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34
34화. 내 편인지 시험을 하려면 말이다.
“자, 여기 두 개의 약이 있다. 하나는 흰색이고 하나는 검은색이지.”
내 말에 바닥을 향했던 두 년놈의 고개가 들린다.
앞이 안 보여도 이게 뭔지는 아는 것이다.
“그, 그걸 어쩌려고요?”
“어떻게 할 것 같아?”
“설마 그걸 하나씩 먹일 겁니까?”
“그럴 생각이야.”
나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둘 중 누구라도 좋아. 의뢰인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그럼 원하는 약을 먹여줄 테니까.”
“그 여자를 노리는 이유도 모르는데 의뢰인에 대해 어떻게 알겠어요.”
박미향이 먼저 자포자기한 듯이 말하고,
“저,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이경호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누가 먹든 상관없기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럼 의뢰가 어떤 거였는지 내용이라도 말해봐. 그냥 죽이는 게 다라면 업소에서 일하고 있었을 리 없잖아?”
의뢰인에 대해서는 몰라도 의뢰내용은 모를 수가 없겠지.
만약 흰색 약을 택한다면 분명 각성제다.
저 여자라면 그때 김재오와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각성제를 이용한 반격의 기회 말이다.
팔다리도 부러졌고, 앞이 안 보인다지만 여긴 화물칸이라는 좁은 공간이니 분명 그럴 것이다.
“말해줄 테니까 검은색 약은 저놈에게 주고, 흰색은 날 줘요.”
역시 흰색이 각성제인 건 맞나보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지만.
“믿지 마십시오. 분명 거짓말로 둘러댈 여잡니다.”
이경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너는 내가 혹할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나?”
“……”
“빨리 생각해. 너랑 달리 저 여자는 지금 내가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까.”
“……”
“없지?”
“저, 전 그저 돈 받고 시체 태우는 일을 할 뿐이라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 그럼 쓸모가 없는데.”
이경호는 바닥에 머리를 쾅쾅 박으며 외쳤다.
“살려주십시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당장 안 죽여. 그리고 그렇게 머리 박는다고 밖에서 알 거라 생각하지마. 네가 직접 대서 알겠지만 인적이 없더라고, 이 골목은.”
놈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로 몸을 잘게 떨었다.
어떻게 해도 살아나가지 못한다는 절망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박미향, 이제 말해. 의뢰내용이 뭐지?”
“최미연이라는 술집여자가 한설아라는 여자의 지난 행적을 캐고 다니는 이유가 뭔지, 그리고 그 여자가 레인보우에서 만난 여자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 후 죽일 것. 그게 전부예요.”
“……!”
역시 한설아를 죽인 놈이다.
그놈이 최미연이 조사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손을 쓴 것이다.
‘레인보우, 그리고 중년여자. 이제 보니 누나의 죽음에 가장 가까운 단서였어.’
그 단서 때문에 최미연까지 죽을 뻔했다.
자신도 모르게 진실에 다가가 버린 것이었다.
“레인보우에 드나들었다는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내 물음에 박미향은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저었다.
살인이유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것.
“됐고. 브로커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봐.”
“잘 몰라요.”
“브로커와 일하는 청부업자가 그들에 대해 모른다? 그 말을 믿으란 건가?”
“정말이에요. 조직명이 뭔지, 어디에 있는지, 규모가 어느 정돈지 하나도 모른다고요.”
“그것도 모르고 거래를 한다고?”
“모르면 어때요? 그들은 내 형량을 낮춰주려고 법적인 도움을 줬었고, 이쪽 세계에 대해 가르쳐주고 기다려줬어요. 무려 십삼 년 동안.”
역시 그만한 변호인단이 붙었던 건 브로커의 힘이었구나.
나는 혹시 이경호가 브로커에 대해 아는지 싶어 같은 질문을 했다.
“저,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호출이 오면 특정장소로 소각차 끌고 가는 게 전부라서······”
저놈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구나.
나는 다시 박미향에게 물었다.
“그래도 전혀 모르진 않을 거 아냐?”
“……전담 브로커가 제이라는 코드네임을 쓴다는 것밖에 몰라요.”
“연락은 어떻게 하지?”
“제 스마트폰, 그걸로만 연락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나는 그녀의 핸드백에서 폰을 꺼냈다.
