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44
44화. 김천수는 거기 온다, 반드시
강남서 형사계.
박인섭 계장은 팀장들을 모아 놓고 보드마카를 손에 쥐었다.
그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화이트보드 위에 몇몇 사건들을 나열했다.
-화류계 종사자 한설아, 타살.
-흑룡파 행동대장 장권일, 자살.
-흑룡파 현장수금책 신중원, 사고사.
-흑룡파 간부 최칠상, 돌연사.
-강남일대 마약총책 다수, 실종.
-무성도예 대표 이무성, 직원 김재오, 실종.
-흑룡파 강신재, 손정만, 잠적.
“이건 우리 관할지에서 일어난 사건 중 흑룡파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건들.”
그는 밑줄을 쫙 긋고 아래에 계속해서 사건들을 적어나갔다.
-한성글로벌 직원 김영식, 투신자살.
-퀸 성형외과 병원장 최종운, 투신자살.
“이건 최근 관할 내에서 일어난, 자살로 위장된 걸로 추정되는 사망사건이다.”
두 사건은 투신자살이 분명하나 수상한 부분이 있어 종결 짓지 않은 사건들이었다.
“먼저 흑룡파 건을 보면 한설아 씨 살인사건을 제외하면 사고나 실종으로 위장된 타살로 보고 있잖아.”
팀장들은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박인섭이 하고자하는 말의 의도를 알기 때문이었다.
“근데 어떻게 증거 하나 가져오는 놈들이 없어?!”
“……”
“여기가 아프리카야? 남미야? 대한민국에 깔린 CCTV와 블랙박스가 몇 댄데? 옹기종기 모여 사는 덕에 사람들 눈은 또 얼마나 많고?!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는 게 말이 돼?”
그의 질타에 차동욱 2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설아 씨 사건은 면목이 없습니다. 피해자에게 사용된 약품출처, 범인들의 살해수법대조 등 계속 수사를 하고는 있지만 현장증거가 너무 적습니다. 잔인한 살해수법을 감안했을 때 조선족 계통으로 탐문수사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관련 보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우······”
박인섭은 한숨만 나왔다.
탐문수사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조선족, 불법체류자가 대상일 때였다.
그의 말은 보고를 위한 보고일 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전에 체크해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박인섭은 넌지시 염석훈의 DNA 대조에 대해 물었다.
“한설아 씨, 그리고 흑룡파 관련 사건까지 전부 대조해봤는데 깨끗했습니다.”
“확실해?”
“계장님, 그쪽은 아무래도 잘못 짚은 것 같습니다.”
그는 헛기침과 함께 민정학 1팀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크흠! 민팀장, 자살한 흑룡파 놈들은 정말 아무것도 나온 게 없어? 보고하기 껄끄러워서 묵혀두고 있는 것도 좋으니까 이 자리에서 풀어봐.”
민정학은 지지부진하던 흑룡파 조직원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기회라 보고 얼른 입을 열었다.
“여러 번 보고 드렸다시피 깨끗합니다. 장권일과 최칠상은 관련 CCTV 보관기간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누군가 잠입한 흔적이 없었고, 신중원은 부검결과 약물의 흔적, 그리고 휴대폰 포렌식에서 협박을 당한 일도 없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이 세 건은 종결지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성도예 건은?”
“뒷마당의 흙에 두 사람의 혈흔이 섞여 있는 걸 국과수에서 확인했습니다. 가마 앞에도 있었던 걸로 보아 누군가가 살해한 후 시신을 태운 걸로 추정됩니다.”
“용의자는?”
“전민성 검사에게 제보한 사람입니다. 무성도예에서 장기적출의 흔적이 발견된 걸로 봐서 장기매매를 하는 놈들이 자신들을 은폐하기 위해 공급처인 무성도예를 폐기한 게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꼬리를 자르려고 공급처를 날렸다라······ 갈수록 잡기가 힘들어지는군, 후우.”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조사하고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박인섭은 이 역시 보고를 위한 보고란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꼬리를 잡지 않는 이상 이미 잘린 꼬리를 가지고 장기매매 일당을 뒤쫓긴 어려우니.
“약쟁이들은?”
“그쪽은 단속 피해서 자기들 은거지에 숨었다는 소문까진 확인했는데 이후 종적이 묘연합니다. 목격자 수배되길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판로 만들었는지도 모르니까 마약반이랑 공조해서 빨리 찾아. 약 퍼지면 골치 아픈 거 알지? 강신재는 아직 소재파악 안 됐어?”
