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나중에 만나보면 알겠지
합성혈액.
인공적혈구가 대량의 산소를 전신에 공급할 수 있도록 개발된 슈퍼솔져 기술이다.
물속에서 몇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고, 체력을 초인적으로 높여주며 피로회복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이킥 능력에도 효과가 있을까?
이에 대한 물음은 Yes였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사이킥 능력의 바탕인 정신력과 집중력은 체력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고, 뇌는 근육의 서너 배는 될 정도로 많은 산소를 소모하는 기능적 특징이 있으니 말이다.
“어휴우······”
나는 연기력을 최대한 발휘해 세상 꺼질듯 한숨을 내쉬었다.
몇 백 억짜리 수혈을 받는 건데 이 정도 밑밥은 깔아줘야지.
“그 배신자는 앞으로 우리 목숨을 더 집요하게 노릴 겁니다. 어떻게 보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뭐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상당히 쪽팔렸나보다.
어거지로 데려가서 조사한다고 해놓고 범인을 놓쳐버렸으니 말이다.
“뭐든 들어준다는 말입니까?”
-네, 어지간한 요구사항은요······
말끝을 흐리긴.
“실은 관심 있는 게 하나 있긴 합니다.”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코만도 아방가르드 대원들이 시술받은 그 합성혈액, 저도 받았으면 합니다.”
-……
아니나 다를까 침묵이 이어진다.
슈퍼솔져 기술은 군사기밀이니 확답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여보세요?”
-아, 네······ 듣고 있습니다.
“전 또 통화가 끊어진 줄 알았네요. 혹시 안 되는 겁니까?”
-슈퍼솔져와 관련된 건 1급 기밀입니다. 아무래도 타국에 노출되면······
“아시잖습니까, 제가 CIA가 아니라는 걸. 다른 곳에 노출될 일은 없을 겁니다.”
-……
게빌은 또 입을 꾹 닫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싫으시면 좋습니다. CIA를 통해서 정식으로 항의할 테니 양국이 알아서 하십시오. 이만 끊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
-그 노인은 능력을 다 잃었는데 꼭 그걸 받아야겠습니까?
역시 베놈이 효과를 발휘했나보다.
아무렴 누가 만들었는데.
“능력을 다 잃었다고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내 물음에 게빌은 DGSI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저희가 확인했고, 그 노인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도 왜 갑자기 능력이 사라졌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요.
“나 참, 그 말을 믿는 겁니까?”
-거짓말 탐지기도 사용해보고, 자백제를 사용한 최면요법까지 해봤습니다.
“그런 게 통할 인간이면 좋겠네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초능력자들이 모인 우리 조직에 얼마나 다양한 능력자들이 있겠습니까? 전에 화이트가 속마음 읽는 거 보셨죠?”
-네.
“화이트의 능력도 통하지 않는 유일한 대상이 그 노인네란 말입니다. 거짓말 탐지기? 최면? 하, 웃음만 나오는 군요.”
-……
“제가 예상하건데 그자는 테러범의 도움이 아니라 소란이 있는 틈을 타서 자력으로 탈출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이 노쇠한 몸으로 정보기관 안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허……초능력을 조절해서 사라진 척을 한 거군요.
그래, 그렇게 받아들여야지.
“합성혈액 주십시오. 우린 그자가 다시 나타날 때를 대비해서 힘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상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그래야죠. 기다리겠습니다.”
-만약 승인이 나더라도 한 명분만 가능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그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나는 잠시 고민하는 연기를 보인 후 한숨과 함께 그 물음에 답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물론 하나도 아쉽지 않다.
나 혼자만 받아도 되니까.
***
며칠 후,
게빌 호베르는 결국 상부로부터 합성혈액 한 명 분량의 승인을 받아내었다.
대테러연합군과 관련해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그 일이 껄끄러웠던 것이었다.
“신기하네요. 정부에서 CIA요원에게 이걸 시술하라는 결정을 내리다니.”
