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35
35화. 과연 무슨 선택을 할까?
염석훈으로부터 최미연의 습격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방금 전에 청부업자가 미연이 누나를 노렸었어요.
전민성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한설아에 이어 최미연까지 노리다니.
그녀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안 될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염석훈이 그녀를 구했다는 생각과 함께 화가 차츰 가라앉았다.
‘이번에 미연이까지 구한 걸 보면 역시 내 생각이 맞는 거야.’
아마도 청부업계에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최미연을 구한 것일 터.
지난번 자신을 구한 것과 달리 이번은 본인의 입에서 들었으니 나중에 딴소리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지, 저 의뭉스러운 놈이 또 다른 말을 할지도 몰라.’
어쩌면 둘만 있을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거나, 시치미를 떼며 그런 적 없다고 할지도 몰랐다.
증거가 없으면 핑계대기 나름인 것이다.
전민성은 직접 눈으로 확인해서 이번 기회에 관계를 확실히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그……”
하마터면 그 새끼라고 할 뻔 했다.
옆에서 최미연이 빤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다간 의심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랑 같이 있어? 내가 그쪽으로 갈게. 잠깐 좀 보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염석훈도 지금 상황에서 거절할 수 없는지 결국 위치를 말해주었다.
“야, 뭔데? 그 사람이라니? 석훈이가 누구랑 있는데?”
최미연이 눈꼬리를 올린 채 무슨 통환지 물었다.
말해줄 순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기가 세다지만 목숨이 위험했던 상황.
자칫 일상생활도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그것대로 그녀에게 좋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차 빼다가 접촉사고가 났대. 시비가 좀 붙었다는데 잠깐 갔다 올게.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시비? 같이 가.”
“내가 가서 해결한다니깐. 네가 가봤자 싸움밖에 더 해?”
“싸움? 너 날 뭘로 보고.”
“이거 봐, 이거 봐. 자기 맘에 안 드니까 바로 쌍심지 켜고 달려들잖아.”
“……”
최미연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넌 그냥 여기 있어. 금방 해결하고 올게. 내가 누구냐? 대한민국 검사 아니냐.”
“지X하네. 검사라는 거 말고는 자랑할 게 그렇게 없냐?”
“야, 인마. 전문직 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해야지, 언제 하냐? 어쨌든 오래 안 걸릴 테니까 여기서 수다나 좀 떨고 있어.”
“알았으니까 빨리 가봐, 석훈이 기다리겠다. 끝나면 전화하고.”
전민성은 그녀의 마음이 바뀔 새라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룸살롱 건물을 빙 돌아 후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염석훈의 말처럼 2.5톤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후우, 저 안에 있단 말이지.”
그때 트럭 뒷문을 눈앞에 두고 전민성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아니, 의문이라기보다 꺼림칙한 기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석훈이 그놈이 알려달란다고 순순히 알려줄 놈인가?’
과거 어렸을 때도 그는 고집이 어찌나 센지 입을 꾹 닫고 실어증에 걸린 적이 있었다.
다시 만난 지금도 그랬다.
그간 겪어본 염석훈의 성격으로 보아 이렇게 쉽게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를 시험하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속내를 여러 번 내비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반응했으니까.
그 심리적 벽을 무너뜨리려면 필요한 것이 분명했다.
염석훈이 내는 시험을 통과해 오롯이 녀석의 편이라는 걸 증명하는 절차가!
‘그게 뭘까? 녀석의 살인행위를 눈감아 주는 거? 아니면 나도 녀석처럼 사람을 죽여야 하나?’
전자라면 그럴 용의가 있다.
상대는 최미연을 죽이려한 인간백정이니.
하지만 후자라면?
만약 염석훈이 자신처럼 사람을 죽이라고 종용한다면?
‘난 못해.’
그것만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중앙지검에서의 생활은 수많은 강력범죄를 겪게 했고,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으니까.
-나도 저 범죄자들 처지였다면 저렇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반면교사든 역지사지의 마음이든.
그러다 전민성은 국과수에서 처음으로 직접 시체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된, 처참한 시체를.
그걸 보고 느낀 첫 감정은 자신은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을 저렇게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었다.
“후우······”
그는 심호흡과 함께 억지로 생각을 떨쳐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염석훈이 원하는 게 어느 쪽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결정은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지이잉.
통화 재다이얼 버튼을 누르자 한 번의 신호와 동시에 트럭의 뒷문이 열렸다.
-끼익.
그 속에는 염석훈, 그리고 의문의 남자가 밧줄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왔어요?”
염석훈의 물음에 전민성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제압되어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안에 그놈이야? 미연이를 노린 놈이? 아직 안 죽었네?”
범인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살아있기 때문일까.
전민성은 다시금 가슴 속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불덩어리라도 삼킨 듯이.
아마도 최미연을 건드리려고 했던 것에 대한 분노일 터.
전민성은 뜨거운 날숨과 함께 마음을 다스리며 한 걸음 다가갔다.
“네, 타세요.”
염석훈이 손을 내밀었다.
마치 내 손을 잡으라는 듯한 의미처럼 보였다.
“그래.”
전민성은 엄지손가락을 교차하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화물칸에 들어서니 내부가 더 확실하게 보였다.
가장 안쪽에는 특수제작된 걸로 보이는 소각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테이블.
