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28
28화. 난 무조건 너, 그리고 우리 애들 편이야.
“으으음······”
전민성은 메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며 눈을 떴다.
처음엔 왜 이런 곳에서 눈을 뜬 건지 의문도 들고 머리가 멍 했지만 곧 기억을 떠올리고 상체를 벌떡 세웠다.
“그놈!”
“형, 괜찮아요?”
옆에서 들려온 말에 전민성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곳에는 염석훈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말이에요? 형이야말로 왜 여기 쓰러져있었던 거예요?”
“……”
전민성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곧 기절했을 때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염석훈이 죽을 뻔 했던 자신을 구해준 것이라고.
그러니 더 이상 숨기거나 속이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알잖아. 내가 왜 여기 쓰러져있었는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가 날 구해준 거지?”
“……”
“아니라고 하지마. 아니면 그놈이 날 습격하고 그냥 두고 갔을 리가 없으니까.”
“습격이요?”
전민성은 염석훈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식이 시치미는.’
그의 입장이 이해가 가기에 전민성은 더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자. 화장실에서 이러고 있기 민망하네.”
“……네.”
전민성은 앞장서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의 위치를 아는 듯이 행세해 미행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는 의도를 보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신을 습격한 청부업자의 시체가 차에 실려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전민성은 뒤쪽에서 돌아 들어가며 차창 너머 뒷좌석과 트렁크를 곁눈질로 보았다.
‘골프백 뿐인 것 같은데······ 저 안에 있을까? 시체가?’
온전한 상태로는 모르겠지만 토막을 내면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끔찍한 상상을 해보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게다가 기절한 상태로 꽤 시간이 흘렀으니 다른 곳에 버리고 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릉.
시동을 건 염석훈이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한강으로 가자. 이 근처는 단둘이 얘기할만한 곳이 없으니까.”
“네.”
한강변으로 이동한 그들은 비교적 한적한 장소에 주차를 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차에서 내려 담배부터 피웠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전민성이었다.
“아까 그 건물에 그놈이 있었다는 건 박미향이 성형을 하고 얼굴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
“그 병원은 내가 샅샅이 조사해볼게. 그러니까 넌 위험하게 거기 들어가지마.”
전민성은 그렇게 말문을 열고나자 다음 말을 입에 올리기가 한결 쉽다고 느꼈다.
“그리고 대충 알겠지만 나 너 미행했다.”
“접선방법 때문에 그러셨어요?”
“그게 결정적이긴 한데 꼭 그래서만은 아니야.”
“……?”
그는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문자를.
“난 이게 너라고 보는데. 맞지?”
“아니요.”
대답과 함께 보이는 표정은 정말 아니라는 듯이 보였다.
역시 미소고아원 출신이라고 해야 할까.
얼굴만 봐서는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거 알아? 지금 김천수가 속한 흑룡파 깡패새끼들이 줄줄이 죽어나가고 있거든. 경찰에서는 내부에서 일어난 파벌싸움이라고 보고 있는데 난 좀 생각이 달라.”
“……”
“그 모든 시작은 설아누나 죽음 이후에 벌어진 일이거든.”
“형,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형은 설아누나가 죽은 거 때문에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요.”
“아니, 난 냉정해.”
전민성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말하기 시작했다.
“파벌싸움?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그놈들이 그 과정에서 시체처리소를 노출시키고 검사에게 제보까지 한다고? 말이 안 되잖아.”
“우연히 시기가 겹친 거겠죠. 형, 전에 중앙지검에 있었다면서요? 거기서 강남서 형사들이랑 수사를 많이 했으니 형한테 제보가 갔는지도 모르잖아요.”
“아니야!”
전민성은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우연이 겹쳤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깡패들, 사라져버린 무성도예 놈들, 그리고 오늘 날 습격하고 마찬가지로 사라진 청부업자놈. 그 모든 게 정말 우연일까?”
“……”
“이거 보낸 거 너 맞지?”
그는 핸드폰을 들이밀며 재차 물었다.
“익명의 제보자가 너라면 모든 퍼즐이 들어맞아.”
“형, 요즘에 추리소설 보세요? 억측이 심한데요.”
“난 네가 청부업자라고 생각해. 그러면 청부업자들의 접선방법을 알고 있는 이유, 그리고 흔적도 없이 죽거나 사라진 그 새끼들, 오늘 날 습격한 놈을 막아준 것까지 설명이 되니까. 석훈이 너 그놈들 다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킬러지?”
“아니라니까요. 내가 무슨 킬러예요?!”
염석훈은 펄쩍 뛰며 부인했다.
순간 정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런 이유로 날 미행하다니, 참 나······”
“정말 아니야?”
“아니에요.”
“그럼 거긴 왜 갔는데?”
“요즘 이빨이 시큰거려서 진료 좀 받으려고요.”
“강남까지 와서?”
“거기가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염석훈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그만 가요.”
“……”
“어서요.”
그의 재촉에도 전민성은 바닥에 붙인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아직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으니.
“화장실에는 왜 왔었어?”
“볼일 보러 갔죠.”
“박미향 옆에 있었던 놈, 정말 못 봤어?”
결국 염석훈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어조가 튀어나왔다.
“형!”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근데 그걸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널 커버해주지 못한단 말이야!”
“커버라니요? 무슨 커버를 해줘요?”
“너, 내가 검사라서 네가 킬러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거 같아?”
“……?”
전민성은 답답함에 또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짧지만 긴 고요함이 그 사이에 흘렀다.
