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56
56화. 그거 빼면 죽어, 당신들
모든 사건의 중심인 한설아.
그녀는 레인보우에서 어느 중년여자와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개입 없이 그들만의 밀회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남지웅.
그는 두 사람 중 한설아에게 유령개에서 매입한 킬러 셋을 붙여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후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던 최미연에게 블룸의 킬러가 붙었고, 중년여자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정보를 캐낸 다음 죽이려고 했다.
최미연을 죽이려 한 놈이 누군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정황상 남지웅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러니 꼬여 있는 매듭의 핵심은 남지웅과 중년여자의 관계라 할 수 있었다.
‘미연이 누나 생각처럼 치정은 아닐 거야······’
단순한 치정이라기엔 유령개의 킬러를 이용한다거나, 블룸을 고용하는 등 너무 복잡하게 일을 처리했다.
특히 블룸을 고용하며 내걸었던 조건.
굳이 최미연이 중년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확인하려 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 여자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은 다 죽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까?
아니면 본인이 그 여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서 주변인물인 한설아를 죽이고, 이어서 최미연까지 노리는 걸까?
‘그냥 평범한 의사였다면 이렇게 복잡하진 않았겠지.’
나는 이 모든 게 퍼펙트 보더라는 의사로서 화려한 이면에 장기밀매라는 어두운 면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복잡하게 처리했다는 건 놈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고, 이는 곧 장기밀매와도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두 사람이 적이라고 단정 지으면 안 돼. 한 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으니까.’
가령 누군가의 장기이식에 적합성을 가진 타겟이 있고, 현장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그 중년여자라면?
그 여자가 한설아에게 접근해 친분을 만들고 몰래 아질산염을 투여.
이후 몸에 이상을 느끼고 집에서 쉬는 그녀를 사냥개들을 시켜 납치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실수로 죽인 거라면 어떨까?
최미연이 그 여자에 대해 아는지 확인하려한 거?
그건 장기매매에 대한 조그마한 단서라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체크하려고 한 건 아닐까?
“후우······”
만약 그렇다면 지금 전민성과 최미연은 인질로 잡혀 있을 터.
관련자인 나까지 불러들여 처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곳에 가기 전에 준비를 해야 했다.
리첸지의 저택에 잠입할 때 장비가방을 모처에 숨겨두었기에 지금 나에겐 트렌치 나이프 한 자루가 전부였으니.
“기사님, 저기 편의점 앞에서 세워주세요.”
나는 택시에서 내린 후 편의점에 들어가 바느질 세트를 샀다.
그리고 건물 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푸우, 푸우.
일단 찬물로 세수를 하며 정신을 일깨웠다.
슬슬 버거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하긴 했지만 오늘 좀 과하긴 했어.’
처음으로 대량학살을 저지른 것도 그렇고, 네 사람을 납치해 잔인하게 처리했다.
능력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정신적인 데미지도 무시할 순 없는 것이다.
염력의 핵심은 정신력과 집중력.
지금의 컨디션으로는 능력을 오래 유지하는 것도,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도 힘겨웠다.
-달칵.
편의점에서 산 바느질 세트에서 뚜껑으로 쓰이는 바늘케이스만 분리해 세면대에 놓았다.
크기는 여자들이 쓰는 파우더 케이스 정도,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바늘 십여 개가 들어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무기로서는 충분했다.
눈알을 뽑아 무력화시킨 후, 바늘로 공격한다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을 테니.
-스르르.
염력으로 바늘을 움직여 소매의 천 사이에 보이지 않게 꽂아 넣었다.
만약 몸수색을 할 시 트렌치나이프는 빼앗겨도 바늘은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후우, 가자.’
전민성의 집은 멀지 않았다.
인근에 위치한 삼십 년이 넘은 복도식 아파트.
그는 그곳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
‘일단 내부 상황을 확인해야 해.’
하늘을 날아서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는 건 무리였다.
복도식 아파트라 맞은편 동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계속 보였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공중을 날았다간 누가 봐도 볼 가능성이 높았다.
-띵.
핸드폰의 녹화영상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염력으로 13층, 전민성의 집까지 띄워 올렸다.
크기도 작고, 케이스까지 검은색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맞은 편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이 정도면 녹화됐겠지.’
염력으로 다시 내려 녹화된 영상을 확인해보았다.
집안에는 총 여섯 명의 사람이 있었다.
거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은 전민성과 최미연, 그리고 맞은 편 스툴에 앉은 중년여자.
나머지 셋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인이어를 한 걸로 보아 경호원인 것 같았다.
그들 중 두 사람은 중년여자의 뒤에 시립해 있었고, 한 사람은 현관에서 대기 중이었다.
‘애매하네.’
묶여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분위기가 부드러워 보이진 않는다.
아무래도 선을 긋듯이 거실탁자를 기준으로 나뉘어 있었으니.
‘제압당한 상태였으면 중년여자만 빼고 다 죽이고 봤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들어가서 상황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매에 꽂아 넣은 바늘을 다시 한 번 점검한 후 걸음을 옮겼다.
-띵동.
긴장감과 함께 초인종을 눌렀다.
-띠리릭.
예의 문 앞에 있던 남자가 현관문을 열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염석훈 씨 되십니까?”
“네.”
“들어오십시오.”
그는 내가 들어온 후 복도 양옆을 살피며 누군가가 있는지 신경 쓰는 태도를 보였다.
다른 일행을 데려왔는지 의식하는 걸까.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거실로 향했다.
“석훈아.”
“야, 왜 이렇게 늦었어?”
전민성과 최미연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날 반겨주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로 보아 억압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내 물음에 전민성이 턱을 긁적이며 답했다.
