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사이먼과 헤어진 후,
미하엘은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헌터들에게 개별연락을 돌렸다.
어떤 이는 휴양을, 또 어떤 이는 재야에 은거하거나 네오휴먼을 죽이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등 각자가 다 다른 삶을 살고 있기에 스물한 명이나 되는 인원들을 급하게 집결시키는 건 꽤 까다로웠다.
게다가 다들 프라이드가 있는 만큼 말을 안 듣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제이크와 로드를 죽인 자라는 말로 모두를 설득할 수 있었다.
‘근데 사이먼은 왜 그런 지시를 한 거지?’
그는 모두에게 냉각슈트를 착용하지 말고 일상복을 입으라는 게 전달사항이라고 말했었다.
서훈을 상대로 풀 세팅을 해도 모자를 판에 가장 중요한 장비를 착용하지 말라니.
처음엔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이먼이 알려준 그자의 초능력을 생각해보니 어쩌면 위장과 기습만이 해답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 그놈은 괴물이잖아.’
상대는 그야말로 사상 최악의 네오휴먼.
건물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파워와 디테일한 능력컨트롤을 자랑하는 능력자였다.
그러니 스컬의 헌터 전부가 동원되더라도 희생은 불가피했다.
사이먼은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고, 그걸 위해 냉각슈트를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는 워싱턴에서 가장 유명한 양복점을 찾았다.
전혀 킬러로 보이지 않도록 완벽한 위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매니저의 물음에 그는 한도무제한의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최고급으로 부탁해요.”
“이쪽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미하엘은 그곳에서 정장과 셔츠, 넥타이, 슈케어까지 풀 세팅을 했다.
맞춤은 아니지만 기성복 중엔 가장 고급으로 고른 것들이었다.
그런데 세팅이 끝난 그 순간 사이먼에게서 변경된 집결지의 위치가 날아왔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인한 미하엘은 표정을 팍 구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씨, 산? 산에서 보자고?”
기껏 멋들어지게 차려입었는데 장소가 산속이라니.
이럴 거면 미리 말해주든가라는 불만 섞인 투정이 절로 속에서 튀어나왔다.
“갈아입긴 아까운데······”
그는 쇼윈도에 비친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딱 맞는 명품정장의 스타일은 자신의 마음에 쏙 들었다.
지난 몇 주간 네바다주 사막에서 모래를 씹으며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도저히 이 멋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에이, 이대로 가지 뭐.”
바위를 밟든 나무를 타든 아무리 깊은 산속을 가더라도 스타일이 흐트러질 정도로 자신의 실력이 폐급은 아니었다.
미하엘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신경 쓰며 집결지로 향했다.
덕분에 이동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조금 늦겠는걸?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손목시계를 확인한 미하엘은 더딘 걸음 탓에 지각을 면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이상 속도를 높이다간 땀이 날 테고, 그럼 스타일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탁, 타탁.
플로우까지 써가며 구두에 흙이 묻지 않도록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던 그의 시야에 드디어 집결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고 숙영지로도 그만인 장소였다.
그런데 근처에 도달했을 때 플로우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인기척과 함께 희미하지만 혼잣말 같은 말소리도 들려온 것이었다.
‘설마 꼬리가 붙은 건가?’
탈취한 슈퍼솔져가 미국의 정보기관에게 쫓기고 있기에 추적자라는 생각이 대번에 들었다.
‘잡을까?’
스타일은 좀 구기겠지만 정보기관의 요원 따위는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가까이 다가간 미하엘.
그는 상대를 확인한 순간 얼음이라도 된 듯 움직임을 멈추고 기척을 감췄다.
‘서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가 자세를 낮추고 집결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민에 빠진 듯 생각에 집중한 걸 보니 자신이 다가온 걸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기습해? 말아?’
더 다가가면 십중팔구 들킬 것이다.
하지만 이 거리에서 할 수 있는 건 저격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훈은 뛰어난 저격수를 벌써 둘이나 처리한 경험이 있는 상황.