G3센터의 조세핀 일리나 박사는 나를 보자마자 의외라는 표정을 보였다.
그만큼 엄격하게 관리하던 군사기술을 타국에 유출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했다.
“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아, 프리랜서라는 거? 혹시 앞으로는 프랑스를 위해 일할 건가요?”
“일급기밀입니다.”
나는 지그시 미소지으며 대꾸했다.
그래야 알아서 해석할 테니까.
그녀는 내가 G3센터 내에서 합성혈액 시술을 해줄 대상자로 직접 선택을 한 인물이었다.
엄마와 관련된 일을 생각하면 조세핀 박사는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와서 팔만 걷어요.”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침상처럼 생긴 곳에 누웠다.
옆에는 체외순환기처럼 생긴 기계가 있었고, 불어로 합성혈액이라 적힌 혈액팩이 걸려있었다.
제노글로시가 신기한 게 말만 가능한 게 아닌 읽고 쓰는 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능했다.
“얼마나 걸립니까?”
“4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혈액투석을 하면서 인공적혈구를 블랙 씨의 몸에 주입하는 게 끝이니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마치 헌혈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기계가 기잉기잉하며 작동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입을 열었다.
“박사님, 전에 맡긴 NKC-2200은 어떻게 됐습니까?”
베놈을 제거하는 백신.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테지만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PCR로 배양을 해놨을 테니 원본도 받아야 했고.
“잠깐만요.”
그녀는 자신의 집무실에 다녀와 NCK-2200이 적힌 원본을 되돌려주었다.
“이건 이제 필요 없으니까 CIA에 돌려주도록 해요. 그래야 케이티의 수배가 해제될 테니까요.”
“네.”
“그리고 케이티가 부탁한 백신은 한두 달 내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V-7이 워낙 독특한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터라 쉽지가 않네요.”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급할 거 없다.
게빌에게서 메리엄이 지닌 불사의 능력이 사라졌다는 걸 확인했으니 굳이 물질조작의 힘을 얻을 필요가 없으니까.
“혹시 V-7을 어디서 얻은 건지 들은 게 있나요?”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제가 이래 뵈도 꽤 잘나가는 생명공학자거든요. 그런데 그런 건 처음 봐서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닌 거 같은데. 케이티가 만든 거라고 하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조세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V-7을 만드는데 고생 꽤나 했을 텐데, 그걸 없애는 세포를 만드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참 알 수 없네요, 무슨 생각인지.”
“원래 그런 분이잖습니까.”
“그렇긴 하네요. 케이티는 예전부터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으니.”
이해가 간다.
한국에서의 엄마 모습을 생각하면 이엘바이오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대충 상상이 가니까.
“제가 돌아가는 대로 박사님께 연락을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필요한 데이터를 가지고 계실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고맙죠.”
나는 이엘바이오를 떠올린 김에 그녀에게 물어볼 질문을 입에 올렸다.
“그리고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이엘바이오의 맥 무어 회장에 대한 얘길 좀 듣고 싶어서요.”
정확히는 엄마와 그의 관계였다.
조세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두 사람의 관계요?”
“네, 그분이 말하길 맥 무어 회장에게 신세진 게 많다는 듯이 말씀하시더군요.”
“케이티와 친분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직접 물어봐도 될 텐데……”
“본인 얘기를 하는 분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그녀는 엄마의 성격이 떠올랐는지 풀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로 케이티는 나사에서 일하는 알버트 박사님의 소개로 이엘바이오에 입사했었어요. 당시 맥 무어 회장님께서 직접 채용하셨고, 미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고요.”
“그게 전부입니까?”
특채의 명분은 나사의 박사가 추천을 한 것이고, 미국에서 자리를 잡는데 준 도움?
아버지와 엄마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게다가 엄마 본인도 어린 나이에 나사에서 일을 할 정도로 재원이었다고 하고.
그런 사람이 혼자서 자리를 못 잡았을까?
