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아, 이러면 너무 깨발랄하려나
블랙.
신원불명의 타겟이 지닌 이름이라고 했다.
특이사항으로는 CIA 지부장 출신의 간부급도 극진히 대우할 정도의 인물.
코드네임 같은 이름과 CIA의 대우로 판단컨대 그의 소속은 국가정보국 혹은 국방부 특수부대였다.
‘그렇다면 슈퍼솔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어.’
베라 킬라인은 타겟을 슈퍼솔져급의 핵심요원이라 예상하고 암살계획을 세웠다.
기습이든 정면승부든 죽이는 건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누가 죽였는지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의뢰인의 조건이었다.
슈퍼솔져를 상대로 근접전투를 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게 될 터.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원거리 저격이었다.
‘슈퍼솔져도 헤드샷을 맞으면 일반인이나 다름없지.’
방탄헬멧 같은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버서커로 근육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도 머리에는 해당되지 않으니까.
타겟이 거주 중인 장소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안전하게 1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포인트를 잡은 그녀는 준비한 저격용 라이플 GM6 LynX을 조립한 뒤 조준경에 눈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타겟의 방에 있는 남자를 확인한 후 조준점에 맞추었다.
“타겟 제거에 들어간다. 모두 준비해.”
오른손으로 인이어를 터치하며 지시를 내리니 곧바로 답신이 왔다.
-네, 전원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휘하의 경호대 중 고르고 고른 부하들로 물건의 회수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녀는 호흡을 고르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진득하게 타이밍을 가늠했다.
타겟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소파에 앉아 한참동안 미동도 하지 않는 상황.
베라 킬라인은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슛!’
순간적인 집중력과 함께 일어난 플로우의 감각.
시간이 느려지고, 방아쇠가 당겨짐과 함께 총구에서 터지는 포화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총알이 호텔유리창을 뚫고 타겟의 머리에 도달하는 것까지 확인 후 조준경에서 눈을 뗐다.
“제거완료, 작전개시.”
인이어로 지시를 내린 그녀는 곧바로 라이플의 분해를 시작했다.
그렇게 가방에 넣고 막 일어나는 그때였다.
-흠칫.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과 함께 베라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그 순간 어둠속에서 훅하고 떨어져 내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달빛이 가려져 있기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다.
미국의 슈퍼솔져들은 제트팩이나 윙슈트를 이용해 비행을 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기계가 아닌 공중을 부유하는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설마······ 네오휴먼인가······’
스컬은 헌터가 아닌 킬러에겐 네오휴먼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지만 그녀는 예외였다.
경호원인 동시에 로드의 측근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상대가 한 발 다가오며 달빛에 얼굴을 드러내었다.
“……!”
그 순간 그녀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에 총알을 박아 넣었던 타겟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맞았었는데.’
피를 뿌리는 것까지 보진 못했지만 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녀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고, 대략적인 상대의 능력을 예상했다.
‘스피드 계열인가?’
총알을 피할 정도의 반사신경, 그리고 1km 밖에서 여기까지 순식간에 당도할 정도의 속도를 근거로 내린 판단이었다.
그만한 속도를 낼 수 있는 다리힘이라면 방금 전의 점프와 착지도 설명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혼자야?”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대뜸 물었다.
마치 네깟 것들 주제에 혼자 왔느냐는 듯한 어조.
베라는 미간을 좁히며 라이플이 든 가방을 내려놓았다.
“조금 빠르다고 세상이 다 만만한가보군.”
분명 대단한 능력이긴 했다.
상대적으로 느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모두가 슬로우 모션으로 보일 테니까.
속도의 강점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빨라? 누가? 내가?”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베라는 코웃음을 쳤다.
네오휴먼들은 어떻게든 능력을 숨긴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너만 있는 게 아니야. 우리 인간들도 근거리에서만큼은 얼마든지 빨라질 수 있으니까.”
