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32
32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누군지
“이상한 얘기라뇨?”
내 물음에 최미연은 양주잔을 마저 비우고 답했다.
“리리스라는 룸살롱에서 들은 얘긴데······”
리리스?
익숙한 이름이다.
잠시 생각해본 나는 곧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최칠상의 단골 룸살롱.
신중원이 알려준 그 술집의 이름이었다.
당시 거기서 기다렸다가 최칠상을 발견하고 뒤를 쫓아가 죽였었다.
그러니 리리스를 입에 올린 최미연의 말에 관심이 갔다.
“거기 마담언니가 들었다는데 레인보우라는 동성애 매춘업소에서 설아언니에게 홀딱 빠진 중년여자가 있었대.”
동성애? 매춘?
그 두 단어가 그렇게 매칭이 되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최미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그런 곳이 있다는 것만 알아둬. 말 그대로 동성을 사고파는 곳일 뿐이니까.”
“……네.”
“어쨌든 설아언니는 김천수 그 새끼 때문에 그런 곳도 돌아야 했고 거기서 인기가 꽤 좋았다나봐.”
“아까 말한 중년여자는 뭔데요?”
“그 여자가 레인보우를 갈 때마다 설아언니만 찾았대. 설아언니 없으면 매춘도 안 하고.”
“……”
“그래서 그 여자가 설아언니한테 푹 빠졌단 말이 돌았는데, 난 아닌 거 같거든.”
최미연은 다시 양주병에 손을 뻗었다.
나는 그걸 빼앗으며 말했다.
“그만 마셔요.”
“어휴, 이 정도는 끄떡없거든. 내가 하루에 먹는 양주가 몇 병인데.”
“그래도 그만 먹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해봐요. 왜 아닌 거 같아요?”
그녀는 입맛을 다시더니 잔을 내려놓고 답했다.
“그 여자, 상당한 부자로 보였다나봐. 언니 빚 정도는 다 갚아줄 수 있을 정도로.”
그게 뭐가 이상한가?
왜 그것만으로 아닌 거 같다고 단정 짓는 거지?
“부자들 중에는 취향 독특한 사람이 꽤 된다면서요? 그래서 동성애를 찾는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내 물음에 최미연은 피식 웃었다.
“우리 석훈이 아직 순진하구나. 그래, 남자는 순정이지.”
“무슨 말이에요?”
“남자로 예를 들어보자. 돈 많은 남자들 중 한 여자만 바라보는 순정남이 많을까, 아니면 열 여자 마다 않고 잠자리 갖는 바람둥이들이 많을까?”
“……!”
알겠다.
그 정도로 부자인 여자가 설아누나만 찾는다는 게 이상하다는 거구나!
“어때, 이상하지? 만약 성정체성이 아니라 취향 때문에 거기까지 갔으면 갈 때까지 간 거야. 설아언니만 찾는다는 건 말이 안 돼. 돈이 그렇게 많으면 원하는 거 다 건드리지 하나만 건드리겠어?”
“……”
“물론 간혹, 정말 희박한 확률로 그렇게 뻑이 갈 수도 있겠지. 근데 난 아니라고 봐. 그렇게 뻑이 갈 정도로 순정이 있으면 매춘도 하지 않을 거고. 내 생각에 그 여자와 설아언니 사건을 연관 지어보면 유력한 가설은 치정 혹은 불륜이야.”
최미연은 그 중년여자의 남편이 한설아를 죽게 만들었을 거라고 추정했다.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청부업자를 시켜서 설아누나를 그렇게 죽였다고요?”
“말 되잖아? 그럼 그 세 놈이 CCTV 바라보면서 대놓고 죽이는 걸 보여준 이유도 납득이 되고.”
“그 여자에게 보여주는 거다?”
“그렇지.”
설득력이 있다.
만약 있는 집안의 사람이라면 창녀에게 자존심이 짓밟힌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그런 모멸감을 느꼈고, 평소 사람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청부살인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다.
“레인보우라는 곳에 한 번 가봐야겠네요.”
“넌 못가. 거기 레즈 전용이거든. 그리고 들어가더라도 고객정보 자체를 확인 안 하는 곳이라 알 수도 없어.”
“그럼 그 여자에 대해 어떻게 알아보죠? 설아누나가 죽었으니 그 레인보우라는 곳에 더 안 올지도 모르는데.”
