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40
40화. 당연히 보내줘야지, 지옥으로
‘당연히 보내줘야지, 지옥으로.’
하지만 이런 내 속내를 당장 밝힐 생각은 아니었다.
아직 캐낼 정보가 더 남아 있으니.
“네가 속한 브로커 조직에 대한 거, 아는 대로 다 불어.”
“약속이 다르잖아요.”
“생각해보니까 너는 날 귀찮게 하지 않는다고 해도 윗선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잖아. 케이라는 놈도 그렇고, 오늘 다섯 놈을 추가로 죽였으니까. 나라면 가만 안 있을 거 같거든.”
“제가 설득할 수 있어요. 당신 실력을 알고도 건드릴 정도로 저흰 바보가 아니에요.”
“아까 말했지? 그런 말 가지고는 협상이 안 된다고. 내가 왜 후환을 남겨야 해?”
“그래서 우리 조직을 없애겠다고요?”
“내가 약속한 건 너지 너희 조직이 아니거든.”
눈알을 굴리는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점조직이라며? 뭘 고민해? 네가 알고 있는 한 놈만 불어.”
“……”
“사람목숨, 파리목숨으로 여기는 주제에 의리 같은 게 있는 건가?”
“마, 말하면 난 죽어요.”
“네가 죽기 전에 내가 다 죽여줄게. 점조직? 별 거 아니야. 점을 잇다보면 선이 되고, 면이 되는 거 아니겠어?”
“……”
“끝까지 입을 다물겠다, 이거야?”
그때 문자가 왔다는 걸 알리는 진동음이 느껴졌다.
나는 폰을 들어 전민성이 회신한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제이의 신분확인에 대한 것이었다.
‘정현주, 만 28세?’
40대 후반의 중년여자가 아니라 20대 후반이라니.
나는 순간 그녀가 거짓정보를 말해주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뒷내용을 보고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한성글로벌 직원? 케이라는 그놈이 다녔다는 회사랑 같잖아?’
같이 움직였던 두 년놈이 같은 회사 소속이다.
그렇다면 이 정보는 사실에 가깝다는 말이었다.
나는 일단 나이에 주목했다.
이 정보가 맞다면 짚이는 건 하나밖에 없다.
‘가면? 아니면 분장?’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당겨보고 만져보니 가면은 아니었다.
“뭐, 뭐하는 짓이에요?”
“이거 분장이 아니라 거의 변장이네?”
“……!”
마치 특수효과 같은 분장술이었다.
피부의 탄력부터 교묘하게 만든 주름과 눈꼬리를 처지게 한 것, 코의 모양과, 입매까지 접착제 같은 걸로 변형해놓았기에 꼼꼼하게 만져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지이잉.
전민성으로부터 추가 문자가 들어왔다.
거기엔 정현주의 얼굴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와, 이렇게까지 달라지는구나.’
나이는 물론 두 얼굴의 인상까지 완전히 다르다.
비교하면서 보니 마치 모녀지간처럼 연관성이 느껴지지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동일인인지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이거 봐. 이렇게 변장하고 다니는데 나중에 호박씨 까면 내가 귀찮아지지 않겠어?”
나는 문자를 그녀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똑똑히 보라는 식으로.
“케이라는 그놈도 그렇고, 너까지 한성글로벌 소속인 거 보면 거기가 브로커 조직이 맞는 거 같은데. 어때?”
“……!”
“틀려도 상관없어. 네놈들 거짓신분을 받아준 거 보면 분명 뭐가 있어도 있을 테니까.”
그때 삐삑하고 마지막 소각이 끝났다는 신호가 들렸다.
나는 고갯짓으로 소각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들리지? 마지막 기회야. 브로커 조직, 그리고 한성글로벌에 대해 말해.”
“흐흐, 후환을 들먹이는 거 보면 어차피 죽일 거 아는데 내가 말할 것 같아?”
“계속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해봐, 전기충격이든 뭐든.”
“이젠 좀 짜증나네? 내가 얘기했을 텐데, 아까 보였던 네 모습 잊지 말라고. 왜 벌써 까먹어?”
“흐흐흐……”
나는 그녀를 끌고 소각로 앞으로 갔다.
