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악! 너 이 새끼, 왜 날 찔러?
이한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제이와 청부업자 여섯이 당한 걸로 끝이 아니었다라……’
최근 며칠 사이 브로커들이 관리하는 청부업자 다섯이 추가로 살해당했다.
언론에서는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살인이라 기사를 쏟아내지만 그들 모두 신분을 위장한 소속 킬러들이었다.
그런데 두 사건을 비교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스타일이 달라. 제이 쪽은 시체를 태우기라도 했는지 흔적도 없고, 안가도 불태워서 증거가 남을 여지를 없앴어. 하지만 이번 다섯 건은 누가 봐도 근본 없는 놈들 소행이야.’
세, 네 명씩 조직적으로 움직인 점.
그리고 지문확인이 안 되는 걸 보아서는 그들이 유력했다.
‘이렇게 대놓고 공격하는 이유가 뭐지? 이쪽 밥그릇을 노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목적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제이의 팀을 공격한 세력도 있으니 맞상대를 하기엔 여러모로 불안요소가 많은 상황이었다.
엘은 무리하게 블룸의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당분간 조용히 있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뚜르르르.
그는 지체하지 않고 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엘. 말씀하십시오.
“흑룡파 프로젝트는 취소해야 할 것 같네. 다시 지령을 내릴 때까지 소속 킬러들은 모두 안가로 피신하라고 전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오와 이에게도 똑같이 지령 내릴 거야. 자네와 에스도 자중하고.”
-신화 건도 말입니까?
“그래, 한동안은 공급 못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취소하면 선수금의 열 배를 지급해야 하잖습니까. 그건 어쩌실 겁니까?
“당연히 못 주지.”
깡패 따위에게 줄 돈은 없었다.
설사 있다 해도 주지 않겠지만.
“돈 받을 사람이 사라지면 그 문제는 해결되는 거 아니겠나?”
그는 오현조 측에 강신재의 위치를 흘릴 생각이었다.
***
성북동 북정마을.
이곳 역시 백사마을처럼 빈집으로 가득 찬 달동네다.
강신재와 손정만은 비자금을 숨겼던 장소에서 한동안 기거했다.
북정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달동네와 달리 지리적으로 서울 중심에 위치해있어 동서남북 어디로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형님,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깥 사정을 살피러 나갔던 손정만이 돌아와 꺼낸 첫말이었다.
“피하다니? 왜?”
“저희가 북정마을에 있다는 게 노출됐습니다. 지금 천수가 밑에 애들 데리고 오고 있다고 합니다.”
“여길 어떻게 알았지?”
“그건 차차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서두르시죠”
강신재는 외투를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브로커 놈들은 아직 연락 없어?”
“네.”
“빨리, 빨리 움직일 것이지. 쯧.”
“형님과 제가 잡히기 전에는 그놈들도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겁니다. 좀 더 기다려보시죠.”
“그런 거 상관없이 처리할 수 있어야 프로지. 하여튼 요즘 것들은 프로의식이 없어, 프로의식이.”
“그래도 돈 값은 하는 놈들이니 실망시키진 않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한두 푼도 아니고 선수금만 사십억 짜린데.”
그는 입맛을 다시며 대문을 나섰다.
총 팔십 억짜리 의뢰.
그가 모아두었던 비자금을 다 털었으니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
강신재는 대문을 나서다 말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골목 끝에서 움직이는 인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고 걸어 잠그기까지 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쉿!”
그는 손정만을 조용히 시키고 집 뒤편 담벼락으로 다가가 나무토막을 기댔다.
그리고 그걸 밟은 후 담을 훌쩍 넘어갔다.
손정만 역시 같은 방법으로 강신재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미리 도주루트를 정해놓았다는 듯 마을 위쪽으로 향했다.
“정만아.”
골목길을 걸으며 강신재가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네, 형님.”
“조직 내에 심어놓은 그놈 손절해. 배신한 모양이니까.”
“……”
“조직원들이 너 따라서 은거지 근처까지 왔다는 말이야. 다행히 길이 복잡해서 엇갈린 것 같고.”
“……죄송합니다.”