“레인보우에 일을 나가는 애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지. 그 여자 외모는 어떤지, 신분을 알 수 있는 뭐라도 기억하는 게 있는지 말이야. 수소문 말고는 방법이 없어.”
“아는 사람 있어요?”
최미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사실 있긴 한데······”
“무슨 문제 있어요?”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언니라서. 그러고보니 네가 나 지목 안 불렀으면 물어봤을 거 같아. 방금 전에 화장실에서 같이 있었거든.”
그녀는 레인보우에 있었던 종사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여 말했다.
조심하고 싶지만 그렇기에 자기도 모르게 물어볼 뻔 했다는 것이었다.
마음은 알겠지만 위험한 행위다.
자칫 한설아의 행적을 캐다가 그녀를 죽인 놈들의 눈에 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제가 한 번 알아볼 테니까 누나는 이제 그런 거 묻고 다니지 마세요. 위험하니까.”
“어머, 우리 석훈이 누나 걱정해주는 거야? 호호.”
“당연히 걱정되죠.”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언니 덕을 이렇게 또 보네. 민성이도 그렇고 너도. 다른 사람들이 날 이렇게 다 걱정해주고.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
나는 추억에 잠긴 듯한 그녀의 시선이 어색해 화제를 돌렸다.
“근데 여기서 몇 시까지 일해요?”
“그때, 그때 다르지. 보통 밤새 일하는데 정 손님이 없으면 다른 업소에 원정을 가기도 하고.”
“오늘 하루 쉴 수 있어요?”
“쉬고 뭐하게?”
“뭐든 하면 되죠. 여기 있으면 일하는 기분일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못 빼. 아예 안 나오는 거면 모를까 나왔다가 조퇴하면 돈이 안 되거든. 오늘 일 한 게 아깝잖아. 다음에 하루 뺄게. 그때 민성이랑 같이 보자.”
그놈의 돈, 돈.
다들 그 돈에 너무 얽매여 산다.
‘어쩌면 돈이 아니라 업주가 허락 안 할 수도 있겠지.’
최미연이 숨길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걱정할까 봐.
“뭘 다음이에요. 그럼 내가 오늘 누나 하루 살게요.”
“어머, 너 지금 내 앞에서 돈 지X하는 거야? 호호호.”
나는 왼팔의 깁스를 흔들며 답했다.
“이거 나으면 놀고 싶어도 못 놀아요. 대회 준비해야 하니까.”
“……”
“그러니까 그렇게 하고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요. 술 못 먹는데 여기 이러고 있기도 뭐하네요.”
최미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가서 얘기하고 그냥 하루 뺄게.”
“괜찮으니까 계산할게요.”
“됐어. 그 돈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대신 니가 쏴. 알았지?”
“네, 제가 모셔야죠. 뭐 먹고 싶은지 얘기만 해요.”
내 말에 그녀는 문고리를 잡은 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나 진짜 비싼 거 먹을 거다? 옷 갈아입고 나올게. 잠깐만 기다려.”
***
화장실에서 최미연을 놓친 후,
소향, 아니 박미향은 인이어를 귀에 꽂고 두 번 두드렸다.
연결된 사람은 제이였다.
-말씀하세요.
“의뢰조건이라는 거, 그거 꼭 확인해야 해요? 그냥 처리하면 안 되나?”
짜증어린 물음에 제이는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단순히 죽이기만 할 거라면 우리 말고도 맡을 곳이 많아요. 데이지의 말대로 창녀 하나 죽이는데 오억. 그 돈이면 이 정도 조건은 클리어 해야죠.
“뭐가 캥겨서 그걸 확인하려는 거래요? 찝찝하면 그냥 없애면 되지. 이해가 안 되네.”
-궁금해 할 필요도 없고, 궁금해 하지도 마세요.
박미향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일주일이에요. 여기서 술 따르는 게 벌써 일주일이라고요. 근데 그년이 계속 벽 치고 다가오질 않는데 내가 무슨 수로 그걸 알아내요? 짜증나 죽겠네, 진짜.”
-일주일이 안 되면 한 달, 그것도 안 되면 일 년을 기다려서라도 그 벽을 치워야죠. 그러라고 의뢰인께서 비용을 지급하는 거니까요.
“알았어요, 알았어. 그놈의 의뢰인, 의뢰인.”