“의뢰서 보니까 너희들 조건 같은 거 잘 지키는 거 같던데. 입맛에 맞게 사람 죽여주고 많은 돈을 받는다니, 누가 생각했는지 몰라도 사업수완이 참 대단해?”
“……”
“약속했던 대로 살려줄게. 근데 나도 조건이 있어. 이 안에서 재주껏 살아나와 봐.”
“X새끼……”
“걱정 마, 그렇게 악조건은 아니니까. 여기 패널을 보니까 온도조절이 되더라고.”
“서, 설마……”
“그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알지? 그 설마 맞아.”
뒷덜미를 들고 머리부터 소각로에 집어넣었다.
“아악! 미X새끼! 그만해!”
“미X놈들은 미X새끼가 상대해야지. 네 말대로 이 구역의 미X새끼가 나야. 왜 남의 영역을 침범해?”
나는 그녀를 밀어 넣고 소각로의 문을 닫았다.
“흐흐흐, 나 혼자 죽을 거 같지? 당신도 조만간 오게 될 거니까 두고 봐.”
“나도 사람인데 언젠간 죽겠지. 근데 좀 오래 기다려야 할 거야. 너 같은 쓰레기들 다 죽이고 갈 거거든.”
“으흐흐흐흐.”
실성을 했나?
마치 무성도예의 이무성과 비슷한 웃음소리를 흘린다.
나는 가장 낮은 온도를 설정했다.
서서히 태워질 것이다, 아주 서서히.
-꺄아아악!
비명소리를 뒤로한 채 트럭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핸드폰의 재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지이잉.
기다렸다는 듯이 전민성이 전화를 받았다.
-어, 얘기해.
“이쪽은 다 정리했어요.”
-뭐 내가 도와줄 건 없고?
“다 태워버렸으니까 뒤처리 할 건 없어요. 사진하나 보내줄 테니까 누군지 좀 찾아봐줘요.”
-아까 그 여자 말고 또 있어?
“설아누나가 만났던 여자예요. 미연이 누나 청부 건과도 연관이 있는 걸 보면 그 여자를 찾으면 배후까지 다 밝힐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름은 모르고 사진만 있는데 가능할까요?”
-얼굴만 가지고는 어려울 거 같은데…… 일단 해볼게. 부자라는 단서도 있으니 끼워 맞추다보면 언젠가는 나오겠지.
나는 찍어놓은 중년여자의 사진을 그에게 전송했다.
“방금 보냈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그래, 확인했어. 그리고 한성글로벌은 어쩔까? 정현주도 거기 다닌 거 보면 분명 브로커 놈들과 연관이 있는 거 같은데.
“형이 저번에 팠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면서요. 이번엔 제 방식대로 알아볼게요.”
-그럴래? 그럼 대충 가지고 있는 정보라도 보내줄게.
“고마워요, 형.”
-고맙긴. 조심해라.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네.”
나는 저 멀리 화마가 충천한 곳을 바라보았다.
가을이라 그런지 집을 태운 후 뒷산까지 옮겨 붙고 있었다.
저 정도면 산에서 흘린 핏자국도 다 지워질 것이다.
‘산세가 다른 곳과 이어지진 않으니 빨리 진화될 거야.’
밤이 늦었는데도 소방차 사이렌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불길이 번지기 전에 막기 위해 인근 소방서가 총출동한 모양이었다.
나는 고생하는 분들을 위해 익명의 기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조금만 더 하면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남은 단서는 성형외과 의사, 그리고 한성글로벌.
나는 다음 행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중 한 곳으로 평소에도 인적이 많은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곳 마을 어귀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탕.
조수석에서 문을 닫으며 내린 사람은 강신재였다.
“여기야?”
그의 물음에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 손정만이 답했다.
“좀 더 올라가야 합니다. 차량이 더 못 들어가는 곳이라 여기서 주차한 겁니다.”
“그래, 가보자. 앞장서.”
“네, 형님.”
두 사람은 언덕을 한참동안 올라갔다.
손정만이 걸음을 멈춘 곳은 달동네의 중간쯤에 위치한 낡은 슬라브 주택 앞이었다.
-끼익.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광경은 폐가나 다름없었다.
강신재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가 흡연을 만끽하는 사이, 손정만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그의 손에는 묵직한 캐리어 가방이 두 개 들려있었다.
