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티 내지마라, 죽는다
당신이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쫓지 말라고 경고까지 날렸다.
이유는 하나다.
‘방해된다고 죽일 순 없으니까.’
비록 한설아의 사건에 태만했고,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이득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 정도로는 원장을 연상시키지 않았다.
기준에 미달되니 죽일 수 없고, 죽일 수 없으니 옷을 벗기는 방향으로 계획을 잡은 것이었다.
그가 가진 권한만 빼앗으면 일반인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도 덕분에 꼬리가 길면 밟힐 수도 있다는 걸 경험했어.’
물론 심증일 뿐이지만 언제까지고 물증이 남지 않을 거라고 속단할 수 없다.
내가 모르는 첨단기술이 어떤 식으로 날 위협할지 모르니까.
만약 빠져나갈 수 없는 궁지에 몰린다면?
답은 하나다.
나는 감옥에 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것.
살인?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직접적으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고 살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남을 괴롭히고, 짓밟고, 음해하고, 사기치고, 강탈하는 간접적 살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강력범죄가 줄어든 현대 사회의 이면에는 이런 종류의 간접살인이 넘쳐난다.
뭐가 다르지?
목숨을 빼앗은 것이나 인생을 빼앗은 것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다른 것이라곤 고작해야 인간이 만들어낸 법의 잣대일 뿐이다.
‘과연 나는 선을 넘을까 넘지 않을까.’
누구든 날 궁지에 몬다면 오랜 고뇌의 답을 내릴 때가 된 것일 것이다.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
박수영.
수양대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의료인력을 찾아보니 수간호사 중에 그런 이름은 딱 한 명 있었다.
아무리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는 시대라지만 의료인은 병원의 수익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사업수단일 뿐인 걸까.
생각보다 쉽게 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얼굴은 확인했으니 잡으러 가볼까.’
출발하기 전에 위장용 옷가지를 챙겼다.
박인섭에게 내 의도를 보인 이상 감시가 붙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옷을 벗었다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 차량에 눈이 갔다.
누가 감시를 하고 있을지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었다.
발걸음은 대형마트로 향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
그런 곳이 감시의 눈길을 돌리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달캉.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입었던 후드티, 바지, 신발로 모양을 잡고 가방까지 매게 만들었다.
거기에 텅 빈 후드모자 안에 마스크와 선글라스까지 세팅했다.
마지막으로 장갑까지 갖다 붙이니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일단 허수아비를 먼저 나가게 만들었다.
‘조금 버겁긴 하네.’
그때의 손정만을 움직이는 것보다 어렵다.
속이 빈 물건들의 모양을 유지하며 움직임까지 구현해야 하니.
이대로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그리 오래는 유지할 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거리를 두고 허수아비를 움직이며 마트 바깥으로 향했다.
길거리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중 택시하나의 문을 열며 허수아비를 태웠다.
그리고 장갑에 쥐어 놓았던 쪽지와 두둑한 현금을 기사에게 건네게 조종했다.
-언어장애가 있어서 말을 못 해요. 평택역으로 가주세요. 잔돈은 필요 없어요.
기사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수상한 모습에 위아래를 잠시 살폈지만 잔돈이 필요 없다는 쪽지의 내용 덕분인지 곧장 차를 출발시켰다.
‘아저씨 심장마비 안 걸리겠지?’
몇 번 더 써먹으려면 택시괴담 같은 것도 안 생겨야 할 텐데.
***
-주문하신 신상품 입고되었습니다. 대현백화점 매니저 강미나 드림.
문자를 확인한 박수영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방이 도착한 것이었다.
“김간호사, 나 오후 오프니까 그렇게 알아.”
박수영은 그 간단한 말 한 마디로 자신의 오후일과를 뺐다.
수간호사.
간호사들의 근무표 작성과 전반적인 간호업무 관리에 대한 권력을 지닌 존재다.
그녀의 한 마디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간호사 중에는 없었다.
“걱정 마시고 나가서 일 보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호호.”
