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증명하지 못하는 범죄는 범죄가 아니거든
학대의 흔적을 보니 고문이 망설여졌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걸 알지만 어떤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머리로는 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가슴이 거부하는 간극.
심지어 이놈들이 한설아를 죽인 진범일지도 모른다는 걸 떠올려도 그러했다.
“크으으으.”
저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놈들은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X발.”
결국 와이어를 다시 가방 속에 넣었다.
대신 발목에서 트렌치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피가 튀지 않도록 소파쿠션을 놈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푸욱.
그대로 가짜 남지웅의 경동맥을 끊었다.
나머지 한 놈 역시 똑같이 만들어주었다.
용도를 다한 쿠션에 피 묻은 칼날을 닦고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놈들의 목덜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셨고, 나는 그 피에 사냥개의 손가락을 적셔 메세지를 남겼다.
-장기밀매.
남지웅이 돌아온다면 이놈들이 장기밀매와 관련하여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종의 심리적인 압박이었다.
이어서 범인이 한 명이 아닌 여럿, 그리고 일방적인 제압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거실의 집기들을 마구 부쉈다.
-와장창. 콰앙. 쿠웅.
그러던 그때였다.
-텅!
선반의 책이 떨어지며 발생한 소리였다.
속이 빈 무언가를 두드릴 때 나는 특유의 소리였기에 곧바로 의심할 수 있었다.
바닥에 비밀공간이 있다는 걸.
-스르르.
바닥에 깔려 있던 러그를 치우니 숨겨져 있던 문이 드러났다.
손으로 두드려보니 퉁퉁하고 소리가 났고 역시나 비어있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덜컹.
염력으로 잡아당기니 약간 들썩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가 않았다.
열쇠구멍이 있는 걸로 보아 잠겨있는 것이었다.
‘뭐가 있긴 있나보네.’
쇠로 된 금고라면 모를까 고작 나무로 된 문이다.
구린 게 있다는 걸 감안하면 보안업체의 감지장치에 연결되어 있지도 않을 테고.
그러니 부수면 될 일이었다.
‘뭐가 좋으려나······’
집안을 천천히 훑었다.
문을 부수기 위한 적당히 무거운 물건.
그리고 발견했다.
복도의 장식장 위에 놓인 수석을.
‘오랜만이네, 이거.’
제일 처음 살인을 시도할 때 사용했던 물건이다.
원장의 뒤통수를 깠던 돌덩이.
눈앞의 수석은 그때의 것보다 약간 더 컸다.
이 정도면 밖으로 나가 정원석을 가져올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는 그걸 염력으로 띄워서 가져갔다.
-콰앙. 우지직.
있는 힘껏 내려치니 문짝 하나가 움푹 파이면서 일그러졌다.
그때는 그냥 떨어트리는 게 고작이었는데 새삼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콰앙, 콰앙, 콰앙.
같은 곳만 반복해서 내리쳤다.
결국 문은 버티지 못하고 문짝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안쪽으로 계단이 나있었고 으스스한 게 기분 나쁜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천천히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이 끝난 곳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고,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치익.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켰다.
곧이어 계단 옆에 난 스위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걸 누르자 주변이 환해졌다.
“……!”
그곳에는 담금주병처럼 생긴 유리병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만 그 안에 든 게 약초나 과일이 아닌 사람의 신체였다.
심장, 간, 허파, 내장, 눈알, 혀, 귀, 뇌까지 없는 게 없었다.
마치 사람 하나를 조각내어 신체기관을 보관해놓은 듯 했다.
반대쪽 벽에는 인체의 뼈가 모형처럼 서 있고, 그 옆에 사람의 전신가죽이 약품처리 된 채 걸려 있었다.
‘미X 새끼······’
매드사이언티스트?
아니다.
이놈은 그냥 매드사이코패스다.
시체를 수집품처럼 진열해놓다니.
-찰칵, 찰칵.
나는 그 공간의 사진을 찍고, 동영상 촬영까지 한 후 위로 올라갔다.
마음 같아서는 다 불태우고 싶지만 시체의 유족 때문에 놔둔 것이었다.
만약 죽은 사람이 실종처리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찾고 있겠나.