“십오 년 전에, 우리 참 X같았지. 그치?”
“……”
“원장이 죽었던 날 기억해? 왜 그때 내가 중학교 올라갔다고 그 X새끼가 X나게 팼었잖아.”
“기억해요.”
“그때 네가 여덟 살이고, 내가 열네 살이었어. 근데 그것도 알아? 내가 당시 네 나이 정도일 때 미소고아원에 들어갔다는 거. 거의 오년을 거기서 버텼었어. 넌 몇 년이었냐?”
“삼년…… 아니, 햇수로 그렇고 실제로는 이년이죠.”
“좀 상상이 가? 나 그 오년 동안 얼마나 세상을 증오했는지 몰라. 그 기간 동안 있잖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아원에 왔었어. 봉사니 기부니 하면서 말이야. 그중에는 경찰,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X나게 많이 왔는데 아무도 안 구해주더라. 학대당하는 것도 괴로웠지만 사실 그게 더 괴로웠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거. 후우……”
한숨과 함께 무겁게 새어나온 담배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그는 물결치는 한강을 허무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과거 일을 꺼내는 건 너 동질감 느끼게 만들어서 어떻게 해보려는 거 아니야.”
“……”
“내가 검사가 된 이유가 거기 있거든.”
“무슨 말이에요?”
“검사로서의 정의감? 윤리? 준법정신? X까라 그래. 난 다시는 그런 일 안 당하려고 검사가 된 거니까. 아무도 무시할 수 없고, 잘 먹고, 잘 살고 필요하면 누군가의 빽도 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직업. 나한텐 그게 검사였어.”
전민성은 염석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난 네가 청부업자여도 상관없어. 그때의 우리들은 뭐가 됐든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니까.”
이는 진심이되 진심이 아니었다.
그는 염석훈이 어떻게 살아왔건 과거는 지지하지만, 앞으로는 바뀌길 바랐으니.
깡패나 킬러 같은 죽어도 싼 놈들은 상관없지만, 최소한 돈을 받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석훈아, 지금 당장 대답 안 해도 돼. 재촉하지 않을게. 그냥 이거 하나만 알아줘.”
전민성은 염석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난 무조건 너, 그리고 우리 애들 편이야.”
***
한성글로벌.
중계무역을 주력으로 하는 중소 무역회사로 전 직원이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회사다.
주요업무는 페이퍼 워크.
선적서류와 자금이동의 중간단계로서 기능하기에 회사라고 하지만 창고나 현장도 없이 사무실만 존재하는 곳이었다.
이들 중 진짜 무역업무를 하는 이는 고작 세 명.
나머지는 영업직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청부업계의 브로커로서 암약하고 있었다.
-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며 미모의 여성이 들어왔다.
제이(J)였다.
“케이의 사인이 확인되었다고요?”
그녀의 물음에 ‘대표이사 이한성’이라 적힌 명패 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족들이 경찰서에 가서 확인했어.”
“사인이 뭐죠?”
“사인을 따질 것도 없어. 자살이니까.”
이한성은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머신에서 커피 두 잔을 내렸다.
“앉아, 그러고 있지 말고.”
“엘(L)!”
“귀 안 먹었어.”
“케이의 죽음에 뭔가 있는 거예요?”
그는 곧바로 답하지 않고 커피 한 잔을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제이, 파트너가 그렇게 됐으니 심정은 이해해. 근데 신경 꺼. 이건 충고이기도 하고 명령이기도 해.”
“알아듣게 설명해줘요.”
“타살의 흔적이 없어.”
“그래서요? 이렇게 자살로 덮겠다고요?”
이한성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케이가 누군지 알잖아?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여기서 일하지만 그 ‘스컬’의 일원이었어.”
“알아요, 저도.”
“아니, 모를 걸. 케이의 소지품 중에 나이프가 사라졌어. 그게 뭘 뜻하는지 알아?”
“……?”
제이는 고개를 저었다.
“스컬은 소속킬러들에게 트렌치 나이프를 지급해. 너클의 해골 수가 등급이고. 그럼 등급을 올리는 방법이 뭘까?”
“혹시……”
“그래, 빼앗아야해. 그 주인을 죽이고.”
“그럼 스컬의 누군가가 한국까지 와서 케이를 죽였다는 말이에요?”
“케이 정도 되는 사람이 흔적도 없이 죽은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 업계에서 은퇴하고 감이 떨어진 때를 노린 게 아닐까?”
이한성은 잠시 기다려주었다.
그녀가 받아들일 때까지.
만약 스컬의 일원이 움직였다면 개입하는 것 자체가 조직의 존립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제이라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휴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 제 파트너는 어떻게 되는 거죠?”
“물색 중이야. 일단은 박미향, 아니 데이지 건까지만 서포트 하고 휴식기를 가지도록 해. 그동안 바쁘게 일해왔잖아. 이참에 좀 쉬어.”
“알았어요.”
“그래, 그만 나가서 일봐.”
그녀는 고개를 숙인 후 사장실을 나섰다.
그때 복도를 걸으며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럼 그때 그 차가 스컬의 킬러였던 걸까……’
남부교도소를 나선 후, 케이가 따돌렸던 그 차량.
케이는 기자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과 박미향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옷을 버릴 때도 그랬어.’
굳이 그때 버리러 갈 필요가 없었다.
일부러 자리를 비우면서까지 말이다.
제이는 그가 스컬의 일원이 뒤를 쫓는 걸 알아채고 혼자서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에게 피해가 갈까봐 자리를 피한 것이었다.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