥 계열인 염력까지 약화시켰다고 추정했었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아버지는 내 뇌의 조직세포를 대상으로 실험해서 베놈의 효과를 입증했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만약 나중에라도 베놈이 사라진다면 염력도 더 강해지고 피지컬 계열의 능력도 되살아나는 건 아닐까하고.
‘신체적으로 뭔가 바뀐 건 아닌 거 같네.’
피지컬 계열의 초능력은 없다.
변화는 오직 사이킥 능력과 관계된 무의식의 발현.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주변 물체가 날 보호하기 위해 작용하는 능력이었다.
두통이 잦아들자 점차 확신이 들었다.
각성했던 그때처럼 능력에 대해 자연스럽게 깨우치는 현상이었다.
나는 여의가 들고 있던 물병을 받아 한 모금을 마시고 물었다.
“조지, 총 가지고 있죠?”
“네, 총은 왜요?”
“저한테 쏴보세요.”
“……네?”
“괜찮으니까 쏴보라고요.”
실비아와 스미스가 미쳤냐는 표정으로 날 만류했지만 나는 그들을 제쳐두고 다시 말했다.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니까 쏴주세요.”
“……”
“그럼 여기 왼손에 쏴요.”
맞추기 쉽도록 손바닥을 쫙 펴서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권총이 명중률이 낮다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무난히 맞출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눈까지 감았다.
“눈 감아도 막을 수 있는 겁니까?”
“아마도요.”
“아마도? 그럼 확실하지 않다는 거잖습니까.”
“될 것 같은 느낌이라 시험해보는 거예요.”
“그걸 꼭 총으로 해야 합니까?”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 정도는 되어야지.
“그럼 수류탄으로 할까요?”
“휴우, 쏘겠습니다.”
조지는 허리춤에서 글록을 꺼내더니 내 손바닥을 겨누었다.
잠시 후,
-타앙!
총소리와 함께 글록의 총구에서 연기가 새어 나왔다.
나는 감았던 눈을 위로 향하며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역시.’
여의가 물병을 잡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총알을 잡아 챈 것이었다.
위협요소를 무의식이 감지하여 내 몸에 도달하기 전에 제거하는 방식.
일종의 능동방어체계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그러니까…… 아까 기절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능력이 발현된 거죠?”
스미스가 무슨 괴물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뭘 시험한 건지 대번에 눈치 챈 듯 했다.
“그래.”
“허…… 어떻게……”
나는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조지를 바라보았다.
새로 생긴 능력은 확인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갈 때다.
“지부장님.”
“……?”
“부탁 좀 들어주십시오.”
“부탁……이요?”
“이혜선 말입니다. 저한테 중요한 사람 맞습니다.”
엄마라는 걸 안 이상 계획변경이다.
타츠오만 믿을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리스크가 생기더라도 말이다.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해주세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 여자는 국가기밀과 관련되어 수배 중입니다. 규정상 외부인에게 알려줄 수도 없고요.”
“규정상 불가능한 건 아니잖습니까.”
스컬을 찾는 걸 돕는 대신 프랑스로 갔다는 정보를 알려줬으면서 말이다.
“그, 그때는……”
“대신 잠입정보 흘린 거 그냥 넘어가드리겠습니다.”
“네? 그건 다 끝난 일 아니었습니까?”
누구 마음대로 끝내?
“제가 뒤끝이 좀 깁니다.”
“이제 와서 이러는 건 좀 아니잖습니까?”
“그때는 미군 수천 명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었으니까요.”
“……”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는 조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입을 열었다.
“실비아.”
“네?”
“정보 흘리자고 한 제안자가 누군지 읽어봐.”
내 말에 조지는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나온다.
“해밀턴 러스 국방부 장관, 그리고 앤드류 터너 CIA국장이에요.”
조지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나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신 후 나직이 말했다.
“저 지금 눈에 뵈는 거 없습니다. 도와줄 겁니까, 아니면 등을 돌리겠습니까?”
“협박…… 하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 같군요.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도대체 그 여자가 당신의 뭐길래 이러는 겁니까?”
나는 그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나도 알고 싶네요.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인지.”
***
프랑스 보르도, 텔로스 와이너리.
케이시는 메리엄이 돌아왔다는 말에 곧장 그녀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똑, 똑,
노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문이 열었다.
그곳에는 외투와 모자를 걸고 있는 노파, 메리엄이 있었다.
“그레이는 잘 보냈어요?”
케이시의 물음에 메리엄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레이 알렉세이의 장례식이 있던 러시아까지 직접 갔다가 온 것이었다.
퀸시의 대표로서 말이다.
메리엄은 그레이 말고도 목숨을 잃은 조직원들의 장례에 반드시 함께 했고, 위험하다는 만류에도 절대로 빠지는 법이 없었다.
“좋은 곳으로 갔을 게야.”
그때 케이시는 메리엄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았다.
이번에도 만들어 온 것이었다.
그녀는 퀸시의 일원들의 장례가 있을 때마다 그들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이름이 새겨진 반지를 만들곤 했었다.
“그건 그레이를 위한 반지예요?”
검은색의 투박한 반지를 가리키며 그녀가 물었다.