“그게······ 아무래도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너도 불렀어.”
“……?”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 계신 이혜선 씨는 우릴 돕기 위해 찾아오셨어.”
“도우러 왔다고요?”
이게 지금 무슨 소린가 싶다.
“반가워요, 염석훈 씨. 이혜선이에요.”
그때 자신의 이름을 밝힌 중년여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외모만 보았을 때는 사십대 초반이라 생각될 정도로 동안이지만 풍기는 분위기에서 사십대 중후반이 아닐까라는 연륜이 느껴졌다.
한 마디로 관리를 잘한 중견배우를 보는 듯 하달까.
“아, 예. 염석훈입니다.”
“……”
그녀는 갑자기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직접 보니 훨씬 훤칠하고 잘생겨서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봤네요. 미안해요.”
“절 아십니까?”
“프로골퍼 맞죠? 저도 골프를 좋아하거든요. 염석훈 프로 팬이기도 하고.”
“아, 그러시군요.”
국내에서만, 그것도 대회도 별로 나가지 않는데 팬이라니.
지금까지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생소한 경험이었다.
“두 분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석훈 씨도 같이 설아 씨의 사건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같이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뭐랄까.
대화는 별 거 아니지만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굉장히 스스럼없는 태도다.
정말 팬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처럼.
‘원래 저런 타입일 수도 있지.’
나는 애써 그녀의 호의에 벽을 세웠다.
아무래도 아직 정확한 관계설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가오는 게 부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도우러 왔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내 말에 그녀는 최미연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얘기하자면 긴데 일단 그 질문에 대한 답부터 말하자면 늦게나마 최미연 씨가 위험에 처했다는 걸 알고 보호해드리기 위해 온 거예요.”
“……”
최미연의 위험을 알고 왔다?
그 말은 블룸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는 걸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가 한설아의 행적을 조사하던 행위를 알고 위험에 처할 것이라 예상했다는 건지 애매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난 가만히 있었다.
전민성과 어디까지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가진 정보를 오픈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사실 조금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무사해서 천만다행이라고 여겼어요. 설아 씨에 이어 또 사람이 죽었다면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설아누나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혜선은 핸드백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거실탁자 위에 놓았다.
사진 속 인물은 남지웅이었다.
“저와 설아 씨는 이 사람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어요.”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되물었다.
“이 사람이 누굽니까?”
“남지웅이라고 의학계에서는 천재 외과의사로 불리는 사람이죠.”
“설아누나가 왜 그 사람 뒷조사를 한 겁니까? 그 남지웅이란 의사와 무슨 관계가 있었길래요?”
“두 사람은 관계없어요. 설아 씨를 끌어들인 사람은 저였으니까요.”
“……네?”
“그 모든 건 남지웅이 저지르고 있는 불법 장기밀매를 밝혀내기 위해서였어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놈의 구린 구석과 관련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복잡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었다.
“설아 씨는 그 과정에서 남지웅에게 살해당한 거예요.”
그녀는 남지웅의 장기밀매 루트를 조사하던 중에 흑룡파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황상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물증이 전혀 없었기에 외부에서 파헤치는 건 한계가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흑룡파 내부에 사람을 잠입시키거나 누군가를 회유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적합한 대상을 물색하던 중 한설아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주목한 것은 흑룡파 간부인 김천수와의 악연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고작 업소에서 일하는 설아누나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끌어들였습니까?!”
나는 언성을 높이며 이혜선에게 따져 물었다.
“누군가를 잠입시키는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간부급 중에는 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석훈아, 좀 진정하고 더 들어봐.”
전민성이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게 내가 열 받아서 당장 저 여자를 죽이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설아 씨는 다른 업소 종사자와는 좀 달랐어요. 석훈 씨도 알죠? 그녀는 김천수 때문에 특별관리 되어 왔다는 걸.”
“……”
“흑룡파 관할의 업소 중에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업소관리자들, 조직의 중진들 중 설아 씨의 미모를 눈여겨보고 잠자리로 끌어들인 놈들도 꽤 많았고요.”
“……!”
“남자들은 여자 앞에서는 대부분 입이 가벼워져요. 특히나 화류계 계통의 여자들은 성적착취의 수단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더 그런 면이 있죠.”
이혜선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만나보니 설아 씨는 김천수를 비롯한 흑룡파 간부들에 대한 복수심이 상당했어요. 과거에 원장을 상대로 손을 쓴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옮길 생각도 가지고 있었죠.”
“……!”
“하지만 제가 말렸어요. 그때와 달리 흑룡파 간부급을 죽이면 설아 씨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할 게 분명했으니까요. 그리고 설득했죠, 흑룡파와 관계된 장기밀매를 밝혀내서 복수하자고 말이에요.”
그녀의 목숨을 걱정해서 말렸다?
웃기는 소리다.
저 여자는 그녀의 복수심을 이용했을 뿐이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부터 말을 잘해야 할 거야.”
한설아가 죽게 된 원흉이 앞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속이 분노로 채워져 갔다.
“그녀를 위한다는 식으로 당신의 행동을 포장하려 하지마.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지금 당장 그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테니까.”
“……!”
장내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이혜선의 뒤에 선 경호원들이 긴장하며 움찔하는 게 보일 정도로.
그들의 손은 어느새 자켓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거 빼면 죽어, 당신들.”
수십 명을 죽이고 왔기 때문일까.
말 한 마디에 모두가 압도 되었다.
그들은 내 눈치를 보면서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그리고 상급자로 보이는 경호원이 목울대를 출렁이며 말했다.
“다, 당신 정말 평범한 골프선수 맞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