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43
43화. 누가, 어떻게 알겠나?
*본 작품에는 강압적이거나, 다소 폭력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소재는 소설 전개상 필연적인 부분이오나, 글에 등장하는 범법 행위를 실제로 행할 시, 형법상 저촉될 수 있습니다. 작품 감상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
보안상태로 봐서는 CCTV말고도 적외선 감지기까지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곧바로 가드들이 달려올 터.
한 개 층으로 격리된 것이 아니라 옥상이라는 개방된 공간이라 방범이 더욱 철저한 듯 보였다.
‘포기하고 다른 장소에서 노릴까?’
이건 어쩔 수 없다.
하고자 한다면 들킬 것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때 죽을 뻔 했던 이후로 이제는 노출되는 것도, 타살의 흔적이 남는 것도 예전만큼 신경이 쓰이는 건 아니니까.
노출되더라도 내가 누군지 모르게 하고, 흔적이 남아도 누가 죽인 건지 알 수 없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반인이 엮이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선만큼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된다.
‘일단 놈이 돌아올 때까지만 기다려보자.’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주변 환경은 물론이고, 놈의 복귀에 따른 방범상태의 변화, 취침시간 등 모든 것을 말이다.
그러고도 기회가 없다면 다른 곳에서 노리면 그만이다.
-휘이이잉.
고층이라 바람이 거세다.
늦가을에 접어들어 쌀쌀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나는 모자 위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석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태양이 사라진 밤은 건물들이 발하는 각각의 빛으로 뒤덮였다.
야경을 감상하는 그때, 로얄팰리스의 펜트하우스에서도 불빛이 밝혀졌다.
“왔구나.”
비싼 집인 걸 자랑이라도 하듯 커다란 거실유리창 덕분에 내부가 훤히 보였다.
곧이어 잠깐씩 거실 쪽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놈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뭐야, 혼자가 아니잖아.’
거실로 나온 최종운의 옆에 예상치 못한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미혼이라고 했으니 친구나 애인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안 좋아. 오늘은 날이 아닌 건가······’
저 여자가 최종운과 마찬가지로 청부 브로커와 관련이 있다면 모를까 확인되지 않은 이상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다.
기절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런 종류의 위해를 가하는 것도 꺼려지긴 했다.
내가 아는 방법은 숨을 못 쉬게 만들어 실신시키거나 전기충격기로 정신을 잃게 만드는 등 과격한 방법 뿐이니.
‘그때 클로로포름 스프레이를 다 쓰지만 않았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다.
그 약품만큼 쉽게 사람의 정신을 잃게 만드는 수단이 없었는데.
‘저 의사 놈은 비슷한 거 가지고 있지 않을까?’
덤으로 박미향이 먹었다던 그 약도 있으면 좋을 텐데.
붓기를 가라앉히는 것 말고도 다른 상처의 회복에도 효과가 있다면 앞으로의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 왼쪽 손목도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고 말이다.
이런저런 약물과 관련한 욕심에 쉽게 자리를 뜨기가 힘들었다.
-휘이이잉.
내가 칼바람을 맞으며 망원경에서 눈을 못 떼는 사이.
그들은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며 웃고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집 안쪽으로 들어간 걸로 보아 방이나 화장실로 간 모양이었다.
‘어? 저놈은 또 뭐하는 거지?’
그때 홀로 있던 최종운이 뭔가 수상쩍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망원경의 배율을 높여 뭘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X새끼, 자리 비웠을 때 약을 타는구나.”
정황상 그 유명한 3대 데이트 강간약물 중 하나이지 않을까.
마시면 정신도 잃고 기억도 일부 날아가버리는 위험한 약이라고 들은 적 있다.
“알아서 기회를 만들어 주네.”
염력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연결이 가능하다.
이 조건은 내 시야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 카메라를 두고 그걸 통해 연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미리 연결해놓고 카메라를 통해 보면서 움직이는 건 가능하지만 말이다.
다만 시력을 올려주는 망원경, 시야를 반사시키는 거울을 통해 연결하는 건 가능했다.
‘……지금!’