어차피 간호업무는 하지도 않았다.
있어봤자 눈치밥만 먹어야 하니 없는 게 낫다고 여기는 김간호사였다.
“그래, 문제 생기면 전화하고. 알지?”
연락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럼요. 들어가세요, 수간호사님.”
찰떡같이 알아들은 김간호사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를 배웅했다.
하지만,
‘저런 년이 하는 게 뭐가 있다고 연봉이 내 두 밴 거야 도대체.’
마음속은 쌍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부러움도 반쯤 섞인 채.
-또각, 또각.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박수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골드미스인 그녀는 자신을 가꾸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40대 후반임에도 30대 못지않은 미모를 자랑했다.
타고 났다기 보다 그 모든 게 옷빨이었고, 성형빨이었다.
그런 그녀를 지나가는 모든 이가 한 번쯤은 눈길을 주었다.
박수영에게는 그 눈길을 받을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때 복도 끝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저기 박수영 씨 되시죠?”
그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자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눈에 띄게 수려한 외모.
단골 호스트바를 가도 저런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그녀는 급호감이 생겼다.
“누구……세요?”
반사적으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목소리의 톤을 부드럽게 가다듬었다.
남자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세요?”
손바닥 위에는 검은색 캡슐형 알약이 있었다.
그녀는 그게 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건······”
“혹시나 했는데 알아보는군.”
이상한 말에 고개를 드는 그때였다.
손바닥에 있던 알약이 튀어 오르더니 콧속으로 쑥 들어왔다.
“케흑.”
“티 내지마라, 죽는다.”
“……!”
“지금 당장 캡슐 터트려서 목구멍에 넣을 수도 있어.”
거짓말이 아닌 것은 알약의 움직임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앞뒤로 움직였으니.
“누, 누구야 당신.”
“웃어. 그리고 팔짱 껴.”
이곳이 병원이든 뭐든 캡슐이 터지면 볼 것도 없이 즉사.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박수영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팔짱을 꼈다.
지나가는 간호사들이 그런 자신을 힐끔거리며 수군대는 것이 보였지만 누구하나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당신 차로 가자고. 안내해.”
박수영은 침도 삼키지 못하고 걸음을 옮겼다.
침을 삼키다가 알약이 목으로 넘어갈까 걱정되어서였다.
“이, 이거 좀 빼고 얘기해요. 캡슐이 녹으면 나 죽는다고요.”
“안 녹는 거 알아. 대가리 굴리지 말고 걷기나 해.”
박수영이 걸음을 멈춘 곳은 지하주차장에 있는 하얀색 포르쉐의 앞이었다.
그는 조수석에 털썩 앉고는 고갯짓을 했다.
“출발해.”
“어디로 가요?”
“시키는 대로 출발이나 해.”
박수영은 어쩔 수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병원 밖을 나온 그들은 도시외곽도로를 달렸다.
“당신 누구예요? 누군데 그 약을 가지고 있는 거죠?”
“질문은 내가 한다.”
“……”
“남지웅 알지?”
“……!”
“대답.”
“아, 알아요.”
“어디 있지?”
“도, 돌아가셨잖아요. 뉴스에도 나왔었는데······”
그 순간 콧속에 있던 알약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히이익!”
그때 내려갔던 약이 다시 원위치 되었다.
아까처럼 눈앞의 남자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놈 남지웅 아닌 거 다 알아. 너도 알고 있잖아.”
“……!”
“어딨어, 그놈.”
“모, 몰라요! 진짜 어딨는지 모른다구요!”
“확실해?”
“진짜예요!”
“다음번 불법 장기이식 수술이 언제야?”
“자, 장기밀매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널 납치한 줄 알아? 당신, 남지웅 개인수술팀이잖아. 불법 장기이식 스케쥴 관리도 네가 했고.”
박수영은 손을 덜덜 떨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었다.
-빠앙.
“어허, 운전 똑바로 해야지.”
그 말과 함께 핸들이 저절로 움직였다.