지문방식이라 보안을 해제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연락처에 제이라는 이름은 없는데.”
“그런 거 없어요. 전원버튼을 짧게 세 번 누르고, 삼초 후에 다시 한 번 누르면 자동으로 연결될 거예요.”
마치 첩보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기능이다.
“이 폰도 그렇고 네 어금니에 박아 넣은 약들도 브로커에게서 받은 건가?”
“네.”
“뭐하는 놈들이기에 이런 걸 개발해서 쓰고 있는 거지?”
“모르죠. 사실 관심도 없고.”
“이 약에 대해서 말해봐. 흰색과 검은색이 각각 무슨 효과가 있지?”
“흰색은 진통제고, 검은색은 맹독이에요.”
박미향은 침을 삼키며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어차피 우릴 죽일 거잖아요. 그러니까 흰색 약을 날 주고 죽여줘요.”
“고통 없이 죽고 싶다?”
“네.”
“검은색 약은 고통스러운가보지?”
“끔찍하게 고통스럽다고 들었어요. 사람이 즉사하려면 그 정도로 독성이 강해야 해서 진통제도 주는 거라고 했어요.”
제법 논리가 정연하다.
어떻게든 각성제라는 걸 숨기고 싶은 모양이다.
내가 김재오를 죽이고 각성제를 한 번 겪었다는 걸 알면 저렇게 못할 텐데.
“제가 아는 건 전부 말했어요.”
“좋아. 나도 약속을 지키지.”
나는 염력으로 벽에 걸려있던 올가미와 채찍을 조용히 띄워 박미향의 주위에 포진시켰다.
그리고 흰색 약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목덜미에서 시퍼런 핏줄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김재오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역시 흰색은 각성제가 맞구나.’
박미향은 부러진 팔다리가 무색하게 바닥에서 튕겨 올랐다.
“꺽.”
그 반작용으로 대기하고 있던 올가미와 채찍에 감겨 옴짝달싹을 못했지만.
“그게 각성제인 걸 모를 거라 생각했어?”
“꺼억.”
박미향의 전신에서 혈관이 도드라지고 근육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염력으로 느껴지는 반발력은 김재오보다 더 강했다.
‘신체적으로 그놈보다 못한데 힘이 더 강한 거 보면 약이 개량형인가?’
그럴 것이다.
기술이란 놈은 멈출 줄 모르고 끝없이 발전하니까.
-스윽.
주머니 넣어두었던 나이프를 꺼냈다.
그놈에게서 얻었던 트렌치 나이프가 아니라 박미향의 허벅지에 차고 있던 것이다.
드로잉 나이프.
일종의 수리검이라 해야 할까.
투척용으로 한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단도였다.
‘확인할 건 다 확인했으니 더 버티는 건 소모적인 행위지.’
드로잉 나이프를 움직여 박미향의 입천장을 뚫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두개골을 피한 덕분인지 그도 아니면 나이프의 날이 날카로워 그런지 수월하게 뇌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출혈을 조금이라도 잡기 위해 나이프가 파고든 상처부위의 살을 여며 구멍을 막았다.
“끄으……”
박미향은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뇌가 곤죽이 되었으니 아무리 효과가 좋은 각성제라도 소용없는 것이었다.
나는 박미향의 피가 눈과 귀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기 전에 시체를 소각로에 넣었다.
-삑.
‘Start’라고 적힌 시동버튼을 누르자 타이머에 15분이라는 표시가 떴다.
사람 하나 흔적도 없이 태우는데 고작 15분이라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우우우웅.
기계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소각로에서 전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등을 지고 이경호에게 다가갔다.
“다음은 당신 차례네?”
이제 검은색 약의 효과를 확인할 차례다.
“살려주십시오.”
“먹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살려달라, 잘못했다, 미안하다, 용서해줘, 다시 안 그럴게. 뭐 그런 거야.”
“부, 불치병인 아이가 있어서 돈이 필요했습니다. 원래 장의사인데다 그냥 시체를 태우는 일이라기에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아주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구나.
그만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근데 말이야. 자식 걱정을 하면서도 거기가 불끈불끈 섰나봐? 채찍으로 때리고, 구속구를 물리고, 밧줄로 묶고. 또 무슨 짓을 했지? 수갑이 있는 거 보면 저것도 채워서 한 건가?”