나는 놈이 집 안쪽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틈을 타 염력으로 와인잔의 위치를 뒤바꿨다.
그 다음은 볼 것도 없었다.
여자가 돌아오자 둘은 뭐가 좋은지 건배를 했고 와인잔을 바닥까지 비웠다.
그리고 10분쯤 지났을까.
약기운이 돌았기 때문인지 최종운이 흐느적거리더니 어느 순간 소파에 풀썩 쓰러져버렸다.
여자가 아무리 흔들고 난리를 쳐도 반응이 없었다.
“데이트 강간약물 무섭네. 진짜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잖아.”
나는 여자가 곧 떠날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보통 저런 상황이면 열 받아서 집에 가기 마련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삼십 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외투를 챙겨 집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삼십 분을 더 기다렸지만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나는 망원경을 통해 최종운에게 염력을 연결했다.
일으켜 세운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자세도 디테일하게 제어했다.
그렇게 나온 옥상정원.
집주인이라 그런지 보안과 관련해 아무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약빨이 세긴 세네.’
밤이 늦었기에 찬바람이 꽤 매섭다.
하지만 최종운은 아직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놈을 옥상난간까지 이동시켜 투신자살처럼 뛰어내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허공에 띄워 내가 있는 빌딩 쪽으로 옮겼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내가 있는 이곳이고 두 번째가 로얄팰리스다.
그러니 내 발밑 두세 개 층 정도에서는 지금 날아오는 최종운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늦은 밤이라 불이 꺼진지 한참이고 지금 경비원이 순찰을 돌거나 하지 않으면 들킬 염려는 없었다.
게다가 아래쪽 길거리를 지나는 행인을 살펴도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면, 혹은 바닥을 보며 걸어가기 마련이니.
-쿠당탕.
다 날아온 최종운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럼에도 놈은 깨어나지 않았다.
-우득, 우드득.
사지를 부러뜨려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없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 약을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다시 두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약은 손에 넣어도 못 쓰겠네······’
세 시간을 기다려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더군다나 이렇게 추운데 말이다.
그로부터 다시 한 시간 후,
드디어 최종운이 기절한 놈들의 전매특허인 으으음을 시전하며 눈을 떴다.
무려 네 시간 만에 일어난 것이다.
놈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한 듯 보였다.
“다, 당신 누구야? 어? 이거 왜 이래?”
그래, 그렇게 반응해야지.
지금 여기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네 앞에 있다는 것, 그리고 네 사지가 부러진 상태라는 게 중요한 거다.
“내 팔! 내 다리! 아악!”
놈은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고통을 표현했다.
나는 되려 놈의 오른다리를 염력으로 비틀며 말했다.
“아파?”
“악! 아파! X발! X나 아파아악!”
무슨 엄살이 이렇게 심한지.
지금까지 겪었던 놈들과 정반대의 반응에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꾸, 꿈인가? 그래, 꿈일 거야. 가, 가위 눌린 게 분명해.”
“꿈? 이게 지금 꿈인 거 같아?”
염력으로 놈의 사지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비틀어 짜주고 나니 그제야 현실을 자각하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제 좀 상황파악이 돼?”
“누, 누구십니까?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왜 이러는 거 같아?”
“혹시 의료사고 관련한 분이십니까? 무료로 복원수술…… 아니, 배상까지 해드리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으허어엉.”
“……”
조폭, 청부업자, 브로커.
내가 그동안 악질적인 놈들만 상대하긴 했나보다.
너무 쉬워서 내 스스로 아쉬운 마음이 들 줄이야.
‘그래,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겠지. 그놈들이 이상했던 거야.’
더 이상 고문을 가할 생각을 접고 놈을 내려다보았다.
“최종운,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네, 네. 말씀하십시오. 뭐든 다 말하겠습니다.”
“박미향, 수술한 적 있지?”
“박미향, 박미향, 박미향······”
“뭘 그렇게 되새겨? 수술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건데.”
“제가 워, 워낙 수술이 많아서······”
짜증나지만 그럴 수 있다.
