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어디서 대가리를 굴려
잠시 침묵하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질러봐. 내가 나갈 것 같아?
“……”
-왜? 못하겠어? 들어오지 못하니까 나오게 하려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나보지?
“그건 아는 것 같은데, 타죽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는 것 같군.”
-……뭐?
“난 태워서 죽여 봤거든. 그래서 잘 알아. 그게 얼마나 끔찍한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얼마나 잔혹한지.”
그 말과 함께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을 모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화르륵.
자그마한 모닥불이 생기자 염력으로 하나씩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담벼락을 넘어 날아가는 불덩어리들은 마치 손에 쥐고 펑펑 쏘는 폭죽처럼 보였다.
그렇게 불씨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집 이곳저곳에 옮겨놓았다.
시골주택이니 다 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나와라, 토끼야.’
***
제이는 창밖에서 화기가 보이자 당황했다.
설마 진짜 불을 지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미X! 정말 태워죽일 셈인가?’
신규업체라면 자신을 사로잡아서 정보를 캐내려 할 것이라 생각했다.
브로커가 가진 정보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방식이었다.
‘어쩌지······’
이 상태로는 꼼짝없이 타죽게 생겼다.
제이는 연기가 차오르기 시작하자 거실에 있던 책장을 밀었다.
안쪽에는 각종 총기와 나이프 등 다양한 장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래쪽 서랍을 열어 방독면부터 찾아 썼다.
-후욱, 후욱.
스마트폰을 손에 든 그녀는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본부에 지원을 생각했지만 불이 번지는 속도로 보아 그 전에 타죽기 생겼다.
게다가 경찰이나 소방서에 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이곳에 모아놓은 무기들이 드러날 테니.
온전하게 드러날 바에 불에 타버리는 게 나은 상황이었다.
‘도대체 저자는 누구지?’
데이지와 이경호에 이어 다섯 명의 현직 청부업자가 순식간에 당했다.
코리우스, 포플러, 시클라멘, 크레오메, 메리골드.
그들 다섯이 함께 움직이면 죽이지 못할 타겟이 없다고 여겼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는 아닐 거야. 조직적으로 움직인 게 분명해.’
그렇다면 바깥에 있는 놈들은 최소 두 배인 열 명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동등한 수로 그들을 상대할 실력자를 보유한 조직은 적어도 국내에는 없으니.
‘잠깐만······ 국내?’
그녀의 머릿속에 불현듯이 떠올랐다.
국내에 반대되는 국외라는 단어가.
그리고 케이를 죽인 걸로 예상되는 스컬의 킬러가 연상되었다.
‘그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번엔 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스컬의 트렌치 나이프를 얻기 위해 온 거라면 그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러니 굳이 자신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야, 어쩌면 케이를 죽이고 주변까지 정리하려는 것인지도 몰라.’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함인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엘이 케이의 죽음에 개입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확인부터 해보자.’
***
-지이이잉.
전화가 온다.
이미 불이 꽤 번졌는데 튀어나오지 않고 대화를 시도한다니.
불은 그렇다 치고 연기도 꽤 나는데 버티는 걸 보면 방독면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냥 나오면 되지 뭔 전화질이야.’
약간의 짜증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원하는 게 뭐죠?
“뭔지 알면? 줄 수는 있고?”
-돈을 원하면 얼마든지 지불할게요.
“돈? 내가 너희들 같은 버러지로 보이나보지?”
-그럼 뭘 원하는 거예요?
“알고 싶으면 나와.”
-돈도 아니면 나이프를 얻은 걸로 된 거 아닌가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나이프?
그 말에 저절로 오른쪽 다리로 시선이 간다.
정확히는 발목에 찬 트렌치 나이프.
뭔가 있어 보이더니 정말 뭐가 있긴 있나보다.
‘그놈이 죽은 게 나이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걸 노리는 누군가가 있고, 그게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장단에 맞춰줘야지.
상대의 착각은 정보를 얻을 기회니까.
“이유야 뻔하지 않나.”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그래야 상대가 추측하는 답을 스스로 말할 테니.
-우리는 케이의 복수를 할 생각이 없어요.
