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뭐야, 아는 사이야?
강북에 종로서가 있다면, 강남엔 강남서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경찰서를 일컫는 말이다.
종로서의 경우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중요기관이 위치해 있기에 규모가 커질 수 있었다면, 강남서는 지역에 돈이 몰리면서 그에 비례해 공권력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욕망의 집합체인 돈이 모이면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강남서의 꽃을 꼽자면 바로 강력계였다.
“계장님, 듣고 계세요?”
강력1팀 팀장, 민정학이 브리핑을 하다 말고 물었다.
평소와 달리 팀장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관, 박인섭 계장 때문이었다.
“어? 어, 민팀장. 어디까지 했지?”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해.”
“네.”
민정학은 빔프로젝트의 리모컨을 눌러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곳에는 사망한 최칠상의 사건현장이 있었다.
“보시다시피 강신재의 오른팔인 최칠상 역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걸로 장권일, 신중원, 그리고 최칠상까지. 연이은 흑룡파 조직원 사망사건은 연쇄살인이 아닐까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이어 화면이 전환되며 한설아의 프로필이 띄워졌다.
“아시겠지만 2주 전 죽은 화류계 종사자, 한설아 씨의 살해용의자는 김천수의 보복살인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이 같은 정황으로 추측컨대 오현조 측의 작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피해가 강신재 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네. 검찰 쪽에서 입수한 무성도예에 대한 정보도 그렇습니다. 흑룡파의 자금이 흘러들어간 걸로 예상되는 시체처리소가 드러난 건 오현조 보다는 강신재에게 더 불리하니까요.”
“지금으로선 가장 유력한 시나리온데······”
박인섭은 손으로 깍지를 끼고 턱을 괴었다.
‘그래도 결과가 너무 편중되어 있어. 정말 오현조일까?’
관할 내 요주의 인물 중 한 명이었기에 강신재와 오현조의 성향에 대해서는 꿰고 있었다.
이번 사건이 정말 살인사건이라면 오히려 강신재의 방식에 더 가까웠다.
“차팀장.”
그의 부름에 강력 2팀 차동욱 팀장이 답했다.
“네.”
“한설아 씨 주변탐문 어떻게 됐어? 김천수가 움직인 정황은 정말 없었어?”
“없었습니다. 계장님, 제 생각에는 김천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놈, 조사받을 때 자기가 진작에 죽였어야 했는데 아끼다가 똥 됐다고 말하더라고요.”
“미X 새끼.”
한설아 살인사건을 접했을 때 박인섭은 떠올릴 수 있었다.
십오 년 전, 자신이 맡았던 미소고아원 사건을.
그때 박인섭의 기억에 김천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처음 사건기록을 보고받았을 때 그가 바로 떠올랐던 것이었다.
“한설아 씨 부검결과는 언제 나온데?”
“내일이면 나온다고 국과수에 확인했습니다.”
“차팀장, 내일 나랑 같이 가자고.”
“계장님께서 직접 가시려고요?”
“인연이 있잖냐. 휴우……”
박인섭은 후회가 되었다.
그때 선배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획적인 살인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한설아는 5년 이상의 형을 받고 김천수의 뇌리에서 잊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발적인 살인에 학대라는 사유로 인한 감형까지 받아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은 것이 문제였다.
김천수가 복수라는 감정을 잊는데 2년 6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결국 놈은 그녀가 출소한 후 화류계로 끌어들이고 착취를 일삼았으니 그녀를 딱하게 여겨 정을 개입한 게 오히려 독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박인섭은 팀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팀장.”
“네.”
“지금 나온 게 전부 자살, 사고사, 돌연사라며? 일단 타살증거부터 확보하고 다시 보고해.”
“알겠습니다.”
“차팀장.”
“예.”
“오현조가 수작부린 정황이 있어도 김천수, 그 새끼는 팔 수 있을 때까지 다 파. 그놈이 운영하는 사업체, 재산, 전부 다.”
“넵.”
