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날 위해 그 기술을 훔쳤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몽생미셸에 도착하기도 전에 메리엄이 내 이동경로를 알아차리다니 말이다.
타츠오가 미리 알려준 덕분에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그가 아니었더라도 알게 될 일이긴 했었다.
렌 역(Rennes Station).
열차의 마지막 종착지에 메리엄의 전언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에게 쪽지를 건넨 건 어떤 부랑자였다.
내용은 만나자는 것이었고 장소만 심플하게 적혀 있었다.
‘만날 수밖에 없겠어.’
엄마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이니 최대한 조심히 움직이려고 했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까지 먹인 탓에 그 노인네에게 섣불리 손을 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면제 같은 종류였는지 그날 이후로 엄마는 대부분의 시간을 쥐 죽은 듯이 자고 있으니 말이다.
‘실비아, 타츠오 씨. 서둘러요.’
두 사람은 퀸시의 본거지로 간다고 했었다.
그러니 그들이 노인네에 대한 정보를 알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메리엄이 지닌 초능력 중 내가 예상치 못한 능력이 있어 혹시라도 놓치게 된다면 엄마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닭모가지 비틀듯 모가지를 꺾어버리고 싶지만 일단 참아야 하는 것이다.
장소는 몽생미셸 수도원 내 대성당이었다.
의외로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디즈니 만화, 라푼젤의 코로나 왕국의 모티브가 된 장소.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이지만 내가 처한 상황 때문인지 마치 감옥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저벅, 저벅.
나는 대성당의 가운데 통로를 걸어갔다.
그리고 메리엄이 앉아 있는 기다란 성당의자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혼자 왔군요. 타츠오 씨는요?”
그녀는 마사예배를 할 때 쓰는 하얀 천을 머리에 두르고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두운 성당을 비추는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돌려보냈습니다. 이젠 쓸모가 없으니까요.”
타츠오에 대해 묻는 걸 보니 여러 사람을 동시에 찾을 순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나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거나.
“호호, 어머니를 찾았으니 쓸모가 없긴 하겠군요. 그런데 혼자 보내도 괜찮겠어요? 파리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서훈 씨 힘을 받은 부작용이 심한 거 같던데.”
“내 알 바 아닙니다.”
“냉정하네요. 일본에서 프랑스까지 함께 와준 동료 아니었어요?”
“동료? 그런 게 필요했다면 퀸시에 들어갔겠죠.”
메리엄은 내 대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점점 더 서훈 씨가 마음에 드는 거 알아요?”
“취향이 고약하시군요.”
“원하는 게 있을 땐 고약해지곤 하죠. 그만큼 가지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거예요.”
그냥 죽일까.
염력을 걸어보니 걸린다.
저 열손가락에 낀 반지가 사자 모양의 반지와 느낌이 비슷해서 설마 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능력저하현상도 없는 것도 그렇고 느낌만 비슷하지 완전히 다른 반지였던 것 같다.
‘염력이 연결된 이상 죽이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어. 조금만 더 참자.’
나는 엄마를 언급하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그래서 엄마에게 접근한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습니까?”
“그래요. 궁금했어요. 서훈 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관계인지.”
“……”
“그리고 만나길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서훈 씨를 참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더군요.”
타츠오의 감시를 통해 메리엄이 나와 이혜선의 관계를 알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여전히 의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는 자식인 나한테도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독심술은 아니야.’
전의 만남, 그리고 지금의 대화.
정황상 그런 능력은 없다.
“근데 내가 아들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호호, 궁금해요?”
“……”
“너무 무섭게 노려보지 말아요. 딱히 비밀도 아니니까.”
메리엄은 자백제를 사용해 스스로 말하게 만들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그때 술에 탄 약이 자백제인 건가?
그럼 엄마는 왜 지금까지 잠들어 있는 걸까.
그것 외에는 다른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그 약에 조금이라도 부작용이 있으면 당신은 내 손에 죽어.”