환자 이름 일일이 다 기억하는 의사는 많지 않을 테니까.
나는 전민성에게 받았었던 문자, 박미향이 수술한 얼굴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거 보면 좀 기억이 나겠어?”
“……”
그는 화면을 뚫어지게 보더니 다시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다.
“대가리 굴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 앞에서 대가리 굴리다가 죽은 놈들이 한두 명이 아니거든.”
“그, 그게 사실은 제 이름만 걸어놓고 대리수술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그렇습니다.”
“대리…… 수술?”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적이 있긴 하다.
다른 말로 유령수술이라고 했었나?
여러 종류가 있지만 내가 들은 건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의사 대신 수술방에 들어가서 대리수술을 하는 경우였다.
‘왜 의료사고를 먼저 입에 올렸는지 이제 알겠네.’
한두 건이 아닌 것이다.
그러고도 어떻게 낯짝 두껍게 병원운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엔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 같네. 내가 좀 도와줄게.”
“살려주십시오. 진짜 모르겠습니다.”
나는 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가방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던 킬러처럼 소음기를 총구에 대고 돌렸다.
“사, 사, 살려주세요.”
살고 싶으면 머릿속에 든 걸 꺼내놔야지.
단서는 분명 그 안에 있을 테니까.
“이래도 기억이 안나?”
머리통에 총을 갖다 대었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표정만 보면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셋 센다. 하나.”
“으허어엉. 진짜 기억 안 납니다.”
“둘.”
“히익! 히이익!”
“셋.”
“으악!”
-찰칵.
“아참, 총알을 안 넣었네.”
입을 파르르 떠는 놈은 얼마나 무서웠는지 바지에 지려버렸다.
나는 그 모습이 연기는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놈이 아닌 건가······’
만약 내가 청부업 브로커면 이런 놈은 절대 파트너로 쓰지 않을 것 같다.
병원장이라면서 강간약물을 쓰는 것도 그렇고 질질 짜면서 지리까지 하다니.
찌질해도 너무 찌질하다.
‘혹시 이 자식 병원을 이용만 한 건 아닐까?’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놈에게 물었다.
“대리수술은 누가 하지?’
“예? 그게······ 간호조무사나 알바 나온 의과생에게 맡기기도 하고,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하기도 합니다.”
“그 외의 경우는?”
“……”
“정말 없어?”
천천히 탄창에 총알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혼비백산한 놈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생각났습니다! 나, 남지웅 박사님! 그분께서 몇 년에 한 번씩 오셔서 메스 잡곤 하십니다. 몇 주 전에도 오셨었으니까 그 박미향이란 여자도 그분께 수술 받았는지도 모르겠네요.”
“남지웅 박사?”
“의료계에서 퍼펙트 보더라고 불리시는 분입니다. 흉부, 뇌, 신경, 장기이식, 성형 등 못하는 게 없고 각종 전문병원들 돌아다니면서 의술도 베풀고 하십니다.”
뭔가 냄새가 난다.
그 이상한 약들과 퍼펙트 보더라는 별칭이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다.
“하아, 결국 넌 그냥 영양가 없는 방패막이일 뿐이었네.”
“예?”
“모르는 게 나아.”
“읍!”
나는 놈의 코와 입을 막아서 호흡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3분 만에 녀석을 기절시킨 후 옥상 끝으로 끌고 갔다.
길가에는 아직 행인들이 있었다.
건너편 로얄팰리스는 1, 2층이 앞으로 돌출된 형태.
투신자살로 위장해 떨어뜨려도 지나가는 행인들은 다치지 않을 구조였다.
‘지금 떨어뜨리면 CCTV에 찍힌 시간이랑 바닥에 떨어진 시간이 다를 거야.’
그렇다고 이 시체를 이 빌딩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도 적절한 뒤처리가 아니다.
그랬다간 괜한 흔적만 더 흘릴 뿐이다.
대략 네 시간의 오차.
분명 의심할만한 단서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알겠나?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기절한 최종운을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염력으로 로열팰리스까지 이동시켰다.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행인들이 일제히 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모습을 감춘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