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시키는 대로만 해요, 시키는 대로만
파리.
추적 끝에 알아낸 건 메리엄이 그곳으로 향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실비아, 그리고 타츠오와 함께 파리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제, 제이미에······ 소피아까지······”
실비아가 떨리는 눈빛으로 입을 가렸다.
케이시에게서 전달받은 소식에 따르면 에너지 드레인의 능력자, 제이미 드레이크가 죽었다고 한다.
원인은 집에 불이 났고, 딸인 소피아도 함께 참변을 당한 것이었다.
“그 늙은이 짓이지?”
예상대로 그 노인네는 잃어버린 능력을 채우기 위해 파리로 왔고 제이미를 먼저 노린 모양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 꼬마 여자아이까지 해치다니.
‘제발 좀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일고여덟 살 정도 되었을까.
엄마를 닮아 주근깨가 가득했던 소피아의 얼굴이 떠오른다.
낯을 가리기에 그저 스쳐지나가듯 잠깐 본 아이지만 죽었다는 말에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요. 확인······하러.”
실비아가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타츠오에게 엄마의 보호를 부탁하고 그녀와 함께 움직였다.
“괜찮아?”
“네, 네.”
네는 무슨.
안색이 파리한 것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보인다.
지난 기억을 읽고 동료들의 죽음을 확인한 것과 현실에서 직접 겪는 건 또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네?”
“너 아니면 그 노인네 찾을 수 있는 사람 없어.”
타츠오가 개를 이용하는 것도 도시에서는 효율적이지 않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몽생미셸과 다르게 여기는 냄새가 너무 많이 나니까.
게다가 내가 전해준 힘이 떨어진 탓에 파리를 뒤질 정도로 쥐떼를 부리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다.
“집중 안 하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 못해. 그 말은 현장을 보고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야.”
“알고 있어요.”
알지만 잘 안 되겠지.
감정이라는 건 그렇게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혹시 네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제이미 씨와 소피아가 그렇게 된 건 네 탓 아니야. 혹시나 네가 메리엄의 능력을 늦게 알아내서 그런 거라고 자책하는 거라면 그러지 마.”
“……네.”
“충분히 잘 했었고, 케이시가 몸을 피하라고 경고도 했잖아. 그걸 듣지 않고 있다가 변을 당한 건 제이미 씨, 자신의 잘못이 더 커.”
나는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후드를 더 깊게 눌러 씌워줬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복수라도 해야지.”
“네, 그래야죠. 메리엄을 잡아야 또 다른 피해자가 안 생길 테니까요.”
잡는 게 아니라 죽여야지, 복수.
여전히 무르다, 물러.
***
제이미의 집은 멀쩡한 게 하나도 남지 않고 새카만 재가 온통 뒤덮여 있는 상태였다.
실비아는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불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모든 걸 뒤덮어버렸기에 기억의 편린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과거 광화문 지하연구실에서 내가 물로 수장시켜 남은 기억을 뒤죽박죽으로 만든 것보다 더 심한 경우였다.
“제이미의 집을 나와서 이쪽으로 갔어요.”
집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추적은 가능했다.
실비아는 복도를 나와 건물을 빠져나간 후, 골목길을 걸으며 메리엄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근데 하나 물어봐도 돼?”
한참동안 같은 방향의 길을 걸으며 많은 집중력이 필요 없게 되자 내가 물었다.
“뭔데요?”
“반지에 능력을 담는 거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미안해요. 그건 알려줄 수가 없어요.”
그녀는 내 손가락에 있는 두 개의 반지.
제노글로시와 드리밍의 능력이 담긴 반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퀸시에 돌려줄까? 딱히 탐나서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야.”
“아니요. 그건 퀸시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서훈 씨가 얻었으니 가져요.”
“정말 괜찮아?”
“그저 초능력이 담긴 물건일 뿐이에요. 능력의 원주인들과 그 반지를 동일시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가져요.”
그럼 나야 땡큐지.
“퀸시에 남은 반지들도 폐기하지 않고 사용할 생각인가보네?”
“그렇긴 한데 꼭 필요한 일이 있지 않고선 자주 쓰지 못할 거예요.”
“……?”
“그 반지, 그냥 막 써도 되는 물건 아니거든요.”
“무슨 말이야?”
“불사의 능력을 가진 메리엄이니까 열 개나 끼고 쓸 수 있는 거예요. 동력원이 수명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이런 젠장, 그런 부작용이 있었구나.