“……!”
“내가 봤을 때 불치병은 너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곧바로 입을 쩍 벌렸다.
이대로 검은색 알약을 먹이면 어떻게 될까?
맹독이라 했으니 그냥 부르르 떨다가 죽을까?
아니면 영화에서 본 것처럼 검은 피를 토하다 숨이 끊어질까?
시험해보면 알게 될 일이다.
“으으으! 하여후해요!! 하모해흡히아!”
나는 놈을 노려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거 알아? 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미안하다 빼고는 다 했다는 거?”
“흐으으!”
“그치? 네가 생각해도 내가 널 살려줄 이유가 없지?”
검은색 알약을 입에 넣으려는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발신자를 확인하니 전민성이었다.
부장 핑계를 대더니 역시 달려온 모양이다.
“왔어요?”
-그래, 인마. 너 어디야?
“형,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어요. 혹시 누나랑 같이 있으면 안 들키게 표정관리 잘하고.”
-같이 있긴 한데, 왜?
“방금 전에 청부업자가 미연이 누나를 노렸었어요.”
-뭐?! 진짜야?
“쉿! 티 내지 말라니까요. 자기 목숨 노린 킬러가 왔었다는 걸 알면 누나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 그래.
“제가 막긴 했는데 또 있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미연이 누나랑 같이 있어요. 아무리 막나가도 검사를 건드리진 않을 테니까요.”
-지금 그…… 사람이랑 같이 있어? 내가 그쪽으로 갈게. 잠깐 좀 보자.
잠시 고민했다.
어쩌면 지금이 그의 속마음을 확인할 기회인 것 같았다.
내 편인지 시험을 하려면 말이다.
마침 가동 중이던 소각로도 ‘삐삑’하는 소리와 함께 소각이 완료되었음을 알려왔다.
만약 전민성이 태도를 바꾼다 해도 살인의 증거 따윈 없었다.
눈앞의 목격자를 제외하면.
‘입을 닫을 방법은 많지.’
나는 부들부들 떠는 이경호를 뒤로 한 채 전민성에게 말했다.
“룸살롱 후문으로 나오면 좌측에 2.5톤 트럭이 있어요. 거기에요.”
-알았어.
통화를 끝낸 후 나는 검은색 알약을 이경호의 한쪽 콧구멍 깊숙이 넣었다.
“잘 들어.”
“네, 네.”
“조금 있으면 검사가 올 거다. 난 그 사람에게 널 넘길 생각이야.”
“가, 감사합니다.”
“대신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방금 넣은 알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그리고 눈도 뜨지 말고. 눈 뜨면 그대로 죽는 거야.”
눈알이 빠진 걸 감추기 위해서다.
나는 손수건으로 놈의 눈가에 묻은 핏자국을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알겠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아니지. 전부 다 말해. 네가 최미연을 납치하고 강간한 후, 이 소각로에서 태우려고 했다는 것까지 전부 다.”
“저기 납치는 제가 아니라 박미향이······”
“박미향은 여기 없었어. 박미향이 한 짓도 전부 네가 한 짓인 거야. 즉, 너는 청부업자면서 시체소각까지 하는 놈인 거지.”
“……!”
“싫으면 그 알약, 지금 당장 목구멍에 넣어줄게.”
이경호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민하더니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나는 놈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납치, 강간, 소각.
그리고 청부의뢰의 조건인 한설아의 행적과 레인보우에 대한 것까지 전부.
“다 외웠지?”
“네,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잘해. 시킨 대로 잘 하면 살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벽에 있는 로프로 놈의 팔다리를 단단히 묶었다.
사지를 부러뜨린 걸 감추기 위해서였다.
-지이잉.
때를 맞춰 다시 진동이 울린다.
전민성이 도착한 것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트럭 뒷문을 열었다.
-철컹, 끼익.
문이 열리자 전민성, 그가 혼자 그곳에 서있었다.
“왔어요?”
“안에 그놈이야? 미연이를 노린 놈이? 아직 안 죽었네?”
“네, 타세요.”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래.”
전민성은 내 손을 잡고 트럭 안으로 들어왔다.
-끼익,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