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5
5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지.
‘염병한이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거의 십년만인가?
정식으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염석훈’으로 개명했으니 그쯤 될 것이다.
“누구시죠?”
“호호, 나 기억 안 나요?”
우리가 구면이라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기억에 없다.
진한 화장에 속이 훤히 비치는 블라우스와 허벅지 위에 걸친 듯한 짧은 스커트.
이렇게 강한 인상이라면 기억에 없을 수가 없는데.
‘잠깐만, 혹시……’
나는 그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과거의 이름을 안다는 단서를 염두에 두고 보니 알 것도 같았다.
“……미연이 누나?”
변장에 가까운 화장이지만 미소고아원의 최미연, 어렸을 때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러자 그녀가 싱긋 웃었다.
“벌써 알아챘어? 우리 병한이, 여전히 똑똑하네. 호호호.”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이거 서운한데? 십오 년 만인데 환대는 못하더라도 그런 눈초리로 봐야겠어?”
최미연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 은근히 눈웃음을 보였다.
전형적인 교태.
세월이 길긴 길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이렇게 바뀌다니.
“십오 년 만에 갑자기 나타났는데 이상하지 않겠어요?”
“하긴 그렇기도 하네.”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왜? 자주 이사하니까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어?”
“……제 뒷조사라도 한 거예요?”
“그렇게 됐어. 흥신소에 의뢰했거든.”
“흥신소?”
썩 기분이 좋진 않다.
개명을 하긴 했지만 신분세탁까지 하진 않았으니까.
최미연이라면 내가 갔던 보육기관을 통해 연락하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흥신소를 이용했다는 것이니 심기에 거슬릴 수밖에.
“너만 찾으려고 한 게 아니었거든. 시간도 없었고.”
그녀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답했다.
지금까지의 태도가 워낙 가벼웠다보니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게 맞는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미소고아원 출신들은 거짓미소를 짓는 게 익숙하니까.
모진 학대를 당하면서도 표정관리를 해야 했던 게 우리였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요.”
나는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그럴까, 그럼?”
그녀는 스스럼없이 들어가더니 거실에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무슨 집이 이래? 또 이사 갈 거야? 아무것도 없잖아?”
“원래 이렇게 살아요. 잠만 자는데 뭐가 필요하겠어요.”
나는 식탁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마실 건 없어?”
“거기 놓인 거 하나 드세요.”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500미리 물 다섯 개.
그 외에 음식물은 아무것도 없다.
“삭막하다, 삭막해. 프로골퍼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살아?”
그녀는 물병을 하나 집어 들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해요. 나만 찾으려고 한 게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말대로야. 흥신소에 미소고아원 애들 좀 찾아달라고 했거든. 성공한 애들 위주로. 그 중에 네가 있었던 거고.”
“왜요?”
“돈 필요해서. 기댈 곳이 미소고아원 애들밖에 없었거든.”
어처구니가 없다.
돈이 필요해서 고아원 애들을 찾았다고?
“사채 썼어요?”
“그런 거 아니야.”
“기든 아니든 돈 빌려줄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아세요.”
“매정하네, 우리 병한이. 누나 말 제대로 듣지도 않고.”
최미연의 표정은 서운하다는 감정이 전혀 없었다.
마치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뒷조사를 한 이유가 돈이라면서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거예요?”
“사실대로 얘기한 거야. 돈과 관련된 건 솔직해야 하잖아.”
“더 솔직해져봐요. 아직 말 안 한 게 있는 거 같은데.”
“호호,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그녀는 피식 웃고는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설아언니 기억하지?”
“네.”
모를 수가 없지.
“사실 돈이 필요한 이유가 설아언니 때문이야.”
“누나가 왜요?”
“설아언니가 작업을 당했더라고.”
“……!”
작업이라는 단어만으로 느낌이 확 왔다.
뭔가 나쁜 일을 당한 것이다.
“나도 얼마 전에 알았어.”
최미연은 옷차림이 말해주듯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업계에 있는 한설아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쪽 관리하는 오빠들에게 물어보니까 고리대금업체에서 언니를 작업해서 화류계로 끌어들였다고 했어. 간단하게 말하자면 출소 후에 사기를 당하고 사채까지 물린 거야.”