“그래도 서훈 씨는 괜찮을 거예요.”
“……응?”
나는 슬그머니 반지를 빼려다가 손을 멈췄다.
“왜 나는 괜찮다는 거야?”
“사이킥 에너지가 부족할 때 수명, 그러니까 생명에너지를 대신 사용해요. 어지간한 사이킥 능력자는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대량의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그런 거고요.”
“그럼 그 노인네가 그 반지를 계속 쓰면 수명이 다해서 죽을지도 모르겠네?”
“글쎄요. 사람마다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모르잖아요. 메리엄의 노화에 그 반지가 영향을 끼친 건 있겠지만 불사의 능력자가 어느 정도의 수명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죠.”
반지가 사이킥 능력을 얻게 해준 대신 젊음을 가져갔다는 건가.
역시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인가보다.
‘그나저나 방법은 절대 알려주지 않을 모양이네.’
제이미와 소피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약해보였던 아까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녀는 그 방법과 관련해서는 철벽을 치고 나를 대하고 있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공략하면 되겠지.’
급할 거 하나도 없다.
내가 뭐 능력이 부족해서 욕심이 나는 것도 아니고 순수한 호기심일 뿐이니까.
“여기에요.”
생각을 하던 중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파리의 북동쪽에 위치한 19구역.
운하 근처의 창고였다.
“이 사람들······”
그때 실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중동사람들이에요.”
“뭐?”
설마 아니지?
중동이라니까 그놈들이 먼저 떠오른다.
“휴우, 알 키사스 테러범들이에요. 인원은 대량 사오십 명 정도 되고요.”
“……!”
이놈의 노인네는 어떻게 또 그 X새끼들과 이어져 있는 걸까.
하여튼 끼리끼리 논다더니.
“비켜서봐.”
나는 곧바로 눈앞의 철문을 염력으로 밀어붙였다.
-우지직. 텅, 텅텅.
통째로 떨어져나간 철문이 굉음을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만한 소음에도 뛰쳐나오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내 뒤에 바짝 붙어. 절대 떨어지지 말고.”
“네.”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창고로 쓰이는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과거 물류창고로 쓰였는지 한쪽에는 플라스틱 파레트와 분해된 렉, 나무상자가 아무렇게나 놓여있었고, 거주용으로 만들어진 20피트 컨테이너도 보였다.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플로우의 감각에 잡히는 기척이 없었다.
적어도 이 창고 내부에는 쥐새끼 한 마리 없는 게 확실했다.
“떠난 것 같아요.”
실비아가 내 뒤에서 떨어지며 주변을 훑었다.
그때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던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래?”
“제이미의 능력을 노린 이유를 알았어요.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뭔데?”
“에너지 드레인으로 반지의 능력을 테러범들에게 전달하고 있어요.”
“……!”
그러니까 왼손에 낀 반지의 능력.
바인딩, 커터, 배리어, 투명화, 순간이동.
그것들을 그 X새끼들에게 준다고?
“에너지 드레인은 에너지만 전달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반지를 대상으로 쓰면 그런 것도 가능한 모양이에요. 메리엄도 확실히 알고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시험해보는 것 같아요.”
“그런 건 나중에 확인해도 되니까 그 노인네 행방 먼저 확인해봐. ”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상태로 집중을 더 이어갔다.
나는 그녀가 기억의 편린을 읽는 동안 컨테이너 등 보이는 것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헉! 나, 나가야 해요!”
실비아가 눈을 번쩍 뜨더니 나를 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왜 그래?”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요!”
“……뭐?”
“빨리요!”
두려움이 소용돌이치듯 나에게 전해졌다.
진짜 급한 상황인 것이다.
나는 실비아에게 염력을 연결해 곧바로 날아올랐다.
들어온 문으로 나가는 것보다 천장을 뚫고 나가는 게 훨씬 빠르기 때문이었다.
-콰직!
그렇게 밖으로 나간 그때였다.
내가 뚫은 틈새로 새하얀 빛과 이글거리는 불꽃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플로우의 감각 속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며 그 순간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지지지징.
그걸 확인하자마자 무의식이 작동해 여의가 우리를 감싸고 초진동을 가했다.
의식적으로 대응했다면 늦었을 정도로 찰나에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콰콰콰콰쾅!
폭발과 함께 창고전체가 터져나가고 시뻘건 화염이 우리를 덮쳤다.
실비아가 경고하지 않았고 그 안에 그대로 있었다면 아무리 여의가 있었더라도 무사하지 못했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꽈아아아앙!