***
집밖에 잠복한 채 기다렸지만 남지웅은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보안업체도 오지 않는 걸 보니 CCTV도 그저 녹화용일 뿐인 듯 보였다.
어쩌면 대역을 세워둔 것도 오래 걸리는 일이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
결국 나는 그 길로 평창동을 벗어났고, 곧바로 전민성을 찾아갔다.
“대역?”
전민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네, 사냥개 한 명의 얼굴을 수술한 것 같더라고요.”
“대역까지 세우고 어딜 간 걸까?”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은밀하게 움직인 거면 장기밀매와 관련된 거겠죠.”
“하긴 워낙 더러운 일이니까.”
어쩌며 그때 백만호와 얘기했던 수급문제 때문이지 않을까.
유령개도 그렇고, 다른 수급처인 시체처리소도 검경의 범죄소탕 때문에 원활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걸 좀 봐요.”
나는 남지웅의 집 지하공간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뭐야 이건? 헐, 진짜 X친 놈이었잖아.”
“잘 보면 마치 세트 같아요. 중복된 장기가 없거든요.”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네……”
“아마 장기는 다 해체해서 용기에 담고, 뼈는 따로 모아서 모형을 만든 거 아닐까요? 그냥 제 추측이지만 아마도 한 사람의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X친……”
“익명의 제보로 신고했으니까 형이 나중에 피해자 신원 좀 확인해줘요. 혹시나 남지웅과 관계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남지웅 그놈, 이대로 잠적하지 않을까? 이정도로 X친 짓을 한 게 드러나면 몸을 숨기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
분명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퍼펙트 보더라는 가면 뒤에 있던 흉측한 얼굴이 드러날 테니까.
“잠적하더라도 장기밀매를 그만 둘 놈은 아닌 것 같아요. 수집해놓은 시체도 그렇고, 그때 이혜선의 말도 생각해보면 놈은 사람의 몸에 대한 광적인 집착 같은 게 있는 거 아닐까요?”
“맞는 말이야. 이렇게 시체를 컬렉션 취급하는 놈은 중독된 거라고 봐야겠지.”
“그리고 우린 그놈과 장기밀매한 놈을 알고 있죠. 그놈을 조지면 뭐든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손정만 말이지?”
“네.”
한설아가 죽기 전에 알아낸 흑룡파의 장기밀매 관계자.
놈은 남지웅이 숨어 있을만한 은거지, 혹은 또 다른 관계자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전에 이혜선이 다녀간 이후로 그놈 소재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했는데?
검사가 경찰이 신병확보한 놈의 소재를 확인하는데 왜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가지?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박인섭 계장이 날 찾아왔었어.”
“그 사람이 왜요?”
“김천수의 시체가 발견됐는데 그 사건과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다더라고.”
“……!”
어떻게 벌써 발견된 거지?
분명 목격자도 없었고, 철저하게 위장해놨었는데.
“그놈 허벅지에 있는 화상자국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게 뭔지 묻더라고. 십오 년 전에 미소고아원 학대사건에서도 본 적 있다면서.”
내가 남긴 노예문신이다.
박인섭이 그걸 알아볼 줄이야.
오래전 일인데 기억력도 좋네.
“뭐라고 말했어요?”
“사실대로 얘기해줬지. 그때 김천수가 원생들에게 그런 짓을 했었다고.”
“……”
“그러더니 묻더라. 나랑 너도 그거 당했냐고.”
“……!”
“그래서 이거 보여줬어.”
전민성은 팔뚝을 걷어 올리며 자신의 노예문신을 보여주었다.
언제 봐도 짜증나는 상흔이다.
“그리고 설명해줬지. 이건 촉법이, 아니 촉법소년에 해당되는 애들이 말 안 들을 때 새기던 거라서 당시 어렸던 너는 안 당했다고.”
“그래서 뭐라던가요?”
“그거 당했던 사람들이 또 누가 있냐고 물어서 당시 내 또래 애들은 다 당했다고 말했어. 질문하는 투로 봐서는 미소고아원 원생들을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고.”
미소고아원 원생이라지만 아마도 나와 전민성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일 것이다.
만약 다른 원생들이 김천수와 얽혀 있지 않다면.
“그래서 이제 섣불리 뭘 알아보고 할 수가 없어.”
