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62
62화. 그놈 어디 갔어?
산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악산 산자락.
노란 폴리스라인을 들어 올리며 박인섭이 현장으로 들어섰다.
“서팀장.”
“아, 계장님.”
우물 속을 내려다보던 서진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칼부림 사건 이후로 시에서 범행에 이용된 산성비밀통로 전부 조사하고 있었잖습니까. 그 와중에 붕괴된 통로를 확인하다가 발견했답니다.”
서진산은 주변을 가리키며 범인이 김천수를 우물 안에 가두고, 그 위에 돌과 흙더미를 덮어 은폐했다고 추가로 설명했다.
“살아있는 채로 가뒀다고?”
“감식반 말로는 그렇답니다. 어떻게 보면 산 채로 파묻은 거죠.”
“……”
대량학살과 못질해서 죽인 데 이어 산 채로 파묻은 수법까지 나왔다.
눈알이 뽑힌 걸 제외하면 현재까지 동일한 수법이 없는 상황.
박인섭은 범인이 정말로 위험한 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후우.”
그때 숨을 몰아쉬며 감식반 인원이 우물에 걸친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뭐 좀 나온 게 있습니까?”
서진산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국과수에 보내봐야 알겠지만 제가 보기엔 깨끗합니다. 요즘 생기는 살인사건은 갈수록 증거가 없네요. 범죄자들도 지능화되는 모양입니다.”
“……”
그 말에 박인섭의 뇌리에 지난 사건들이 스쳤다.
타살로 의심되지만 증거가 없어서 자연사나 돌연사로 종결된 사건들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감식반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 생각은 곧바로 잊혀져버렸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이라는 겁니다.”
그는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김천수의 시체는 발가벗겨진 채 팔다리와 입이 철사 같은 것으로 꿰매져 있었다.
“미X 새끼······”
“산채로 파묻은 것도 그렇지만 이 정도까지 잔혹하게 대한 걸 보면 원한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피해자가 남긴 다잉메세지 같은 건 없던가?”
박인섭의 물음에 또 다시 그의 고개가 저어졌다.
“보시면 팔을 뒤로 해서 꿰맸고, 발도 마찬가집니다. 신경과 인대가 지나가는 부위를 정확히 꿰맨 걸 보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피해자는 아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을 겁니다.”
“……”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포에 질린 채로 천천히 죽어갔을 게 분명합니다.”
“이마에 난 상처는 뭐지?”
“죽으려고 바닥에 머리를 찧은 것 같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그런 거겠죠.”
박인섭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끔찍한 짓을 당하고도 제정신이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리고 다음 사진을 한 번 보십시오.”
“……?”
“거기 화상부위 있잖습니까.”
“아, 이거? 모양이 독특한데 범인이 그런 건가?”
“네. 칼날이 얇은 칼을 불에 달궈서 지진 겁니다. 내가 널 죽였다는 상징처럼 남긴 거 같습니다.”
벤츠의 삼각별 심벌을 닮은 문양.
박인섭은 그걸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놈들은 이런 흔적이 전혀 없었는데.’
상징처럼 남겼다면 피해자들 모두가 이런 상흔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니 이건 김천수에게만 새겨야 했던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그의 뇌리에 번쩍하고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잠깐만!”
감식반 인원의 손에서 카메라를 뺏어든 박인섭이 문양을 다시 살펴보았다.
다시 살펴봐도 그때 본 그것과 같은 문양이었다.
‘하마터면 그냥 넘길 뻔했네.’
벤츠의 삼각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데다 워낙 오래전에 본 것이기에 금방 떠올리지 못한 것이었다.
“계장님, 왜 그러십니까?”
“이거 본 적 있다.”
“네? 어디서요?”
“십오 년 전에 미소고아원 사건에서.”
당시 고아원생 몇몇의 몸에 새겨져 있던 학대의 증거 중 하나가 이 문양이었다.
박인섭은 범인이 미소고아원과 연관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서팀장, 현장정리하고 서로 복귀해.”
“예, 알겠습니다.”
현장을 나온 박인섭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검사님, 박인섭입니다. 잠깐 만나서 얘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
형사들의 현장조사가 끝난 후,
남지웅은 자신의 개인수술팀을 불러 모았다.
