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내 시간은 아직 그때에 머물러 있으니까
나는 이혜선, 그리고 경호원들을 차례대로 훑어보며 말했다.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아주 기분이 나쁘다는 거야.”
가스라이팅이란 게 있다.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이용해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심리적 폭력이다.
교묘한 조작과 교활한 행위.
당하는 사람은 자신이 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한설아가 이혜선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화가 날 수밖에.
“대화의 방식을 바꾸지. 질문은 내가 한다, 그러니 당신은 그에 대한 답을 해.”
내 분위기 때문인지 이혜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이것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잡았다.
만약 대답을 머뭇거리거나, 내가 아는 정보와 다르다면 죽일 생각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아까 남지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설아누나가 살해당했다고 했지?”
“네.”
“과정이니 뭐니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놈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캐내는 중에…… 뒷조사를 한다는 걸 들켰어요. 저는 다행히 몸을 피했지만 저와 접촉이 있었던 설아 씨가 죽임을 당한 거고요.”
“들킨 건 당신인데 애꿎은 설아누나만 죽었다?”
“…….”
“왜 설아누나를 방치했지? 미끼로 두고 혼자만 피한 건가?”
“아니에요. 그놈이 설아 씨에게 손을 댈 거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을 뿐이에요.”
“후…… 그게 대답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녀의 위험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건 방관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게 전부라면 당신이 살아날 구멍도 없을 거고.
“설아 씨를 만날 때는 항상 레인보우라는 업소를 이용했어요. 혹시 만나는 걸 들킨다면 그저 악취미를 즐긴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니 어떻게 그 정도 관계만으로 그놈이 설아 씨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겠어요?”
레즈비언 성매매 업소.
나 역시 두 사람이 그곳에서 만났다는 것에 별다른 의심을 하진 않았었다.
유일하게 최미연만이 의구심을 갖긴 했지만 그저 가능성일 뿐이었기에 그녀의 주장에 백프로 확신은 하지 못했었고.
위장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설아는 그저 단골가게의 종업원인 것이 사실이었다.
“흑룡파 쪽은? 설아누나가 그쪽을 조사하다가 들킨 건지도 모르잖아?”
“그럴 리 없어요. 설아 씨는 2년에 걸쳐서 흑룡파 내부에 떠도는 말들을 모았고, 장기밀매가 흑룡파의 간부 중 한 사람과 이어져 있다는 걸 대략적이나마 추정할 수 있었어요. 그 간부에게 접근했다면 또 모르지만 시기적으로 그 이전이었고, 당시 설아 씨가 모은 정보는 여기저기에서 떠도는 소문이었기에 들킬만한 여지가 없었어요.”
“그 간부라는 놈이 누구지?”
설마 김천수는 아니겠지?
아니면 이미 죽은 강신재? 최칠상?
“손정만이에요.”
그 말에 나는 전민성을 돌아보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경찰에 신병이 인도된 그놈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주겠다는 의미.
이젠 척하면 척이다.
“흑룡파는 됐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묻겠다. 당신이 잠적함으로 인해 설아누나가 위험에 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남지웅은 이혜선을 찾기 위해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던 한설아를 노렸을 수도 있다.
“이미 말했다시피 조금이라도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 말이 변명이라 생각되어 말을 잘랐다.
“장기밀매를 하는 놈이야.”
“……”
“그런 위험한 놈을 뒷조사하다 들켰으면서 함께 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뒀다고?!”
“설아 씨와 미리 얘기가 된 부분이었어요.”
“……뭐?”
이혜선은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레인보우에서만 만나며 관계에 선을 그은 건, 둘 중 한 사람이 들킬 경우 한 명이라도 남기 위해서였어요.”
“……”
“둘 다 잠적한다면 더 이상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장기밀매는 은밀하고 폐쇄적이었으니까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의사라는 놈이 대외적으로는 천재 외과의 행세를 하고, 뒤로는 장기밀매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했겠는가.