“우리 인간들? 너 설마······”
베라 킬라인은 그 말이 끝나기 전에 히스테리칼 스트랭스를 끌어올렸다.
체력, 근력, 민첩성, 반사신경 등 신체의 최대한계까지 잠재력을 상승시키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이 기술은 상세하게 들어가면 분야와 수준이 제각각 달랐다.
어떤 이는 뛰어난 체격을 바탕으로 괴력을 발휘하거나, 또 어떤 이는 속도를 극한으로 다듬는 등 저마다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장점을 발전시키기 때문이었다.
-쉭.
그녀의 장점은 압도적인 스피드.
킬러들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라 평가받는 것은 그 속도에 기반한 움직임에 반응하려면 최소한 플로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죽어.”
잔상과 함께 타겟의 뒤에 나타난 베라는 트렌치 나이프로 목을 노렸다.
하지만 상대 역시 잔상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진 이후였다.
‘내 감각에도 잡히지 않는다고?!’
그녀의 플로우는 총알까지 볼 수 있을 정도 깊은 몰입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그저 사라져버린 움직임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빨라봤자 순간이동보다는 못하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라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갈기갈기 찢겨 죽을 것이라는 위험신호가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트렌치 나이프라······ 네년도 해골바가지였군.”
“넌 누구냐? 퀸시의 능력자인가?”
“흠, 모르고 있는 걸 보니 의뢰를 받고 왔나보네. 누가 보냈지? 맥 무어인가?”
“……!”
“흐흐, 내 그럴 줄 알았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반응.
그렇다면 상대는 누군가가 맥 무어의 지시를 받고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적은 자신의 등 뒤를 간단히 점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가진 네오휴먼.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곳을 벗어날 순 없었다.
베라는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온몸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플로우와 히스테리칼 스트랭스를 뛰어넘는 힘, 버서커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어.’
냉각슈트 없이는 신체과열이라는 버서커의 부작용을 상쇄할 수 없었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려면 사용시간을 줄이고 물속에 뛰어들어 체온을 낮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랜드하얏트는 바다를 낀 장소.
그녀가 버서커를 사용하는 최소한의 이유였다.
***
‘이것 봐라?’
그녀는 등 뒤를 잡힌 상태에서도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상황, 그리고 플로우의 감각 덕분에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뚝, 뚜둑.
미세하지만 전신의 근육을 응축시키는 듯한 소리.
뒷모습만 보이지만 내 눈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그놈과 비슷한데······’
해골가면.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게 딱 그러했다.
짐작이지만 이 여자는 스컬의 헌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자모양 반지는 없으니까 이참에 헌터라는 놈들 실력테스트 좀 해볼까.’
경복궁에서 그놈을 상대할 때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원거리에서 요격을 했었다.
발밑의 자유를 빼앗고, 피할 수 없게 만든 다음 액화질소를 퍼부어서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실력을 재단해볼 여유가 없었다.
‘슬슬 준비됐나보네.’
전력질주라도 한 듯 온몸에서 김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칼이 살짝살짝 넘실대는 건 마치 특수효과 이펙트 같았다.
‘온다.’
살갗이 저릿저릿하는 감각과 함께 그녀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이동이 아닌 제자리에서 초고속으로 회전을 한 것.
손에 쥔 나이프는 어느새 내 목덜미의 지척에 와 있었고, 그 사이에 여의가 생성된 상태였다.
-카아앙!
총알에 미치진 못하겠지만 그에 준할 정도의 속도였다.
플로우의 감각으로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궤적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카카카캉! 카카캉!
전후좌우, 사방에서 충돌음이 연신 발생했다.
여의에 의해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연속적으로 주위를 돌며 공세를 이어간 것이었다.
‘이게 초능력도 없는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라고?’
여의를 뚫을 정도의 파괴력은 아니지만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카가가각! 퉁!