그때 기다렸다는 듯 3팀장, 서진산이 답했다.
“오현조 밑으로 들어간 김천수가 부하들 데리고 성북동 쪽으로 움직인 걸 확인했고, 저희 팀과 4팀이 출동했습니다.”
“성북동? 현장지휘는 마팀장이 맡고 있나?”
“네.”
“좋아, 회의 끝나면 나도 같이 가보자고.”
박인섭은 다음으로 밑줄 아래, 2건의 투신자살을 톡톡 찍었다.
“노팀장. 이 사건들, 수상한 부분 하나씩 있었지. 확인해봤어?”
“네.”
5팀장, 노구식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그는 목덜미를 긁으며 다른 말을 먼저 꺼냈다.
“저, 계장님. 죄송하지만 보고 드리기 전에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김영식 씨가 수상하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서류만 딱 봐도 이상했잖아.”
노구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가 말입니까?”
“김영식, 국적회복자라며? 어렸을 때 해외로 입양됐었고. 그런 케이스가 흔한 줄 알아?”
“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잖습니까?”
“내가 봤을 땐 이상했어. 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모 가꿀 나이도 아닌 중년남자가 뜬금없이 성형외과 건물에서 투신한 것도 그렇고. 그냥 촉이고 감이야.”
그 말에 옆의 팀장들이 그에게 박인섭의 촉에 대해 말해주었다.
노구식은 강남서에 전근한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그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소문으로 얼핏 들었던 거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김영식 행적이 많이 수상했나보지? 나한테까지 그런 말 하는 걸 보니.”
“네, 계장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사망당일 김영식의 행적을 역추적해보니, 또 다른 이상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들고 있던 핸드폰에 사진을 띄워 앞으로 내밀었다.
사진에는 세 명의 남녀가 찍혀 있었다.
“김영식은 성형외과 건물에 가기 전에 남부교도소에 있었습니다.”
“남부교도소?”
“네, 당시 교도소에 갔던 기자들 카메라, 차량 블랙박스 확인하니 김영식 씨가 박미향을 데리고 가더라고요.”
“박미향?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왜 있잖습니까. 중학생, 고등학생 여자애들 둘이서 여덟 살짜리 꼬마애 납치해서 죽인 사건요.”
“아, 이제 기억나네. 걔가 벌써 출소했구나. 근데 두 사람이 연관이 있었나?”
“제가 조사한 바로는 없습니다.”
“옆에 있는 중년여자는 누구지?”
“확인된 게 얼굴밖에 없어서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박인섭이 화이트보드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있네. 그 셋이 들어간 건물에 퀸 성형외과가 있고, 거기 병원장까지 투신했으니 말이야. 최종운 사건, CCTV 녹화시간 고장 난 건 뭐래?”
옥상 CCTV의 뛰어내린 시간과 바닥에 떨어진 시간의 오차.
몇 초, 몇 분 차이도 아니고 무려 4시간이니 기계고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가 여러 번 확인했는데 고장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장 아니면? 중간에 어디 매달려 있었던 건가?”
“매달려 있을만한 구조물은 없었습니다. 설사 암벽등반가라도 불가능했을 텐데 하물며 최종운은 술을 마신 상태였으니 말도 안 되죠.”
“끈으로 매달려 있었다면?”
“그랬다면 시신에 압박된 부분이 있었을 거고, 그도 아니면 옥상 난간에 끈 같은 게 쓸린 자국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도 아니고. 그럼 공중에서 4시간 동안 둥둥 떠 있다가 떨어졌다는 거야? 아니면 뭐 시간이 거기만 멈추기라도 한 건가?”
“좀 더 조사해보겠습니다.”
박인섭은 보드마카로 탁탁 찍으며 말했다.
“이 두 건. 무조건 연관 있어. 백퍼센트 타살이야. 그리고 사망패턴을 보면 최면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 그쪽으로도 좀 알아봐.”
“알겠습니다.”
“1팀, 2팀은 보고한 대로 수사진행하고 흑룡파 조직원들 사망사건은 이만 종결시켜.”
민정학과 차동욱이 수첩을 덮으며 답했다.
“네, 계장님.”
“넵.”
박인섭은 회의종료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입에 올렸다.
“다들 알겠지만 요즘 수도권 분위기가 흉흉해. 다른 관할지라지만 묻지마 살인이 다섯 건이나 생겼고, 포천 화재현장에서 타다만 총기 수십 정이 발견되었으니 말이야.”
