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58
58화. 그 여자도 숨기는 이유가 있을까
이혜선은 끝내 자신의 사연을 말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고, 우리는 경호원을 붙여주겠다는 그녀의 호의도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다만 그녀는 앞으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면서 연락처를 남겼다.
“야, 너 뭐야?”
우리 셋만 남게 되자 최미연이 전민성의 옆에 딱 붙어서 나에게 물었다.
“뭐가요?”
“너 내가 아는 석훈이 맞아? 왜 이렇게 무서워?”
나는 전민성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피식 웃었다.
“원래 평소에 조용하던 사람이 화나면 무섭잖아요.”
“그 정도가 아니던데? 나 아까 숨소리도 제대로 못 냈어, 너무 무서워서.”
“……”
“야, 전민성. 넌 안 그랬어?”
전민성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진짜 무서운 건 남지웅이라는 그 X새낀데.”
“……아!”
그때 최미연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었다.
“너네 혹시 알고 있었어? 내가 위험하다는 거?”
“……”
“알고 있었지? 그치? 그래서 나 여기 잡아둔 거지?”
“……”
“와, 이것들이 이제 보니 나만 왕따 시키고 둘이서만 작당모의를 하고 있었네.”
“무슨 작당모의야. 얘가 대한민국 검사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어떻게 알았어? 그 여자는 뭐 해킹했다고 했고, 너네는 어떻게 알았는데?”
“야, 나 대한민국 검사야.”
“야이씨! 그놈의 검사! 말단 평검사가 뭐 잘났다고 매번 그 핑계야. 이런 구식아파트에 전세 사는 주제에.”
“여기서 집 얘기가 왜 나와? 그리고 말은 바른 말이지. 서울에서 전세 사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 아냐?”
“됐고! 어떻게 알았는지 불어, 빨리.”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석훈아, 나가자. 아파트 앞까지 바래다줄게.”
전민성은 내 팔을 잡아끌며 눈짓을 했다.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보자는 의미였다.
“누나, 저 갈게요.”
“어? 어, 으응. 그래, 조심해서 가.”
전민성을 대하던 것과 달리 아주 순한 양이 되어버렸다.
아까의 내가 어지간히 무섭긴 했던 모양이다.
-치익.
밖으로 나가자마자 전민성과 나는 담배타임을 가졌다.
우리는 복잡한 심경에 잠시 흡연에 집중했다.
“형.”
내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응?”
“어떻게 생각해요?”
“흐음······”
그는 몇 번인가 담배연기를 뱉어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네가 오기 전에 그 여자에 대해 좀 알아봤거든.”
“……”
“일단 가장 믿을만한 건 이혜선, 케이티 리라는 신분이 확실하다는 거야. 근데 믿을 수 없는 여자인 것도 사실이야. 아까 일부러 말을 안 했는데 서류상으로 그녀는 미혼이거든.”
“……미혼이라고요? 근데 왜 가만히 있었어요?”
그녀가 아들과 남편을 잃었다는 사연.
미혼이라면 거짓 아닌가?
“변명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미국은 굳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형태로 살기도 하거든.”
“아들은요?”
“임신하고 있었다거나 출생신고 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 그것도 아니라면 입양아, 혹은 후원아동을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할 수도 있고. 말하기 나름인 거야.”
“……”
가족의 개념과 인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그 간극을 들이밀며 거짓말을 한다면 알아채기 힘들기에 전민성은 굳이 지적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근데 그 부분만 빼면 앞뒤가 안 맞는 말은 없었던 것 같아.”
“그건 그렇죠. 그 동안 알아낸 정보와 비교해도 틀리는 부분이 없었고요. 실은……”
나는 그 자리에서 견주를 통해 알아낸 유령개의 사냥개, 그리고 남지웅에 대해 말해주었다.
전민성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수작을 부리려고 접근한 건 아닌 거 같네.”