알약이 움직인 것도 그렇고 초능력 같은 게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지만.
“동요하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네.”
“으흐흑, 그거 말해주면 나 죽일 거잖아요.”
“난 여자는 안 죽여.”
“살려주세요, 제발.”
“거참 안 죽인다니까.”
“그,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요. 먼저 풀어주세요. 그럼 알려드릴게요.”
남자는 자신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고. 풀어줄게, 어디 한 번 꼭꼭 숨어봐. 대신 잡히면 넌 바로 내 손에 죽는 거야.”
“……!”
박수영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싫어? 그럼 선택해. 안 죽인다는 내 말 믿고 말할래, 아니면 나랑 술래잡기 할래?”
그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저 남자가 누굴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남박사님, 장기밀매, 자살용 독약 DX-01. 단서는 이거뿐이야.’
장기밀매는 알 수 있는 루트가 많다.
당장 고객들만 해도 여럿이 존재하니.
그렇다면 유력한 단서는 DX-01.
그녀가 알기에 그 약은 남박사가 블룸과 함께 개발한 약들 중 하나였다.
아니, 정확히는 블룸에서 만든 것이고 그 약들을 임상시험한 사람을 남박사와 자신이 해부해 신체에 미치는 반응에 대해 자료를 만들어 왔다.
그건 다른 수술팀 인원들도 모르고 있는 극비였다.
그러니 상대는 어떤 식으로든 블룸과 관계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블룸.
남지웅의 말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살인청부조직이라고 했었다.
게다가 신기할 정도로 효과가 뛰어난 약들을 개발하는 걸로 보아 뒤에 더 거대한 배후가 있는 것 같다는 예상도 있었다.
‘어쩌면 남박사님이 그렇게 된 것도 블룸에서 그런 건 아닐까?’
언제부턴가 해부도 줄었던 거 보면 약의 개발이 끝났고, 쓸모가 다했다고 판단하고 제거하려 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죽이고 보니 대역이었고, 그를 찾으려고 자신을 찾아온 거라면?
‘블룸에서는 내가 해부를 도왔다는 걸 몰라. 그럼 협조하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박수영은 결심을 굳히고 확인차 되물었다.
“저, 정말 말하면 살려줄 거예요?”
“내가 노리는 건 남지웅 한 놈이야. 너 같은 년 죽여 봤자 나한테 무슨 이득이 된다고 죽이겠어?”
이득을 언급하는 걸 보니 역시 청부업자.
박수영은 상대의 정체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하자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삼일 후에…… 명도그룹 회장 아들이 간 이식 수술을 해요.”
***
“그러니까 이 약은 김재철이라는 의사에게 받은 거다?”
리우의 물음에 칼리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리우는 손에 든 각성제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재철이라는 이름은 킴의 보고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앞서 칼리완이 설명했던 내용 중 궁금했던 점을 되물었다.
“근데 그 김재철이라는 놈이 요인암살을 의뢰했다고?”
“네. 국회의원, 보건복지부장관 등 사회유력인사 몇몇이 대상입니다.”
“그런 놈들을 죽이면 파장이 클 텐데. 아무리 카람빗이 드러나지 않은 조직이라도 위험할 거다.”
“어차피 전 한국에 오래 머무를 생각 없었습니다. 제 아버지라는 인간과 그 가족만 죽이고 나면 뜰 계획이었죠. 그 전에 돈 좀 만지려고 수락한 의룁니다.”
“널 버린 한국에 대한 감정은 그렇다쳐도 이 나라에서 사는 동남아인들도 힘들어질 텐데 그것도 상관없나?”
“상관없습니다. 전 한국인도, 동남아인도 아니었거든요.”
리우는 피식 웃었다.
혼혈이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는 칼리완의 마음은 암살자로 살아가기에 적합한 소양이었다.
“다 왔습니다.”
칼리완이 차를 세운 곳은 농막으로 개조된 컨테이너 앞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남지웅이 몸을 숨기고 있는 은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