하지만 그게 사실일 때 얘기다.
“정말 누나와 얘기가 된 게 맞아?”
내 물음에 이혜선은 나를 똑바로 보며 답했다.
“저와 설아 씨는 죽는 것보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게 더 두려웠어요.”
“……”
“저는 남지웅에게, 그리고 설아 씨는 흑룡파에 그만한 원한이 있었으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서 가진 원한이 얼마나 큰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갔다.
저런 눈빛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미소고아원에서.
‘어찌 되었든 저 여자 때문에 설아누나가 죽었어.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나는 자그마한 동정이라도 가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남지웅도 당신이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그는 몰라요. 철저히 숨기고 접근했으니까. 아마 저에 대해 아는 건 자신의 장기밀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도일 거예요.”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한설아가 왜 그렇게 보란 듯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는지.
아마도 잠적한 이혜선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지 않았을까.
장기밀매에 대해 말하면 너도 이렇게 죽여주겠다는 식의 경고 말이다.
“다음 질문이다. 미연이 누나가 위험하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최미연에게 접근했던 박미향은 내가 중간에 처리했다.
그러니 그걸 알아낸 루트가 블룸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주변정황을 따진 예상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한국에는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청부조직이 있어요.”
블룸이다.
그녀는 그놈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흑룡파처럼 남지웅과 커넥션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놈들도 장기밀매에 연관되어 있다고?”
박미향의 수술, 그리고 블룸의 킬러들이 사용하는 이상한 약물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기밀매까지 개입되어 있는 모양이다.
“정확한 내막은 몰라요. 거기까지 접근했을 때 남지웅에게 들켰으니까요. 그리고 잠적한 상태에서 그 청부조직의 움직임을 계속 감시했었어요.”
“감시? 어떻게?”
“그놈들은 다크웹의 이스터에그를 통해 암호화된 의뢰를 받아요. 저는 남지웅에게 접근했을 때 그가 가지고 있던 의뢰코드를 엿본 적이 있고, 그걸 이용해서 감시한 거예요. 일종의 해킹 같은 거라고 보면 돼요.”
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해킹이라고 하니 대충 수긍이 갔다.
“어쨌든 그 방식으로 감시를 하다 남지웅이 보낸 의뢰를 확인한 거예요. 문제는 암호를 푸는데 오래 걸려서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여기 전민성 검사님께서 같이 계셔서 아직까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거고요.”
“그럼 아까 말한 도움이라는 게······”
“네, 경호원 분들을 붙여서 24시간 보호해드리려고 온 거예요. 그놈들은 아직 최미연 씨를 노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제 한설아와 최미연에 대해서는 더 확인할 것이 없다.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왜 남지웅이 그런 식으로 복잡하게 행동했고, 어째서 이혜선이 여기 있는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유령개의 사냥개들이 설아누나를 죽이면서 이혜선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게 확실해.’
그쪽 출신들은 그런 식의 조건을 따지는 일처리에 미숙하다고 했다.
게다가 설아누나는 어렸을 때 살인을 시도할 정도로 강단이 있었다.
그러니 사냥개들은 한설아에게서 이혜선에 대한 정보를 캐내지 못했을 것이고, 마지막 단서인 최미연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블룸을 고용한 것이 분명했다.
“아까 남지웅에게 접근했다고 했는데, 그놈과 무슨 관계지?”
“일종의 사업파트너예요.”
그녀는 남지웅에게 접근하기 위해 사설연구센터의 건립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인공장기 연구센터.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공산품처럼 찍어내듯 만들어진 기계장기가 아니라고 한다.
환자 맞춤형으로 생체물질로 만들어진 인공장기나 인공혈액, 혹은 돼지 같은 동물을 이용한 이종장기 등 포괄적인 신체대체재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 센터였다.
남지웅에게는 센터장의 자리를 제시했고.
“장기밀매를 하는 놈에게 그런 걸 연구하자고 했다고?”