“걸리는 건 딱 두 가지예요. 그 여자 때문에 설아누나가 죽었다는 거, 그리고 그 여자가 숨기는 사연이 뭔지 모른다는 거.”
“근데 당장은 그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네?”
“그렇잖아. 이제부터 우린 남지웅을 잡을 거니까. 그놈을 통해서 또 알아낼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맞다.
지금 중요한 건 남지웅을 잡는 거다.
“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네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
나는 그의 말에서 다른 화제를 꺼내려함을 느꼈다.
아마도 그 일 때문인가보다.
“난 말이야. 그 여자 못지않게 네가 숨기고 있는 것도 궁금해.”
“……”
“이젠 어느 정도 아는 줄 알았는데 더 모르겠다.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죽인 거야?”
리첸지의 저택.
그곳에서 대학살을 저지른 일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그놈들 중에 설아누나 죽인 그 세 놈이 있을지도 몰라서 그랬어요.”
“그랬을 거라고 짐작은 했어. 내가 묻고 싶은 건 그 방법이야.”
“……”
말할 수 없다.
그건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나만의 비밀이다.
“그렇게 꽁꽁 감추고 숨겨야 돼?”
“……”
“푸흡. 너도 이혜선, 그 여자처럼 선을 넘는 것 같다고 해봐. 그럼 완전 똑같겠다야.”
전민성은 장난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더니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냥 궁금해서 한 말이니까 오늘 했던 말은 잊어버려. 뭐 숨기는 이유가 있겠지.”
“…….”
“그래도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설명해줘. 현장얘기 듣고 나니까 마치 미스테리 현상 같아서 되게 궁금하더라.”
“그럴게요.”
“조심해서 가. 난 그만 들어가야 하니까. 미연이 설득하려면 몇 시간은 싸워야 할 거 같거든.”
“고생해요, 형.”
“간다.”
그는 내 등을 한 차례 더 두드려주고 난 후 아파트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사라진 동 입구를 보며 생각했다.
‘그 여자도 숨기는 이유가 있을까······’
***
“괜찮으십니까?”
경호실장 윤종호의 물음에 이혜선은 차창 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답했다.
“네.”
“말하지 그러셨습니까.”
“윤실장님, 모든 판단과 결정은 제가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까 그 말은 무슨 뜻이었나요?”
“네?”
“평범한 운동선수가 맞냐고 물은 거 말이에요.”
윤종호는 당시 상황이 떠올라 침을 꼴깍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물은 겁니다.”
“……”
“저 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다들 그렇게 느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죽는다고.”
“……”
“그 정도로 위험한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통 그런 느낌은 히트맨이나 용병들에게서나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의 말은 염석훈이 살인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확실해요?”
“만약 그렇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직접 마주했고 다들 같은 걸 느꼈으니 거의 확실합니다.”
“거의?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듯이 들리는군요.”
“그게······ 사람에 따라 다른데 타고나는 부분도 있고, 또 어린 시절의 학대 같은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에는 선을 넘을 기회도 왕왕 생기니까요.”
그의 말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 그도 아니면 복합적으로도 작용할 수 있기에 정확히 재단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혜선은 차창 밖 도시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한 번 알아보세요, 자세히.”
“알겠습니다.”
***
창동민자역사.
도봉서의 연락을 받고 박인섭이 급하게 향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리 일가의 보스, 리첸지를 포함해 총 네 사람의 시신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딥니까?”
그의 물음에 관할인 도봉서의 형사가 위쪽을 가리켰다.
“3층입니다. 가시죠.”
“네.”
박인섭은 그를 따라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놈들의 시체가 어떻게 발견된 겁니까? 여긴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 곳인 거 같은데.”
“익명의 제보가 있었습니다.”
“……”
“장소가 폐쇄적인 걸 감안했을 때 그 제보자가 범인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고요.”
“그렇군요.”
공사장은 얼마나 오래 방치가 되어 있었는지 온갖 쓰레기와 자재들로 가득했다.
