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죽이지 않은 게 어디야
“여긴 어때요?”
의사가 손목 안쪽을 누르며 물었다.
“아, 아파요.”
“흐음······”
“어떤가요, 선생님?”
설마 부러진 건 아니겠지?
그놈을 상대로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몸이 이래서는 불안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위험한 놈을 만날지 모르니.
“골절인 거 같네요. 씨티 먼저 찍어보죠.”
“네.”
나는 간호사를 따라 CT촬영실에서 손목 CT를 찍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다.
담당의사는 이미 전송받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환자분, 여기 이 부분 보이죠?”
그는 콩알 같은 뼈들이 모여있는 손목뼈를 가리켰다.
“네. 금 간 거 같네요?”
“맞아요. 그리 심한 건 아니니까 반깁스 하고 두 달 정도 통원치료하면 되겠네요.”
“두 달이나요?”
“치료 잘 받고 예후가 좋으면 한 달에서 한 달 반 내에 나을 수도 있을 거예요.”
최소 한 달이라니.
그래도 길다.
‘뭐 이거 핑계로 대회 안 나가도 되긴 하겠네.’
다음 달에 있을 투어를 준비하고 있던 나로서는 오히려 잘 되었다.
지금은 내 일상보다 그 일이 먼저니까.
***
염력에는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연결하고, 움직인다는 나름의 체계가 있다.
직접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어야 인지가 가능하며, 대략 성인 한 명분의 무게 내에서 연결이 되고, 그제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트렌치 나이프의 주인, 그놈과의 일전은 여유를 부린 것도 있지만 한 번의 능력사용이 끝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놈은 그 한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선을 빼앗고, 피하며 반격을 한 것이다.
그러니 그 한 번의 기회만으로 제압, 혹은 죽일 수 있어야 한다.
‘염력을 최대로 발휘하면 꼼짝도 못하게 구속할 순 있겠지.’
단번에 제압한다는 목적에는 성립한다.
하지만 비효율적이다.
의식을 잃지 않은 사람이 온몸으로 저항하면 반발력이 상당하다.
이는 곧 염력의 급격한 소모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상대를 제압할 때는 항상 관절을 꺾거나 자세를 무너뜨려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고, 행동을 조종할 때는 기절을 시켰었다.
‘더구나 한 명이면 모를까 둘 이상을 동시에 상대하면 그것도 힘들어.’
박미향을 마중 나왔던 중년남녀는 둘이서 움직였다.
그러니 최소한 둘 이상을 마주했을 때 쉽고 효율적이게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무기를 쓸까?’
바늘 같은 것에 복어독, 혹은 놈에게서 얻은 클로로포름 같은 마취약을 발라 날리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맞출 수 있을 때 얘기겠지.’
나이프를 던지고 좌우로 스탭을 밟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건 내 시선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실제로 피하기도 했고.
‘근거리라고는 하지만 엄청나게 빨랐어. 거리를 두면 맞추기도 더 어려울 뿐더러 얌전히 맞아주지도 않겠지.’
시선을 피할 정도면 쏘아서 맞추는 건 리스크가 있다.
완벽하려면 낌새조차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염력의 연결과 동시에 무력화 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한 가지 대안이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그거라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다수를 상대로도 제압이 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 방법은 나만의 독특한 상흔이 남는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딱 한 번 써보고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증거도 없을 텐데 괜찮지 않을까.’
늘 마음속에 있었던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꾹 억눌렀었다.
어떻게든 타살의 흔적을 없애려 했고, 자연스럽게? 죽은 것처럼 꾸몄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 나에게 채워둔 족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내면에서는 이런 속삭임이 끊이지 않았다.
-흔적이 좀 남으면 어때? 네가 했다는 증거 있어?
-아무도 몰라. 알 수도 없고. 그러니까 그냥 죽여!
-쫄지마! 저질러! 그렇게 갇혀있으니까 네 힘이 고작 그 정도인 거야!
유혹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놈에게 당한 이후로 더더욱.
“후우······”
답답함에 담배가 땡긴다.
그런데 주머니 속을 확인한 나는 혀를 찼다.
왜 꼭 이럴 때 없을까.
신기하게도 정말 땡길 때마다 기가 막히게 없다.
