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지?
-앵앵앵앵앵.
벌떼는 뭉치지 않고 넓게 퍼져서 전방으로 날아갔다.
나는 적당히 거리까지 갔다고 판단해 힘을 거두고 연결만 유지했다.
그 순간 벌들은 우왕좌왕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말 못하는 곤충이지만 분명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건 곧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것이 벌이라는 곤충이고.
그때 몇 마리가 휙하고 쏘아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픽픽하고 연결이 끊어졌다.
놈에게 당한 것이다.
‘찾았다!’
그 순간 일대의 벌들을 모조리 그곳으로 이동시키고 알아서 달려들도록 힘을 거두었다.
그러자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벌들이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 연결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횟수가 늘어나자 그때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집단행동을 보이며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레이더 역할이 끝나고 초소형 유도미사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자 벌떼의 방향이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동하나보네.’
그 자리에서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놈이 벌떼에게서 벗어나기 전에 승부를 보기 위해서였다.
방향은 3시.
벌떼는 그쪽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올라 근처에서 가장 높은 교회 첨탑 위 십자가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3시 방향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잡았다!’
시커먼 벌떼들과 벌이는 사투는 멀리서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나는 검은 안개처럼 보이는 벌떼를 떨어뜨리게 만들고 놈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벌떼를 막기 위해 검은색 롱코트를 한 손으로 휘두르고, 나머지 한 손에 권총을 든 남자.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권총이었다.
‘소총도 아닌 권총으로 저격을, 더군다나 그런 파괴력을 냈다고?’
위험한 놈이다.
곧바로 염력을 발휘해 오른손에 쥐고 있는 총부터 부숴버렸다.
그리고 팔다리를 쥐어짜 뼈를 산산조각 내고 온몸을 단단히 구속했다.
‘이 정도면 아무 짓도 못하겠지.’
한 번의 도약으로 놈의 앞에 내려섰다.
벌침에 족히 수십방을 맞은 얼굴.
십만 마리를 상대로 저 정도에 그친 것에 놀랐고, 비록 꿀벌이지만 저만큼 맞고도 쇼크나 그 비슷한 낌새조차 없다는 것에 신기했다.
그리고 그의 피부색을 보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응? 동남아인이 아니잖아? 카람빗의 신임보스가 아닌 건가?’
입을 벌리고 어금니를 확인해보았다.
각성제와 독약이 없다.
블룸도 아닌 것이다.
‘리 일가의 생존잔가?’
호기심에 소지품을 뒤져보았다.
그런데 상당히 재밌는 물건이 하나 나왔다.
“하, 이걸 이렇게 또 보네.”
너클에 해골모양이 세 개가 있는 트렌치 나이프.
이걸 상징처럼 쓴다는 놈들이니 스컬이 맞을 것이다.
“어쩐지 버겁다 했네.”
“……”
“그래, 해골바가지. 반갑다. 안 그래도 궁금한 게 많았거든.”
“……?”
“아, 내가 입을 안 풀어줬구나?”
놈은 입을 쩍 벌린 채로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근데 대화는 이따가 하자고. 잡으러 가야할 놈이 하나 더 있어서 말이야.”
트렌치 나이프의 너클에 손가락을 끼우며 천천히 다가갔다.
자칫 죽을 뻔하기도 했고, 그 고생을 했으니 한 대는 때려줘야 분이 풀릴 것 같아서였다.
목표는 관자놀이.
골프스윙을 하듯 상체를 비틀었다가 있는 힘껏 휘둘렀다.
-뻐억!
너클 자국이 날 정도로 세게 후려쳤다.
그런데 기절을 안 하고 도리어 나를 노려본다.
사람 자존심 상하게.
“야, 네가 그러면 내 주먹이 물주먹인 거 같잖아.”
별수 없이 팔에 염력까지 걸어서 다시 후려쳤다.
-뿌아악!
한 방에 눈두덩이가 주저 앉으며 눈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남은 한쪽 눈을 허옇게 뒤집더니 고개를 모로 숙였다.
“꼭 매를 벌어요, 매를.”
***
‘지들끼리 치고 받을 때 도망가야해.’
남지웅은 첫 번째 저격이 실패하자마자 냅다 달렸다.
그 실패 한 번으로 병원에서의 공포가 떠오른 것이었다.
리우가 이긴다면 다행이지만 질 수도 있으니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근데 진짜 어떻게 날 찾아온 거지?’
