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48
48화. 항상 미꾸라지 몇 마리가 물을 흐리지
가리봉동 조선족 타운.
한국의 연변이라 불리는, 국내에 체류 중인 조선족들의 생활, 문화 중심지이다.
그렇기에 주변 상권은 대부분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달고 있고, 붉은색을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중심가인 상권이 일자리라면 배후에는 쪽방촌이란 불리는 대규모 거주지가 자리 잡고 있다.
저렴한 숙식과 일자리, 그리고 정보의 교류.
한국에 들어온 조선족이라면 한번쯤은 거쳐 가는 체류지(滯留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범죄자들의 입장에서 조선족 타운의 이권을 욕심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선족 조직 간의 알력싸움은 일상이었고, 수많은 피가 흘렀으며 온갖 흉흉한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기 마련.
현재의 조선족 타운은 ‘리 일가’로 불리는 한 개의 조직으로 통합된 상태였다.
오늘, 그 리 일가의 본거지이자 쪽방촌 중심에 자리한 리첸지의 저택에 조선족이 아닌 자들의 방문이 있었다.
“김선생, 다 모였으니 이제 말해보시오.”
리 일가의 보스, 리첸지가 왼쪽에 앉은 중절모를 쓴 노인에게 운을 띄웠다.
그는 이곳에 모인 조직들에게 살인청부를 알선하는 브로커였다.
중절모를 벗어 가슴께로 내린 김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둥근 탁자에 둘러앉은 인물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먼저 이곳에 회합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리 일가의 큰 어른, 리첸지 대인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자리를 빛내주신 카람빗의 수장이신 아사드 캄, 유령개의 견주께도 감사드립니다.”
김선생의 말에 아사드 캄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견주는 손을 저으며 말을 받았다.
“인사치레는 됐으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갑시다.”
“예.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번에 불거진 흑룡파 사건 때문입니다.”
“내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소. 그놈들 미친 거 아니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도심에서 수십 명이 집단칼부림이라니.”
“저도 현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곳에 강신재와 김천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상황과 입장을 생각하면 칼부림이 일어난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다만 김천수를 따라간 부하들 중 일부가 갑자기 배신하고 강신재에게 다시 붙었다는 점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때 리첸지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개입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왈가왈부하지 마십시다. 지금 중요한 건 이후의 행보니 말이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김선생은 맞장구를 친 후 말을 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받아왔던 의뢰, 청부 브로커 조직 블룸을 없애는 일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소속 청부업자들 다섯만 죽였을 뿐, 정작 브로커 놈들은 한 명도 죽이지 못했으니까요.”
“……”
“애초에 저희가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흑룡파 오현조의 의뢰를 받은 김에 블룸의 사업영역까지 먹을 생각으로 움직였지만 제대로 반격도 하지 않고 잠적해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업계 최고라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이 그렇게 꼬리를 말고 숨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소.”
아사드 캄의 말이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블룸을 없애지 못한 것이 영 꺼림칙했다.
이제는 반대로 수면 아래에서 저들이 자신들을 노릴 수도 있으니.
“대신 놈들은 당분간 움직이지 않고 숨어있을 겁니다. 그 동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세력을 더 키워서 쉽사리 보복할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오늘 모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력을 키우자?”
견주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흑룡파의 영역을 세 분께서 나눠 가지시는 겁니다.”
“흐음······”
“언제까지 청부살인, 마약밀매, 보이스피싱 같은 자잘한 일만 하실 겁니까. 명분이 있을 때 밖으로 나가시지요.”
“명분? 무슨 명분 말이오?”
“오현조가 우리에게 의뢰를 했지 않습니까.”
“그건 아직 끝난 게 아니잖소. 이대로는 마무리하기도 힘들고.”
“조만간 경찰 쪽에서 흑룡파를 칠 겁니다. 그 와중에 오현조도 엮일 가능성이 높고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의뢰를 마무리하든 저쪽에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시체 몇 구 만들어서 블룸이라고 구라를 치자 이 말이오?”
