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늙은이, 넌 이제 뒈졌다
자정이 되자 텔로스 와이너리의 양조장에서 새어나오던 불빛이 일제히 꺼졌다.
소등시간이긴 하지만 복도를 희미하게 밝히는 보행등까지 꺼진 것은 평소와 다른 점이었다.
‘전력실에 문제가 생긴 건가?’
라크는 바닥에서 솟아나듯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림자가 사라진 이상 능력으로 몸을 숨기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시간대가 너무 공교로워.’
마치 소등시간에 맞춘 것 같았다.
그것도 자신의 능력을 염두에 둔 것 같은 현상에 경계심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라크는 조심스럽게 양조장 내부를 순찰하며 전력실로 향했다.
‘스컬은 아닐 텐데······’
케이시의 말에 따르면 CIA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었다.
룩셈부르크의 페이퍼 컴퍼니부터 시작해 양지에 드러난 민간군사기업으로서의 스컬에 제재를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퀸시 역시 합류해 대대적인 스컬 소탕을 진행 중이니 이곳의 존재를 파악하고 공격해올 정신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헛.”
그때 라크는 더 이상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야 했다.
어둠을 틈탄 건지 어느새 뱀들이 자신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면기간에, 그것도 수백 마리라니……’
한두 마리면 모를까 너무 많은 수였다.
게다가 바짝 독이 오른 듯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라크.”
그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익숙한 음성이었다.
“……실비아?”
“네.”
“혹시 이 정전 네가 그런 거야?”
“그래요.”
“이 뱀들도?”
“친구의 도움을 좀 받았어요.”
그녀의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친구라고 말한 사람, 그가 초능력으로 뱀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왜 이러는 거지? 우릴······ 배신한 거야?”
“상황이 좀 복잡해요. 확인 먼저 하고 알려줄게요.”
“확인이라니, 뭘?”
“메리엄의 집무실 열쇠를 넘겨줘요.”
“……”
그곳에는 퀸시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조직의 역사와 조직원들의 정보, 자금내역, 네오휴먼에 대한 자료, 적대세력인 스컬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말이다.
“이러지마, 실비아.”
“제발 순순히 넘겨줘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안에 있는 자료가 어떤 건지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라크는 천천히 오른손을 품속으로 가져갔다.
“그만해요. 저한텐 다 읽혀요.”
“내가 저 뱀들에게 물리면 넌 괜찮을 거 같아? 사이코메트리로 총알의 궤도까지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실비아는 한숨을 쉬며 말을 받았다.
“이 뱀들이 전부일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뭐?”
“파리에서 쥐떼들이 일으킨 사건 알죠? 그것도 여기 이 사람이 한 거예요.”
“설마……”
“네, 케이시를 비롯해서 양조장 내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뱀을 풀어놓았어요.”
“실비아, 너 도대체······”
“열쇠 주세요. 그것만 주면 모두 무사할 거예요.”
라크는 이를 바드득 갈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이상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치리릿.
바닥에 열쇠를 놓자 뱀 한 마리가 그걸 물고 어둠속에 있는 실비아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열쇠를 쥐고 입을 열었다.
“라크, 제발 조금만 기다려줘요. 전부 설명해줄 테니까.”
곧이어 그녀의 인기척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메리엄의 집무실로 향한 것이었다.
‘불만 켜지면 돼. 그때까지만 참자.’
억누르고 있던 생각이 머릿속으로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떠올렸다간 실비아에게 들켰을 것이기에 의도적으로 배신감과 분노만 생각했던 것이었다.
바로 실비아도 모르는 사안.
전력공급이 끊어지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비상전력장치가 자동으로 가동되게끔 되어 있었다.
“이봐, 너.”
“하이(네).”
“영어 못해?”
“스미마셍(죄송합니다)······”
일본인.
게다가 동물을 이용하는 능력자면 최근에 발견된 일본의 네오휴먼이 분명했다.
“타츠오 마사시?”
“하이, 와따시와 타츠오 마사시데스(네, 제가 타츠오 마사시입니다).”
역시 그 사람이 맞았다.
무슨 일로 실비아와 이런 일을 벌인 걸까.