“3팀은 오현조, 4팀은 강신재에게 붙고 5팀은 다른 팀 지원조로 서에서 대기해. 따로 질문 있어?”
“없습니다.”
“애들 정신 바짝 차리라고 해. 진짜 흑룡파에서 파벌싸움 시작한 거면 한두 명 피 보는 걸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그가 낮고 무거운 어조로 말하자 팀장들은 바짝 긴장했다.
“알겠습니다!”
“회의 이만 끝내고, 차팀장은 거기 한설아 씨 관련 자료 두고 나가.”
모든 팀장들이 회의실을 나가자 박인섭은 자료를 펼쳤다.
정확히는 죽은 한설아를 최초 발견한 신고자와 연고자에 대한 진술서였다.
브리핑에서 들었지만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염석훈······ 개명 전의 이름이 염병한.’
워낙 특이한 이름이기에 기억에 있다.
게다가 십오 년 전 살인사건 현장에 있었던 아이였기에 더욱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원장에 이어 이번엔 한설아의 살인사건 현장이라니. 우연인가? 아니면 단순히 한설아 씨와 친분이 깊어서?’
박인섭은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형사의 감이라고 해도 좋은, 무언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이었다.
‘최미연, 연고자라는 이 여자도 그래.’
십오 년 만에 만났는데 얼마 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업계 종사자라니 그럴 수도 있지만 하필 이 시기에 우연히 만났고, 갑자기 살해당했다?
우연이 겹쳤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과관계가 없다고 여길 수도 없었다.
형사는 항상 의심하고 만에 하나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니.
‘한설아 씨,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박인섭은 그녀의 인생이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강신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신중원이 간밤에 죽었다는 얘길 들었는데 아침에 또 한 명이 죽어나갔다고 하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누가 또 죽었다고?”
그의 물음에 손정만이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칠상이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인이 뭔데?”
“호텔에서 자다가 질식사했다고 합니다.”
“질식사? 어떤 놈이 죽인 거야?”
“수면무호흡증에 의한 질식으로 확인했습니다.”
“무슨 X소리야? 하룻밤 사이에 중원이는 수금한 돈을 들고 튀다가 트럭에 받혀 죽고, 칠상이는 코 골고 자다가 뒈졌다고? 너 같으면 그 말을 믿겠냐?! 너 뭐하는 새끼야! 확인 똑바로 안 해?!”
그의 호통에 손정만은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술을 먹은 상태에서 수면제까지 먹고 잔 모양입니다. 그래서 무호흡증으로 숨이 막혀도 못 깨어난 것 같습니다.”
“수면제라니? 칠상이가 그걸 왜 먹어?”
“평소에 불면증이 있어서 처방받았다는 얘기는 했었습니다.”
“하아…… X발, 술 먹었다며? 그럼 잠이 왔을 거 아냐. 왜 또 수면제를 처먹어? 그게 감기약이야? 매일 처먹게?”
“실은 지난밤에 약쟁이들 처리한 것 때문에 애들 중에서도 트라우마 겪는 놈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칠상이도 그래서 수면제를 먹지 않았겠습니까.”
-콰앙!
탁자를 내리친 그는 손정만을 노려보았다.
“됐고! 확실해? 어떤 놈이 죽인 거 아냐?”
“CCTV 전부 확인했습니다. 칠상이가 묵었던 객실에 접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만약 누가 죽인 거라면 CCTV를 부쉈을 텐데 그런 흔적도 없었습니다.”
“아니야, 현조가 한 거야. 그 새끼가 지금 나 엿 먹이는 거라고.”
“형님, 진정하십시오. 증거도 없이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됩니다.”
강신재는 손정만을 흘겨보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후우, 정만아.”
“예, 형님.”
“나, 너 믿어도 되는 거냐?”
“……!”
“그렇잖아. 이젠 의심이 아니라 현조가 나 작업하는 게 분명한데 넌 움직이지 말라고 X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고보니 예전에 현조 그놈이 너한테 자기한테 오라고 꼬시기도 했었지······ 그때 강남에 있는 건물 한 채 준다고 했지, 아마?”
