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6
6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골드바의 정문은 이름처럼 황금빛 네온사인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주변은 슈퍼카가 쉴 새 없이 오고 가고, 명품으로 치장한 남녀들이 그곳을 드나들었다.
나는 손끝으로 담배를 털어 끈 후 정문으로 향했다.
가드는 두 명.
흰색 인이어를 끼고 검은색 수트를 입은 떡대들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이 드나드는데 나는 제지한다.
차림새가 문제인 건가?
아니다.
여기 올 걸 대비해 신경 좀 쓰고 왔다.
다른 문제인 것이다.
가령 회원제로 운영된다거나.
“여기 멤버쉽입니까?”
“그렇습니다. 처음이신가 보군요.”
“네, 가입할 수 있나요?”
“죄송하지만 기존 회원의 소개가 아니면 안 됩니다.”
기존 회원이 신분을 증명해줘야 한다?
강남 한복판에서 운영되는 바(BAR)치고는 너무 깐깐하다.
‘이런 곳은 구석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왜 중심가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거지?’
주변을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번 정도는 시선을 주고 있다.
혹시 즐기는 건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끼면서 특권의식을 가지기 위한 목적 말이다.
“이래서 내가 여길 못 끊는다니까. 물 관리 확실하잖아.”
떡대들을 스쳐지나가는 날라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골드바의 정문 계단을 오르며 나를 힐끔거리는 모습을 보니 내 예상이 맞는 모양이다.
특유의 우월감이 섞인 눈이다.
‘흐음, 저놈을 이용해볼까?’
기존회원은 아는 사람이 없으니 나중에 다시 와도 소용이 없다.
가능하면 오늘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규정이란 어차피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
나는 떡대들의 호감, 나아가 그들의 윗선에 호감을 만들기 위해 날라리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즉석에서 떠올린 계획이지만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는 거다.
시선을 놈의 발목에 두었다.
그리고 계단을 밟기 직전에 염력으로 툭하고 밀었다.
-콰당탕탕.
날라리는 계단을 날듯이 굴러 떨어졌다.
“아윽, X발. 끄으으······”
“괜찮으십니까?”
떡대들이 다가가 부축하자 놈은 팔을 뿌리쳤다.
다친 걸 떠나 부끄러운지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X발, 관리 똑바로 안 해? 계단이 왜 이렇게 미끄러워?!”
역시 저들에게 화풀이다.
딱 원하는 태도와 상황이 연출되었다.
나는 그들을 옹호하며 말했다.
“미끄러진 게 아니라 발을 헛디뎠던데요.”
“뭐? 너 지금 뭐라 그랬어?”
“그쪽이 발을 헛디뎠다고요. 이분들은 등 돌리고 있어서 못 봤겠지만.”
더, 더 소란을 피워라.
그래야 관리자급이 여기로 나올 테니.
“……!”
이를 뿌드득 가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놈은 절뚝거리며 일어서더니 떡대들에게 말했다.
“니들이 말해봐. 내가 미끄러졌어, 아니면 헛디뎠어?”
“미끄러지셨습니다.”
떡대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답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똑똑히 봤어?”
“봤습니다.”
날라리는 삐딱하게 고개를 틀고선 나를 바라보았다.
“어이, 들었지?”
“……”
“주둥이가 달렸다고 멋대로 지껄이면 X되는 거거든, 이렇게 말이야.”
아까 계단에서 구를 때 목을 꺾어버릴 걸 그랬다.
이렇게 까불 줄 알았으면.
“무릎 꿇고 잘못 했습니다아, 해봐.”
“……”
“존심상 못하겠어? 보는 눈이 많아서?”
놈은 느물거리면서 다가와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용서를 빌래, 아니면 처맞고 빌래?”
“……”
당황스럽다.
호감을 얻으려 했던 떡대들이 오히려 놈의 의도대로 나서려고 하고 있으니.
역시 즉석에서 실행하는 계획은 변수를 예측하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으려는 그때였다.
“조민철, 아직 안 들어가고 거기서 뭐하냐?”
내용으로 보아 눈앞의 날라리와 일행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어? 석훈이 넌 여기 왜 있어?”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염석훈이라고 내 후배야.”