아무리 몸 이곳저곳을 살펴봐도 추적장치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리우의 말대로 놈은 정말 나타난 것이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 있으니까 옷 부터 갈아입자.’
그는 길거리 가판대에서 오만원 권 몇 장을 대충 던지고 아무 옷가지와 신발을 집어들고 근처 공중화장실로 들어갔다.
-덜컹.
벗은 옷가지를 쓰레기통에 대충 쑤셔넣은 그는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그때 화장실 입구에 누군가가 불쑥 나타났다.
눈에 띄는 롱코트.
그는 화색을 띠며 반겼지만 얼굴을 확인하고 곧 표정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은데다 기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X···…발!”
뒷걸음질을 친 남지웅은 청소도구함에서 서둘러 마대자루를 꺼내들었다.
그때 리우의 뒤에서 나타난 남자가 양손에 트렌치 나이프를 끼고 칭칭하고 너클부위를 부딪히며 말했다.
“맞고 갈래, 그냥 갈래?”
그걸 본 남지웅은 손에서 마대자루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뎅그렁.
리우의 왼쪽 눈이 저 지경인 건 저 너클에 맞아서 그런 것이란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지? 기대해도 좋아, 남박사.”
남지웅은 그 웃음을 보자 등골이 오싹했다.
***
박인섭은 강남서를 떠나자마자 용산으로 향했다.
팀장들에게 했던 말대로 박쥐가면을 쓰기 위해서였다.
전자상가의 어느 허름한 전파사를 찾은 그는 익숙하게 가게 안쪽에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돌아, 안에 있니?”
그때 안에서 짜장소스가 묻은 입을 소매로 대충 닦으며 통통한 남자가 나왔다.
“쩝쩝, 계장님···…쩝쩝, 오셨어요?”
“넌 어떻게 매번 짜장면이냐? 질리지도 않아?”
“꿀꺽, 네. 맛있는데요.”
박인섭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를 지나쳐 내부로 들어갔다.
10평 남짓한 공간은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기계가 가득했고, 가운데에 자리한 식탁 위에는 소스와 면이 남은 짜장면 그릇이 놓여 있었다.
“다 먹었지?”
“한 젓가락만 더 먹으면 돼요.”
그는 남은 걸 한입에 털어놓고 우적우적 씹었다.
박인섭은 짧은 한숨을 쉬고 다시 물었다.
“육손이랑 해달이는? 왔어?”
-도리도리.
“연락은 됐고?”
-끄덕끄덕.
“언제 온대?”
공돌이는 입을 오물거리며 손가락 네 개를 폈다.
“네 시면 올 때 다 됐네.”
-끄덕끄덕.
“그만 꼭꼭 씹고 빨리 삼켜, 이 새끼야.”
-꿀꺽.
“내가 말한 건? 다 준비해놨어?”
“넵.”
“어디 좀 보자.”
“여기요. 이 안에 든 거 전부예요.”
그가 종이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자 박인섭은 그 속을 뒤적거렸다.
전부 몰카와 도청을 위한 장치였다.
그 중에 그의 눈길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이건 뭐야?”
“사슴벌레로 위장한 몰카요. 도청도 되는 거예요.”
“이렇게 작은 게? 배터리는 어쩌고?”
“블루투스 이어폰도 작잖아요.”
“와, 기술이 진짜 말도 못하게 빨리 발전하네. 이러다가 손톱만한 크기까지 가는 거 아냐?”
“더 작아질 수도 있겠죠.”
“이거 움직일 수도 있냐?”
“아뇨, 조종은 안 돼요. 그럴려면 구동장치가 필요해서 더 커져야 해요.”
박인섭은 미간을 좁히고 사슴벌레의 렌즈를 보며 물었다.
“이거 시중에도 풀렸어? 다른 놈들이 쓰는 기성품이야?”
“에이, 아시잖아요. 저 말고 누가 이런 거 만들겠어요.”
“풀지마라. 죽는다, 응?”
“안 풀어요. 이런 거 보면 저한테 제일 먼저 가지고 올 거 아는데 제가 어떻게 풀어요.”
“안 풀건데 왜 만들었어?”
“주문제작으로 한 번만 만들었던 건데 계장님이 전 품목 다 챙겨놓으라고 해서 넣어놓은 거예요.”
그 말에 박인섭은 손바닥으로 공돌이의 머리를 쳤다.
“야이, 새끼야. 주문제작으로 푼 건 푼 거 아니야? 내가 이런 것도 풀지 말라고 했지?”