“너무 걱정말아요. 약한 향정신성 약물이라 부작용 같은 건 없으니까.”
“엄마는 어디 있지?”
“잠자는 숲속의 왕비님이 되어 있어요. 오직 저만이 깨울 수 있고요. 물론 제가 그렇게 할지 어떨지는 왕자님 하기 나름이겠죠?”
그 또한 초능력이라고 한다.
강제로 재우는 능력, 드리밍(Dreaming).
온갖 조잡한 초능력은 다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퀸시에 들어와요. 그리고 나를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해요.”
“나보고······ 당신의 개가 되란 말인가?”
엄마를 인질로 잡고 나를 마음대로 이용하겠다는 건가.
그래, 협박을 한다면 대충 이런 식의 요구일 것이란 예상은 했다.
“호호, 개라는 표현보다는 오른팔이라는 말이 더 맞겠죠.”
“그 오른팔이 당신 모가지를 비틀 수도 있어.”
“나를 위협한다고 해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하더군.”
“잔챙이들만 상대했나보네요.”
메리엄은 기도를 끝내더니 미사포를 내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두술 중에 저주인형이라는 거 들어봤어요?”
“……”
저주랍시고 인형에 못질하는 찌질한 짓을 말하는 건가.
설마 그런 능력도 있단 말이야?
“감각공유라고 초능력 중에도 비슷한 게 있어요. 날 건드리면 케이티도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쉽게 얘기하면 우린 이제 한 몸이라는 말이죠.”
“……”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못 한다.
이미 한 번 엄마의 팔을 사정없이 부러뜨렸던 나다.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 이상 조금의 위해도 가할 수 없다.
‘이 노인네······ 초능력이 도대체 몇 가지나 되는 거지?’
나도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니 이런 능력자가 있을 것이라 짐작은 했었다.
이미 서너 개의 능력이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 노인은 그 범주를 훨씬 넘어선 것 같다.
“호호, 내 초능력이 몇 가지인지 궁금한 눈치군요.”
“……”
“근데 나보다는 우리 서훈 씨의 능력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볼까요?”
메리엄은 실비아와 스미스에게서 내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와 블랙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했고, 그걸 빌미로 내가 그들 앞에서 능력을 사용했던 이력 전부를 들은 것이었다.
“능력의 근원은 코어, 제노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사이코키네시스의 능력자죠. 능력의 크기는 코어에 의한 것인 만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대상은 사물을 넘어 액체와 기체까지 가리지 않고 다룰 수 있다고 들었어요.”
“……”
“혹시 빛이나 소리, 공기 같은 것도 움직일 수 있나요?”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걸 봐서는 안 될 듯 싶다.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지?”
“안 되는 모양이군요. 역시 케이티의 말대로 베놈이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게 맞나봐요.”
그것까지 들은 건가.
약한 향정신성 약물이라더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만한 대상범위, 수준, 능력의 컨트롤. 거기에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사이코키네시스가 발현된다고 들었어요. 그럼 사이코키네시스 상위의 능력, 매터 매니퓰레이션(물질조작)이라는 말인데 입자단위를 다룰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요.”
“……”
그 순간, 아주 희미하지만 처음으로 메리엄의 감정이 전해져왔다.
탐욕? 욕망? 시기심?
미미하기에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런 종류의 음습함이었다.
설마 지금까지 감정이 전해지지 않았던 게 감정을 컨트롤했던 걸까.
그게 맞다면 정말 괴물 같은 노인네가 아닐 수 없었다.
“어때요? 능력을 온전히 되찾고 싶지 않나요?”
“……”
왠지 나보다 저 노인네가 더 찾길 바라는 눈친데 내 착각일까?
“서훈 씨는 참 운이 좋아요.”
“……?”
“훌륭한 부모님을 둔 덕분에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차근차근 성장해올 수 있었으니까요. 만약 어렸을 때부터 매터 매니퓰레이션의 힘을 가지고 자라왔다면 지금까지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너무 강한 능력은 사람을 폭주하게 만들거든요. 그리고 그런 힘이 알려졌다면 노리는 사람이 많았을 거고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타츠오를 통해 능력자가 폭주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으니까.
