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산 사람도 중요한데 말이다
‘뭐가 좋을까……’
드래그를 내리며 생활용품들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 무기로 사용할만하며 소지가 간편한 것 위주로 보는 것이었다.
눈알을 뽑는 방법도 상대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거나 어두워서 눈이 안 보이면 사용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한 대비해야 했다.
-띠링.
그러던 와중에 문자가 왔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전민성이었다.
잠깐 만나자는 내용.
나는 지검 근처로 갈 테니 근처 카페에서 보자는 답신을 보냈다.
“킬러라……”
다시 생각해봐도 우습다.
미심쩍어하는 건 알았지만 설마 청부업자라고 오해하다니 말이다.
‘뭐 사람 목숨 빼앗는데 있어선 틀린 말도 아니지만.’
***
카페를 들어서니 나를 부르는 소리가 한쪽에서 들려왔다.
“석훈아, 여기.”
카페 제일 구석.
대학생들이 팀프로젝트를 할 때 모여서 이용할만큼 큰 10인용 탁자였다.
전민성은 혼자서 거길 차지한 상태로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 후 그에게 다가갔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 나도 금방 왔어. 앉아.”
금방 왔다고 하기엔 탁자 위에 서류가 널브러져 있었다.
10인용을 혼자 차지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근데 너 그 팔 뭐야?”
“아, 넘어져서 접질렀어요.”
나는 왼팔을 보이며 쓰게 웃었다.
“반깁스인 걸 보니 많이 다친 건 아닌가보네?
“네, 뭐. 살짝 금 간 정도?”
“전에 그 놈 상대하다 다친 거지?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네. 그 새끼 실력이 장난 아니던데. 난 파바박 하자마자 당해버렸잖아.”
“……”
“참, 그놈. 나중에 보니까 거기서 투신자살한 걸로 나오던데. 내가 그놈 조사 좀 해봤거든.”
“……”
“이름은 김영식, 만 50세. 삼년 전까지 외국에 있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려진 게 없어. 지금은 한성글로벌이란 무역회사를 다니는데 거기도 전혀 이상한 점이 없고. 한 마디로 X나 깨끗해. 표면적으로는 그냥 일반인이더라고.”
명색이 청부살인 브로컨대 그리 쉽게 꼬리를 잡을 순 없겠지.
“그리고 성형외과 말인데. 그쪽도 병원 자체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어. 대신 어떻게든 영장 받아서 박미향이 바꾼 얼굴 확인하고 알려줄게.”
그것도 그다지 기대가 되진 않는다.
박미향의 신분이 일반인인데 영장이 나오려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탁자 위 서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근데 이거 다 사건관련 자료네요? 이런데서 봐도 돼요?”
“뭐 어때, 시간 있을 때 틈틈이 보는 건데. 이렇게라도 안 하면 다 못 쳐내. 배당되는 사건이 징글징글하게 많거든.”
“고생이 많네요.”
서류는 숫자가 유독 많은 것이 금융과 관련된 걸로 보였다.
남부지검이 그쪽으로 특화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사실인 모양이다.
“온통 숫자, 숫자, 숫자. 머리 빠개질 지경이라니깐. 차라리 중부지검에 있을 때가 나았어. 좀 살벌하긴 해도.”
“앞으로는 이런 게 더 늘어나겠죠.”
“그렇긴 하지. 잔챙이뿐만 아니라 살벌한 놈들도 점점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까.”
“그런가요? 잡범들은 몰라도 그쪽은 아니지 않아요?”
전민성은 피식 웃으며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은 그렇지. 근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번 흑룡파 파벌싸움만 봐도 알 수 있어, 돈이 폭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걸. 그 얘기도 해주려고 보자고 한 것도 있고.”
“……?”
그러고보니 그때 최칠상을 죽인 이후로는 그놈들과 엮이지 않았었다.
강남서 형사의 경고도 있었으니까.
당시 전민성은 두 파벌 간에 알력싸움이 있었고, 한설아가 그 과정에서 희생된 것이라 추측하기도 했었는데 그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강신재와 오현조, 두 놈에 대해서는 전에 얘기했었지?”
“네.”
“결과 먼저 말해주면 오현조가 조직을 장악했어.”
