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역시 박멸을 하려면 어울려줘야겠지
남지웅은 병원 내를 정신없이 달렸다.
비록 칼리완이 막아섰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걸 알기 때문.
안 그래도 불안정한 프로토 타입을 중복으로 복용해버렸다.
아무리 단련된 사람이라도 그 정도 양이면 근력의 성장이 한계치를 넘어 온몸의 뼈가 탈구되고 혈관이 가닥가닥 끊겨서 죽을 게 분명했다.
“바, 박사님 아까 그 사람 뭐예요?”
임오명이 사색이 된 얼굴로 물었다.
불법 장기이식을 몇 년이나 해온 그였지만 오늘 같이 참혹한 장면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몰라. 말할 체력 있으면 달리기나 해. 그놈, 금방 쫓아온다.”
“히이익.”
그가 입을 닫자 이번엔 박수영이 말했다.
“남박사님, 아까 그 사람 정체가 뭘까요? 블룸은 아닌 것 같던데 혹시 짐작 가는 거 없으세요?”
그녀는 남지웅이 그의 정체, 정확히는 초능력의 출처를 알까싶어 물었다.
“몰라, 모른다고! 나도 니들만큼 답답하니까 입 다물고 뛰기나 해!”
그때 평소에 말수 적은 마취의가 끼어들었다.
“박간호사는 블룸이 뭔지 아나 보네요? 뭐예요? 아까 그 동남아인이 블룸의 킬러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그놈들과 무슨 일에 엮인 거예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뭔가 아는 것 같으니까 묻는 거 아닙니까.”
“나도 모르니까 박사님에게 물어보고 있잖아요!”
두 사람이 실랑이를 하자 남지웅이 뒤를 돌아보며 빽하고 고함을 질렀다.
“X발! 제발 좀 닥쳐!”
어떻게 타이밍이 이럴까.
하필 그 순간에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의 목이 반대로 돌아갔다.
“헉!”
그놈이 그런 것이다.
남지웅은 기겁하여 복도 앞뒤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자신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숨어있는 거야…..있어. 아니면 이럴 수가 없잖아.’
놀리듯 숨어서 팀원들을 죽인 게 분명했다.
“X바알! X새끼야, 나와! 나오라고!”
남지웅은 숨겨놓았던 메스를 앞으로 겨누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도 저들처럼 목이 부러져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숨이 막혔다.
정적이 감돌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남지웅은 그제야 리우가 떠올랐다.
수술실을 나올 때 칼리완이 그를 언급했음에도 당황한 나머지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었다.
‘그, 그 사람에게 가야해.’
허겁지겁 몸을 움직였다.
몇 번이나 넘어지며 무릎이 까졌지만 아픔도 잊은 채 리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미, 미, 미스터 리우.”
손을 달달 떨며 차문을 연 남지웅은 창백한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꼴이 왜 그래? 칼리완은? 왜 혼자 왔지?”
“주, 주, 죽었소. 다 죽었어, 전부 다!”
“뭐?”
“괴, 괴물이오. 괴물이 다 죽였소! 지금 쫓아오고 있으니 도, 도망갑시다. 도망가야 살 수 있소!”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며 리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차근차근 얘기해.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겠으니까.”
“설명할 시간 없소. 이, 일단 출발합시다. 차, 차키······ 아 꽂혀 있네. 내, 내가 운전하겠소.”
“됐어. 그 상태로 운전은 무슨. 그러니까 남박사 당신 말고 다 죽었다는 거지?”
남지웅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저 인간이 괴물이라고 부를 정도의 실력자, 거기다 괴물’들’이라 지칭하지 않은 걸 봐서 단신으로 칼리완과 그 부하들을 죽인 것이 분명했다.
리우는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시동을 걸었다.
전후 상황을 파악하려면 그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빨리! 빨리 출발하시오!”
남지웅은 호들갑을 떨며 차창 밖을 이리저리 살폈다.
두려움이 새겨진 인간은 보통 저런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흉수가 어지간히 잔혹한 모양이었다.
리우는 그가 흥분을 가라앉힐 때까지 조용히 운전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달렸을까.
