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양민학살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김천수가 성북동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근처에 경찰들이 많다보니 사로잡아서 작업을 하기엔 장소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쉽게 숨통을 끊을 수는 없지 않은가.
놈은 한설아의 죽음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으니.
게다가 나와의 악연도 가볍지 않기에 충분한 대가를 치르게 한 후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놈은 잘도 도망쳤다.
북악산 쪽 루트를 이용하는 행보로 보아 경찰들도 무난히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놈을 추적하는 와중에 어떤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산속 외진 곳에 방치된 오래된 우물.
수풀이 무성하고 우물벽이 훼손된 데다 유독 거기만 지대가 낮은 탓에 자칫 모르고 지나칠 뻔했었다.
그곳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딱 떠올랐다.
김천수에게 적합한 죽음이.
-털썩.
우물 바닥에 전기충격기로 기절시킨 김천수를 내려놓았다.
한쪽에는 약간의 물웅덩이가 남아 있었다.
‘저걸 마시면 여기서 꽤 오래 버틸 수 있겠군.’
사람은 공기가 없으면 3분, 물이 없으면 3일, 먹을 것이 없으면 3주를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비록 흙탕물이지만 얼마간 목숨을 부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 이게 뭐야?”
우물 안을 보던 내 눈에 격자형 쇠창살로 된 문이 보였다.
통로는 안쪽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그걸 보자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강신재가 거기 있었던 이유를 알겠네.’
형사들은 북정마을을 뒤지고 있었다.
애초에 놈이 그곳에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일 터.
그런데 정작 산성 내부의 수로가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발견되었으니 모종의 방법으로 그곳으로 갔다는 말이었다.
예상을 해보자면 우물.
북정마을의 곳곳에는 우물이 제법 보였었다.
아마 몇몇 우물들이 산성 안의 수로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럼 여기부터 막아야겠네.’
나는 통로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어떻게든 무너뜨리기 위해 축대를 비롯한 지지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곧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막혔다.’
열 걸음도 채 걷지 않았지만 통로가 막힌 상황.
흙과 돌의 흔적으로 보아 세월이 지나며 무너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지상에 있던 우물벽도 훼손되고 전체적인 지형이 약간 밑으로 꺼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콜록, 콜록.
통로 바깥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김천수가 깨어난 것이었다.
나는 다시 우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놈은 나를 발견하고 비틀대며 일어서고 있었다.
“너 이 새끼, 누구야? 네가 날 여기로 데려왔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 염력으로 밀고 당기기를 사용.
놈을 단번에 쓰러트리고 팔을 뒤로 꺾었다.
“이, 이게 뭐야? 어, 어떻게……”
나는 놈의 말에 답하지 않고 예의 와이어 가닥을 꺼냈다.
“상황파악 안 되지, 김천수?”
나는 한 가닥을 움직여 입을 사정없이 꿰매버렸다.
“끄으으읍!”
“엄살부리지마, 이제 시작이니까.”
“으으으.”
와이어 몇 가닥으로 팔과 다리를 꿰매 단단히 묶었다.
“으어어어.”
“아직 안 끝났어.”
나는 놈의 버터플라이 나이프로 옷을 모두 찢어 알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핸드폰과 지갑, 손목시계 등 소지품을 모두 챙겨 메고 있던 가방에 넣었다.
“기억나? 예전에 이 칼로 원생 한 명 옷을 다 찢고 알몸으로 바깥에 내놓았잖아, 그것도 겨울에.”
“……!”
“지금은 아직 겨울도 아니고, 여긴 바깥도 아니니까 그때보단 나을 거야.”
“으으으!”
“닥쳐.”
“……”
나는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김천수의 턱밑에 대고 말했다.
“그거 알아? 그때 그 원생이 난데.”
“……으어어.”
“그래, 염병한. 말 못하는 벙어리새끼라고 발가벗겨져서 밖에서 벌벌 떨어야 했었지. 그때 살려달라고 말 하면 들여보내준다고 했었는데 기억 안나?”
“……!”
“그거 알아? 어떤 면에서는 네 아버지인 원장보다 네가 더 악독했다는 거.”
나는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이리저리 돌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칼날을 꺼내 라이터 불 위에 대고 달궜다.
“으으으!”
“그래, 알지? 시키는 대로 안 하는 원생들한테 이런 식으로 문신 새겼었잖아.”
놈은 덜덜 떨며 뒤로 물러났다.