“형님, 누가 손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확인해보시겠습니까?”
“됐어. 너, 나, 그리고 죽은 칠상이만 아는 돈인데 누가 건드렸으려고. 이제 몇 군데 남았지?”
“세 군데 남았습니다.”
“혹시 몰라 꿍쳐 둔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네 말대로 블랙뱅크 외에 다른 구멍도 만들어놓아서 천만다행이었어.”
강신재는 담배 한 모금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많이 섭섭했지? 흐흐, 내가 그땐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형님.”
“생각해보면 너랑 칠상이는 밑바닥부터 같이 올라온 형제나 다름없었는데 말이야. 내가 뭐에 씌인 건지 참. 그런 널 두고 김천수 같은 X새끼를 믿었다니……”
“그때 그놈을 거두는 게 아니었습니다.”
십오 년 전,
여러 이권이 개입된 재개발 사업 건으로 처음 인연이 생겼던 김천수였다.
당시 가장 알짜배기에 넓은 부지였던 고아원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조직들이 알력싸움을 벌였고, 땅주인인 김천수가 흑룡파에 찾아와 땅문서를 적정가격에 넘겼기에 그들은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김천수의 배짱을 알아본 강신재가 그를 측근으로 거둔 것이었다.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어쩌겠냐.”
강신재는 쓰게 웃으며 손정만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형님, 이 돈은 어떻게 쓰실 겁니까?”
“이걸로 청부업자 놈들 고용할 거다. 김천수, 오현조, 그리고 오미진 그년까지 다 죽여야지.”
김천수는 오현조에게 붙은 것뿐만이 아니라 강신재의 아내인 오미진에게 그가 강현성의 죽음 이후 움직인 일에 대해서도 모두 말해버렸다.
그 때문에 오미진은 혼외자식인 강현성에게 자금지원만 한다는 약속을 저버린 강신재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자신을 지지하는 조직의 중진들을 이끌고 오현조에게 모든 힘을 몰아준 것이었다.
즉, 강신재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김천수, 오현조, 오미진이 합작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랬다가는 수습이 안 될 겁니다. 설사 성공한다 해도 누가 형님을 따르겠습니까?”
주먹세계에도 최소한의 룰이 있다.
외부 세력의 개입은 그 룰을 정면에서 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습할 필요 없어.”
“예?”
“정만이, 너. 내가 전에 틈날 때마다 조직 내부정보 따로 모으라고 지시했던 거 기억하지?”
“네, 정기적으로 형님께 보고 드리기도 했고요.”
“그 세 년놈들 다 죽인 후에 그 자료 가지고 장인어른과 담판을 지을 거다.”
“회장님께서······ 받아들일까요?”
강신재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다들 모르는 사실인데. 장인어른, 여기가 맛이 갔어.”
“예?”
“치매라는 말이야. 그래서 일선에서 물러난 후 요양 중인 거고. 제 정신일 때 찾아가서 상황설명하면 받아들일 거다. 오현조 자식새끼들이 있잖냐. 손주들이라도 살리고 싶으면 받아들여야지 어쩌겠어?”
“그래도 회장님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치매를 앓고 계셔도 쉽지 않을 겁니다. 틀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럴지도 몰랐다.
늙고 병들었다지만 상대는 맨손으로 흑룡파를 일군 인물이니.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강남서 짭새 놈들도 날 찾는다며?”
“형님, 설마······”
손정만이 말끝을 흐리자 강신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이 안 되면 조직 전체를 무너뜨릴 거다. 그리고 그때 흘러내리는 부스러기를 우리가 주워 담을 거고.”
“……!”
“그 정도만 해도 어지간한 규모의 조직 하나는 꾸릴 수 있을 거다. 해외로 도피하는 것보다는 남는 장사지.”
“확실히…… 조직 주요 인사들을 다 잡아 넣을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 겁니다.”
“된다니까. 흐흐흐.”
“대신 오현조, 오미진, 김천수. 그 셋을 확실히 죽일 수 있어야 합니다. 청부업자는 어디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강신재는 담뱃불을 털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 큰 건을 맡을 놈들은 대한민국에 한 곳뿐이잖아. 블룸(Bloom), 그쪽에 연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