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어떻게 들어간다……
한성글로벌.
그곳이 내가 정한 다음 타겟이었다.
박미향을 수술한 성형외과의사라는 단서도 있지만, 그놈은 브로커와 관련이 있는 곁가지일 뿐이니 몸통을 직접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한성글로벌 주위에서 상황을 엿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아무런 움직임이 없지?’
중계무역.
수출업자와 수입업자 사이에서 마진을 챙기는 페이퍼워크 회사라고 듣긴 했다.
하지만 어떻게 오고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 있을까.
건물은 1층이 식당이었고, 2층은 호프집, 그리고 3층을 한성글로벌이 사용하고 있었다.
호프집은 낮에는 문을 열지 않으니 위층을 왕래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성글로벌의 관계자라고 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없었다.
단 한 명도.
‘설마 그놈들이 당했다고 잠적한 건가? 벌써?’
고작 어젯밤의 일이다.
그 짧은 시간에 연락이 안 된다고 근거지를 옮겼다는 건 놈들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무슨 첨단기기가 있을지 모르니.
“손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그때 여직원이 주문한 커피를 직접 가지고 왔다.
여긴 직접 서빙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문득 이곳에서 일하는 그녀라면 한성글로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지 않을까 싶어 묻기로 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저기요, 뭐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그녀는 쟁반을 가슴에 안고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기 앞 건물 3층에 있는 회사 있죠.”
“네? 네······”
왜 시무룩해지는 걸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저 회사 사람들, 여기 자주 오나요?”
“자주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오세요. 근데 그건 왜……”
“아, 제가 취업준비생이거든요. 저 회사에 지원해볼까 생각 중이라서요.”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말을 받았다.
“그러시구나. 저 회사분들 다들 친절하시고 좋으신 거 같았어요. 근데 회사 옮겼다고 들은 거 같은데요…… 모르세요?”
“네? 언제요?”
“오늘 새벽에 화물차 불러서 짐 싣고 가는 거 봤다고 저기 식당아주머니께서 그러셨어요.”
“아······”
이럴 수가.
설마 했는데 진짜 옮겼다니.
“혹시 어디로 갔는지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뭔가 아쉬운 듯이 웃으며 카운터 쪽으로 돌아갔다.
정작 아쉬운 건 난데.
‘혹시 휴대폰이나 소지품들을 다 태웠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중에 어떤 장치가 있고 이상이 생기면 잠적하는 걸로 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첨단기술은 내가 지닌 염력만큼 은밀하고 대응하기 까다롭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주머니 속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전민성이었다.
나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형. 타이밍 멋지네요.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왜? 무슨 일 있어?
“한성글로벌에 왔는데 이미 도망가고 없네요.”
-헐, 벌써?
“네, 저도 이렇게 대응이 빠를 줄은 예상 못 했어요. 미연이 누나는요?”
-말도 마라. 집에 가겠다는 거 뜯어 말리느라고 죽을 맛이야.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기 전까진 형이 책임지고 붙들고 있어요. 이놈들 하는 짓 보면 진짜 위험한 놈들이니까.”
-휴우, 알았어. 그리고 한성글로벌 쪽은 내가 다시 좀 알아볼게. 회사는 옮겨도 자금흐름은 쉽게 바꾸지 못하니까. 아무리 위장업체라도 하루아침에 거래처 끊고 회사 문 닫진 않았을 거야. 정 안 되면 이한성이라는 사장놈 뒷조사하는 방법도 있고.
“네, 부탁 좀 할게요.”
전민성은 맡겨두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민간인사찰이 될 수도 있기에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괜찮을까 싶었지만, 전에 말한 범법자를 통하겠거니 생각해서 말을 아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나는 그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한성글로벌이나 이한성에 대한 걸 알아낸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자면 좋지 않았다.
-이 새끼들, 완전히 잠수 탄 거 같아.
“추적이 안 돼요?”