“늙으면 기억력이 안 좋아지니 이렇게라도 잊지 말아야지.”
메리엄은 반지를 한차례 쓰다듬고는 서랍에서 꺼낸 검은상자 속에 넣었다.
그 속에는 여러 개의 검은색 반지가 들어 있었다.
“헌데 무슨 일이니? 곧장 달려온 걸 보면 급한 일인 것 같은데.”
“아참, 내 정신 좀 봐.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일본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마 들으면 놀라실 거예요.”
“일본이면 스미스와 실비아가 거기 있지? 그리고 새로운 네오휴먼이······”
메리엄이 말끝을 흐리며 선뜻 기억을 하지 못했다.
영입 중인 능력자들이었고, 한두 번 이름을 들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서훈과 타츠오 마사시요.”
“아, 그래. 기억나는구나. 네크로맨서, 그리고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맞지?”
“네. 그리고 그 두 사람 외에 새롭게 나타난 일본의 네오휴먼이 있어요.”
“또 있다고?”
“정체를 밝히진 않았지만 그 사람이 네오휴먼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어요.”
케이시는 스미스와 실비아로부터 전해 받은 정보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블랙이라 지칭하는 사이코키네시스의 능력자.
그가 퀸시와 접촉한 후 CIA를 움직였고, 그 결과물이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뭐라고 했니?”
메리엄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되물었다.
“CIA가 스컬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일 거라고요. 저희를 사이커스라는 가상의 단체로 만들어 운신의 폭을 넓힌 것도 그렇고, 블랙이라는 네오휴먼은 심계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 같아요.”
케이시가 상기된 표정으로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CIA가 전격적으로 나섰다는 것에 흥분한 것이었다.
미국의 정보력과 영향력이라면 스컬을 상대하는데 큰 힘이 될 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블랙이라는 사람이 무슨 능력이라고?”
“사이코키네시스요.”
케이시는 메리엄이 왜 저렇게 놀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이코키네시스와 마인드 컨트롤은 사이킥 계열 초능력 중에서도 최상위의 능력으로 분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컬보다 더 중점을 두는 듯한 태도에 약간의 의구심은 지우지 못했다.
“능력의 수준은 어느 정도니?”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거예요.”
케이시는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거······ 조작이나 그런 게 전혀 없는 거니?”
“스미스와 실비아가 직접 봤다고 했어요.”
“이럴 수가……”
“굉장하죠? 이 정도면 분명 코어에 접촉했을 텐데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게 남아 있었나봐요.”
“세상은 넓으니 그럴 수도 있지……”
메리엄은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지금까지의 부드러웠던 눈빛이 아닌 탐욕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저기······ 메리엄?”
“말해, 듣고 있어.”
“대단한 능력자이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스컬이잖아요. 그들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요. 기쁘지 않으세요?”
메리엄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케이시를 바라보았다.
“네 생각에는 CIA가 스컬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니?”
“우리가 돕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CIA가 독자적으로 수집할 정보, 그리고 그간 퀸시가 모은 스컬의 정보.
그것들을 취합하면 막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PMC(민간군사기업)로서 스컬은 그 이름이 들어간 자금과 모든 커넥션이 끊어지고 국제테러조직으로 낙인찍힐 테니까.
“그렇게 판단한다면 한 번 해보렴. 케이시, 너에게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와 관련해 퀸시의 전권을 줄 테니까.”
메리엄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스컬은 가면일 뿐이고, 실체는 유럽의 대부호 라이언 가문이니 말이다.
아무리 CIA라도 그 관계는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고, 파악한다고 해도 섣불리 건드리기 힘들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한 곳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라이언 가문은 아무도 건드려선 안 되지.’
오직 자신만이 그들을 처단할 자격이 있었다.
그렇기에 메리엄은 퀸시의 일원들에게도 라이언 가문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블랙이라는 사람은 퀸시에 들어온 거니?”
케이시는 그녀의 물음에서 어떤 집착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워낙 대단한 능력자니 관심을 가진다고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니요. 스미스의 말로는 자길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대요.”
“그 사람도 상처를 많이 받았나보구나.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걸 보니.”
“그렇겠죠. 그런 능력이면 괴물 취급을 받았을 테니까요.”
메리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축객령을 내렸다.
“블랙이란 네오휴먼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가서 일보렴.”
“혹시 그 사람 만나보실 거예요?”
“그래야 할 것 같구나.”
사이코키네시스.
다른 능력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능력이었다.
“그만 나가주겠니?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구나.”
그녀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죄송해요. 먼 길 다녀오셨는데 제가 너무 눈치가 없었네요. 그럼 쉬세요.”
케이시가 집무실을 나가자 메리엄은 서랍을 열며 아까의 검은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수많은 반지 중에 ‘아이작’이라 적힌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꼈다.
-화악.
그 순간 시야가 확장되었고, 눈에 보이는 모든 배경이 뒤쪽으로 휙휙 지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저 동양인이 블랙이란 사람이구나.’
실비아와 스미스.
두 사람이 어떤 백인, 그리고 동양인과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동양인의 옆에는 액체 같은 물질이 둥둥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