여기서 밥을 먹지는 않을 텐데 간이침대 크기의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반대쪽은 설치물이 없는 대신 벽에 갖가지 흉기가 걸려있었다.
“이 차가 말로만 듣던 시체소각차구나. 진짜 있는 줄은 몰랐네. 어이, 거기. 내 말이 맞지?”
그의 물음에 묶여있는 남자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고분고분하네? 석훈이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염석훈은 대답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거렸다.
“근데 왜 안 죽인 거야?”
“아무리 후루꾸 검사라지만 사람 왜 안 죽였냐고 묻는 건 좀 그렇잖아요?”
“뭐 어때, 이런 X새끼는 죽여도 돼. 살아있어 봤자 사회의 암적인 존재니까.”
제법 세게 말했는데도 염석훈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역시 말만으로는 저 벽을 무너뜨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전민성의 뇌리를 스쳤다.
“이놈, 어떻게 해줄까?”
“형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세요.”
“처리?”
“죽이든, 살리든, 데려가서 법적인 처벌을 받게 만들든 원하는 대로 하시라는 말이에요.”
“……”
옵션은 두 가지.
죽이거나 살려서 법적으로 처리하거나.
전민성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시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의 예상처럼.
‘원하는 게 어느 쪽인지 알아야 장단을 맞추지······’
얼굴을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철저하게 통제된 표정관리가 염석훈의 속내를 감추고 있으니.
‘일단 청부업자 놈을 심문해보자.’
당장 결정을 내리기보다 시간을 끌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염석훈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는 단서라도 얻길 바랄 뿐이었다.
“야, 눈깔 뜨고 나 봐.”
“……”
“이 새끼가! 눈 뜨라니까!”
놈은 본드라도 붙인 듯 눈을 질끈 감고 뜨지 않았다.
그때 염석훈이 말했다.
“제가 눈 뜨지 말라고 했어요. 사람 죽이고 태우는 새끼라 그런지 눈빛이 살벌하더라고요.”
“눈을 보면서 반응을 봐야 심문을 하지.”
“반응 안 봐도 술술 불 거예요.”
“그래?”
말하는 투로 보아 거짓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성격으로 봐서는 아마도 있는 그대로,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려는 것이 분명했다.
전민성은 소리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쉰 후 질문을 시작했다.
“왜 최미연을 노렸지?”
그의 물음에 놈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답을 했다.
의뢰가 들어왔고, 그 조건은 무엇이며, 어떻게 처리할 계획이었다는 것까지.
전민성은 눈을 깜박깜박거리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미쳤어?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압니다. 남부지검 검사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제발 절 잡아가십시오.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해주십시오.”
“……”
자백을 하더라도 정도가 있다.
형량을 깎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신형을 살기 위해 제 입으로 전부 불다니.
도대체 염석훈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러는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보다 놈이 자백한 내용이 전민성의 뇌리를 지배했다.
그에게는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미연이를 강간하려 했고, 죽이려 했고, 시체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니.’
죽이고 싶다.
그대로 갚아주진 못할지언정 이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짓이라도 좋으니 울화를 쏟아내고 싶은 감정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전민성은 차안을 빠르게 훑었다.
벽에 걸려 있는 쇠망치가 보였다.
-덜그럭.
작지만 묵직한 쇳소리가 화물칸 내를 공명하듯 울렸다.
벽에 걸린 흉기들 중 보지 않아도 그 물건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소리였다.
“쇠, 쇠망치? 농담이지? 당신 검사잖아!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전민성은 홀린 듯이 망치자루를 들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끈적한 무언가가 손과 자루를 이어붙이는 기분이 들었다.
-드르르르.
바닥을 끄는 소리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사, 사, 살려줘.”
“……”
“X발! 검사가 이래도 돼?! 당신 미X어?!!”
“검사는 왜 이러면 안 되는데?”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진 망치가 빠르게 아래로 향했다.
“아악!”
***
나는 팔짱을 끼고 전민성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예의 쇠망치가 놓여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이경호를 죽이지 못했다.
그저 죽지 않을 정도로 팔다리를 향해 세 번 휘둘렀을 뿐이었다.
아마도 강간, 살인, 증거인멸이라는 세 가지 죄에 대한 그 나름의 사적보복이 아니었을까.
“석훈아, 나 탈락이냐?”
등을 보인 채로 전민성이 물었다.
“탈락이라니요?”
“너, 나 시험했잖아.”
“제가 형을 왜 시험해요?”
“탈락이구나. 하하. 좀 믿어주지, X새끼. 더럽게 깐깐하다니까.”
웃음이 나온다.
저 모습만 봐도 전민성이 아직 과거의, 우직하고 순박한 그때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고뇌하는 모습에서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좋은 사람이고, 믿고 의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진 그가 나 같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고, 시험은 이제부터다.
‘과연 무슨 선택을 할까.’
내가 전민성에게 원하는 건 살인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나는 그가 법이라는 경계선에서 그 너머에 있는 나를 지지할 수 있느냐를 확인하고 싶다.
-스륵.
염력으로 이경호의 콧속에 있는 알약을 움직였다.
그걸 느낀 놈이 속이 텅 빈 눈을 부릅떴다.
마치 왜 약속을 어기냐고 묻는 듯 했다.
‘뭐?’
늘 말하지만 난 X새끼들이랑은 거래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