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지목한 게 너였어?
열네 살.
최미연이 지옥 같던 미소고아원에서 벗어난 날의 나이가 그랬다.
그녀는 드디어 지옥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보다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나마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미소고아원 출신이라 그런지 새로운 보육시설은 그녀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었고, 주변엔 늘 따뜻함이 함께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알게 되었다.
열아홉, 만으로 열여덟이 되는 그때가 되면 자신은 세상이라는 지옥에 다시금 던져질 것이라는 걸.
오년 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보호종료아동.
결국 그 꼬리표는 피할 수 없었다.
열아홉이 된 최미연은 보육원을 나서며 절망을 느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달랑 오백만원 손에 쥐고 사회에 나가야 했으니.
신체적으로는 어른 못지않지만 꼬리표에 적혀있듯 그녀는 아직 아동이었다.
종료가 아닌, 아직도 보호가 필요한 아동 말이다.
가난이 온몸을 옥죄어 왔다.
지원금 오백만원?
주거비에 생활비까지, 숨만 쉬어도 돈을 빨아먹는 몸뚱어리는 일을 구하기도 전에 그 돈 전부를 바닥내버렸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사회경험도 없는 미성년자니까.
그나마 겨우 알바를 구해도 불순한 의도를 품고 신체를 더듬거나 관계를 요구하는 일이 셀 수도 없었다.
알기 때문이었다.
달리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고, 경제적, 정신적으로 빈곤하다는 것을.
그런 그녀에게 세상은 원장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저기도 혼자네, 하하……’
화장실 거울을 보는데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최미연은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외로워보였다.
시설에서는 거울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뒤를 지나간다거나 옆으로 와서 양치질을 하곤 했었다.
힘들고 죽을 것 같아도 의지할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엔, 그리고 저 거울 속에서도 자신은 철저하게 혼자였다.
눈가에 습막이 차올랐다.
-촤악. 촤악.
찬물로 세차게 세수를 한 최미연이 고개를 들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눈물을 씻어낸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만들자, 다 같이 지낼 곳을.’
그래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최미연은 자신의 고집, 자존심, 인생, 그 모든 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했다.
‘가진 게 몸뿐이면 이거라도 써야지.’
오백만원의 지원금과 함께 보호종료아동이 받는 재산, 어른 못지않은 몸뚱어리.
게다가 자신은 꽤 봐줄만한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설아언니는 강제로 당했었어. 난 내 의지로 선택하는 거잖아. 그게 어디야……’
그날 그녀는 거울 앞에서 맹세했다.
반드시 자신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
“동생,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최미연은 거울을 보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난 주, 새로 들어온 소향이라는 여자였다.
“아, 갑자기 옛날 생각이 좀 나서요.”
“거울 보다가 갑자기?”
“이렇게 보니까 저도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그런지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머, 아직 서른도 안 됐으면서. 그리고 그런 말하기엔 아직 너무 예쁜 거 같은데?”
그녀는 최미연의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웃었다.
“언니도 참······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한 번씩 그럴 때 있잖아요.”
“있지. 이쪽 일 하다보면 주기적으로 현타가 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학을 떼는 모습은 닳고 닳은 것처럼 보였다.
최미연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듣기에 그녀는 서른 중반이라 했었으니 볼꼴, 못 볼 꼴 다 보았을 것이었다.
그때 소향이 문득 물었다.
“참, 근데 동생. 얘기 들어보니까 업소 애들한테 어떤 여자에 대해서 묻고 다닌다며?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하던데 누굴 찾는 거야?”
최미연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묻기는 했지만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새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하여튼 이 업계는 입이 너무 가벼워서 문제였다.
“예전에 알던 언니요. 전에 더 블루 갔다가 얼핏 본 거 같아서 수소문 해본 거예요.”
최미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물은 것은 한설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보를 수집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청부업자에게 그렇게 살해당할만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김천수가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니 그녀 나름대로 한설아의 지난 행적을 조사한 것이었다.
화류계를 전전하다보면 치정이나 불륜으로 사람이 죽는 등 일반인은 상상하지 못한 일을 보기도 하니까.
“그래서 찾았어?”
최미연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한설아의 행적을 물었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쪽 업계에서 봐온 여자들이었다.
아무래도 청부업자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조사하는 일이기에 조심스럽게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소문이 났으니 알게 된지 고작 일주일 정도 된 사람에게 터놓고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아직요.”
“그렇구나.”
소향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핸드백에서 꺼낸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던 그녀는 거울을 보며 말했다.
“동생, 속에 있는 얘기하기엔 우리가 아직 안면 튼 기간이 짧긴 하지?”
“네?”
“아니, 좀 껄끄러워 하는 거 같아서.”
“아니에요, 그런 거.”
“호호호, 이해해. 그래도 너무 벽은 안 쳤으면 좋겠네. 그냥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싶어서 주제넘게 물어본 거야. 내가 이래봬도 수도권 내에서 안 가본 곳이 없거든. 팔자가 사나운지 버닝콜, 로즈마리, 타임, 레인보우, 가리지 않고 다 굴러야 했다니깐.”
그녀의 말에 최미연은 귀가 솔깃했다.
레인보우라는 업소이름 때문이었다.
한설아의 행적을 조사하며 들은 내용 중 가장 미심쩍은 말이 그곳과 관련이 있었다.
문제는 그곳이 동성애를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레즈비언 성매매 업소라 레인보우의 사정에 대해 아는 관계자들이 적다는 것이었다.
‘레인보우에 있어봤다고? 그럼 그 여자에 대해서도 알지 않을까?”
한설아에게 빠졌다는 정체불명의 중년여자.