“……”
“이 정도면 진짜 턱밑까지 다가온 거나 다름없어. 조심해. 박인섭 계장, 만만한 사람 아니야.”
병원에서 마주쳤던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그가 했던 ‘타살’이라는 말.
아무리 되짚어 봐도 흔적 따위는 없었다.
내가 하루, 이틀 죽여 본 것도 아니고 그걸 모르겠나.
심지어 백만호는 심장마비를 유도해서 죽였다.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살인행위 중에 깔끔하기로는 으뜸일 것이다.
‘그런데도 타살이라고 말했다는 건 날 떠보기 위해서였던 거겠지.’
이유는 모르지만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발현되어 떠보는 식으로 나왔을 테고, 이제는 미소고아원 원생이라는 범위까지 축소되었다.
모든 교집합을 생각한다면 난 분명히 용의자 1순위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걱정마세요.”
나는 웃으며 전민성을 안심시켰다.
용의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그 사람 코앞에서 살인을 저질러도 과연 날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까?
‘증명하지 못하는 범죄는 범죄가 아니거든.’
***
청량리 4구역.
과거 미아리 텍사스, 파주 용주골과 더불어 집창촌으로 유명한 청량리588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 장소가 철거되고 재개발이 한창이지만 인근에서는 암암리에 성매매가 자행되고 있었다.
사람은 원래 본래 살던 곳을 떠나는 게 쉽지 않기 때문.
그렇기에 유령개의 아지트도 청량리 4구역에 위치해 있었다.
무적자들 대다수가 성매매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이기 때문이었다.
포주들은 과거엔 낙태를 시켰지만 사회적으로 낙태수술을 강력하게 단속했기에 지우는 게 쉽지 않았고, 그 상황에서 아기를 매매하는 불법루트가 생겼기에 낳은 후에 비싸게 팔아치우게 된 것이었다.
‘이 근처였는데······’
남지웅은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골목길을 걸었다.
건강검진을 위해 유령개의 아지트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몇 년 전에 장소를 옮겼다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했고, 예전처럼 마중 나온 사람도 없기에 헤매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눈에 익은 골목길이 보였다.
‘아, 여기네.’
그는 그 중에 주택이 아닌 조립식 건물로 향했다.
과거엔 개 도축장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유령개의 인간사육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철컹.
정문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견주가 자리를 비웠다는 증거였다.
남지웅은 기억을 되짚어 보며 한쪽에 놓여 있는 화분들을 들췄다.
아니나 다를까 열쇠가 숨겨져 있었다.
-끼익.
문을 열자 역한 냄새가 확하고 풍겨왔다.
오물냄새과 썩은 내가 진동했지만 그 사이 익숙한 냄새가 있었다.
‘이건 시체냄샌데······’
내부로 들어가자 냄새의 출처를 알 수 있었다.
좌우로 늘어선 개우리.
그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나는 것이었다.
“다 죽었잖아······”
먹을 걸 주지 않아 굶어죽은 걸로 보였다.
견주가 사육장에 오지 않은 지 한참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있는 모양인데······’
이 정도라면 유령개는 조직자체가 와해되었다고 봐야 했다.
남지웅이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를 뜨려는 그때였다.
-우르르.
일단의 무리가 입구에서 몰려들어왔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이국적인 생김새.
남지웅은 그들이 동남아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응? 이놈들 설마……’
그를 둘러싼 동남아인들은 하나같이 위험한 분위기를 흘렸다.
“당신은 누군데 유령개의 아지트에 있는 거지?”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물음이었다.
어눌한 발음은 동남아 특유의 어조가 묻어 있었다.
“그러는 당신들은 누구요?”
“내 말에 대답부터 해, 죽고 싶지 않으면.”
“나는 의사요. 유령개들 정기검진이 있어서 온 거요.”
“견주와 아는 사인가?”
“그렇소.”
“끌고 가.”
그의 명령에 동남아인들이 남지웅의 양팔을 붙잡았다.
“자, 잠깐. 당신들 카람빗 아니오?”
견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조선족 조직인 리 일가, 그리고 동남아인으로 구성된 카람빗에 대한 얘기를.
“대화는 가서 나누자고, 의사양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