“오현조는 서열 3위라고 하지 않았었어요?”
“그랬지. 근데 그걸 뒤집은 거야.”
역전이라.
그는 보스의 아들이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여성의 지위가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나이 든 사람들은 여전히 아들을 우선하니까.
“흑룡파 보스가 아들 손을 들어줬나보죠?”
“아니,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보스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켰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먹어치우든 나눠 갖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나. 어쩌면 나눠 갖길 바랐을지도 모르지. 강신재와 오현조는 사업방향도 그렇고 스타일이 정말 다르거든.”
“어떻게 다른데요?”
전민성은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오른손은 검지와 엄지를 붙인 상태로 양손을 보여주었다.
“강신재는 말 그대로 조폭. 폭력을 기반으로 유흥가, 용역, 밀수, 살인, 매춘 같이 조직이 기존에 하던 사업을 고수하려는 스타일이야. 본인이 밑바닥부터 그렇게 커오기도 했고. 반면에 오현조는 태생부터 도련님이고 머리도 좋은 양아치지. 흑룡파의 배경을 이용해서 우리나라 인터넷 불법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사업을 키웠으니까.”
“한 마디로 강신재는 폭력, 오현조는 돈이라는 거네요?”
“맞아. 그리고 그 돈이 폭력을 이긴 거야.”
“어떻게요? 동원할 수 있는 조직원은 강신재가 더 많을 거 같은데.”
“당연히 힘으로 맞붙으면 안 되지. 돈의 힘이 뭐겠어? 회유에 가장 좋은 수단이잖아.”
“누굴 회유했는데요?”
“김천수. 그놈이 강신재를 배신했다고 하더라고.”
여전하구나.
역시 그놈은 철저한 기회주의자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놈이니 크게 놀랍지도 않다.
“천수 그놈도 그놈이지만 사실 강신재가 그런 빌미를 준 거나 다름없긴 해.”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최측근인 손정만을 의심했다는 얘기가 있었거든. 강신재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장권일, 신중원, 최칠상이 줄줄이 죽어나가고 천수놈은 경찰조사를 받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손정만이 맡고 있는 역할이나 사업이 오현조에게 맞는 부분이 많아서 예전부터 회유를 받았다는 말도 있었어. 그러던 차에 그 동안 쌓였던 의심이 터진 거지.”
빙글거리는 웃음이 재밌다는 듯이 보인다.
전민성은 턱을 괴고 나를 보며 계속 웃었다.
“왜 그렇게 봐요?”
“어떻게 보면 전부 네가 그랬잖아. 그걸 알고 보니까 너무 재밌어서. 하하하.”
“형.”
“알았어, 알았어. 아니라는 거지? 참, 내가 어디까지 말했지?”
“휴우, 의심이 터졌다는데까지 말했어요. 근데 배신하려면 손정만이 해야지 왜 김천수가 그런 거죠?”
“강신재가 휘청하니까. 너도 알겠지만 그 자식이 그런 쪽으로는 좀 빠르냐. 자신에게 힘이 실렸을 때 배신해버린 거야. 밑에 놈들도 손정만이 팽당했다는 소문에 흔들리고 있었을 거고. 강신재가 옛날 스타일이라 의리니 뭐니 그런 거 많이 따졌거든.”
“근데 정작 자신이 최측근을 의심했으니 사달이 날만도 하네요.”
내로남불은 분야를 막론하고 문제를 일으킨다.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
“이건 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소문인데 의심을 받았던 손정만이 강신재를 구해서 도망쳤다네. 깡패새끼들이 아주 영화 한 편 제대로 찍고 있다니까.”
“아직 잡히진 않았대요?”
“그런 것 같아. 강남서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는데 아직 어딨는지 모른다네.”
“강남서에서는 왜요?”
“기회잖아. 강신재랑 딜만 잘하면 흑룡파 전체를 일망타진 할 수도 있으니까. 무성도예 건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심증이 확실해도 꼬리잡기가 너무 힘들어. 그놈의 증거가 있어야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거든.”
역시 공권력은 제약이 너무 많다.
시스템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점점 지능적이고, 영악해지는 그놈들을 잡기엔 둔하기 이를 데가 없다.