-부스럭.
빈 답배갑을 구겨 길거리 쓰레기통에 버린 후 편의점으로 향했다.
카운터에는 알바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짐작되는 앳된 얼굴.
문득 명찰에 적힌 이병진이란 이름에 눈이 갔다.
이름 가운데 ‘병’자가 있어서 그런가.
하여튼 잊을만 하면 떠오른다, 그때의 일이.
“레쎄 한 보루 주세요.”
나는 한숨을 삼키고 담배를 계산했다.
그때 계산대 옆 튀김기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맛있겠네.’
치킨냄새를 맡으니 출출함이 느껴진다.
점심을 먹었는데도 머리를 계속 굴려서 그런지 벌써 공복감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치킨도 한 마리 주세요.”
“조금 기다리셔야 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알바생은 포장지를 뜯고 염지가 되어있는 닭을 튀김기에 넣었다.
나는 그 사이 맥주를 하나 사서 간이 식탁에 앉아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띠링.
편의점 문이 열리며 고딩으로 보이는 학생들 세 명이 들어왔다.
“야, 이 병신아! 우리 왔다.”
한 명이 갑자기 장난스런 어조로 알바생을 불렀다.
병신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야, 병신이 뭐냐 병신이. 병진이잖아. 그치 병신아?”
다른 한 명이 친구를 나무라는 듯 말하며 교묘하게 다시 놀린다.
그리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말했다.
“어? 우리 병신이. 표정 굳었네? 기분 나빠?”
“아, 아니. 아니야. 미안.”
“웃어, 그럼. 장난이잖아?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어, 어. 하, 하하. 하하하.”
그 모습을 보는데 순간 뚜껑이 열리는 줄 알았다.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닌데 한 때 ‘염병한’이라는 이름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표정’이라는 말에 원장이 떠올라서?
‘둘 다겠지.’
하필 딱 두 개 있는 역린을 다 건드리네.
나는 있는 힘껏 짜증을 억누르고 맥주를 마시는데 집중했다.
‘대낮이야. 참자, 참아. 그냥 친구끼리 장난하는 거야, 장난하는 거.’
그렇게 세뇌하듯 되새겼지만 아닌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분명 한쪽이 강압적이었으니.
“야, 너네 사장 없지? 담배 한 갑 줘봐.”
“아, 안 돼.”
“안 돼? 뭐가 안 돼? 거기서 빼서 주면 되잖아.”
“그러다가 걸리면 나 알바 짤려……”
“돈 준다고 새끼야. 누가 그냥 달래?”
“그, 그래도······”
“아나, 이 병신이 사람 빡 돌게 하네.”
그때 옆에 있던 놈이 그의 팔을 툭툭 쳤다.
“야, 야. 사람 있어.”
“그게 뭐? 들으면 X발 듣는 거지.”
“어우, X새끼 패기 쩌네.”
“X까, 인마.”
놈은 알바생을 다시 보며 말을 이었다.
“패기는 우리 병신새끼가 쩔지. 야.”
“어, 어?”
“알바 끝나자마자 거기로 튀어 와라. 어딘지 알지?”
“……”
“대답, X발.”
“알았어······”
그때 삑삑 하는 소리가 튀김기에서 울렸다.
내 치킨이 준비되었다는 소리다.
나는 맥주캔을 마저 비우고 카운터로 갔다.
“치킨 다 됐죠?”
“네? 네, 잠시만요.”
알바생은 튀김기로 가더니 사각 종이용기에 치킨을 담기 시작했다.
그걸 기다리는 사이 나는 고딩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손에 들려있는 담배를 향한 시선이었다.
“저기요, 아저씨.”
“……?”
“그 담배, 나한테 팔래요?”
“뭐?”
순간 잘못 들었나 싶다.
그렇지? 잘못 들은 거지?
“그거 팔라고요. 오천 원 더 쳐줄 테니까.”
“……”
“알았어요, 알았어. 만 원 더, 오케이?”
요즘 애들 무섭네.
나는 반사적으로 편의점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이런, 내가 무슨 짓을······.’
나도 모르게 주변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마치 여기서 죽일 것처럼.