“……”
“그리고 알고 보니 언니를 작업한 배후가 김천수, 그 X자식이더라고.”
“김천수라면······”
“그래, 김원장 아들.”
아버지의 복수를 한 거구나.
‘김천수라면 그럴 성격이지.’
부전자전 아니랄까 원장 못지않게 지독한 놈이었다.
고아원에서 같이 지내진 않았지만 주말마다 그놈이 올 때면 원생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그때 그 일로 설아누나가 그렇게 된 거니까 미소고아원 애들에게 도움을 구하겠다는 거군요.”
“맞아. 그때 언니가 원장을 죽이지 않았다면 우린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미소고아원 출신이라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다.
마음의 빚.
그때 그녀가 우리를 보듬어주지 않았다면 원장의 학대를 견디기 힘들었을 테고, 최미연의 말처럼 놈이 죽었기에 그 지옥이 끝나기도 했으니까.
최미연은 그 마음에 기대 돈을 구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필요한 거예요?”
“20억.”
“……20억?!”
“지금도 불어나고 있어. 언니의 화대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라서 앞으로도 더 늘어날 거고.”
감당이 될 리 없지.
불법사채의 평균이자가 400%를 넘는다고 들었으니까.
이미 눈덩이를 넘어 산사태 수준이다.
“얼마나 구했어요?”
“4억.”
현금으로 4억이나 구하다니.
생각보다 많네.
“성공한 애들이 많나봐요?”
“아니, 너랑 민성이말고는 없어.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더라고.”
“민성이면······ 전민성? 민성이 형이요?”
“응. 놀라지마. 그 민성이가 지금 검사가 됐더라고.”
전민성은 나보다 다섯 살 많은 형이다.
그 소처럼 우직한 사람이 검사라.
눈치도 없고 둔했던 형으로 기억하는데 뭔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
“근데 아무리 검사라도 4억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어요? 그 형 나이를 생각하면 검사가 된지 몇 년 되지도 않았을 텐데.”
“민성이는 아직 만나보지도 않았어. 네 말대로 평검사가 무슨 돈이 있겠어.”
“그럼 4억은······”
“내 돈이야. 8년 동안 업소 다니면서 모은 내 전 재산. 내년에 은퇴하고 가게 하나 차리려고 모아놓은 건데 어쩌겠어. 언니를 생각하면 내놔야지.”
처음 느꼈던 경계심이 옅어진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바뀌지 않은 부분은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넌 얼마나 있어? 아무리 프로골퍼라도 16억은…… 무리겠지?”
돈 걱정을 하는 거 보면 내가 랭킹 몇 위인지도 대충 아나보네.
그깟 돈이야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20억을 준다고 해서 설아누나가 풀려날 거라 생각해요?”
“그건 장담할 수 있어. 지하경제긴 해도 금융업이니까. 그 정도 신용조차 없으면 그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거든.”
“업계의 신용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천수는요? 그 놈이 그쪽과 연결되어 있는데도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요?”
아니겠지.
금융업이라 포장해봤자 결국 불법적인 일을 하는 범죄조직이다.
막대한 이득이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다면 신용 따윈 얼마든지 어길 수도 있다.
“민성이를 내세우는 건 어때? 검사가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있잖아. 아무리 김천수, 그 X자식이라도 어쩌지 못할 거 같은데.”
“나쁘지 않긴 한데 예전 민성이 형 성격을 생각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융통성 없게 공권력을 동원하려고 하면 어떡해요?”
여차하면 한설아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이 있으니.
“……그것도 그렇네.”
“누나는 일단 민성이 형 먼저 만나봐요. 예전과 똑같은지 아니면 좀 유연해졌는지, 설아누나를 도와줄 생각이 있는지 말이에요.”
“알았어.”
전민성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라도.
검사는 가까이해서 나쁠 게 없다.
“김천수, 그놈은 어디서 뭐해요?”
“강남에서 클럽이랑 업소 몇 개 운영하고 있어.”
“강남에서요?”
내 기억에 그 집구석이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는데.