“아으···.. 그럼 어떡해요, 전검사님이 하나 만들어달라는데.”
“……뭐? 누구?”
“전민성 검사님이요.”
“전검사가 왜?”
“나야 모르죠. 그냥 만들어달라니까 만들어준 거예요.”
“다른 건? 다른 건 만들어준 거 있어?”
“아뇨, 그거 말곤 없어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치. 검사가 이런 거 쓸 일이 뭐가 있다고. 거기다 이젠 금융 쪽 사건만 맡는 양반이 참고용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을 리도 없고.”
자신의 타겟이 염석훈이기 때문일까.
그와 관계된 전민성이 수상한 짓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관련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검사도 한 번 살펴보는 게 좋을 거 같네.’
그게 뭐든 염석훈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확인할 생각이었다.
심증 백퍼센트인 반면, 물증은 제로.
박인섭은 그 물증을 불법적인 방법이라도 써서 확보한 후 다음 스텝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때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육손과 해달이었다.
“계장님, 오랜만이네요.”
150을 갓 넘을 정도로 작은 키의 남자가 손바닥을 보이며 인사했다.
인상적인 건 그의 손.
별명대로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소매치기 출신으로, 사람들이 현금을 쓰는 빈도가 줄어들고 소매치기업이 사양산업에 들어가자 절도업계의 스폐셜리스트로 활동하다 박인섭에게 덜미를 붙잡힌 케이스였다.
“너 내가 그 손가락 수술 하라고 했지? 실력있는 의사 소개시켜줬잖아. 왜 여태 안해?”
“그냥 안 할래요. 이젠 익숙한데요 뭐.”
박인섭은 피식 웃고는 옆에 있는 정장코트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업계에서 불리는 별명은 해달.
해킹의 달인이라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어이, 해달. 얼굴 좋네? 돈 잘 버나봐?”
“예, 뭐. 근데 왜 불렀습니까? 육해공 다 소집한 건 진짜 오랜만인 거 같은데.”
“연쇄살인마가 된 배트맨을 잡아야 되거든.”
“……네?”
박인섭은 자신의 폰에서 염석훈의 사진을 띄워놓고 말했다.
“우린 지금부터 이 새끼를 파고, 파고 또 팔 거다.”
“이 친구가 누군데요? 멀끔하게 생긴 게 범죄자처럼은 안 보이는데.”
“눈깔.”
“예에?!”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눈깔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진짜 이 친구가 눈깔이에요?”
“내 판단으로는 그래.”
“지금 물증 잡겠다고 이러는 거네요, 그죠?”
“맞아. 그리고 하는 김에 전민성 검사도 팔 생각이고.”
“둘이 아는 사입니까?”
“같은 고아원 출신이거든. 공모를 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민성이 그들에게 베풀었던 호의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니들 생각이 어떤지 아는데. 이번만은 군말없이 따라줘라. 다들 나한테 갚을 빚 있지? 그거 이번에 다 탕감한다고 생각하고.”
그 말에 해달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눈깔이라는 이 친구는 몰라도 전검사 핸드폰은 해킹 안 할 겁니다. 대한민국 검사 폰을 해킹했다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요.”
“……”
“야, 니들은 어쩔래? 전검사 집에 들어가서 몰카 설치할 거야?”
육손과 공돌이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검사는 손대기 싫은데.”
그들이 꺼려하자 박인섭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전검사는 원거리 도청만 하는 걸로 하자. 어때?”
그건 증거가 남지 않는 최소한의 타협점이었다.
세 사람은 그 정도라면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계장님.”
“……?”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막말로 저희들 소집하는 거 어지간하면 안 하시잖아요. 피해자가 많긴 하지만 이건 계장님 스타일이 아닌 거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내가 언제 니들한테 도움을 구하는지 알지?”
“알죠. 동료가 희생됐을 때 아닙니까. 근데 눈깔이 경찰을 죽였다는 뉴스는 없던데요. 이놈이 경찰도 죽였습니까?”
“죽였지, 경찰 박인섭을.”
“……예?”
“이 새끼가 내 옷 벗겼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자기 쫓는 놈 있으면 똑같이 해주겠다는 식으로 나왔고.”
박인섭은 넥타이를 풀어 탁자 위에 집어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놈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기 입맛대로 공권력을 유린할 수 있다는 걸 나한테 보여줬다. 너무 위험한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