혼자선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동료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해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붙잡고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이익!
신호가 나자마자 집결지에서 헌터들, 그리고 슈퍼솔져들에게서 분주한 움직임이 일었다.
***
찢어지는 휘파람 소리.
나는 그것이 신호라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연결해놓은 염력을 사용했다.
먼저 심리적으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슈퍼솔져들의 움직임을 구속한 후 목을 죄어 호흡을 틀어막았다.
헌터들을 상대하기 전에 모조리 기절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방가르드처럼 합성혈액이 아닌 게 다행이야.’
몇 시간이고 숨을 참을 수 있는 그들이었다면 오히려 더 껄끄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스페셜원의 신체에 적용된 슈퍼솔져 기술은 대단하긴 하지만 그런 장점은 없었다.
‘하나, 둘, 셋······ 삼백. 좋아, 다 쓰러졌어.’
삼분 가량이 지나자 픽픽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고, 이윽고 모든 슈퍼솔져들이 정신을 잃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사이 헌터들에게 포위당해버렸지만 말이다.
‘두 번째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 나쁘네.’
놈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사자의 반지 때문에 탈력감이 곧바로 찾아들었다.
헌터들에게도 미리 염력을 연결해놓긴 했지만 이 힘으로는 닭모가지도 제대로 비틀 수 없을 것 같았다.
“서, 서훈······”
그때 잭이라는 헌터에게 업혀 온 사이먼이 내려오며 내 이름을 불렀다.
“네가 사이먼이지?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얘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바로 제노글로시의 능력이 유지가 되는 건지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이 정도 거리는 괜찮은 것 같네.’
사자의 반지 때문에 염력에 이어 반지의 능력까지 약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테스트 결과, 이 거리에서 반지는 문제없이 기능하고 있었다.
“저, 저는 항상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경고를 해도 들어먹지를 않네. 내가 귀찮게 하지 말라고 분명 말했는데 말이야.”
다음으로 지금 상황에서 핵심이 되는 반지의 능력을 사용해보았다.
워낙 별거 아닌 능력이라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약간 흐릿하네······’
아직은 괜찮지만 더 가까이 다가오면 무용지물이 될 거 같다.
“로, 로드와 베라를 당신이 죽였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
“다, 당신이 블랙이라는 것도, 그리고 CIA에게 거짓정보를 흘려 스컬을 제거하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이먼이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그때, 주변을 포위한 헌터들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도 버서커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게 왜? 너희들도 네오휴먼들을 죽이려고 하잖아. 죽이려고 하면 죽임을 당할 각오도 해야지.”
그래봤자 준비는 내가 더 빠를 것이다.
난 거의 끝마쳤으니까.
“다, 당연히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 이건 따지는 게 아니라 확인입니다.”
“무슨 확인?”
“서, 서훈. 당신이 우리 모두의 원수라는 확인말입니다.”
“킬러집단 주제에 복수를 하고 싶다는 거야? 너희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나는 이죽거리며 능력을 발동할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닭모가지 비틀 힘이 없어도, 이쑤시개 들어 올릴 정도의 힘만으로도 여기 있는 놈들을 즉사시킬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내가 대신 해주려고, 그 복수.”
“지, 지금 이 상황에서······”
사이먼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헌터들이 눈과 귀, 그리고 코와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며 동시에 허물어졌다.
두 발로 서있는 사람은 반지를 지니고 있는 잭이라는 헌터, 그리고 사이먼뿐이었다.
“이 상황이 뭐?”
나는 지금의 상황이 내가 저지른 결과라는 걸 보여주듯 씨익 웃었다.
“어, 어, 어떻게······”
“기억 안 나? 한국에서 해골가면 놈과 싸웠을 때도 난 능력을 썼었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분명 야, 약해진다는 분석이 나왔었는데 어떻게······”
“그래, 약화됐었지. 지금도 그렇고.”
나는 오른손에 낀 반지를 의식했다.