“그 애들 대신해서 똑같이 해줄게.”
나이프의 칼날이 날아가 허벅지에 닿았다.
-치이이이.
“끄으으.”
“참아. 너는 그래도 다 커서 당하는 건데 뭘 그렇게 엄살을 떨어?”
다시 칼날을 달궜다.
시뻘겋게 달아오르자 한 번 더 같은 허벅지를 지졌다.
두 개의 칼날자국은 V자 모양이었다.
“으으윽!”
“아직 다 안 새긴 거 알잖아. 마지막 하나 남았어.”
한 번 지지자 문신은 Y가 되었다.
벤츠의 상징인 삼각별이다.
놈은 이걸 노예문신이라고 불렀었다.
“끄으으.”
“삼각별 완성이네. 이딴 게 그렇게 재밌었냐? 하나도 재미없는데.”
“흐읍, 흐읍.”
“이제 네 자신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좀 알겠어?”
눈빛에 독기가 서려있다.
뽑아버리고 싶게 말이다.
“으으! 끄으으으.”
나는 뽑아낸 녀석 눈알을 놈의 손에 쥐어주었다.
“잃어버리지 말고 소중하게 쥐고 있어. 혹시 알아? 여기서 살아나가면 다시 이식할 수 있을지?”
“흐읍, 흐읍, 흐읍.”
김천수는 잔뜩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나는 그 모습에 냉소를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얘기 들었다. 설아누나 출소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작업했다고.”
“……!”
“왜 그랬냐? 너희 부자에게 당할 만큼 당한 사람이었는데. 그냥 좀 놓아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이렇게 엮이지도 않았을 텐데.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눈앞의 이놈 때문이다.
“어디 한 번 또 기다려봐. 혹시 알아? 누가 지나가다가 여기 발견하고 너 살려줄지?”
“으으으, 으으으으!”
“참, 하나 더 있는데 까먹을 뻔 했네. 이게 이제야 생각나다니 십오 년이 참 길긴 길어.”
나는 염력으로 녀석의 하체를 끌어다가 흙탕물 위에 엎었다.
“싸.”
“……”
“싸라니까. 내가 뭘 말하는지 알잖아? 맞고 쌀래, 그냥 쌀래?”
지린내와 함께 흙탕물 위로 노란물이 번져갔다.
마음 같아서는 내 걸 싸주고 싶지만 나중에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현장에 DNA가 남을 수 있으니 참아야 했다.
“으으으.”
“목마르면 마셔. 그때 너도 애들한테 똥오줌 먹이고 그랬잖아.”
지금까지 가한 행위는 전부 예전에 저놈이 한 일의 하위호환이다.
부디 오래오래 버티다 절망 속에서 죽어가길 바란다.
“이 바득바득 갈면서 버텨봐. 내가 누군지도 알려줬으니 살아나오면 꼭 찾아오고.”
“으으, 으으으!”
어조로 보아 제발 살려달라는 말 같다.
나는 무시로 일관하고 우물 위로 올라갔다.
“으으으!”
우물에서 놈의 신음소리가 울렸다.
나는 옆에 놓여 있던 뚜껑을 덮은 후, 염력으로 돌멩이들을 움직여 그 위에 쌓아올렸다.
그 정도로도 신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흙과 풀더미로 덮으니 마치 방치된 봉분처럼 보였다.
“여기가 네 무덤이다, 김천수.”
***
폭풍 같던 밤이 지나고 며칠 후,
나는 왼손목의 관리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찌이익.
정형외과 의사는 내 왼손목을 고정하고 있던 반깁스를 풀었다.
드디어 그때 당한 손목이 다 나은 것이다.
빠르면 한 달이라고 진단을 내렸던 의사는 만족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운동선수라 그런지 관리를 잘 했네요. 진짜 왼손을 전혀 안 썼나 봐요.”
“다 나은 건가요?”
“네, 이제 그만 와도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염석훈 씨가 잘 따라와 준 덕분이죠. 다 낫긴 했어도 당장 무리는 하지 말아요. 아무래도 골프는 손목에 데미지가 많이 가는 운동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오른손으로 왼손목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분간 본업은 휴업이니 운동할 일도 없었다.
진료실을 나와 계산을 위해 접수처로 가는데 대기실에 있던 TV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 밤 이후 계속해서 나오는 뉴스 때문이었다.
-북악산 서울산성 조직폭력배 칼부림 사건.