게다가 규모도 커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바깥에서는 모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아마 범인이 제보하지 않았다면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철제펜스도 그렇고 구조적으로도 소리가 멀리 퍼지진 않겠어.’
그의 판단에 범인은 일부러 이곳을 택한 것이 분명했다.
장소가 주는 분위기와 느낌.
박인섭은 범인이 오랫동안 살인을 해왔고, 이 같은 사냥터를 더 파악하고 있을 거라 추측했다.
‘양재승 계장의 생각처럼 블룸일까······’
아니다.
청부살인 브로커는 지금껏 소문으로만 존재해왔을 뿐 그 실체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
손정만이 경찰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꼬리도 잡기 힘들 정도로 은밀한 놈들이었다.
그러니 시체가 남았다는 건 그가 아는 청부조직의 방식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리첸지의 저택에서는 인원이 많으니 놔뒀을 수도 있지만 고작 시체 네 구를 남겼다는 건 블룸이 아니라는 증거야. 확실해.’
박인섭은 스스로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고 마지막 3층에 발을 내딛었다.
그런 그의 눈에 무릎을 꿇은 자세의 네 사람, 아니 시체 네 구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간 박인섭은 절로 욕지기가 치밀었다.
“이런 미X······”
시체들은 전신에 못이 박혀 있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박인섭은 잔인하기로는 토막살인이 제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눈앞에서 처음 보는 살해방식을 접하니 그에 못지않게 잔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계장님, 여기 좀 보시겠습니까?”
형사는 한쪽에 있던 사각 페인트통을 가리켰다.
불을 피웠는지 속은 온통 그을려있었고 재로 가득했다.
그리고 안에 검게 변한 못도 몇 개 보였다.
“감식반의 말로는 이 안에 못을 넣고 불에 달군 후에 시신에 박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체에서 출혈이 난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
“그냥 못질을 했어도 잔인한데 불로 지지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보란 듯이 제보까지 했고요. 무슨 뜻일까요?”
박인섭은 리첸지 옆에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되물었다.
“이 사체들은 신원확인이 됐습니까?”
“여기 동남아인은 태국인으로 불법체류자인 아사드 캄이라는 사람입니다. 용병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걸로 봐서는 계장님께서 보내주신 카람빗의 조직원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 그냥 조직원이 아니라 보스일 겁니다. 여기 이 비쩍 마른 중년남자는요?”
“그 사람은 신원확인이 안 되더군요. 지문등록도 안 된 걸 보면 유령개라고 생각됩니다.”
“이 노인은 누굽니까?”
“이종인이라는 사람인데 젊었을 때 살인, 강간 등으로 전과가 있었습니다. 40대 이후로는 기록이 없어서 평범한 시민으로 산 것 같은데 이놈들하고 어울린 걸 보면 정상적으로 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노인이 브로커인 모양이네요. 여기 이놈들은 리 일가, 카람빗, 유령개의 핵심이고 여기 이 노인이 하나의 카르텔로 묶은 게 분명합니다.”
“그럼 범인은 이들에게 희생당한 유족일까요?”
범행수법의 잔인함을 생각하면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장소선택에서 연쇄살인마라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조선족 타운에서 팔십여 명이 학살당한 거 들으셨죠?”
“네.”
“그곳에도 여기 이놈들처럼 눈알이 뽑힌 시체가 있었습니다. 동일범의 소행인 겁니다.”
박인섭은 네 구의 시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보십시오. 마치 죄를 청하는 듯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네.”
그는 이어서 리첸지의 몸에 박힌 못의 갯수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쉬었다.
“백여덟 개군요. 아마 다른 시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이건 일종의 공개처형인 것 같습니다. 아마 청부살인을 하는 다른 놈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본보기가 아닐까 싶군요.”
박인섭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눈깔, 이 새끼. 자신의 행위가 정의라고 믿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