한 차례 강하게 부딪혀온 후 그 반동을 이용해 튕겨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녀는 10미터 정도 떨어진 벽에 수평으로 두 다리를 붙인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퍼엉.
벽을 박차고 또 다시 사라진 모습.
나는 그 순간 배리어까지 전개해 몸을 보호했다.
파괴력을 보강하기 위해 도약력을 이용했다는 걸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콰지직! 카앙!
아니나 다를까 여의를 뚫어낸 나이프의 칼날이 배리어에 막힌 채 나를 향하고 있었다.
-부르르. 끼기긱.
잘게 떨리는 칼날은 그녀가 내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말해주는 듯 했다.
도저히 여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완력이었다.
“쓸만하긴 한데······!”
나는 코앞에 있는 그녀에게 질문을 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와 몸에서 발생하는 김과는 다른 현상이 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노화.
처음의 모습과는 확연히 나이든 상태였다.
’10년은 늙어 보이잖아.’
그러고 보면 해골가면도 노인의 얼굴이었다.
정도만 놓고 봤을 때 이 여자보다 더 심했지만 말이다.
‘반지만이 아니라 잠재력을 사용하는 것도 수명을 깎아먹는 모양이네.’
플로우나 히스테리칼 스트랭스가 아닌 다른 종류의 힘.
붉게 달아오른 피부의 상태에서는 잠재력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대신 그 반작용으로 노화가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이게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인가? 피부미용에는 썩 좋아 보이지 않네.”
나는 배리어를 해제하는 동시에 염력을 그녀의 몸에 걸고 짓눌렀다.
이번엔 힘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저 상태에서 유지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었다.
“크으······”
“헌터양, 힘 좀 써봐. 그게 다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상당히 놀라웠다.
버티는 건 물론 내 쪽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 반지가 없어도 완벽하게 힘이 가해지지 않는구나······’
출력을 높일수록 알 수 있었다.
그저 힘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사이킥 능력에 저항이 있는 것처럼 일부 상쇄되고 있다는 걸.
아마도 저 독특한 힘이 가진 특성인 듯 했다.
‘이놈들을 상대할 땐 신체에 염력을 걸고 모가지를 꺾는 것보다는 여의를 이용하는 게 효율적이겠네.’
이번엔 여의를 그녀의 팔과 다리에 모아 족쇄를 채웠다.
그러자 염력의 힘을 온전히 사용해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안전을 확보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헌터들이 청부살인도 하는 모양이지?”
그녀는 내가 네오휴먼인지 모르고 저격을 했었다.
그러니 퀸시에게서 들은 그들의 규율이 바뀐 것인지도 몰랐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헌터에 대해 아는 걸 보면 역시 퀸시……”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쿠지직.
여의의 족쇄를 옥죄자 팔다리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지 표정변화가 전혀 없었다.
‘통각이 없나? 아니면 그조차 제어가 가능한 건가······’
신체는 여전히 붉은 상태.
유지시간도 예상보다 훨씬 긴 것 같았다.
“죽여. 나에게선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럴 것 같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고문도 소용없으니 말이다.
‘실비아가 없으니까 이렇게 불편하네.’
고민하는 것보다 일단 몸을 뒤져보았다.
뭐라도 나올까 싶어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귀에 꽂힌 인이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에 기척이 없어서 혼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공범들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빼서 귀에 착용해보았다.
-베라, 호텔에 타겟이 없습니다.
-그렉, CIA요원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719호로 움직였으니 어서 나오십시오.
-베라, 응답하십시오. 타겟이 총상을 입은 게 맞습니까?
쉴 새 없이 무전이 오고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대화를 통해 그들이 호텔 내부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너 말고 얘기해 줄 사람이 이렇게나 많네.”
나는 그녀의 눈앞에서 변신능력을 사용하며 배시시 웃었다.
“안녕? 난 베라라고 해.”
아, 이러면 너무 깨발랄하려나.
여장은 처음이니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