“네 후배라고? 이런 씨······”
“왜 무슨 일인데?”
조민철은 쯧하고 혀를 차더니 나에게 말했다.
“어이,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저 새끼 후배라서 봐주는 거니까.”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직접 물어보든가. 먼저 들어간다.”
놈이 골드바 안으로 사라지자 선배가 나를 돌아보았다.
김창현.
그는 나와 같은 투어프로다.
다른 게 있다면 집안이 유복하고, 학력도 좋으며, KPGA 랭킹도 훨씬 높은 엄친아 같은 사람이다.
아마 염력이 아니었다면 그가 날 알지도 못 했을 것이다.
본 실력만으로는 지금의 랭킹을 유지할 수 없으니.
“의외네. 석훈이 네가 길거리에서 시비를 붙다니. 그것도 이런 곳에서 말이야.”
“창현이 형, 그게······”
“됐어. 보나마나 민철이 저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겠지. 쟤가 싸가지가 좀 없거든. 하하하.”
“……”
“다친덴 없어?”
“네, 괜찮아요.”
나는 조민철이 붙잡았던 어깨를 툭툭 털며 구겨진 주름을 폈다.
김창현은 내 복장을 물끄러미 보더니 골드바의 네온사인 간판을 힐끔거리고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여기 들어가려고 했던 거야?”
“……네.”
“너 내가 아는 염석훈 맞냐? 네가 이런 데를 다닌다고?”
“……크흠.”
젠장, 내 이미지 어쩔.
“역시 너도 고자는 아니었구나. 여자들이 그렇게 들이대도 끄떡없더니 다 이유가 있었어.”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알았어. 비밀 지켜줄게. 걱정마라, 형 입 무거운 거 알지?”
“……”
제기랄, 저렇게 말하니까 더 믿음이 안 간다.
한동안 필드에 내 뒷담화가 돌아다닐 것 같다.
“근데 여기 회원 아니면 못 들어가는데. 너 가입했었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 시비가 붙은 거였어요.”
“그랬구나.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네. 그럼 내가 들어가게 해줄까?”
“그래주시면 고맙고요.”
“가자. 내 일행이라고 하면 하룻밤 출입은 가능하니까.”
“저기 창현이 형.”
“응?”
“가능하면 멤버쉽 가입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될까요?”
김창현은 므흣하게 웃더니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왜 안 되겠니. 당연히 되지. 강력한 라이벌이 알아서 타락해주시겠다는데 도와줘야지. 하하하.”
“고마워요.”
“인마, 내가 더 고마워.”
룸살롱 내부로 들어가자 젊은 여자가 다가왔다.
김창현의 말에 따르면 새끼마담이라고 했다.
마담이라고 하면 현역에서 물러난 나이 든 여자를 떠올렸는데 편견이 무색하게 예쁜 여자였다.
“누나, 여기 이 친구 멤버쉽 좀 만들어줘요. 내 후배예요.”
“아이참, 누나 아니라니깐. 오빠, 우리 사이에 계속 그럴 거야?”
“알았어, 그럼 언니라고 부를게. 해줄 수 있지, 언니? 킥킥.”
김창현의 너스레에 그녀는 포기한 듯 되물었다.
“후배면 프로골퍼?”
“어, 이름은 염석훈. 나이는 스물 셋. 이래보여도 꽤 장래가 촉망되는 녀석이라고. 그런 애를 타락시키는 거야. 신경 좀 써줘.”
“호호, 책임이 막중하네.”
“몇 번 방이지?”
마담은 우측 통로를 가리켰다.
“9번 방으로 배정했어. 조대표님, 방금 들어갔고.”
“싱글넘버라······ 오늘 운이 좋은데?”
“연락받고 미리 비워뒀지.”
“역시 센스 있다니깐.”
김창현은 나에게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석훈아, 가자. 처음부터 싱글이라니. 너 오늘 홀인원 한 거야, 인마.”
“창현이 형, 전 따로 방 잡을 게요.”
“뭐? 혹시 민철이 때문에 그래? 이런데서 같이 한 잔 하면 저절로 풀리고 그러는 거야. 같이 들어가자.”
“다음에요. 처음부터 싱글이면 나중에 재미없어서 어떻게 놀아요.”