라크는 대화가 통하지 않기에 무작정 천장의 전등만 오매불망 바라보았다.
그림자만 생기면 뱀이 아무리 많아도 문제될 게 없었다.
그 시각 실비아는 메리엄의 집무실에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을 전력으로 개방해 가능한 모든 기억의 편린을 읽어나갔다.
-메리엄 또 출타하려고요?
-파리에 다녀와야겠구나.
-그레이의 장례식에 다녀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최근에 러시아에 갔다 온 모양이었다.
그레이의 시신이 러시아로 인계되었을 테니 장례식이 있었을 것이고, 조직원들의 장례에 꼭 참석하는 메리엄의 행보를 생각하면 특별할 건 없었다.
그렇게 조금 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건 그레이를 위한 반지예요?
러시아에 다녀온 직후의 기억이었다.
장례에 참석하고 또 저 반지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녀는 항상 조직원들이 죽을 때면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저걸 만들었었다.
잠시 후, 케이시가 집무실을 나가고 메리엄이 서랍 속에서 검은 상자를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손가락에 끼는 건 아이작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반지였다.
‘아이작의 반지······ 그러고 보면 파리에서 저 반지들을 열 개나 끼고 있었어.’
만들기만 할 뿐 평소엔 잘 끼지 않는 반지였다.
그런데 제이미의 집에서 만났을 땐 그걸 손가락마다 다 끼고 있으니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더 이상한 모습이 메리엄에게서 보였다.
‘저건······ 설마······’
아이작의 반지를 끼고 멍하니 있는 모습.
초점이 흐려지고 백태가 낀 듯한 특유의 눈동자는 아이작이 리모트 뷰잉을 사용할 때와 판박이였다.
-정말 사이코키네시스구나. 저 능력이 다시 세상에 나오다니. 호호호호.
메리엄의 웃음소리를 듣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실비아는 떨리는 손으로 검은 상자가 있는 서랍을 열었다.
-달칵.
조심스럽게 뚜껑을 연 그녀는 남아 있는 반지 하나하나를 만지며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메리엄이 어떻게 그걸 만들었는지, 그리고 반지에 담게 된 능력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전부 볼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실비아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팔로 책상을 짚었다.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는 서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파앗.
그때 집무실에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비상전력장치가 가동되며 양조장 전체에 불이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했다.
“실비아! 멈춰!”
그 순간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케이시가 나타났다.
그녀의 옆에는 라크가 있었고, 타츠오가 그림자에 꽁꽁 묶인 채 끌려 들어왔다.
“으흐흑, 케이시.”
실비아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 왜 그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흐흐흑.”
“서훈, 그 사람 때문이야?”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한국에 간 이후로 계속 이상한 행동만 하잖아!”
케이시는 그 동안 쌓인 게 폭발한 듯 소리쳤다.
퀸시를 속이고 서훈과 블랙에 대한 정보를 숨긴 것, 그리고 보르도로 돌아와 자숙하라는 메리엄의 지시를 어기고 곧바로 복귀하지 않은 것.
그 모든 행동에 대한 질책이었다.
“메리엄이 다 죽인 거였어.”
실비아는 그녀의 말을 전부 무시한 채 그렇게 대꾸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너 설마 정신이 이상해지기라도 한 거야?”
“그 동안 죽은 동료들, 그게 다 메리엄 때문이었다고. 아이작, 피터, 앤더슨, 핸드릭, 셰인······ 전부 다!”
“……뭐?”
“네오휴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아니, 우리는 그저 퀸시라는 어장에 갇힌 물고기였던 거야. 언제든 필요한 능력을 얻기 위해 양식하는 물고기 말이야!”
그녀는 상자 속에서 핸드릭이라는 이름이 적힌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집어 들었다.
“핸드릭의 능력, 기억해?”
“열사······잖아.”
“그래.”
그 순간 실비아가 쥐고 있던 서류가 불타올랐다.
손에 닿은 물체의 온도를 발화점까지 높이는 능력, 열사였다.
“……!”
케이시와 라크는 눈을 부릅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에게 충격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비아는 몇 개의 반지를 빼고 끼우며 죽은 동료들의 초능력을 보여준 후 입을 열었다.