집도의인 자신을 제외한 보조의사, 수술간호사, 마취의가 그들이었다.
“다들 아쉽겠지만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박간호사, 다음 스케줄이 언제지?”
그의 물음에 박수영 간호사가 답했다.
“한 달 후에 김회장님 아들 간 이식이요.”
“그럼 2주 후에 미팅가지는 걸로 하자고.”
“확보해놓은 심장은 어쩔까요?”
남지웅은 속이 쓰렸다.
블룸에서 심장수급을 펑크 내면서 땜빵으로 잡은 사냥개.
손해를 감수하고 잡았는데 고기값은커녕 폐기비용만 떠안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버려.”
“근데 이씨가 연락이 안 되던데요.”
그녀가 말하는 이씨는 시체소각차를 운용하는 이경호였다.
“뭐? 이씨도?”
“네.”
“이것들이 도대체 뭔 일이야…… 휴우, 그럼 주물공장 쪽에 얘기해서 운반차 보내라고 할 테니까 기다렸다가 인계하고 해산해.”
그는 품속에서 오만 원 권 돈다발 세 개를 꺼내 그들에게 각자 건넸다.
불법 장기이식이 있을 때마다 한시적 프로젝트처럼 함께하는 것이 남지웅과 그들의 관계였다.
그러니 아무리 수술이 없었어도 최소한의 보수는 지급해야 했다.
“뒤처리 잘 하고, 미리 개인 스케줄들 맞춰놔.”
“감사합니다!”
“들어가십시오, 박사님!”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한 남지웅은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가 나타나자 짙은 썬팅이 된 벤틀리의 운전석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는 사냥개 중 한 명이었다.
“트렁크 안에 있는 놈도 뒷좌석에 태워.”
-끄덕끄덕.
그는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 쪼그리고 누워있는 사냥개에게 고갯짓을 했다.
각각 운적석과 뒷좌석에 탄 사냥개들은 묵묵히 남지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지웅은 노숙자나 입을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자신이 입고 있던 정장을 옆에 앉은 사냥개에게 건넸다.
“유령개가 옮긴 은거지가 청량리였나?”
-끄덕끄덕.
“일단 거기로 가.”
-끄덕끄덕.
벤틀리는 미끄러지듯 병원주차장을 나서 도로 위를 달렸다.
남지웅은 견주가 연락되지 않기에 유령개의 은거지로 직접 가보는 것이었다.
가는 김에 죽은 사냥개 두 마리도 충원하고 말이다.
***
나는 전민성을 통해 남지웅의 집 주소, 차종과 차량번호까지 확보했다.
그리고 그의 집이 위치한 평창동에서 기다렸다.
숲세권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산 산세를 끼고 있는 단독주택.
남지웅의 집은 재벌회장님 저택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넓은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집의 외관이 고풍스럽지 않고 모던하다는 점이었다.
‘집은 큰데 사람이 없다라······’
계속 지켜본 바, 저 집은 규모가 큰데도 불구하고 하우스키퍼나 경호원이 전혀 없었다.
CCTV는 있는 것이 최소한의 경비는 하고 있지만 말이다.
‘잠입하는 게 어렵진 않겠어.’
가장 좋은 점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목격자를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보안업체야 걸리더라도 도착하기 전에 데리고 나가면 돼.’
여러모로 작업하기 적합한 장소였다.
나는 잠입루트를 정해놓고 놈을 기다렸다.
그렇게 세 시간가량 흐르고 사위가 어두워질 때쯤 멀리서 다가오는 벤틀리가 보였다.
차량번호로 보건대 남지웅이 온 것이었다.
-지이이잉.
정문이 열리는 사이, 나는 골목을 벗어나 산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망원경을 꺼내 바라보았다.
차고가 따로 있는 게 아닌 듯 벤틀리는 정문을 지나 정원 한 쪽에 정차했다.
운전석에서 운전기사, 그리고 뒷좌석에서 남지웅이 내려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간 후 불이 켜졌고, 한참이 지났지만 운전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뭐야, 운전기사는 함께 지내는 거야? 측근 같은 직책도 수행하는 건가?’
이렇게 되면 잠을 자고 있을 때 남지웅만 몰래 납치하는 게 최선이다.