“남지웅은 한국 최고의 장기이식 권위자고 누구보다 사람의 신체에 대해 잘 알죠. 그러니 그에게 제안한 거예요.”
“내 말은 놈이 왜 그 일을 받아들였냐는 거야.”
“남지웅이 왜 장기밀매를 하는 줄 아세요?”
“……?”
“그 인간은 돈 때문에 장기밀매를 하는 게 아니에요. 더 많은 장기를 다뤄보고, 끊임없이 자신의 지식욕을 채우려고 그런 짓을 하는 거예요.”
일종의 매드사이언티스트 같은 놈인가?
자신의 지적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어떤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놈들 말이다.
“게다가 비밀리에 그가 혹할만한 비인도적인 임상실험이나 동물실험을 약속하기도 했어요. 그때문에 저 자신도 악취미가 있고 냉혹한 기업인으로 행세를 해야 했지만.”
“그놈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던져준 거로군?”
“그래요. 그 계통은 손을 대고 싶어도 국가의 지원이나 기업의 후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니까요.”
또한 자신을 포장하기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기기증이나 헌혈이 저조하니 신체대체재 개발의 선두주자가 된다면 얼마나 많은 각광을 받을까.
아마도 퍼펙트 보더로 불리는 지금 이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한 가지도 아니고 그런 다양한 연구를 하는 거대한 센터를 세우는 게 가능한 걸까?
“당신, 재벌인가?”
그 정도 지원을 하려면 최소한 재벌급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전민성이 사진만으로도 그녀를 금방 찾았어야 했었을 테고.
하지만 시간이 걸린 걸로 보면 알려진 재벌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미국 이엘바이오의 아시아지부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연구센터는 제 오랜 설득 끝에 본사의 지원을 이끌어낸 결과물이죠.”
그녀는 핸드백에서 흰색바탕에 ‘이엘바이오(EL BIO)’라는 금색 로고가 인쇄된 플라스틱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뒷면을 보았다.
‘Director of the Asian branch manager. Katy Lee.’
케이티 리, 그녀의 영어이름인 모양이다.
“당신, 국적이 어떻게 되지?”
“미국인이에요.”
그때 기다렸다는 듯 전민성이 개입하며 말했다.
“석훈이 네가 오기 전에 확인했어. 이엘바이오라는 회사의 아시아지부장인 것도 맞고, 인공장기 연구센터라는 게 진행 중인 것도 사실이야.”
그가 확인했다면 신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그녀의 동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다. 남지웅에게 무슨 원한이 있지?”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 그것도 바이오 기업의 아시아지부장이라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떤 원한관계인지 정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하나뿐인 아들과······ 남편을 잃었어요, 그놈 때문에.”
장기밀매의 희생양이 된 건가?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런 사적인 부분까지 말해야 하나요?”
“말하지 못한다는 건 숨기는 게 있다는 증거 아닐까?”
“이 정도면 당신들에게 충분히 호의를 보였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저와의 일 때문에 설아 씨가 죽은 건 유감이에요. 하지만 이 이상은 선을 넘는 것 같네요.”
“당신이 선을 긋는 건 아니고?”
이혜선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되물었다.
“나도 하나만 물을게요. 당신들이야말로 지금까지 뭘 했다고 설아 씨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까지 알아보려고 하는 거죠?”
“뭐?”
“그녀가 출소하고 십 년, 그리고 김천수에게 당해서 그런 삶을 살기까지 오 년. 그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았잖아요? 그렇게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왜 십오 년이 지나도록 ‘방치’한 건지 묻고 싶네요.”
그녀는 내가 아까 말한 방치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마치 너 역시 방치한 거 아니냐고 묻는 듯이.
“뭘 안다고 멋대로 주절거리는지 모르겠군.”
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십오 년이 지났다고? 웃기지 마. 내 시간은 아직 그때에 머물러 있으니까.”
방치?
아니, 자신이 없었던 거다.
그때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 지옥을 떠올리지 않을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