손정만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만 같았다.
몇십 년을 함께한 자신을 의심하다니.
심지어 건물 한 채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이 말해주었고, 술자리에서 두고두고 술안주로 씹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올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참자······ 형님께선 지금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시는 거니까.’
손정만은 더 이상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형님,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오현조, 형님 앞에 끌어다 놓겠습니다.”
“……”
여전히 의심이 사라지지 않은 눈초리였다.
손정만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됐다, 증거도 없는데 무슨 명분으로? 넌 그만 나가서 일보고, 천수 그 녀석 불구속수사 되도록 빨리 처리하기나 해.”
“……예.”
손정만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사무실을 나섰다.
강신재는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내통한 놈이 없으면 이렇게 픽픽 죽어나갈 수가 없겠지. 그것도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내부정보를 관리하는 측근.
게다가 배신을 하더라도 오현조에게 중히 쓰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자.
강신재가 알기에 그런 사람은 손정만이 유일했다.
***
국과수.
정식 명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나는 그곳에 전민성, 최미연과 함께 방문했다.
부검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직접 방문해 확인이 가능한 것은 검사인 전민성이 힘쓴 덕분이었다.
“넌 뭐 하러 왔냐?”
전민성의 타박에 최미연이 쌍심지를 켰다.
“내가 못 올 데 왔어? 언니 부검결과 듣는 건데 뭐 하러 오긴 뭘 뭐 하러 와?”
“나중에 들으면 되지. 귀찮게시리.”
옆에서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귀찮았다.
뭘 저렇게 지지고 볶는지.
“그만 좀 싸우고 들어가요.”
나는 그들을 지나쳐 국과수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야야, 내가 먼저 들어가야지.”
전민성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입구에서 있는 보안직원에게 방문목적과 일행들의 신분을 밝히고, 출입증을 받아왔다.
우리는 그걸로 출입구의 전자카드를 찍고, 공항검색대처럼 금속탐지기 및 소지품 검사를 꼼꼼히 받았다.
“구강시료채취 하겠습니다. 입 벌려 주십시오.”
보안직원이 면봉을 쥐고 다가왔다.
“이걸 왜 해요?”
“국과수에 들어가려면 유전자 채취해야해. 실수로 증거물과 방문자 유전자가 섞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게 있었구나.
하고 다니는 일이 있는지라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협조했다.
시료채취 후 전민성은 검사실이라 적힌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부검결과 받아서 나올 테니까.”
그가 안으로 들어간 후, 나와 최미연은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벅, 저벅.
건장한 체격의 두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국과수 직원이라기엔 뭔가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를 보는 그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듯이.
“여기서 두 분을 뵙는군요.”
나와 최미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아는 사람이냐고 눈짓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누구시죠?”
“아, 김철호 형사는 아시죠?”
“네, 설아누나 사건 담당형사님이신데.”
그때 최초신고자 진술서를 작성할 때 만난 형사다.
명함도 교환했기에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김형사가 제 밑에 있습니다. 강남서 강력 2팀 팀장 차동욱입니다. 이분은 강력계 박인섭 계장님이고요.”
“아, 예. 안녕하세요. 염석훈입니다.”
“최미연이에요.”
인사를 나누고 나자 강력계 계장이란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두 분은 여기 어떻게 오셨습니까? 혹시 부검결과 나온 거 알고 온 건가요?”
“네.”
박인섭은 옆의 팀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차팀장, 어떻게 된 거지?”
“글쎄요. 김형사가 알려주진 않았을 텐데.”
그때 최미연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경찰서에서 들은 거 아니에요. 검찰 쪽에 있는 지인이 알아봐준 거예요.”
“검찰 쪽 지인이요?”
-철컥.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전민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어? 박계장님, 차팀장님. 언제 오셨어요? 혹시 부검서류 확인하려고 직접 오신 거예요?”
그의 물음에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되물었다.
“지인이 전검사님이었습니까?”
뭐야, 아는 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