투시의 능력이 담긴 반지였다.
사물을 꿰뚫어볼 수 있는 초능력 말이다.
“근데 아무리 약해도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뇌를 헤집고, 경추와 경동맥을 끊고, 심장과 폐에 구멍 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잖아?”
아무리 쓸모없고 약한 능력이라도 조합하기 나름.
메리엄이 불사의 능력에 감각공유를 사용하면 그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것처럼 염력에 있어 최고의 조합은 투시력이다.
버서커든 뭐든 장기는 단련할 수 없으니까.
“사이먼, 제 뒤로 물러나십시오.”
잭이라는 헌터가 나서며 사이먼의 앞을 막아섰다.
“재, 잭.”
“제가 시간을 끌 동안 도망가세요.”
“아, 안 됩니다. 그, 그리고 도망가봤자 소용없을 겁니다.”
나는 그들의 말에 싸늘하게 말했다.
“도망갈 수 있을 것 같나? 내 눈에 띈 이상 너희들은 죽어.”
“과연 그럴까요? 이거 때문에 아까처럼은 못할 텐데. 그래서 우리 둘을 죽이지 못한 거잖습니까.”
잭은 손을 들어 올려 사자의 반지를 보여주었다.
“그 손모가지 자르면 되겠지.”
“쉽진 않을 겁니다.”
그 순간 그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고, 아지랑이 같은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베라 킬라인과 같은 현상.
버서커가 발동된 것이었다.
“그, 그만하십시오. 제, 제가 막을 테니 잭은 도망가십시오. 저, 전 벗어날 수 없어도 잭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사이먼은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들고 잭의 앞을 막아서며 말을 이었다.
“서, 서훈이 동료들을 죽이고 곧바로 벗어나지 않는 건 대비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제, 제이크도 그랬습니다. 사, 사자의 반지가 있어도 혼자선 무립니다.”
아니, 대비한 건 없다.
너무 갑작스럽게 들켜버렸기에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내 의연한 모습에 사이먼은 그런 착각을 하는 것이었다.
“사이먼, 저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닙니다. 알잖아요.”
무슨 소리일까,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 안됩니다. 제, 제 눈앞에서 또 다시 당신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
“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똑같은 사람이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뭔 소린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인데 똑같은 사람이라니.
서번트 증후군이라 천재적인 해킹실력 말고는 다소 모자라다는 걸 알고 있지만 문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훈 씨!
으와 씨, 깜짝이야.
얘는 오늘따라 중요한 순간에 계속 끼어드네.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해.
-급한 일이라니까요. 라크가 그러는데 지금 메리엄이 이엘바이오에 있다고 해요!
-……뭐?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연결해놓은 염력을 느껴보았다.
너무 멀리 있기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의 서부가 아니라 중부 정도였다.
-샌디에고가 아닌 것 같은데?
-본사가 아니라 일리노이주에 있는 지사예요.
-지사?
-알아보니 냉동인간 보존탱크를 관리하는 곳이었어요.
설마 Neo-X로 냉동되어 있는 사람을 살리려고 했던 걸까?
그렇다면 불사의 능력을 부여한다는 내 가정은 틀린 것이란 말이 된다.
괜히 그것과 관련해 아버지를 떠올려서 마음만 심란해졌던 것이었다.
-그곳에서 맥 무어 회장을 만나는 중이에요.
맥 무어를 만나고 있다고?
짜증나는 늙은이들끼리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만나는 걸까.
맥 무어에게 연결된 염력으로 확인해보니 정말 두 노인네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찡.
메리엄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찡.
이어서 맥 무어와의 연결도 끊어져버렸다.
염력의 강제적인 해제.
이런 감각이 의미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케이시, 지금 바로 라크에게 연락해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봐.
-네?
-빨리!
잠시 후, 케이시는 라크와의 짧은 대화내용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파악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앞에 있는 두 사람, 잭과 사이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라크가 전해준 정보가 맞다면 저놈들이 필요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