저쪽 세계에서는 케이로 불리는구나.
이렇게 순순히 복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불에 타죽기 직전이니 멘탈이 온전하겠냐마는.
“그걸 정하는 건 너희들이 아니야.”
-어떻게 하면 당신의 결정을 바꿀 수 있죠?
“계속 말했을 텐데, 알고 싶으면 나오라고.”
-바꿀 기회가 있는 건가요?
“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 네가 알아야 할 건 하나야. 거기 있다간 확실히 죽는다는 거.”
고민하는지 그녀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나는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다.
급한 건 내가 아니니.
-하나만 물을게요. 케이의 나이프, 해골이 몇 개죠?
“쓸데없이 뭘 확인하려고 하는 거지?”
-그것만 말해줘요. 그럼 순순히 나갈 테니까. 말해주지 않는다면 여기서 죽겠어요.
“귀찮게 하는군. 네 개다.”
-……!
“대답이 됐나보군. 그럼 마당으로 나와.”
나는 더 이상 대화를 끌었다간 거짓말이 탄로 날 것 같아 통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전기충격기를 던져 처마 밑에 숨겼다.
-콰앙.
그 순간 젖은 천을 뒤집어쓴 사람이 문을 부수고 튀어나왔다.
토끼가 토끼굴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천을 벗어던지고 몸을 일으키자마자 전기충격기를 염력으로 조종했다.
-치지지지직!
***
“으음······”
중년여자가 눈을 뜨자 나는 소각로를 닫으며 말했다.
“이제 깨어났나?”
그녀는 쇠줄로 묶여 있는 자신의 손발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좌우를 돌아보고 어딘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긴······”
“그래, 익숙하지? 너희들이 사용하던 시체소각차야.”
나는 가동버튼을 누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당신, 스컬이 아니군요.”
“스컬? 그놈들이 케이라는 놈의 나이프를 노리는 놈들인가보지?”
“……!”
“너무 자책하지마. 불구덩이 속에서 그 정도 판단을 한 거면 잘 한 거니까.”
“케이도 당신이 죽인 건가요?”
나는 바짓단을 들어 올려 트렌치 나이프를 보였다.
“보다시피.”
“당신 도대체 누구죠? 케이를 죽이고, 또 청부업자 다섯을 혼자서 상대하다니……”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지금부터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거야.”
“……”
“여기 이놈들 보이지?”
나는 그녀의 옆에 있는 시체 두 구를 가리켰다.
“방금 들어간 놈이 세 번째야. 앞으로 15분 후면 소각이 끝날 거고. 거기 두 놈까지 포함하면 너한테는 45분이라는 시간이 남은 거지.”
“원하는 게 뭐예요?”
눈빛에 두려움이 없다.
이 상황에서 의연한 모습이 영 거슬린다.
“태도가 마음에 안 드네.”
“……?”
“뭐가 그렇게 당당해?”
“무슨······”
“브로커라서 자주 봐서 그래? 여기 이놈들이 너한테는 그냥 고깃덩이로 보이나?”
나는 그녀의 구두를 벗기고 와이어 가닥을 발끝에 갖다 대었다.
“무슨······!”
와이어 가닥이 발가락을 파고들자 그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바들바들 떨었다.
“독기가 있네. 꽤 아플 텐데 신음소리도 안 내다니 말이야.”
“……”
마치 눈빛으로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노려본다.
“눈이 참 무서워? 그런 눈을 표독스럽다고 하는 거겠지?”
“……죽여. 사람 가지고 놀지 말고.”
“너희들도 가지고 놀았잖아. 내로남불인데, 그거.”
-쑤우욱.
와이어 가닥을 단번에 허벅지까지 올려버렸다.
그녀는 턱을 바들바들 떨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여, 이 새끼야!”
“내가 말했잖아. 너한테는 45분이 남았다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차례를 지켜야지. 저놈 거의 끝나가니까 이제 30분 남았네. 아직 시간 많아.”
나는 뒷주머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들었다.
-치직. 치지직.
스파크가 튀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 번 경험해 봤다고 맛을 아는 것이다.
“기절할 정도로 아팠지? 그랬을 거야. 이거 이경호라는 그놈 거거든. 변태적인 취향이 있던 놈이더라고.”