남지웅의 호흡이 차분해졌고 리우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정신을 차린 남지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곳에서 일어난 참상을 설명해주었다.
“블룸의 킬러였다?”
“그렇소. 칼리완도 그렇게 물었고, 그자가 BX-01을 복용하는 것도 보았소.”
“그런데 놈이 초능력? 그런 능력도 썼고?”
“염력이오. 물건이 막 저절로 움직이고 그랬소.”
“염력이라······”
리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야 왜 킴 정도의 실력자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스파이 임무 따위를 맡았는지 알 것 같았다.
블룸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상부에서는 그 프로젝트가 뭔지 확인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이제 보니 그것이 초능력자 개발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기에 킴을 붙여서 정확하게 확인하려고 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초능력자 개발?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과거 냉전시대엔 미국과 소련이 초능력자 부대를 창설하기도 했다고 들었으니까.
혹자는 전쟁이 낳은 한 편의 촌극일 뿐이라 터부시하지만 리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권력자들의 광기가 결합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헌데 말이야. 이렇게 도망친다고 그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지 않은데.”
“그게 무슨 말이오?”
“그놈이 정말 칼리완 때문에 당신을 보내줬을 거 같아?”
“……!”
남지웅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에 고갯짓을 하며 보인 눈빛.
그건 곧 잡으러 갈 테니 어디 최대한 발악해보라는 눈빛이었다.
“놈은 널 찾을 자신이 있는 거다. 그곳에 나타났던 것처럼.”
“혹시 미행이 붙은 거 아니오?”
“내가 그렇게 허술해 보이나? 내 이목을 속이고 미행할 수 있는 놈들은 전 세계에 몇 없어. 그놈이 설사 그 중 한 놈이라 해도 미행이 붙지 못하도록 움직이고 있고.”
“그럼 어떻게 찾아온단 말이오?”
리우는 그것 역시 초능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남지웅에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판단컨대 그는 프로젝트의 곁다리일 뿐이었으니까.
“방법은 중요한 게 아니다. 놈이 널 보내준 의도가 중요한 거지.”
“의도라니?”
“아마 죽이는 게 아니라 납치가 목적이었던 거다. 쫓을 방법만 있다면 네 발로 거길 나가게 만든 후 작업하는 게 더 간단하니까.”
“그,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오? 당신을 고용하면 되는 거요? 스컬도 청부조직이라고 하지 않았소.”
남지웅은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거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우린 그런 식으로 의뢰 안 받아. 하지만 나도 개인적으로 염력이라는 능력이 궁금하긴 하군. 그러니 미끼가 되어보는 건 어때?”
“……?”
“놈은 널 죽이지 않을 테니 미끼가 되어도 안전할 거다.”
“그러니까 날 미끼로 당신이 놈을 죽이겠다?”
리우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테냐? 선택은 너에게 맡기마.”
“……”
남지웅은 수술실의 참상을 다시 떠올렸다.
카람빗 여섯, 특히 각성제를 중복복용한 칼리완까지 놈에게 당했다.
그런 자가 어디든 쫓아온다면 리우 외에는 살아날 구멍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끼가 된다한들 방법이 있소? 그놈, 초능력자요.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을 죽인단 말이오.”
“아까 나한테 말했지? 칼리완이 던진 메스를 놈이 염력으로 멈추게 만들었다고.”
“그랬소.”
“그걸 보면 알 수 있지. 위협이 되니까 그런 거야. 그 말은 초능력이 어떻든 몸뚱어리는 칼로 찌르면 찔린다는 거고.”
리우는 데저트이글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놈의 눈길을 끌 때 멀리서 총알을 박아 넣으면 되지 않겠어?”
***
느긋하게 움직였다.
염력이 연결되어 있는 이상, 어디를 가든 남지웅을 놓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한 가지 더 노림수가 있었다.
칼리완이 말한 ‘그분’.
아마도 카람빗의 새로운 보스일 터.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그냥 넘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흐음······”
방향이 예사롭지 않다.
죽을 뻔했던 놈이 음습한 곳에 숨지 않고 번화가로 향하다니.
한 시간 가량 서울 시내 곳곳을 돌던 놈이 이동을 멈춘 곳은 홍대였다.