“……”
“그러니 연쇄사망, 실종사건들 조사하면서 기레기들한테 떡밥 흘리지 않게 조심들 해. 그거 타살이라고 의심되는 기사 한 줄이라도 나오면 다들 올해 집밥은 다 먹은 거니까.”
그는 이어 3팀장, 서진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팀장은 지금 바로 나가서 차 대기시켜. 바로 성북동으로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
-지이이잉.
전민성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온갖 구박을 들어야했다.
-야! 최종운, 네가 죽였지?
“네.”
-아주 그냥 정보 주는 대로 다 죽이는구만. 무슨 저승사자 명부도 아니고. 근데 그놈도 청부업체랑 관련 있었어?
“있긴 한데 그놈도 이용당한 거였어요.”
-근데 왜 죽였어?
“죽일 만하니까 죽였죠.”
나는 놈이 대리수술을 한다는 것과 데이트 강간약물을 사용했다는 걸 말해주었다.
-죽어도 싼 놈이긴 하네. 근데 하필 투신자살로 죽이냐? 으이구, 센스 없긴!
센스타령이라니.
내가 지금 통화하는 사람이 검사가 맞나 싶다.
“보안이 철저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지가 뛰어내리게 만들었다며? CCTV 네 시간 텀이 있는 건 또 뭐고?
“그건 영업비밀이에요.”
-영업 참 살벌하게 하네.
“근데 그건 왜요? 흔적이 다소 남긴 했어도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했는지 모를 텐데.”
-그건 그런데 강남서에서 김영식 건과 이번 최종운 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어서 그렇지.
“아, 똑같은 투신자살이라서요?”
-그래, 인마. 거기다 퀸 성형외과라는 공통점도 있잖아. 단서가 두 개나 겹치니까 의심을 할 수밖에. 어지간하면 패턴 좀 늘려.
“알았어요.”
-그리고 전에 알아봐 달라는 건 어떻게 됐어?
“좀 더 기다려야겠는데요. 사건이 크긴 해도 조직 내부적인 일이라 파악이 힘드네요. 그리고……”
-그리고 뭐?
“아, 아니에요. 좀 더 확실해지면 말할게요.”
나는 남지웅 박사에 대해 언급하려다 입을 닫았다.
전민성의 말대로 그가 주는 정보대로만 살인을 저지르다 보면 꼬리가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가 검사라도 개인정보에 접근한 흔적은 남을 테니까.
게다가 남지웅 박사는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만큼 공개된 정보가 많기도 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전민성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참, 형사들이 강신재 위치 알아냈다던데 혹시 너도 알아?
내가 청부업계 정보로 아는지 확인하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강신재와 관련해 전민성이 원하는 바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뇨, 몰라요. 그놈 어디 있어요?”
-왜? 이번엔 거기 가서 그놈 죽이려고?
“네. 전에 절 미행한 적이 있었거든요. 파리가 앵앵 대는데 잡아야죠.”
-저, 저기 석훈아.
“말해요. 듣고 있어요.”
-안······ 죽이면 안 되냐?
이제 보니 최종운보다는, 위치가 드러난 강신재를 찾아가서 죽일까봐 연락한 것으로 보였다.
“왜요?
-전에 말했잖아. 강남서에서도 그놈 찾고 있다고.
“아, 강신재가 가지고 있는 정보면 흑룡파 일망타진할 수 있다는 그거 말이에요?”
-그래, 이참에 흑룡파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거지. 분명 김천수도 엮어서 알거지로 만들 수 있을 거고.
그 순간, 나는 머리를 짚었다.
주변에서 앵앵대는 파리는 강신재가 아니라 정작 김천수 그놈이었는데 여태 살려두고 있었다니!
‘생각해보면 설아누나가 그놈 때문에 그렇게 된 거나 다름없는데.’
청부업자 놈들 때문에 잊고 있었다.
용의자에서 풀려났다는 걸 듣자마자 김천수부터 조졌어야 했는데.
“형, 김천수도 강신재 위치 알고 있을까요?”
-아마 그럴 거야. 애초에 그쪽 움직임 보고 경찰들도 움직인 거라고 들었거든.
배신한 놈이 배신당한 놈의 위치를 알면 어떻게 행동할까?
그것도 힘의 차이가 역력하다면 말이다.
백이면 백, 찾아가서 죽이려 하지 않을까?
그러니 김천수는 거기 온다, 반드시.
“강신재 위치 알려줘요. 제가 그놈 살려서 경찰에 넘길 테니까.”
덤으로 꼬여드는 파리들은 다 때려잡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