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8
8화. 어떤 놈인지 잡히기만 해라
김천수는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절대, 절대 아닙니다.”
“확실해?
“그럼요! 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만약 현성이가 부탁했더라도 절대 안 된다고 못 박고 형님께 알렸을 겁니다.”
그를 물끄러미 보던 최칠상은 이내 싸늘했던 표정을 풀고 말했다.
“그래, 알았으니 들어가자. 형님 기다리신다.”
“예, 형님.”
김천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룸으로 들어가니 강신재는 아직도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재생되는 영상은 페라리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부분이었다.
“벌써 갔던 모양이네?”
강신재는 태블릿을 내려놓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예, 형님.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앉아, 앉아. 술이나 한 잔 하자.”
그는 앞에 늘어선 양주잔을 채운 후 한 잔씩 돌렸다.
“내 아들, 현성이가 죽었다. 마누라 때문에 있는 듯 없는 듯 키운 아들이 말이야.”
“형님······”
“알지? 나 장례식에도 못가.”
아내가 외도를 용서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호적에도 올리지 않고, 금전적 지원 외에는 혈육으로서 아무런 행위도 하지 말 것.
강신재는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흑룡파 보스의 딸인 그녀 덕분에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니.
“그러니 여기서 조용히 추모하자.”
“……”
“대신 현성이 사고와 관련된 놈들은 같이 보내준다. 그게 죽은 아들에게 주는 못난 아버지의 노잣돈이니까. 마셔라.”
-짠.
네 개의 잔이 부딪히고 그들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
골드바를 나온 후, CCTV의 사각을 찾아 자리했다.
이제는 거의 습관적으로 CCTV에 노출되는 게 꺼려졌다.
내가 업소를 나와서도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김천수의 말.
놈은 몸이 안 좋다는 말에도 한설아를 나오게 만들려는 듯 했다.
-야, 내가 빡세게 굴리라고 했지? 아프다고 안 나와? 은실이 너, 일 이 따위로······
분위기로 보아 은실이라는 새끼마담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한설아가 골드바에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지.’
십오 년 만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그때의 미소는 아직 그대로일까.
아니면 이젠 사라지고 없는 걸까.
정문을 주시하는 그때였다.
‘직접 움직인다고?’
새끼마담이 골드바를 나오고 흰색 벤츠가 그녀 앞에 섰다.
운전자는 그녀의 개인기사인지 차에서 내려 공손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아직 누나가 안 왔는데 자리를 비운다?’
온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다른 업소를 가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김천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그놈은 이런 쪽으로는 철저해. 저 여자가 그놈 성격을 알면 저렇게 자리를 비울 리가 없어.’
나는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앞에 벤츠 따라가주세요.”
택시는 일정거리를 두고 벤츠 뒤에 따라붙었다.
미행을 하는 이유는 어디를 가는지 대충 짐작되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는 분명 한설아의 집일 것이다.
아마도 전화상으로 연락이 안 되니 직접 움직이는 것이지 않을까.
-지이이잉.
갑자기 진동이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최미연이었다.
“여보세요.”
-나야, 민성이랑 만나서 얘기했어.
“어떻던가요?”
-여전히 둔탱이긴 한데 그래도 예전처럼 융통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아.
최미연은 강민성과 나눈 대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요약하자면 처음에 염려한 것처럼 공권력으로 무작정 빼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단 도와줄 의사는 확인했고. 너랑 같이 만나자고 하는데 언제가 좋아?
“전 언제든 괜찮아요.”
-그럼 내일 괜찮지?
“네.
-알았어, 시간과 장소 보내줄게.
통화를 마치자 벤츠는 어느 오피스텔 앞에 멈춰서 있었다.
새끼마담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님, 여기서 내릴게요.”
서둘러 계산을 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오피스텔 입구로 들어가니 이미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가서 능력을 사용했다.
-슈욱.
염력으로 빠르게 날아오르며 소리에 집중했다.
-띵.
12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 그곳에 내려서서 바깥을 살폈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새끼마담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1201호라고 적힌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한참을 눌렀지만 문이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새끼마담은 한숨을 쉬고 직접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마리아, 나야. 문 열어.”
-쾅, 쾅, 쾅.
“안에 있는 거 알아. 빨리 안 열어?!”
-쾅, 쾅, 쾅.
“너 때문에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기나 해? 다음부턴 얄짤 없을 줄 알아! 알았어?”
그녀가 소리를 치고 협박까지 했지만 내부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파서 잔다고 해도 이 정도로 시끄럽다면 반응이 있어야 하건만.
‘뭐지?’
이상하다.
왠지 모를 찝찝함이 느껴졌다.
나만 이상한 걸 느낀 게 아닌 건지 새끼마담이 핸드백에서 마스터키를 꺼내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건가? 아니면 설마 도망?’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날 생각을 하니 이런 걸까.
괜스레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그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꺄아아악!”
문을 열고 들어간 새끼마담의 비명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보지 않아도 특정상황이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히이익!”
새끼마담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로 돌아왔다.