“됐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소리해서 뭐하겠냐.”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된 우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신재는 두레박용 밧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손상정도를 확인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네.”
“형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손정만은 강신재가 쥐고 있던 밧줄을 넘겨받아 천천히 우물 아래로 내려갔다.
-트득. 트득.
밧줄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역시 노후 된 밧줄이라 오래 버티진 못할 모양이었다.
손정만은 자칫 강신재가 이용하지 못할까 싶어 빠르게 밑으로 하강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내려간 나머지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지 못했고, 우물바닥에서 발밑을 확인하지 못해 착지에서 삐긋하고 말았다.
‘으윽!’
오른쪽 발목에서 찌릿찌릿하고 전류가 흐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손정만은 신음을 삼키고 우물 위를 올려다보았다.
“형님, 한번 정도는 더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내려오십시오.”
강신재는 조심스럽게 밧줄을 잡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손정만은 혹시나 강신재까지 다칠까 싶어 라이터 불을 켜서 보조를 해주었다.
“휴우, 빡세네 이거. 젊었을 땐 거뜬했는데 말이야.”
강신재는 화끈거리는 손바닥을 탁탁 털고 오른쪽에 보이는 철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북정마을과 인접한 서울산성 내부까지 이어지는 비밀통로였다.
-끼익.
녹슨 철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통로 안쪽으로 향했다.
‘크윽.’
손정만은 점차 심해지는 발목통증을 참으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는 라이터 불빛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 덕분에 티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
늦가을이라 그런지 해가 지는 건 금방이었다.
사위가 어두워지자 김천수는 초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못 찾았어?”
그의 물음에 무전기를 쥐고 있던 박종우가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수색 중인 것 같습니다.”
“종우야.”
“네, 형님.”
“권일이 죽고, 그 자리 앉혀줬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알지? 강신재 못 잡으면 너나 나나 모가지 날아간다는 거.”
“네, 네······”
김천수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잘하자. 오늘 여기 온 놈들 다들 배신자잖아. 배신자가 뭐겠어? 배신당한 사람이 있어야 배신자로 불리는 거 아니겠냐? 내 말 이해해?”
“배신당한 사람이 없으면 배신자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래, 그거야. 역시 권일이보다는 네가 두뇌회전이 빠르다니까. 짭새들도 움직였다니까 빨리 서둘러.”
“예, 형님.”
박종우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후 무전기를 들었다.
“B팀, 보고.”
-형님, 수로 쪽 통로에서는 아직 아무런 낌새가 없습니다.
“계속 지켜봐.”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들은 김천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수로? 뭔 소리야?”
“아, 저기 산성 내부에 있는 수로 얘깁니다.”
“그러니까 그게 왜?”
“오기 전에 알아보니 성 안에 수로가 있는데 거기가 산성과 인접한 마을의 우물에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애들 몇 명 보냈습니다.”
“비밀통로 뭐 그런 건가?”
“네.”
“새끼, 브레인이네? 그런 것도 챙길 줄 알고?”
“아닙니다, 형님.”
“그래, 아냐.”
예상치 못한 대답에 박종우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눈만 깜박거렸다.
김천수는 그런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야이, 새끼야. 상식적으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비밀통로가 아직 남아있겠냐? 영화를 새끼야, 얼마나 처봤으면 X발, 그딴, X소리를 해!”
말에 쉼표가 생길 때마다 손이 날아왔다.
“빨리 불러서 빈집들이나 뒤지게 해! 뒤지고 싶지 않으면!”
“죄, 죄, 죄송합니다. 형님.”
그때였다.
삐리릭하는 무전기 소리와 함께 B팀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종우형님, 왔습니다! 발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확실합니다.
그 순간 김천수와 박종우의 눈이 마주쳤다.
잠깐의 정적이 둘 사이에 흘렀다.
-형님, 이쪽에서 들어갈까요?
그때 김천수가 뒤통수를 다시 내려치며 말했다.
“뭘 X발 멍청하게 있어! 진짜 뒤질래?!”
“네, 네.”
박종우는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
“대기해, 인원 더 보낼 테니까. 그때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만 하고!”
-알겠습니다.