‘이 속도면 차에서 내려서 걷고 있구나.’
홍대는 대낮임에도 거리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남지웅이 느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좁혀나갈 생각이었다.
놈이 홍대로 온 이유가 있다면 그 부분도 확인할 생각으로.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까부터 동선이 반복되는 거 같은데?’
머릿속에 느껴지는 움직임.
분명 같은 장소를 뱅뱅 돌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느낌에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정지했다.
-치익.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며 놈의 움직임에 집중해보았다.
삼십분 정도 그곳에서 느껴본 결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놈이 홍대거리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있다는 걸.
‘확실해. 이건 의도된 움직임이야.’
이유가 뭘까.
왜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분명 목적이 있어서 저런 식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내가 쫓아올 거라는 걸 예상한 건가?’
쿨 하게 보내준 것처럼 행동했었는데.
어쩌면 박수영과 의사 두 놈이 죽은 것 때문에 내가 쫓아올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놈의 움직임이 의도하는 건 아마도 유인.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또 카람빗인가…… 동남아인들은 안 보이던데.’
어찌 되었든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함정이든 뭐든 당장 가서 놈을 잡는 것.
다른 하나는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획을 접고 동선을 벗어나면 그때 나서서 잡는 것.
‘안전한 건 후자지만······’
역시 박멸을 하려면 어울려줘야겠지.
***
-어떻게 됐소? 아직 못 찾았소?
남지웅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들려왔다.
“아직. 계속 정해준 코스로 돌아. 다른 곳으로 벗어나면 저격하기 힘드니까.”
-근데 거리에 사람이 적지 않은데 정말 미행하는 놈을 찾을 수 있소? 차라리 좀 인적이 드문 곳이 더 낫잖소. 저격하기에도 편할 테고.”
“사람이 많든 적든, 그런 건 저격하는데 문제 될 거 없다. 미행하는 움직임은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더 티가 나기도 하고.”
-알았소. 난 당신만 믿고 있겠소.
“연기나 잘해. 이따금씩 가게도 들어가고 버스킹도 보면서.”
리우는 주변이 잘 내려다보이는 높은 건물에 있었다.
또한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남지웅의 움직임에 맞춰 자신도 최적의 저격장소로 옮겨 다녔다.
그게 가능한 건 건물 사이사이에 쳐놓은 검은색 외줄 덕분.
그는 곡예와 같은 움직임으로 빠르게 건물을 넘나들었다.
‘왔다.’
그런 그의 눈에 남지웅의 뒤를 밟는 움직임이 들어왔다.
후드를 쓴 누군가.
듣기로는 병원에서도 후드를 썼다고 했는데, 놈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이곳으로 온 모양이었다.
“남지웅, 그놈이 검은색 후드와 청바지를 입은 게 맞나?”
-맞소. 나타난 거요?
“그래. 뒤를 보거나 주위를 살피는 행동은 하지마라.”
-아, 알았소.
“천천히, 100미터 전방에 보이는 커피숍을 향해서 걸어가. 그 안에 처리할 테니까.”
리우는 데저트이글을 두 손으로 파지하고, 건물 옥상벽에 팔목을 갖다 대었다.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후우우······”
데저트이글은 설계자체가 일반적인 권총 이상의 파괴력을 낼 수 있도록 구경이 큰 총알을 사용한다.
때문에 반발력도 심하고 명중률도 썩 좋은 총이라 할 수 없었다.
그는 그걸 특제품으로 주문하여 강도와 무게를 늘리고 보통의 데저트이글보다 더 먼 사거리와 강한 파괴력을 내는 게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명중률은 더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극악의 명중률.
리우는 이 최악의 권총을 사용하여 저격용 소총의 수준에 이르도록 자신의 사격실력을 끌어올렸다.
그가 플로우 상태에 자유자재로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총의 비중이 매우 큰 부분을 차지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그는 이 비효율적인 권총 한 자루만으로 사선을 넘어왔으니까.
-스으으.
극한의 집중력 상태에서 리우는 천천히 손가락을 당겼다.
그 순간 총구에서 불꽃이 튀고 파형이 물결치며 이동하는 게 그의 감각에 잡혔다.
그리고,
-타앙.
귓가를 때리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