온몸을 벌벌 떠는 그녀는 멈추지 않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댔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띵.
문이 열리고 그녀가 사라지자 나는 천천히 1201호로 움직였다.
현관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였다.
조임장치가 빡빡한 듯 했다.
-스윽.
문을 천천히 열었다.
내가 틀렸길 바랐다.
제발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어질러진 방에는 복부에 핏자국이 묻은 여자가 쓰러져있었다.
한설아였다.
이미 사망한 상태.
설마 이렇게 마주하게 될 줄이야.
“후우······”
심호흡을 하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먼저 했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도의 CCTV를 통해 내가 여기 있는 모습이 찍혔을 테니까.
지금 신고를 하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고 밖으로 나왔다.
안타깝고 슬픔이 밀려왔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십오 년이란 세월은 그토록 길었으니.
그래도 다리가 떨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벽에 기대서서 억지로 생각을 했다.
그러지 않으면 죽은 한설아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를 것 같았다.
‘단순강도? 우발적 살인? 아니면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살해한 건가?’
집안의 상태를 보아 강도 쪽일 가능성이 높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게 보이도록 위장했을 수도 있으니.
갑자기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천수…… 그놈일까?’
원한관계를 생각하면 가장 유력하다.
골드바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닐 수도 있으나 연기일지도 모른다.
‘후우, 정보가 너무 적어.’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최미연이었다.
“누나, 혹시 설아누나랑 연락했었어요?”
-응, 너희들 찾기 전에 만나서 연락처 교환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통화도 했었지.
“그럼 설아누나 핸드폰에 누나 연락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근데 그건 왜?
나는 그녀에게 한설아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충격을 받았는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말 들어요.”
-……
“설아누나는 보호자나 가족이 없으니 연고자는 누나가 될 거예요. 내가 경찰서에 가서 그렇게 진술할 거거든요. 그래야 설아누나의 시신을 우리가 수습할 수 있을 거고, 이번 사건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
“듣고 있어요?”
빌어먹을.
넋이 나간 모양이다.
-삐용, 삐용.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근처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누나, 경찰서에서 연락 갈 거니까 마음 다잡고 있어요.”
나는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복도의 창문으로 다가가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경찰차와 구급차를 내려다보았다.
‘어떤 놈인지 잡히기만 해라.’
***
“그러니까 염석훈 씨는 죽은 한설아 씨의 지인이고, 집으로 찾아 갔다가 시신을 확인하게 됐다는 거군요.”
형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시선은 모니터에 둔 채 나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네.”
“사전에 약속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한설아 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죠?”
“형사님, 혹시 절 용의자로 생각하고 취조하시는 건가요?”
내 물음에 그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최초신고자니까 기본적인 사항만 확인하는 겁니다. 지인이 안 좋은 일을 당해서 예민하신 건 알겠는데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그에게 내가 설아누나와 같은 고아원 출신이고, 십오 년 만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흐음, 십오 년 만에 찾아갔는데 살해당한 상황이었다는 말이군요.”
“정말입니다. 얼마 전에 같은 고아원 출신인 누나를 만나서 설아누나에 대한 소식을 들었거든요.”
“혹시 그 사람이 아까 한설아 씨의 연고자라고 말한 그 분입니까?”
“네, 도착하면 확인해보십시오.”
형사는 다시 키보드를 타다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손이 갑자기 뚝 멈췄다.
“잠깐······ 염석훈 씨. 아까 전에 고아원이라고 했죠? 혹시 미소고아원인가요?”
“네, 왜 그러세요?”
그는 잠시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한설아 씨 기록을 보니 미소고아원 살인사건으로 전과가 있네요. 십오 년 전 일인데 기억하시나요?”
“네, 그때 제가 어리긴 했어도 그 일 때문에 고아원이 없어졌으니 어렴풋이나마 기억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 위해 찾아간 거였군요.”
“네.”
“한설아 씨가 고아원이 없어지게 만든데다 살인자이기도 한데 찾아간 이유는 뭐죠?”
“관련 기록을 안 보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그때 당시 원장의 학대가 심했었습니다. 비록 설아누나가 살인을 저지르긴 했어도 저희 원생들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군요······”
형사는 턱을 쓰다듬으며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마도 죽은 원장의 가족관계를 보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수사의 방향은 김천수를 가리키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잘 됐네. 경찰이 수사하면 그놈이 운영하는 바의 불법적인 부분도 드러날 수 있을 테니까.’
그 과정에서 놈이 청부살해를 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그때 죽여도 늦지 않았다.
최초신고자에다 지인으로 밝힌 이상 어떤 식으로든 사건에 다가갈 수 있을 테니.
“염석훈 씨.”
“네.”
“그때 고아원장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건 아십니까?”
“네, 고아원에서 같이 살지 않아서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있긴 있었습니다.”
형사는 고개를 주억거린 후 말했다.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만 가보시면 됩니다.”
“네, 혹시나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십시오.”
나는 그에게 내 명함을 건네고 그의 명함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는 그때였다.
최미연이 창백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