“……”
“이거에 당한 피해자들은 얼마나 아팠을 거 같아?”
발가락에 꽂힌 와이어가닥의 반대쪽 끝에 전기충격기를 갖다 대었다.
-치지지지지직!
“끄르르르!”
왼발 전체가 파들파들 떨고 근육이 쉬지 않고 움찔거렸다.
다리에 집중된 전격 때문이었다.
-쑤우욱.
나는 와이어 가닥을 빼내주었다.
안심을 시켜주어 마음의 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 살려주세요.”
“……”
역시 효과가 좋다.
어째서 전기고문이 대표적인 고문방법 중 하나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럴 때 다시 고문을 가하려하면 심리적으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나는 와이어가닥을 오른발 끝에 갖다 대었다.
“아아악! 악! 잘못했습니다! 으흐흑! 제발!”
아직 안 찔렀거든.
그때 삐삑하고 소각이 끝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두 구의 시체 중 하나를 끌고 가 소각로에 넣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시동버튼을 눌렀다.
“참 너희들은 사람 귀찮고 성가시게 만든단 말이야. 뭘 잘했다고 당당하게 굴어? 지금 네 모습, 잊지 마.”
제이는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하나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뒷일은 각오해야 할 거야.”
“……네.”
“이름. 본명과 코드네임까지 전부.”
“정현주, 코드네임은 제이(J)예요.”
박미향에게 들었던 코드네임과 동일하다.
적어도 거짓은 아닌 것 같다.
정현주, 제이.
성의 첫번째 영문과 코드네임이 일치한다.
그러고 보니 케이 역시 본명이 김영식이니 같은 방식이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대충 지었을까?
거짓말을 하기 위해 즉석에서 지어낸 건 아닐까.
-지잉.
나는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하며 그녀의 얼굴을 몰래 찍고 이름과 함께 전민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따로 시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부러 최미연이 아닌 한설아의 사건을 먼저 입에 올렸다.
“얼마 전에 뉴스 봤지? 룸살롱 종사자 한모 씨 살인사건.”
모르진 않을 것이다.
당시 부검결과가 나온 이후로 언론에도 그 잔인한 살해수법과 세 명의 살인범이 찍힌 영상이 나왔으니.
하지만 아직 제보는 없었고, 뚜렷한 증거도 없어 지지부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네. 알고 있어요.”
“그 세 놈, 누군지 알아? 너희들이 관리하는 청부업자 아냐?”
“아니에요. 이 차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프로젝트 수행 후에 반드시 시체를 없애니까요.”
“의뢰인이 원할 수도 있잖아?”
“만약 의뢰인이 원했더라고 거절했을 거예요. 시체를 남기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그리고 그 살인사건은 저도 봤는데 그 정도 일처리는 저희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요.”
“무슨 말이지?”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업계에서 보수가 가장 비싼 곳이 저희예요. 그 살인사건은 돈만 주면 할 놈들이 널렸고요. 사실 현관번호 몰카로 찍고, 들어가서 마취시킨 후에 죽이는 게 전부잖아요.”
“그놈들 머리카락은 물론 DNA, 지문 하나 안 남겼어.”
“요즘 그 정도는 다 신경 써요.”
정말 별 거 아니라는 얼굴이다.
저놈들에겐 사람 하나 죽이는 게 그렇게나 쉬운 일인가?
“절 살려주시면 그놈들 알아볼게요. 어떻게든 찾아드릴게요.”
“지금 나랑 협상하자는 건가?”
“혼자서는 못 찾으실 거예요. 저라면 찾을 수 있어요.”
“어떻게?”
“수법으로 봤을 때 무적자, 불법체류자, 밀입국자, 조선족 중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쪽 계열의 브로커를 통하면 가능할 거예요.”
“흐음……”
“최대한 빨리 알아봐드릴게요. 제발······”
어떻게든 살아나가려고 발악을 한다.
한설아 사건을 들었으면 제일 먼저 자신이 해야 할 말이 뭔지 알 텐데.
“근데 말이야. 그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있잖아?”
어디서 대가리를 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