“맞습니다. 그때의 흑룡파는 저희가 요구하는 잔금을 지불할 능력도, 거절할 배짱도 없을 겁니다. 그때 잔금 대신 사업장을 받으면 되는 겁니다.”
김선생의 말에 아사드 캄과 견주는 만족스런 표정을 보였다.
흑룡파의 사업장을 얻는다는 것은 안정적인 자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조선족타운을 기반으로 하는 리 일가와 달리 그들은 구역이 없는 걸 항상 아쉬워했기에 김선생의 말이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큰 그림을 제법 잘 그린 것 같소, 선생.”
가만히 듣고 있던 리첸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칭찬인 듯한 말의 내용과 다르게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혹 염려되는 부분이라도 있으신지요?”
“그림에서 두 가지가 빠진 것 같아서 말이오.”
“고견을 들려주시면 재주껏 보완해보겠습니다.”
“흑룡파 보스인 오만석 말이오. 강신재가 죽고, 오현조가 경찰조사를 받게 생겼어도 그 늙은이가 있는 한 조직이 그리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요.”
“오만석이 일선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칠 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항간에는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지병으로 거동을 못한다는 말도 돌았지요. 설사 멀쩡히 살아있다 해도 경찰청에서 대대적인 범죄소탕의 본보기로 흑룡파를 정한 이상 피해 가긴 어려울 겁니다.”
“그건 오만석을 몰라서 하는 말이지. 과거 공권력에 의해 이 나라의 대형조직들 대부분이 박살나고 잔챙이들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할 때도 흑룡파는 오히려 몸집을 불렸소. 그러니 오만석에 대한 대비 없이는 찬성할 수 없소.”
그의 말에 아사드 캄이 입을 열었다.
“그런 늙은이 하나야 죽이면 그만 아니오?”
“허면 카람빗에서 맡아보겠소? 노파심에서 한 마디 하자면 그자를 죽이려면 조직의 명운을 걸어야 할 거요.”
“흐흐, 우린 항상 목숨 내놓고 일하니 별다를 것 없소.”
“좋소. 대신 이번 묻지마 살인처럼 우리 쪽에서 움직였다는 흔적이 남아선 안 될 것이오. 조금이라도 낌새가 있으면 흑룡파와 딜을 할 수 없을 테니.”
“걱정마시오. 마침 적당한 친구가 필리핀에서 넘어왔으니까.”
믿음이 담긴 표정이었다.
리첸지는 호기심에 그에 대해 물었다.
“뭐하던 친구기에 그리 자신하시오?”
“칼리완이라고 필리핀 반군세력 출신이라오. 혼자서 특무대 한 개 중대를 괴멸시킨 전력이 있으니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개인이 중대급 전투력이라니, 대단한 인재를 얻으셨군. 헌데 필리피노면 피부색과 생김새 때문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는 순간 카람빗이 의심받을 거요.”
“괜찮소. 코피노인데다가 외탁을 거의 하지 않아서 겉보기엔 한국인이나 다름없으니.”
코피노는 한국인 아버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이르는 말이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필리핀에서 빈곤한 삶을 사는 게 일반적이다.
칼리완 역시 그런 삶 속에서 반군세력에 팔려 소년병으로 자랐고, 지금은 한국으로 밀입국한 상황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맡아보시오. 우리 쪽에서 확보하고 있는 흑룡파 안가 위치 전부를 알려줄 테니.”
오만석에 대한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김선생이 물었다.
“대인, 나머지 하나는 무엇입니까?”
“김선생이오.”
“……네?”
“흑룡파의 영역을 먹으면 카람빗과 유령개는 구역을 얻게 되고, 우리 일가는 서울 중심에 사업장을 갖고 그쪽으로 대륙에서 공수한 여자들을 풀 수 있게 되오. 그런데 김선생이 얻는 건 무엇이오?”
“제 이득 말입니까?”
“그렇소. 김선생은 블룸 같은 조직이 아닌 단독으로 움직이는 브로커잖소. 개인이 이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는 거 같소만.”
사람은 자신의 이득에 의해서 움직인다.
이것이 리첸지가 생각하는 행동양식이었다.