-한성글로벌은 회사 자체를 다른 곳에 매각했고, 이한성은 자택도 내놓고 사라졌어. 카드도 안 쓰는 걸로 봐서는 숨으려고 작정한 게 분명해.
“몇 년 지나면 다른 회사명, 다른 신분으로 또 기어 나오겠죠?”
-아마 그렇겠지. 그리고 거기 다녔던 직원 찾아가서 물어봤는데 자기도 하루아침에 문자로 해고통지 받아서 어이가 없었대. 그 사람은 자기 회사가 위장업체인지 전혀 모르고 있더라.
“그 직원은 일반인은 맞아요?”
-이전 직장, 학교, 통화내역 등등 할 수 있는데까지 다 조사했어. 확실해. 그리고 청부살인 관계자면 이한성과 같이 숨었겠지. 알아보니까 이한성까지 총 다섯 명이 잠적했더라고.
“잠적한 그놈들이 브로커겠네요. 대놓고 숨은 거 보면 신분도 바꿀 게 분명한데…… 골치 아픈 놈들이네요, 정말.”
-어쩔 수 없지, 사람 죽이는 게 업인 놈들이잖아. 그건 그렇고 석훈아, 너 뉴스 봤어?
“뉴스요?”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챙겨보는 편이다.
전민성이 굳이 언급한다는 건 무언가 이상한 사건이 있다는 걸로 들렸다.
-지금 곳곳에서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어제도 뉴스속보로 올라오긴 하던데요.”
-지금 길거리에서 칼로 찌르고 둔기로 내려치고 난리야.
“흑룡파예요?”
-아니. 방금 올라간 천호동 사건 있을 거야. 그거 먼저 확인해봐.
포털에는 묻지마 살인에 대한 기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 천호동 사건은 한 밤 중에 네 명이 흉기를 들고 길가는 사람을 덮쳐서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피해자가 30대 회사원으로 나오네요? 깡패나 조직이라는 말도 안 보이고요.”
-그래, 검경에서도 조폭은 아니라고 보고 있어. 근데 잘 보면 공통점이 두 가지나 있어.
“뭔데요?”
-첫째, 피해자들. 전부 다 전과가 있고 죄의 경중을 떠나서 박미향처럼 죄질이 나빠. 내가 봤을 때 일반시민으로 위장한 청부업자가 아닌가 생각돼.
“그놈들이 되려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거 같아. 그리고 둘째, 용의자들. CCTV 사각이나 어두운 장소에서 범행을 저질러서 얼굴확인이 어려워. 그나마 블랙박스에 찍힌 게 있긴 한데 화질이 안 좋아서 마찬가지로 정확한 식별이 어렵고. 그리고 사체나 현장, 그리고 이동경로를 CCTV로 추적해서 지문을 땄는데 감식이 안 돼.
“……청부살인이네요.”
-그런 거 같아. 강남서에서는 불법체류자, 밀입국한 조선족 쪽으로 보고 있대.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제이라는 여자가 말했던 무적자, 불법체류자, 밀입국자 등을 대상으로 한 브로커.
그놈들이 움직인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왜지? 뭐 때문에 서로 칼을 겨누는 거지?’
죽어야 할 놈들끼리 상잔을 하면 좋긴 하다만 그 배경이 궁금했다.
“지들끼리 싸우는 것 같네요.”
-그런 거 같지?
“네. 근데 이 사건은 왜요?”
-너 그쪽 업계에 있잖아. 무슨 일인지 배경 좀 알아봐주면 안 되냐?
전민성에게 살인행위를 터놓긴 했어도 내 능력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기에 킬러로 오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쩌지.’
모른 척하기엔 사건이 너무 크다.
알았다고 하려면 그쪽 업계와의 연결점이 있어야 알아볼 수 있을 테고.
‘그래, 그놈이 있었지.’
이제는 하나 남은 단서.