인이어를 다시 두드린 그녀는 연결을 끊고 화장실을 나섰다.
‘그냥 죽이지 뭐. 이유 따위 아무렇게나 지어내면 지가 어떻게 알겠어.’
***
나는 최미연이 나가자마자 웨이터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계산할게요. 빌지 갖다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네?”
아까는 최미연의 말에 따르는 척 했지만 역시 그냥 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아왔는데 남의 밥벌이 못하게 하는 것도 그러니까.
‘뭐 나한테는 큰돈도 아니고.’
이 정도는 돈지X도 아니다.
벌이도 벌이지만 돈 쓸데가 많지 않으니.
새삼 내 삶이 참 건조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풀타임으로 계산하고 싶은데. 최미연 씨에게는 내가 지불했다고 알리지 않고 휴일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정산해주면 돼요. 가능할까요?”
“제 선에서는 안 됩니다. 기다려주시면 실장님께 말씀드리고 모셔오겠습니다.”
“부탁할게요.”
나는 그에게 두둑하게 팁을 건넸다.
웨이터는 상기된 표정으로 돈을 챙겨 넣고 금방 다녀오겠다고 말하며 룸을 나섰다.
잠시 후,
캐쥬얼 정장을 입은 실장이라는 남자가 들어왔다.
“얘기 들었습니다, 사장님. 우리 미연이 풀타임으로 계산하신다고요.”
“네.”
“처음 오셨던데 미연이를 지목한 것도 그렇고, 혹시 애인 사인가요?”
“아니요, 그냥 아는 동생입니다.”
“혹시 고아원 동생입니까?”
날 안다고?
어째서?
“누나가 말해주던가요?”
아니면 미행?
후자면 재미없는데.
“미연이가 예전 고아원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얼마 전에 급하게 찾아야 한다고 하길래 잘 아는 흥신소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고요.”
“……”
“혹시 들었습니까? 미연이가 왜 이쪽 일 시작했는지?”
“예, 대충은요.”
“잘 대해주세요.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이쪽 일 한다고 이상하게 보지 말고 말입니다.”
“이상하게 안 봅니다.”
나는 그의 말이 더 이상하기에 물었다.
“혹시 미연이 누나와 무슨 관계세요?”
“그냥 비즈니스 관곕니다.”
“그런 거 치고는 말씀하시는데 묘하게 걱정이 묻어있는 것 같네요.”
“비즈니스 관계긴 하지만 오래 봐왔으니까요. 제가 데리고 있는 여자애들 중에 제일 오래 되기도 했고, 곧 독립할 거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독립한 애들이 나가서 잘 살아야 신입들이 그거 보고 열심히 일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씨익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오늘 룸 사용료와 미연이 풀타임 비용은 제 사비로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미연이 고향동생인데 그 정도는 해드리고 싶네요. 대신 미연이 맛있는 거나 많이 사주십시오.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요.”
“감사합니다.”
나는 굳이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성의를 받았다.
그를 보니 대우도 좋고 배려도 많이 해준다는 최미연의 말에 믿음이 갔다.
‘당장은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네.’
나는 계산이 끝난 룸을 차지하고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지이잉.
문자와 함께 사진 하나가 전송되었다.
전민성이 보낸 것으로 박미향이 수술할 얼굴이라는 메시지가 함께였다.
“여보세요? 형, 어떻게 된 거예요? 영장이 벌써 나왔을 리도 없고.”
-영장신청은 해놨는데 반응을 보니까 안 될 거 같아서 불법루트를 좀 이용했지.
“네?”
-뭘 그렇게 놀라? 말했잖아, 나 후루꾸 검사라고. 합법이든 불법이든 법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검사 아니겠냐. 하하하.
전민성은 검사생활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범법자들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놈들은 검사에게 잘 보이면 나중을 위해서라도 좋으니 어지간한 건 말만 잘해도 들어주는 편이라고 한다.
-어떨 때보면 이런 놈들 실력이 더 기가 막힌다니까. 다른 데는 흘리지 말고 너만 봐. 이거 들키면 나 옷 벗어야 돼.
“네, 그럴게요.”
그렇게 전민성과 통화를 마무리하는 그때였다.
나는 복도 끝에서 다가오는 업소여자를 보며 눈을 빛냈다.
‘설마……’
방금 사진을 보았기 때문일까.
화장을 했지만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