“A팀, 산성 안으로 튀어가! 나머지는 마을에 있는 우물 전부 찾아서 입구 틀어막고.”
모든 지시를 내린 후 박종우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형님 가시죠.”
“새끼······”
김천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 숙인 그의 뒤통수를 툭툭 두드렸다.
“너 인마, 오늘부터 내 오른팔이니까 그렇게 알아.”
***
-철퍽, 철퍽.
우물에서 멀어질수록 바닥에서 물이 차올랐다.
높이는 발목 정도.
강신재와 손정만은 수원지인 산성 안으로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걸었을까 멀리서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 왔네, 어서 가자.”
“네, 형님.”
손정만은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뒤를 따랐다.
이제는 통증 때문에 무언가를 짚지 않으면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형님의 짐이 되면 안 돼. 저기만 나가면 혼자 보내드려야겠어.’
북정마을을 뒤지고 있는 조직원들이 언제 산성 내부까지 올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멀리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철퍽.
앞서서 가던 강신재가 격자형 쇠창살 문을 앞에 두고 돌연 걸음을 멈췄다.
그는 손정만을 향해 왼쪽 손바닥을 보였다.
기다리라는 의미였다.
“X발······”
“왜 그러십니까, 형님?”
“이런 느낌 오랜만이네. 젊었을 때 칠상이랑 둘이서 상도동파 쳐들어갔을 때도 이랬는데.”
“형님, 설마······”
“그래, 이 새끼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정말입니까? 일반인들은 이런 통로가 있는지 모를 텐데······”
“우연찮게 아는 놈이 있었나보지. 돌아가자.”
강신재가 다시 통로 안쪽으로 향하는 그때였다.
“야, 다 들어가! 눈치 챘다!”
어떤 놈의 말소리와 함께 구둣발 소리가 우르르 들려왔다.
“형님, 가십시오. 여긴 제가 막겠습니다.”
손정만이 허리춤에서 회칼을 꺼내며 쇠창살문 앞에 섰다.
그 말에 강신재가 무슨 헛소리냐는 듯 소리쳤다.
“혼자서 뭘 막아?! 빨리 따라오기나 해!”
“형님, 저 가고 싶어도 더 이상 못 갑니다. 아까 내려올 때 발목 삐었습니다.”
“뭐?”
“그러니까 가세요.”
하지만 강신재는 가지 않고 허리춤에서 회칼을 꺼냈다.
“됐다. 보아하니 거기도 지키고 있을 게 뻔한데 그냥 여기서 저놈들 상대하자.”
“형님!”
“장애물도 있고 그나마 여기가 나아. 시간만 끌면 돼.”
강신재는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박계장님, 저 강신잽니다.”
-강신재? 너 어디야?
“김천수 꽁무니 쫓아왔죠?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이니까 총알같이 달려오십시오.”
-그래서 어디냐고?!
“산성 안 수로에 있습니다. 칼질해야 하니까 이만 끊습니다.”
통화를 끊음과 동시에 회칼을 든 흑룡파 조직원들이 바닥의 물을 튀기며 달려왔다.
어두운 통로 속이지만 알 수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한 때 자신의 밑에 있던 놈들이라는 것을.
“그래, 전부 배신자 새끼들이네!”
-푹, 푹. 피잇.
“끄악.”
“X발, 문부터 열어!”
-푸푹. 쫘악.
“아아악!”
수십 개의 칼날이 쇠창살 격자 사이를 뚫고 날아들었다.
강신재와 손정만은 몸을 돌보지 않고 문의 걸쇠를 노리는 팔들만 집중적으로 노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끝이기 때문이었다.
-푹, 핏, 핏. 촤악.
“으악.”
-찌익, 푸욱.
“밀어붙여, X발!”
-푹, 푹, 푹.
“퉷! 더 와봐!”
피가 사방에 튀고 칼날이 여기저기서 날아들었다.
손정만은 팔뚝과 손목이 베였고, 강신재도 손가락 몇 개가 날아갔다.
그들은 살기 위해 발작적으로 회칼을 휘두르고 찔러댔다.
“악! 너 이 새끼, 왜 날 찔러?”
그때 통로 밖에서부터 이상한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