“뭘 눈치를 봐요? 담배 파는 거 가지고 쫄았어요?”
녀석의 말에 왼쪽에 선 놈이 키득거리는 게 보였다.
“아, 존나 웃겨. 미X새끼. 진짜 제 정신 아냐, 저거. 아저씨, 아저씨도 그냥 팔아요. 다시 사면 되잖아요. 만원이면 개이득 아닌가?”
흐음, 이제 알겠다.
내가 왜 죽일 생각을 가졌는지.
원장을 떠올리는 말에도 꾹 참았는데도 말이다.
뻔뻔해서.
저 지독한 뻔뻔함 때문에 본능적으로 죽이려 한 것이다.
-저질러. 누가 안다고. 아무도 몰라.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죽이진 말고…… 오랜만에 한 번 써보기만 할까.’
살인은 경찰의 수사력이 집중된다.
그것도 미성년자의 경우에 더.
게다가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은 저놈들에게는 그 방법이 죽이는 것보다 더 지옥이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속에 타협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스윽.
천천히 그들의 눈을 차례로 훑었다.
“뭘 X발 야려? 팔기 싫으면 말든지. 눈깔 X발, 뽑아버릴까.”
고딩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연기를 시작했다.
“하하하. 그래 보였다면 미안해, 학생. 만 원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생각한다고 그랬어.”
“……”
“그냥 삼천 원만 더 줘도 돼. 필요하면 술도 사줄까?”
나는 엄지와 검지로 술잔을 쥔 포즈를 취하며 ‘똑’ 소리를 냈다.
그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날 보더니 말했다.
“됐으니까 그거나 줘요. 자, 여기 돈.”
“어, 그래. 여기. 고마워, 학생. 맛있게 펴.”
놈은 내 손에서 담배를 낚아채듯 받아서 가방에 넣고 고개를 돌렸다.
“야, 병신. 다시 말하는데 까먹고 안 오면 내일 학교에서 디질 줄 알아. 알았어?”
“어, 어······”
“병신새끼.”
마지막까지 욕설을 내뱉은 고딩들은 콧방귀를 끼며 편의점을 나섰다.
나는 다시 담배 한 보루를 주문했다.
알바생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계산을 하고 담배를 건네주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담배와 치킨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멀리서 세 얼간이가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치익.
편의점 바깥 CCTV의 사각에 자리한 후, 담배를 피며 놈들의 모습을 힐끔거렸다.
녀석들은 서로를 치거나 밀며 장난을 쳐댔다.
그때 가운데 녀석이 손바닥으로 왼쪽에 있는 놈의 뒤통수를 때렸다.
내가 원하던 타이밍이다.
“아아악!”
눈알이 뽑힌 고통이 비명이 되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상우야!”
“아아아악. 내 눈!”
“야이, 미X 새끼야! 너 지금 뭐 한 거야?”
오른쪽의 놈이 가운데 놈의 멱살을 잡았다.
“아, 아…… 아니 나는……”
“어떻게 때렸길래 상우 눈이 뽑히냐고!”
“X새끼야, 나도 몰라! 너도 봤잖아. 그냥 장난으로 툭 쳤는데……”
“X발!”
오른쪽 놈은 멱살을 잡힌 놈을 밀쳤다.
그 순간 넘어지는 놈의 뒷덜미를 살짝 잡아당겼다.
“아악! 내 눈!”
뒤통수가 땅바닥에 닿자마자 눈알을 뽑아버린 것이었다.
남은 오른쪽 놈은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바닥을 뒹구는 두 친구를 내려다보았다.
곧이어 주변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들을 감싸고, 어떤 이는 폰을 들어 신고를 하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뒹구는 눈알을 주워 손수건으로 감쌌다.
시신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바닥에 떨어지면서 눈알 속 액체인 유리체가 터졌는데 접합수술이 가능할까 싶다.
‘한 놈은…… 그냥 놔두지 뭐.’
생각해보면 오른쪽 놈은 주동자인 가운데 놈, 옆에서 깐죽거리는 왼쪽 놈과 달리 무게 잡고 가만히 있기만 했다.
‘앞으로는 착하게 살아라.’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하고.
뭐? 겨우 그 정도로 장님 만든 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죽이지 않은 게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