“미소고아원이 있던 곳이 재개발 지역으로 포함됐다고 하더라고. 고아원이 문을 닫은데다 마침 땅값이 폭등했으니 이때다 싶어 팔아치운 거지.”
“……”
고아원 애들은 다들 고만고만하게 산다는데 그놈은 그런 운이 따랐다고?
왜 돈은 나쁜 놈들만 버는 걸까.
빌어먹을.
“어딘지 좀 적어줘요.”
“가보려고?”
“네.”
“가지마. 사실 그 자식, 흑룡파라고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조직의 간부이기도 하거든. 잘못하면 큰일나.”
역시 깡패가 되었구나.
옛날 모습을 생각하면 이상하지도 않다.
“염려마세요. 어떻게 사는지 보고만 올 생각이니까.”
죽일 기회가 없다면 그럴 것이다.
반대로 기회가 있다면 놓칠 생각도 없고.
“혹시 설아누나도 그 놈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해요?”
“언니도 보려고?”
당연하지.
무슨 일이든 직접 확인하는 건 기본이다.
“네.”
***
골드바.
강남에 위치한 룸살롱으로 최미연이 알려준 곳 중 하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김천수가 가장 자주 출몰하는 곳이며, 설아누나가 일하고 있는 업소이기도 하다고 했다.
-지이잉.
멀찍이서 정문을 보며 기다리는 와중에 진동이 울린다.
품속에서 꺼내 송신자를 확인을 하니 박사장이었다.
부탁한 걸 알아본 모양이다.
-염프로, 나여.
“네, 박사장님.”
-통화되는가?
“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우리 염프로,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눈이 엄청 높아서 그랬더만. 골드바 나가는 애들을 보는데 우리 애들이 눈에 찰 리가 없지.
쯧, 쓸데없는 소리는.
누가 보도방 업주 아니랄까봐 다 똑같이 보이는 모양이다.
“알아보신 거 때문에 연락주신 거 아닙니까?”
-껄껄, 맞어. 무안해서 그래? 알았어, 알았어. 내가 워낙 힘들게 알아봐서 티 좀 내려고 한 거야. 어디보자……
박사장은 뜸을 들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마리아, 그러니까 본명은 한설아고 마이더스신용대출 통해서 작업당한 게 확실해. 이상한 건 빚이 좀 많긴 한데 골드바에서 받는 화대 정도면 이미 까고도 남았을 거란 말이지. 골드바 애들은 다른 곳과 달리 팔려서 간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돈 벌려고 들어간 애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화대가 쎄거든. 어쩌면……
“뭔데 그러세요?”
-골드바에서 화대 가지고 장난질을 치고 있다거나 마이더스 쪽에서 놔줄 생각이 없는 건지도 몰라.
“박사장님이 보시기에 어느 쪽인 거 같습니까?”
-염프로, 혹시 그 여자 빼내주려고 이러는 거야?
“……”
나는 말없이 담배를 빼물고 불을 붙였다.
말하지 않아도 박사장이라면 눈치 챘을 테니.
-그렇구먼.
그는 통화 너머로 잠시 말을 아꼈다.
칙칙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나처럼 담배를 피는 모양이었다.
-염프로, 그 여자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갑자기 그건 왜 묻습니까?”
-나도 이쪽에서 잔뼈가 굵다보니 알어. 그렇게 눈 맞을 수도 있다는 거. 근데 그 마리아라는 여자, 너무 위험해. 내가 봤을 땐 돈으로 될 일이 아니야.
“……”
-골드바 사장이랑 마이더스 뒤에는 흑룡파라고 강남 일대를 주름잡는 조직이 있어. 만약 그 여자가 흑룡파와 악연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거면 죽을 때까지 피 빨리다가 끝날 인생이라는 거야.
“거기까지는 확인 못하나요?”
-못 하지. 흑룡파 뒷조사 했다가 걸리면 내 모가지도 위험하니깐.
“알겠습니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장님.”
-고마우면 언제 한 번 라운딩 하자. 그거면 돼.
“네, 그렇게 하시죠.”
-알았어, 약속한 거야!
“네, 들어가세요.”
통화를 끊은 후 담배를 물고 골드바 정문을 바라보았다.
‘가볼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