그녀의 빚을 변제해주고 수렁에서 구해줄 정도로 돈이 많은 부자로 보였다고 했다.
그 두 가지가 조합되자 수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빠졌다는 건 달리 말하면 자주 찾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돈이 많은 부자라면 그녀가 부자라기보다는 남편이 부자일 가능성이 더 높으니.
처음 레인보우의 여자에 대해 알았을 때 최미연의 뇌리에는 치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었다.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기 언니······”
최미연이 입을 떼는 그때였다.
“미연아, 아직 멀었어? 실장님이 불러.”
화장실 문이 열리며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응? 실장님이?”
“손님이 너 지목한 것 같더라. 어서 가봐.”
“그래? 알았어.”
“최미연, 아직 안 죽었는데? 호호.”
“미X년.”
최미연은 피식 웃고는 소향에게 고개를 돌렸다.
“언니, 먼저 가볼게요. 나중에 또 얘기해요.”
“그래. 어서 가봐.”
소향은 빙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녀가 사라지자 표정이 싸늘해진 소향은 고개를 돌렸다.
실장의 말을 전한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얼굴에 파우더를 바르고 있었다.
“그것만 발라서 되겠어?”
“네?”
소향은 한 손으로 그녀의 볼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립스틱을 입술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여자는 입술이 매력적이어야지.”
“웁…… 뭐, 뭐하는 거예요?”
파닥거리는 반항에도 소향은 끝까지 입 주위를 붉게 칠했다.
겨우 뿌리친 그녀가 빽하고 소리쳤다.
“미쳤어요?!”
소향은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 답했다.
“내가 미쳤으면 넌 방금 죽었어, 이년아.”
“……!”
“분위기 좋았는데 또 방해하면 진짜 죽을 줄 알아. 알았어?”
“……네, 네.”
그녀는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소향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지목한 게 너였어?”
최미향은 룸으로 들어오자마자 눈을 끔벅거렸다.
나는 웃으며 자리를 가리켰다.
“앉아요, 누나.”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인데?”
“일은 무슨. 그냥 놀러온 거죠.”
“그 손을 하고? 어쩌다 다친 거야?”
나는 반깁스를 한 왼손을 슬쩍 보고 말했다.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접질렀어요. 손이 이러니 놀러왔고.”
“집에서 쉬지 뭐 하러 돌아다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다시 가요?”
최미연은 피식 웃으며 한쪽에 앉았다.
“놀려면 젊고 예쁜 애들 불러서 놀지 왜 날 불러?”
“내가 여자랑 놀려고 온 거 같아요?”
“그럼 나랑 놀려고 왔어?”
배시시 웃는 게 딱 봐도 놀리려는 얼굴이다.
여기서 당황하거나 맞장구를 치면 더 짓궂게 나올 것이다.
“생각해보니 누나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서 한 번 보러 왔어요.”
진지한 말에 최미연의 얼굴이 대번에 풀어졌다.
“설아언니 일 때문에 나도 걱정돼서?”
“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
“오려면 민성이랑 같이 오지 왜 혼자 왔어?”
“바쁜 모양이더라고요. 검사라는 직업이 좀 그렇잖아요.”
“하긴 옛날과 다르게 검사도 명예직이라더라. 박봉에 일만 더럽게 많고. 근데 그래도 그렇지, 그 새끼는 국과수 이후로 어떻게 연락 한 번 안하냐?”
설마 기다린 건가?
어쩌면 짝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청부업자가 엮여 있으니까 누나 걱정돼서 그렇겠죠.”
“자기는 괜찮고? 칼 맞으면 여자나 남자나 죽는 건 똑같잖아.”
“일반인이 아니라 검사잖아요. 그놈들이 아무리 간이 커도 검사를 건드리겠어요?”
“모르는 일이지, 칫.”
최미연은 술잔에 양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얼굴에 걱정이 그대로 보였다.
“너무 걱정마세요.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그럼 다행이고. 넌 팔 때문에 술 못 먹지?”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양주 한 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나는 문득 그 모습에서 어떤 쓸쓸함을 엿보았다.
“누나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진짜예요? 뭐 진상손님이 괴롭힌다거나 여기 주인이 돈 떼먹었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거면 내가 다 죽여줄 수 있는데.
“야, 이쪽 일 한다고 다 그런 줄 아니? 아무 일 없어. 그냥 옛날 생각이 좀 나서.”
최미연은 과거 미소고아원이 없어진 후 보육시설을 거쳐 보호종료아동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위해 화류계로 들어온 이유까지.
“나 있잖아. 사실 돈 많이 벌면 미소고아원 애들부터 찾아볼까 하고 생각했었어.”
그녀는 손 안에서 빈 양주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개중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리 못 잡고 있는 얘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
“그때 내가 4억 모았다고 했었지? 그게 그 돈이었어. 가게 하나 내서 같이 살아보려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보니 그런 돈이었기에 한설아의 빚을 갚는데 흔쾌히 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
“힘들게 번 돈인데 누나 자신을 위해서 써요.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나는 경우가 다르지만 시설 출신들은 최미연처럼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이들이 많다.
그 때문에 가정을 빨리 이루려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을 잘못 만나 평생 고생하기도 한다.
삶의 안정을 찾는 조급함이 독이 되는 것이다.
“글쎄, 나 자신을 위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네. 그냥……”
말을 하다 말고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잘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양주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어휴, 나 왜 이렇게 청승이지? 그날도 아닌데 이상하게 센치하네. 호호.”
최미연은 당황했는지 화제를 돌리려 다른 말을 꺼냈다.
“참, 나 설아언니에 대해 이상한 얘기를 들은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