“케이티가 왜 프랑스로 왔는지 알아요?”
“조세핀 박사를 만나려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그녀를 왜 만나려는 건지 아냐고요.”
“NKC-2200 때문이겠지.”
“그걸로 뭘 하려는지 모르겠어요?”
“……”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사실 그다지 관심도 없다.
나한테 중요했던 건 엄마가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이니까.
“케이티가 프랑스로 온 건 서훈 씨의 머릿속에 있는 베놈을 없앨 수 있는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
메리엄의 말에 따르면 그 백신의 베이스가 되는 것이 NKC-2200이라고 한다.
그 면역세포의 효과인 특정세포의 완전사멸.
엄마는 그 대상을 베놈으로 만들기 위해 조세핀 박사를 만나려고 한 것이었다.
내 전두엽에 이상을 일으키고 있는 베놈.
엄마는 그걸 없애면 내가 살인을 멈출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대화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고, 슬슬 어머니를 뵈러 갈까요?”
메리엄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나가지 않고 성당창가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날 위해 그 기술을 훔쳤었다니.’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 버렸기에 그동안 모른 척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휴우……”
나는 심호흡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
보르도 텔로스 와이너리.
실비아는 타츠오와 함께 그곳에 도착한 후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서 대기했다.
타츠오의 눈에는 멀리 보이는 포도밭과 양조장이 그저 평범하게만 보였다.
“저긴 와인을 만드는 곳이잖아요.”
타츠오의 물음에 실비아가 되물었다.
“그게 왜요? 뭘 상상했던 거예요?”
“아니, 뭐 네오휴먼의 본거지라니까······ 비밀결사 같은 느낌일 거라 생각했죠.”
“비밀결사? 영화를 많이 봤나보네요.”
타츠오는 뜨끔하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저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네오휴먼인가요?”
와이너리에서는 오크통을 옮기는 일꾼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요.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네오휴먼이 아니라고요?”
실비아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퀸시의 전체 인원이 몇이나 될 것 같아요?”
“글쎄요. 그래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초능력자 조직이니까 적어도 이삼백 명은 되지 않습니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조직원들을 전부 모은다고 해도 백 명에 못 미쳐요.”
“그 정도밖에 안 되나요?”
“그나마도 대부분은 제이미처럼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으니 저랑 스미스 같은 실무에서 뛰는 조직원들은 스무 명도 채 안 돼요. 일은 많은데 사람은 적으니 그들도 개인적으로 전부 뿔뿔이 흩어져 있고요.”
점조직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극단적으로 개인플레이였다.
타츠오는 양조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 안에는 지금 네오휴먼이 몇 명 있어요?”
“메리엄이 없으니 두 명이겠네요. 케이시와 라크요.”
“케이시는 텔레파시 능력자고 라크라는 그 사람은 무슨 능력이 있죠?”
“쉐도우 컨트롤이에요.”
실비아는 타츠오에게 자신이 그를 데려온 이유가 라크를 상대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
그는 텔로스 와이너리의 안전을 위해 배치된 퀸시의 전투원이었다.
“네? 저보고 그 사람을 상대하라고요?”
“라크는 텔로스 와이너리를 지키는 문지기 같은 사람이에요. 그가 가지고 있는 열쇠가 아니면 집무실에 못 들어가요.”
“하아······”
“파리에서의 일 때문에 그래요?”
“네, 솔직히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말아요. 라크를 상대하라는 말은 싸우라는 뜻은 아니니까.”
쉐도우 컨트롤.
그림자를 이용하는 능력이다.
그림자 속에 숨을 수도, 그림자를 실체화시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능력이지만, 달리 말하면 그림자가 없이는 초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야간에 양조장의 전력만 차단하면 라크의 능력은 무력화시킬 수 있어요. 그때 제압하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