사상자가 무려 삼십여 명.
산성이라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대규모 유혈사태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조폭들이 칼을 들고 설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포천 화재현장에서 발견된 총기, 수도권 곳곳에서 벌어지는 묻지마 살인까지 더해져 경찰청에서는 치안안정을 위한 단속강화과 함께 대대적인 범죄소탕을 위한 수사계획을 발표했다.
‘BD그룹 압수수색이라······’
공권력은 얼핏 보기에 멀리 있고 항상 느릿느릿 둔해 보인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멀리 있고, 둔하다고 무시할 수 없다.
서서히 좁혀오는 법의 그물은 어지간해서는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접수처에서 계산을 하고 병원 밖을 나와 전화를 걸었다.
-어, 석훈아.
“형, 방금 뉴스속보 보고 전화 드리는 거예요.”
-봤어?
“네, BD그룹 압수수색 들어간다던데 손정만이 깨어났나 보죠?”
-오늘 새벽에 중환자실에서 깨어났고 알고 있는 거 술술 다 불었다더라. 강신재 죽은 거 듣고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고 하더라고.
“잘 됐네요. 흑룡파 놈들 다 일망타진할 수 있을 테니.”
-그래,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지. 그리고 그놈 통해서 묻지마 살인 건의 배경까지 알아냈어.
청부업자들 간에 일어난 상잔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전민성의 말을 기다렸다.
-당한 놈들이 블룸이라는 브로커 조직이고 박미향, 정현주, 김영식이 속했던 곳이야. 한성글로벌에 위장신분으로 있었던 놈들.
“네.”
-손정만이 그러는데 강신재가 블룸을 고용해서 오현조, 오미진, 김천수를 죽이라고 의뢰를 했대. 근데 그 시기에 블룸 놈들이 공격을 당한 거고. 손정만이 자기 정보라인 통해서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오현조가 다른 청부조직을 움직여서 그런 거 같다고 하더라고.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거의 확실하대.
“가관이네요, 아주.”
생지옥이 따로 없다.
서로 죽고 죽이는 세계라니.
-어쨌든 묻지마 살인도 그 다섯 건 이후로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블룸이라는 놈들이 완전히 잠적해버린 것 같아. 같은 업계 놈들도 찾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공격한 놈들이 대단한가보네요. 그놈들이 숨을 정도면.”
-손정만의 말에 따르면 실력은 블룸 놈들이 더 좋은데 숫자가 많대. 저쪽 계통이 조선족 조직인 리 일가, 동남아 불법체류자가 핵심인 카람빗, 그리고 무적자 출신으로 구성된 유령개가 꽉 잡고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오현조가 그 세 군데를 다 이용한 것 같대.
리 일가, 카람빗, 유령개.
언젠가 반드시 죽여야 할 놈들인데 드디어 실체를 찾은 것 같다.
제이라는 브로커가 그랬었지.
한설아를 직접 죽인 범인은 그놈들 중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민성이 형. 설아누나를 죽인 그 세 놈요. 수법으로 봤을 때 방금 형이 말한 곳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안 그래도 강남서에서도 그 얘기를 하더라고.
“경찰 쪽에서 벌써 움직였어요?”
-이미 조사는 하고 있었대. 근데 이번에 손정만 통해서 정확한 조직명을 확인했으니 제대로 수사 들어가겠지. 조만간 구로서랑 공조해서 진행할 것 같더라고.
손정만의 정보가 있는 데다 난리가 났기 때문인지 경찰들의 움직임이 빨라진 것 같다.
남지웅 박사를 다음 타겟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살짝 조바심이 들었다.
여기서 기존 계획대로 움직인다면 경찰들에게 한설아를 죽인 진범인 그 세 놈을 빼앗길 것 같았다.
‘순서를 좀 바꿔야겠네.’
남지웅 박사는 아직 경찰 쪽에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정보다.
게다가 한설아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다음으로 미뤄도 될 것 같았다.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면 단서가 생긴 그 세 놈을 잡는 것을 우선으로 둬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형, 경찰에서 파악한 정보 좀 보내줘요.”
-석훈아, 그냥 그놈들은 경찰에게 맡기는 게 어때?
“아니요, 제가 갈게요.”
-그놈들 한두 명이 아니야. 머릿수가 너무 많다니까.
다구리에 장사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괜찮아요.”
양민학살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놈들이 양민이란 말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