“이제 알겠어? 우리가 믿고 따랐던 사람이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었는지.”
***
“여기예요.”
메리엄은 손수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라는 듯이 손짓했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새하얀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이혜선의 얼굴.
조금 수척해보이긴 하지만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깨워.”
“그 전에 보여줄 게 있어요.”
메리엄은 백에서 작은 칼을 꺼내더니 자신의 왼손 검지 끝을 살짝 그었다.
그러자 엄마의 왼손 검지에서도 똑같은 상처가 생기더니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봤죠?”
그녀는 밴드를 꺼내더니 자신과 엄마의 손가락에 붙였다.
그리고 이걸 잊지 말라는 듯 검지를 흔들었다.
“내 목을 비틀면 케이티도 똑같이 되는 거예요.”
“……”
내가 모가지를 비틀까봐 두렵긴 했나보다.
직접 저런 식으로 보여주는 걸 보니.
“자, 그럼 깨워줄게요.”
메리엄은 오른손으로 엄마의 이마를 잠시 짚더니 곧바로 손을 떼었다.
행동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엄마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깨어나는 거지?”
“잠든 기간에 따라 달라요. 며칠 동안 잠들어 있었기에 금방 깨어나진 못할 테니 옆에서 얌전히 기다려요.”
나는 한쪽 구석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침대 옆에 앉았다.
“자리를 비켜줄 테니 즐거운 모자상봉이 되도록 해요.”
메리엄은 지그시 웃더니 밖으로 나가주었다.
나는 그녀가 문을 닫을 때까지 엄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특히 왼팔이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다 나은 걸까······’
그때 염력으로 팔을 완전히 으스러뜨렸었다.
비록 회복에 좋은 약을 먹이긴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몰랐다지만 내가 내 손으로 엄마의 팔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
손을 뻗어 엄마의 팔에 가까이 다가갔다 다시 손을 거두었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도저히 수술상처를 볼 자신이 없었다.
“휴우······”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은 채 만지작거리며 기다렸다.
이 정도를 못 기다리나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초조했기 때문이었다.
깨어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말이다.
-서훈 씨, 저예요.
그때 머릿속으로 기다리던 구원투수가 말을 걸어왔다.
텔레파시에 연결되어 있는 타츠오였다.
그가 퀸시의 본거지에서 뭔가 알아낸 모양이었다.
-어떻게 됐어요?
-전부 알아냈습니다. 메리엄의 목적이 뭔지, 그 노인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뭔지 말입니다.
타츠오는 천천히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말해주었다.
그건 하나같이 전부 놀라운 말이었다.
-내 능력을 빼앗는 게 목적이라고요?
-네, 서훈 씨가 아니라 초능력이 목적이었던 겁니다.
순간 느낌이 왔다.
그래서 그때 그런 탐욕을 보였던 것이다.
내가 본래의 능력인 물질조작을 되찾아야 능력을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초능력도 빼앗아서 반지에 담았어요. 그러니까 그 반지, 반지만 빼앗으면 됩니다.
-그럼 능력이 열 개라는 말이에요? 아니지, 자신의 능력까지 열한 개겠네요.
-아니요. 열 개가 맞는 것 같아요. 케이시와 실비아가 확인 중인데 그 노인이 가진 능력들은 전부 과거에 죽은 네오휴먼들의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메리엄은 네오휴먼이 아니라 일반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초능력을 모으는 거고요.
정말 일반인일까?
그 노인네의 감정컨트롤을 생각하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지금까지 확인된 열 개의 능력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과거에 죽은 네오휴먼의 명부와 집무실에 남은 반지를 대조했다고 한다.
그렇게 메리엄이 끼고 있는 반지가 누구의 능력을 담은 건지 확인한 것이었다.
타츠오는 능력의 종류, 발현방식, 쿨타임, 사용횟수 등 구체적으로 정보를 말해주었다.
-타츠오 씨, 고마워요.
-또 알아내는 게 생기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나는 그렇게 텔레파시를 중단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최소한 엄마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알게 되었으니까.
‘늙은이, 넌 이제 뒈졌다.’
드디어 반격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