거기서 벗어나면 반드시 다른 속셈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의 기준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물론 저도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혹시 수수료 대신 업소라도 하나 받으려는 게요?”
“이 나이에 관리하기도 힘든 그런 걸 받아서 뭐하겠습니까. 제가 받을 건 물질적인 게 아닙니다.”
“그럼 뭐요?”
김선생은 짧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 손주놈 아시지요?”
“알다마다, 우리가 중국에서 들여오는 약 떼다가 시중에 파는 일을 하잖소? 내 가능한 한 편의를 봐주라고 일러두기도 했는데.”
“몇 달 전에 실종 됐습니다.”
“……”
“단속 때문에 총책들이 다 같이 잠적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후로도 손주놈이 소식이 없자 직접 찾아다녔었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확인해보니 강북 쪽 놈들은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손주를 비롯해서 강남에서 장사하던 놈들은 아직까지 연락두절이라고 하더군요. 강남으로 들어가는 약을 가장 많이 다루는 원청에도 확인해보니 자기들은 모른다고 입을 닫고 말입니다.”
“흑룡파가 개입했다고 보는 거요?”
“이유도 모르고, 증거도 없지만 정황상 그런 것 같습니다.”
“흐음······”
리첸지는 그제야 오늘 김선생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브로커로서 항상 중립을 지키던 그가 공격적으로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미리 부탁하지 그랬소. 허면 내 알아봤을 터인데.”
“아닙니다. 이미 손주놈 건으로 여러 차례 부탁드린 적이 있는데 어찌 또 폐를 끼치겠습니까.”
“그런 말 마시오. 비록 비즈니스 관계라지만 봐온 기간이 얼만데. 실종기간을 들어보니 구하긴 힘든 거 같고, 직접 모가지 따고 싶소?”
“가능하면 그러고 싶습니다.”
“알았소. 흑룡파 장악하고 손 쓴 놈이 누군지 확인되면 우리 애들 시켜서 김선생 앞으로 데려가라 말해놓을 테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감사합니다, 대인.”
리첸지는 김선생의 어깨를 두드린 후 말했다.
“그럼 오늘 회합의 안건에 대해 마무리하겠소. 카람빗은 흑룡파 보스 오만석의 모가지를 가져오고, 유령개는 빠른 시일 내에 블룸 놈들을 대신할 시체를 준비하시오. 우리 일가는 그 동안 짭새들 대응하고 흑룡파와 있을 협상안을 준비해놓겠소.”
***
손정만의 정보.
그 안에서 세 조직의 위치가 기재되어 있는 곳은 리 일가가 활동한다는 가리봉동 조선족 타운이 유일했다.
카람빗과 유령개는 기반이 없기에 놈들의 근거지나 두목들의 정보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러니 나로서는 직접 가리봉동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족이라······’
재외동포(在外同胞).
외국에 거주하는 같은 민족이라 부르지만 조선족은 그 이미지가 썩 좋지 않다.
과거 한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 때문이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빈곤하기에 범죄와 연루되기 쉽지만 유독 잔혹한 범죄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강간, 토막살인 사건이라거나 인육괴담 등이 그랬고, 반중정서까지 더해져 이미지가 바닥까지 간 것이다.
‘이렇게 봐서는 그 이미지와 거리가 먼데 말이야.’
간판이 한자로 되어 있고, 붉은색이 자주 눈에 띈다는 걸 제외하면 평범한 거리로 보였다.
거리도 깨끗하고, 가판이 놓여진 가게들도 비위생적인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리 일가라는 범죄조직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오지 않았다면 그저 이색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장소일 뿐이었다.
‘항상 미꾸라지 몇 마리가 물을 흐리지.’
조선족의 경우엔 그 미꾸라지가 보기 드물게 살벌했고, 세계적으로 분탕질을 치는 중국이라는 대형 미꾸라지를 연상시키는 탓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잔챙이 미꾸라지 몇 마리가 길을 걷는 모습이 보였다.
껄렁껄렁한 자세와 털레털레 걷는 걸음걸이.
하는 짓은 동네 양아치지만 그들을 대하는 상인들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리 일가의 일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