‘뭐 그러니 강남서도 강신재와 딜을 하려는 거겠지만.’
나는 문득 김천수에 대해 떠오른 걸 물었다.
“근데 김천수 그놈은 벌써 그렇게 휘젓고 다녀도 돼요? 설마 설아누나 사건 용의자에서 풀려났어요?”
“압수수색까지 했는데 살인과 관련된 증거를 찾진 못했데. 대신 성매매 알선, 불법촬영물 유포, 탈세, 외국환거래법 위반, 마약유통······ 뭐 이것저것 많이 나와서 구속영장 청구했는데 그것도 기각되고 불구속수사로 전환됐고.”
“왜요?”
“도주우려가 없다네. 미X새끼들, 아마 돈 먹었겠지.”
“……”
풀려났다 이거지.
죽을 때가 됐구나, 김천수.
법은 피했어도 난 못 피할 거다.
“휴우, 짜증나니까 그 얘긴 그만하자.”
그는 습관적으로 입에 담배를 물었다.
“형, 여기 카페에요.”
“아참, 그렇지.”
전민성은 입맛을 다시며 담배를 귀에 꽂았다.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검사에 대한 이미지가 와장창 깨진다.
“참, 석훈이 너 최근에 미연이랑 연락한 적 있어?”
“미연이 누나요? 아니요.”
“그래? 이상하네······”
“왜요?”
“조용하니까 이상해서. 막 불안해, 어디서 사고라도 치는 거 아닐까 하고.”
“형, 혹시 누나 좋아해요?”
내 물음에 전민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뭐 잘못 먹었어? 어떻게 그 말을 그렇게 받냐?”
“그냥 그렇게 보여서요. 혹시 고아원 있을 때부터 짝사랑하고 그랬던 거예요?”
“아니야아! 어디서 생사람을 잡아?! 와 누가 킬러 아니랄까봐. 무섭다, 너?”
“그놈의 킬러소리 좀 그만해요.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그럼 너도 하지마, 인마. 소름 돋으니까. 봐, 여기 우둘투둘하지?”
소매단추를 풀러 팔을 보여준 그는 보기도 전에 내려버리더니 계속 툴툴거렸다.
평소엔 표정관리 잘 하더니 지금은 일부러 티를 내는 건가 싶다.
‘좋아하네. 이 정도 반응이면 첫사랑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전민성에게 물었다.
“형, 혹시 아까 미연이누나 연락 물은 거 형한테는 안 와서 그런 거예요? 나한테는 왔을까봐?”
“평소엔 무게 잡고 무미건조하던 놈이 왜 이래? 너 좀 낯설다?”
“생각해보니까 고아원에서 형이 미연이 누나 바라보던 눈빛이 그윽했던 거 같아서요.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고 좋잖아요.”
“그윽해? 외로워? 누가! 야, 나 인기 많거든. 대한민국 검사를 뭘로 보고.”
그때 지이잉거리며 진동음이 울렸다.
전민성의 것이었다.
“네, 전민성입니다. 네, 부장님. 네? 네, 네.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이렇게 보니 검사가 아니라 영락없는 회사원이다.
그는 탁자 위에 널브러진 서류를 챙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훈아, 나 그만 가봐야겠다.”
“네, 어서 가보세요.”
“일주일 후에 출소 있는 거 알지?”
“알죠. 전날에 전화 드릴게요.”
“……그래.”
고개를 돌리는 눈빛에 아쉬움이 보인다.
그때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나온 모양이다.
“형.”
내 부름에 전민성이 몇 걸음 걷지 않고 나를 돌아보았다.
“응?”
“……조심해서 가라고요.”
“싱겁긴. 간다, 인마.”
나는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보며 말했다.
“미연이 누나 연락해서 형한테 전화하라고 할게요.”
그는 돌아보지 않은 채 오른 주먹을 들고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최미연의 연락처를 찾다가 멈칫했다.
‘그냥 만나러 가볼까.’
그녀가 일하는 곳도 한설아가 몸을 담았던 화류계다.
자기 딴에는 대우도 좋고 사정도 많이 봐준다고 말했었지만 정말 그럴까.
확인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너무 설아누나 사건에만 신경 쓴 거 같네.’
산 사람도 중요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