“추천이 있었다지만 케이티는 속된 말로 스펙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연구를 했었는지 전혀 말이에요. 그런 사람을 채용해주고, 연구에 있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게 신세가 아니고 뭐겠어요?”
나야 회사생활을 해보지 않았으니 스펙이 중요한 건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걸 보니 그런 게 중요하긴 한 모양이다.
“그래도 케이티가 실력이 있었으니 아무도 맥 무어 회장님의 결정에 반대하지 못하기도 했어요. 정말 그런 사람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빠른 속도로 두각을 나타냈으니까요.”
심은희에서 이혜선으로 신분을 바꿨으니 과거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하는 말로 판단컨대 이엘바이오의 직원들은 엄마의 진짜 신분을 모르지만, 맥 무어 회장은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이 들었다.
아무리 나사의 박사가 추천했어도 엄마의 배경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중에 만나보면 알겠지.’
메리엄의 일이 마무리 되면 그녀에게서 추출한 네오 셀은 내가 직접 맥 무어에게 전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니 그때 그의 속내가 뭐였는지 알아내면 될 일인 것이다.
***
프랑스 동북부 콩피에뉴.
과거 라이언 가문이 룩셈부르크로 옮겨가기 이전에 사용했던 고성이 있는 지역이다.
메리엄은 바로 그곳에 개인적으로 은거지를 마련해두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살았던 장소를 눈앞에 두고, 보란 듯이 자신이 준비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흘러버린 시간 속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지만 말이다.
-덜컹.
고택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부에는 건물의 외견과 어울리지 않는 최첨단 장비들이 즐비해 있었다.
슈퍼컴퓨터와 전자설비, 그리고 실험에 쓰이는 플라스크와 시험관.
누가 봐도 연구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정돈된 곳이었다.
-보글보글.
한쪽에 놓인 초대형 시험관에는 녹색의 액체가 가득했고, 발가벗은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시체였다.
그 몸은 온전한 것이 아닌 피부가 벗겨져 있고, 근육과 골격도 완전한 형상이 아닌 만들어지다 만 듯 기괴한 모습이었다.
-삑, 삑삑, 삑.
그녀는 시험관을 지나쳐 보안장치까지 설치된 세포배양기에 코드를 입력 후 문을 열었다.
그 속에는 Neo-X라고 적힌 세 개의 금속튜브가 있었고, 투명한 부분을 통해 내용물이 녹색의 액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완성됐구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하고 수식을 만들고, 배양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아이작이 모은 데이터 중 열쇠가 되는 자료가 있었기에 완성에 이른 것이었다.
그녀는 Neo-X를 손에 쥐고 창문 밖, 저 멀리 보이는 고성을 보며 생각했다.
‘보이세요? 만약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이건 당신들의 몫이 되었을 거예요.’
오랫동안 준비해온 두 가지 계획.
그 중 하나이자 진행이 더뎠던 걸 드디어 완성 시킨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으로 아세요. 나와 당신들의 후손과의 악연은 이것으로 끝이니까.’
메리엄은 입술을 깨물며 분을 삭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빠르게 진행이 되었었고 Neo-X의 완성 전에 마무리를 지을 것이라 생각했던 계획은 Neo-X의 완성 직전에 어그러져버렸다.
라이언 가(家) 제거계획.
그 동안은 그들에게 스컬이라는 초인적인 암살자들과 이그노얼과 디버프의 능력이 결합된 반지가 있기에 어쩌지 못하고 있던 상황.
그때 매터 매니퓰레이션이라는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서훈이 나타났고, 그 힘이라면 스컬과 라이언 가문 모두 한낱 먼지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능력에 대한 탐욕 때문에 오히려 불사의 능력까지 잃었으니 이제는 라이언 가문에 손을 댈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반지를 만든다 해도 이제는 수명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젠 모든 걸 용서할게요. 그러니 더 이상 나와 라이언 가의 후손들이 얽히지 않게 해주세요.’
메리엄은 멀리 보이는 고성을 바라보며 되뇌인 후 그곳을 나섰다.
그녀의 다음 목적지는 미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