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61
61화. 또 눈깔 그 새끼라고?!
‘니미 바빠 죽겠는데 이딴 데나 끌려 가야되고…… 휴우.’
박인섭은 계장이 되었어도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서장의 지시 때문이었다.
-자네, 백의원님 알지?
-누구요?
-백만호 의원님 말이야.
-뭐, 알긴 알죠. 오늘 아침에 보고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하셨다고.
-가서 현장 좀 봐.
-어디요?
-대한의학대.
-아니, 그게 아니라 저보고. 그러니까 형사계장인 제가 직접 그 사람 죽은 현장 살펴보라고요?”
-그래.
-왜요?
-사모님께서 타살이 분명하다고 연락이 왔으니까 그렇지.
-김형사가 갔잖습니까.
-베테랑으로 좀 보내달라더라고.
-김형사도 베테랑입니다.
-까라면 좀 까! 이젠 계장이라고 못 까겠다 이거야?
-서장님!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뭔 놈의 끈이 있는 건지 서장은 무조건 가서 보라고 압력을 가했으니.
‘눈깔새끼 잡아야 할 시간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원.’
박인섭은 대한의학대 VIP병동을 앞에 두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털어내려 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제대로 현장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있었던 장소.
어떤 경우든 그런 곳을 허투루 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계장님 오셨습니까.”
김형사가 박인섭을 발견하고 경례를 했다.
“어, 수고가 많아.”
박인섭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눈짓으로 병실 안을 가리켰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는 의미였다.
-도리도리.
그는 슬쩍 고개를 흔들며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받았다.
역시 단순 사망사건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쪽이 윗사람이에요?”
백만호의 와이프로 보이는 노인이 다가왔다.
척 보기에도 드세고 갑질이 일상일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를 두른 여자였다.
“네, 사모님. 강남서 형사계장 박인섭입니다.”
“빨리 와서 좀 살펴봐요. 우리 바깥양반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었다고. 이렇게 갑자기 죽을 리가 없어요.”
박인섭은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 병실 내부를 살폈다.
그러면서 김형사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내, 외부 CCTV의 유무, 사람이 오고 간 흔적, 사체에 상흔이 남았는지 등.
가능한 모든 걸 확인했고 그가 내린 결정은 특별할 것 없다였다.
그때 그의 눈에 시체 바로 앞, 쇼파에 앉아있는 인형이 들어왔다.
“이건 웬 인형입니까?”
“우리 손녀가 할아버지 빨리 나으라고 갖다 놓은 거예요.”
언젠가 티비에서 본 적이 있었다.
관절 어쩌고라는 고가의 인형이라는 식으로.
“이거 건전지 들어가나요? 그러니까 움직이는 건지 묻는 겁니다.”
“아니, 왜 쓸데없이 인형 얘기만 하는 거예요?”
“한밤 중에 보면 좀······ 그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설마 우리 바깥양반이 그깟 인형보고 심장마비 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신 형사계장 맞아?!”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서 여쭤본 겁니다. 정 타살이 의심되시면 부검하시죠. 만약 사모님의 말씀대로 타살이 맞다면 약물일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겁니다.”
“……”
그녀는 탐탁지 않지만 동의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김형사, 가서 보호자 동의 받아.”
“네, 계장님.”
“여기 주치의가 누구시죠?”
박인섭의 물음에 남지웅이 답했다.
“접니다.”
“잠깐 따로 얘기 좀 하시죠.”
자리를 옮긴 박인섭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주치의로서 봤을 때 어떻습니까? 백만호 의원님이 심장마비인 게 자연스러운 일인가요?”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만 썩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죠.”
“……”
“바이탈, 그러니까 환자 본인이 기계를 뗐을 때 심장마비가 급사할 정도로 심하게 왔으니까요.”
“타이밍이 의심스럽다는 말이군요.”