“하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나? 하긴 에이스보고 나면 다른 애들은 오징어가 되니까 그렇기도 하겠네.”
“어서 가보세요. 친구분 기다리겠어요.”
“그래. 다음에 꼭 시간 내서 같이 한 잔 하자, 알았지?”
“네.”
김창현이 오른쪽 복도로 사라지자 새끼마담은 나를 27번 룸으로 안내했다.
룸 넘버와 이곳까지 오며 본 바로 족히 50개가 넘는 방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신입오빠, 지금부터 애들 열 명씩 룸으로 들어올 거예요. 마음에 들면 웨이터에게 말해줘요. 성심성의껏 모실 테니까. 참고로 여기선 원하는 건 뭐든 가능하니까 눈치 보지 말고 요구하시고 마음껏 즐기세요.”
‘원하는 건 뭐든’이라고 강조하는 말에 정말 제약이 없어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이면에 생각보다 더 어두운 면이 있는 것이다.
“여자는 무작위로 들어옵니까?”
“원하는 취향이라도 있어요?”
“서른 이상.”
“어머, 조숙한 걸 좋아하시나보네. 어디까지 괜찮아요?”
“서른다섯. 가능해요?”
“그럼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잖아요. 당연히 준비되어 있죠.”
새끼마담은 내 잔에 양주 한 잔을 따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혹시 나이를 속이진 않겠죠? 가령 실제 나이는 적은데 많다고 한다던지, 아니면 반대의 경우라거나.”
“호호호, 염려마세요. 그런 부분에선 투명하게 관리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양주잔 옆의 음료수를 따서 마셨다.
그리고 잠시 후, 업소녀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른에서 서른다섯.
혹시나 싶어 한설아의 나이를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지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변장 수준으로 떡칠한 최미연도 알아본 나다.
한설아가 있었다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미연이 누나가 얼굴을 알아봤다면 성형했을 리도 없는데······’
이미 몇 번의 로테이션을 돌았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 고객님, 말씀하신 조건으로는 다 보셨습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없으십니까?”
웨이터가 룸으로 들어와 물었다.
“다른 여자들은 없나요? 가령 싱글룸으로 간 사람 중에 서른에서 서른다섯 여자가 있다거나.”
“그쪽은 에이스 전용이라서 스물다섯만 넘어가도 못 들어갑니다. 혹시 따로 찾으시는 아가씨라도 있으십니까?”
어쩔 수 없이 설아누나의 이름을 밝혀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회원이 지목을 한다면 그것대로 눈에 띄는 행위다.
‘오늘은 골드바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일하는 걸지도 몰라.’
초조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저기 손님?”
“아, 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아까 들어온 여자들 중에 가장 경력이 긴 아가씨로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술은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제일 비싼 걸로 아무거나 추천해주세요.”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
룸으로 들어온 여자는 골드바에서만 십년을 일한 베테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그녀로부터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한 정보를 캐내었고, 그 중에는 김천수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사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우리 사장님? 음······ 좋은 분이죠. 내가 십년을 일한 곳은 여기 밖에 없으니까요. 대우도 좋고 이런저런 편의도 잘 봐주고. 무엇보다······
-뭔데요?
-다른 곳과 달리 적극적으로 스폰서랑 잘 이어줘요. 그렇게 팔자 핀 애들도 꽤 많고.
그녀의 말에 따르면 김천수의 인맥은 다양하게 퍼져있다고 했다.
표면적으로 봐도 음으로는 흑룡파, 양으로는 각계각층의 재력가까지.
촌 동네 고아원장의 아들이 땅 팔아서 대도시, 그것도 핫 플레이스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어머, 신입오빠 벌써 가려고요?”
룸을 나오니 새끼마담이 달라붙으며 아양을 떤다.
“또 올게요.”
“김프로 아직 9번 룸에 있는데 같이 합석하지 그래요?”
“오늘만 날인가요. 다음에 창현이 형하고 같이 올 텐데요 뭐.”
“호호호, 그렇긴 하네요. 그럼 다음에 더 찐하게 모실게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골드바를 나서려는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30대 중반의 남자가 떡대 하나를 거느리고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와 까무잡잡한 피부, 올백으로 넘긴 헤어스타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김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