창고에서는 연쇄폭발이 이어졌고 얼마나 많은 폭탄을 설치해뒀는지 버섯구름이 하늘 높이 솟을 정도였다.
우리는 투명한 빅볼 안에 들어간 것처럼 여의 안에서 이리저리 굴렀다.
후폭풍에 의한 충격이 그만큼 컸던 것이었다.
-풍덩. 쿠르르르.
여의는 운하까지 날아가 물속에 처박혔고, 여기저기 금이 쩍쩍 가있었다.
그 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자 나는 실비아를 한쪽 팔로 안았다.
“큭, 괜찮아?”
“……네.”
“숨 참아.”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바람을 넣자 곧장 여의의 형태를 변형시켜 고깔모양으로 만들었다.
수면 위로 나가지 않고 물속을 이동하기 위해 저항을 줄이는 모양으로 바꾼 것이었다.
-부그르르르.
나는 염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그곳을 벗어났고, 이 정도면 안전하다고 생각해 수면 위로 올라갔다.
“휴우······”
뭍으로 올라와 염력으로 젖은 부분의 물기를 전부 제거했다.
추운 겨울에 이 상태로 돌아다니다간 얼어 죽기 딱 좋기 때문이었다.
“아까 그거 뭐였어? 시한폭탄?”
내 물음에 실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우리가 창고로 들어가고 타이밍을 노려서 기폭장치를 누른 거예요. 서훈 씨 말을 안 듣고 반지의 능력을 전달하는 모습에만 정신이 팔렸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예요.”
제이미를 죽인 건 창고까지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고, 반지의 능력을 사용하는 기억의 편린을 남긴 건 실비아가 폭탄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눈가림을 한 것이었다.
‘기가 차네, 진짜.’
사백 년이나 살아왔고 네오휴먼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걸 알았지만 실비아의 능력을 이렇게 역이용 한다고?
“근데 서훈 씨.”
실비아가 어두운 표정으로 날 불렀다.
“왜 그래?”
“메리엄이 에너지 드레인으로 반지의 능력을 테러범들에게 전달하는 거 있잖아요.”
“그게 왜?”
“만약 반지 하나당 한 명이 아니라 모두에게 능력을 전달할 수 있으면 어쩌죠?”
“……뭐?”
“메리엄의 수명, 그러니까 동력원이 무한하다고 가정하면 여러 명에게 능력을 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그럼 일시적이지만 전투형 사이킥 능력자가 사오십 명이나 된다는 건데.
‘그만한 인원이 바인딩을 걸고, 커터를 날린다면 아무리 여의가 있어도 위험하겠는데……’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다하다 이젠 인해전술이냐.
***
알 키사스의 은거지.
메리엄은 호두크기의 검은색 돌을 반지 모양으로 조각하고 있었다.
그때 카심이 다가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됐나요?”
“실패······했습니다.”
카심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복수를 하고 싶다기에 그럴 수 있게 판을 깔아줬는데 실패를 했어요?”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이번엔 반드시 놈을 죽여보이겠습니다.”
“왜 실패한 건지 설명해봐요. 들어보고 기회를 줄지 말지 결정할 테니까.”
완벽한 계획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곳까지 찾아올 것이라 여겼고, 그곳의 폭약은 그 이상한 액체덩어리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배리어도 뚫릴 정도로 그 양이 충분했으니 말이다.
매복, 그리고 발파.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할 수가 없었다.
“그게······ 기폭장치를 제때 작동시키지 못했습니다.”
“기계적인 결함인가요?”
일부러 조금 늦게 눌렀을 뿐이었다.
그녀가 정해준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에 자체적인 판단을 가미한 것.
그게 실패로 이어진 것이었다.
“천장을 뚫고 날아갈 줄은 몰랐습니다.”
메리엄은 한숨을 쉬었다.
멋대로 행동하다 일을 그르친 것이었으니 기회를 줄 필요는 없었다.
“결함은 당신들이었네요.”
“잠깐······!”
-촤좌좌좍!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심을 비롯해 그의 뒤에 시립해있던 부하들의 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알 키사스의 분파 중 하나인 알 카심은 그렇게 세상에서 지워져버렸다.
메리엄은 조각이 끝난 에너지 드레인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며 말했다.
“라시드. 오마르.”
그녀의 부름에 남은 두 분파의 지휘관들이 창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말 안 듣는 아이는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봤죠? 시키는 대로만 해요, 시키는 대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