“네, 하지만 그 외엔 이상할 게 없습니다. 심장에 무리도 많이 온 상태였고, 기저질환도 심해서 하루빨리 이식해야 하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렇군요.”
박인섭은 수첩에 관련 내용을 꼼꼼히 적더니 다시 물었다.
“그런데 심장이식은 보통 몇 년을 기다려도 받을까 말까 한 거 아니었습니까?”
“네?”
“아니, 백만호 의원님께서 특혜를 받은 건 아닐까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그게 의원님 사망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하하, 제 질문이 너무 예민했나보군요. 그저 단순한 절차입니다. 사모님께서 타살이라고 극구 주장하시니 원한관계가 생길만한 일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죠.”
남지웅은 싸늘한 눈초리로 정색하고 답했다.
“절대 특혜가 아닙니다. 심장이라는 게 줄서서 기다리면 받을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인 줄 아십니까? 도너의 심장과 비슷한 크기인지, 혈액형은 맞는지, 면역거부반응은 없는지 등을 고려해서 대상자를 찾아야 하고, 예후까지 시뮬레이션해서 전반적인 평가를 하고 적합성 판정까지 받았을 때 이식을 할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지는 겁니다. 의원님은 그 과정에 가장 높은 적합성이 있는 것으로 결정되었고요.”
“뭔가 대단히 복잡하네요.”
“심장이식이 쉬운 수술은 아니니까요.”
“하긴 그렇긴 하죠.”
“더 할 말 있으십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박인섭은 담담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잠시 보던 남지웅은 하는 둥 마는 둥 악수를 하며 말했다.
“사모님 말씀, 너무 귀 기울여 듣지 마십시오. 주치의 판단으로는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가 확실하니 말입니다.”
“아, 예.”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악수를 나누고 멀어지는 그를 보며 박인섭은 생각했다.
‘뭔가 구린 게 있긴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백만호가 타살로 밝혀져서 영장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거대병원을 상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휴우, 오늘따라 기분이 더럽네.”
서장에 이어 병원까지.
새삼 자신의 직업이 참 힘없고,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박인섭이었다.
***
퇴원수속을 하며 알 수 있었다.
지난 밤 작업했던 백만호가 사망했음을.
4선 의원에 전 야당대표다보니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이었기에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남지웅도 여길 나가겠지.’
주차장에서 잠입하고 있다가 놈에게 염력만 걸어놓으면 행적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집이든 어디든 납치해서 입을 열게 만들 생각이었다.
-띵동.
지하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타는 그때였다.
“어? 염석훈 씨 아닙니까?”
나는 그 안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그······ 형사님?”
“박인섭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국과수에서 만났던 강남서 형사다.
여기 대한의학대 병원이 관할이라서 온 모양이었다.
백만호의 사망이 타살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니.
‘근데 형사계장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때 국과수도 그렇고, 직책이 높아도 이렇게 현장을 자주 다니나?’
나는 궁금증을 뒤로한 채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박인섭의 물음에 나는 왼 손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손목이 좀 안 좋아서요.”
“저런, 프로골퍼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관리 잘 하셔야겠네요.”
“네, 아무래도 밥벌이 수단이니까요.”
뭘까.
날 쳐다보는 눈길에 뭔가가 섞여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데 이골이 났기에 느낄 수 있는 거겠지만 이런 내 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형사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어디 아프신가요?”
“아니요. 들으셨을 겁니다, 백만호 의원이라고.”
“아, 그분. 안 그래도 간호사들이 쑥덕거리더라고요. 간밤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네. 신분도 신분이지만 타살, 이라서 계장인 제가 직접 온 겁니다.”
타살이라.
확신하는 듯한 말투다.
뭔가 흔적이 남았던 건가?
그럴 리 없을 텐데.
-띵동.
그때 엘리베이터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
“염석훈 씨 차는 어디 있습니까?”
“제 차는 저쪽에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참, 그리고 한설아 씨 사건 있잖습니까.”
“네, 저도 궁금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죠?”