그도 아니면 운전기사를 기절을 시키거나.
‘좀 더 기다려보자.’
한 시간, 두 시간······
자정이 넘었지만 저택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러다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잠입을 결정.
장소를 이동해 저택의 측면으로 향했다.
CCTV와 적외선 감지기는 사각이 없었고 심지어 공중까지 카메라가 향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지붕으로 뚝 떨어져도 영상이 찍힐 것이 분명했다.
그 중 그나마 몸을 숨길 곳이 있는 곳은 정원수가 늘어서 있는 저택 측면이었다.
‘각도를 살짝만.’
CCTV 카메라의 방향을 염력으로 아주 약간 틀었다.
보안업체 요원이 실시간으로 이 카메라만 집중해서 보고 있다면 모를까, 건성으로 보고 있다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틀어짐이었다.
나는 그 사각을 비집고 담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정원수와 안쪽 담을 따라 집 뒷문으로 향했다.
‘여기도 살짝.’
뒷문을 감시하고 있던 CCTV 카메라의 방향을 틀어 다시 사각을 만들었다.
그 틈에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집안으로 잠입했다.
그곳은 다용도실이었다.
다시 실내로 이어지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냉장고와 아일랜드 식탁이 보였다.
-스윽.
발소리도 내지 않고 공중에 살짝 떠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냉장고 옆에 몸을 숨기고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뭐야 저것들······’
불만 켜져 있고 TV도 꺼져 있는 상태.
그런데 남지웅과 운전기사는 정자세로 쇼파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마치 마네킹처럼.
‘뭔가 이상한데?’
십여 분을 그 상태로 지켜봐도 미동도 없다.
아무리 봐도 행동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일단 잡고 보자.’
시작하기 전에 거실 내부를 먼저 훑었다.
실내에도 CCTV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TV 위 선반에 놓여있는 홈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짠지 가짠지 모르지만 염력으로 카메라의 방향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스윽.
전기충격기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은밀하게 날아갔다.
노리는 건 운전기사.
그를 기절시키고 남지웅은 직접 제압할 생각이었다.
-파지지지직!
쇼파 뒤쪽에서 접근한 전기충격기가 운전기사의 등을 지졌다.
그 순간 나는 앉아있던 남지웅을 바닥에 쓰러트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고 와이어로 상체와 다리를 꽁공 묶었다.
다음으로 목구멍을 막으려는 그때였다.
‘어? 없잖아?’
혀가 없다.
애초부터 없었던 건 아니고 상태로 보아 오래 전에 잘린 모양이었다.
“너, 남지웅이 아니구나.”
“크으으으.”
내 질문에 가짜 남지웅은 온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마치 사로잡힌 짐승을 보는 듯한 느낌.
나는 그 모습에서 리첸지의 저택에서 보았던 유령개들을 떠올렸다.
리 일가나 카람빗의 일원과는 달리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던 그들을 말이다.
“사냥개 맞지?”
남지웅의 얼굴인 건 수술을 한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목적은 대역일 것이다.
‘저놈도 확인해보자.’
나는 기절한 운전기사의 입도 벌려서 확인해보았다.
역시나 혀가 잘려 있다.
이놈도 사냥개다.
‘대역까지 세워두고 어디를 간 거지?’
최소 사냥개 두 명을 대동해서 어디론가 간 것이다.
나는 가짜 남지웅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 말 알아듣지? 말은 못할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어서 답하면 돼.”
“크으으.”
“못 알아듣는 거 아니잖아.”
“크으으.”
“그놈 어디 갔어?”
“크으으.”
눈빛에서 적의가 그대로다.
아무래도 그냥 말로 해서는 들어먹지 않을 놈으로 보인다.
어쩔 수 없이 기를 꺾어놓고 다시 질문할 요량으로 와이어 한 가닥을 빼드는 그때였다.
“……!”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놈의 셔츠 아래로 익숙한 상처가 보였다.
염력으로 놈의 셔츠를 찢듯이 좌우로 벌렸다.
그러자 단추가 뜯어지며 상처로 가득한 신체가 드러냈다.
놈의 몸에는 멍 자국, 불로 지진 흔적, 칼로 째고 기운 흔적 등 수많은 학대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