확인해보니 그놈은 아직 잠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놈은 한성글로벌 소속이 아니면서 청부업계와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곁가지라고 생각해 미뤄둔 놈인데 어쩌면 그놈이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있을지도 몰랐다.
“민성이 형,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고맙다. 내가 밥 한 번 쏠게.
“그것보다 전에 보내준 사진 속 여자는 어떻게 됐어요?”
-아직 소식이 없네. 돈 많은 사람들 개인정보 대조하면서 확인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 부자들이 좀 많아야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알았어요. 비슷한 사람이라도 좋으니까 의심 가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 줘요.”
나는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하고 전민성이 예전에 보내주었던 퀸 성형외과 병원장, 최종운의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
-삐리리리. 삐리리리.
맞춰 놓은 알람이 시끄럽게 울어댄다.
나는 부스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오후 네 시.
지금부터 준비해서 나가면 다섯 시다.
그래도 놈의 퇴근시간까지 30분이 더 남는다.
나는 일부러 수면패턴을 바꿔 지금 일어난 것이었다.
오늘밤은 길어질지도 모르니.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썼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레인지로버를 끌고 강남 서초동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빌딩숲 사이사이 고급형 오피스텔들이 자리한 동네였다.
‘비싼데 사네.’
오늘 노리는 타겟, 최종운이 사는 곳이다.
전민성이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직접 박미향의 성형수술을 담당했고, 로얄팰리스라는 오피스텔에서 산다고 한다.
그녀에게 회복효과가 뛰어난 약을 준 의사.
그자라면 킬러들의 각성제와 독약, 즉효성 클로로포름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직장보다는 집이 나을 것 같아서 오긴 했는데······’
최종운은 40대 중반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혼자 살기 때문에 집을 작업 장소로 택한 것이었다.
문제는 고급형 오피스텔의 보안이 어찌나 철저한지 거주자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마치 외부와 격리된 채 자신들만의 세계를 뽐내는 듯 보인다고 해야 할까.
몰래 숨어들긴 힘든 상황이다.
‘최종운이 사는 곳은 펜트하우스라고 했어. 날아서 올라갈까?’
탑층을 사용하는 보통 펜트하우스도 아니고 옥상 전체다, 그것도 옥상정원이 딸린.
그러니 날아서 잠입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보는 눈을 피할 수가 없다.
로얄팰리스의 외부 CCTV 문제가 아니다.
바로 주변.
일정거리를 두고 로얄팰리스를 둘러싼 빌딩숲이 문제인 것이다.
‘밑에서 옥상까지 올라가면 그 와중에 누가 봐도 볼 거야.’
아파트와는 다르게 사각이 없다.
빽빽하게 들어찬 고층건물들이 마치 서로를 감시하는 듯 했다.
‘밑에서 올라가지 말고 위에서 내려가자.’
나는 근처에 차를 주차한 후 장비가방을 먼저 챙겼다.
‘로프, 와이어, 전기충격기, 권총, 그리고 건물간에 거리도 있으니까 망원경도 챙기자.’
그리고 로얄팰리스를 둘러싼 빌딩 중 가장 높은 곳을 택해 내부로 들어갔다.
그곳은 보안이 철저하지 않기에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로 최상층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복도창문을 이용해 밖으로 나갔다.
옥상으로 연결된 문은 잠겨 있을 테니 날아서 올라간 것이었다.
“전망 좋네.”
이래서 사람들이 높은 곳을 선호하는 것 같다.
답답하게 만들었던 빌딩들을 발아래 두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수평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곳에는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로얄팰리스가 있었다.
나는 망원경을 꺼내 옥상 곳곳을 살폈다.
그런데,
‘이런 씨, 저건 또 뭐야?’
옥상에, 그것도 살고 있는 장소에 CCTV라니.
사방에서 일제히 정원을 찍고 있어 빈틈이 없어 보인다.
저래서는 한두 개 가려서는 침입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전부 가리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어떻게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