“조선족 계열 범죄조직을 특정하고 수사하고 있는데······ 실은 아직 언론에 비공개인 사건과 얽힌 상황이라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계속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형사님들께서 최선을 다해 주시겠죠.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장기밀매와 관련 있다는 건 전혀 모르는 구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아, 잠깐만요.”
“네?”
“같이 셀카 좀 찍을 수 있습니까?”
“셀카요?”
박인섭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알고 보니까 우리 딸아이가 염석훈 씨 팬이더라고요.”
“…….”
“유명세 때문에 피곤하시겠지만 한번만 찍게 해주시죠.”
“예…… 뭐, 그러시죠.”
어쩔 수 없이 그와 셀카를 찍어주었다.
형사가 요청하다보니 거절하면 뭔가 의심을 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고맙습니다, 염석훈 씨. 이거 보여주면 우리 딸이 참 좋아할 거 같네요.”
“네, 그럼 이만.”
나는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차로 향했다.
오늘은 주차장에서 남지웅을 기다리진 못할 것 같았다.
그와 마주친 이상 이곳에 오래 남아 있다면 이상하게 보일 테니.
‘어쩔 수 없네. 놈의 집에 먼저 가서 기다리는 수밖에.’
무슨 놈의 우연이 이런지.
***
박인섭은 차에 타자마자 핸들에 머리를 박고 생각했다.
‘왜 그랬지.’
자신도 모르게 그를 테스트한 것이었다.
타살을 입에 올려 반응을 보려 했고, 한설아 사건의 수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나오는지 살피려 했다.
‘DNA 확인했고 나온 게 없잖아. 왜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거지?’
더구나 테스트한 결과도 깨끗하다.
타살이란 말을 들은 것에 대한 반응도 전혀 없었고, 수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말과는 달리 불편한 기색이 드러났다.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니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백만호 의원 사망사건의 장소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찜찜했다.
‘휴우, 나도 참 병이라니까.’
박인섭은 결국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네, 계장님.
“김형사, 병원기록에 염석훈이라는 사람 진료기록 있는지 확인해봐.”
-예? 염석훈요?
“그래, 무슨 진료를 받았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면 병원 내에서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CCTV 확보해서 동선도 따.”
-그 사람이 용의자라도 되는 건가요?
“몰라. 모르니까 확인하려는 거야. 오늘 서로 복귀하기 전까지 확인해서 보고해.”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그는 조금 전에 염석훈과 찍은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터치펜을 꺼내 그의 얼굴 위에 보잉 선글라스를 그려보았다.
“……!”
그려놓고 보니 무척이나 비슷했다.
리첸지의 집 근처 CCTV에 찍혔던 운전자의 모습과.
영상의 화질도 낮고, 헤어스타일도 다르지만 분위기가 그러했다.
“우연…… 인가?”
그저 닮은 사람인지도 몰랐다.
분위기만 따지자면 날렵한 턱선에 호리호리한 사람에게 같은 선글라스를 씌우면 비슷하게 연출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박인섭은 사진을 보며 한 줄기 의심을 지울 수 있었다.
자신이 그저 불확실한 감만 믿고 실수하는 건 아닐까하는 의심을.
-띠리리리.
그때 화면이 바뀌며 전화가 왔다.
3팀장인 서진산이었다.
“무슨 일이야, 서팀장?”
-계장님, 찾았습니다.
“뭘 찾았다는 말이야?”
-김천수요.
“뭐?! 그놈 어딨어?
서울산성 칼부림 사건에서 놓쳤던 김천수.
행방이 묘연했던 그놈을 드디어 발견한 것이었다.
-서울산성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우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죽어있었습니다.
“죽었다고?”
-네. 그리고 이놈도 그놈들처럼 눈알이 빠져 있습니다.
“또 눈깔 그 새끼라고?!”
박인섭은 차에 시동을 걸며 소리쳤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야? 주소 찍어 보내! 지금 바로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